• 마감을 정해

    오랜만에 공고일에 맞춰서 지원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제법 오랜만이다. 거의 한 2년만인것 같다. 예전에는 뭐가 없더라도 내고 기다리는 기분을 위해 제출했던 그였다. 이런 마감이라도 있어야 뭐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재촉이었다. 조바심이었다. 금요일에 결심을 했고- 그날은 운동을 핑계로 그냥 보냈다. 운동을 했다치고, 그는 일찌감치 침대로 향했다. 겨울은 역시 너무 싫어. 라면서. 방심이었다. 멜라토닌마저 먹지 않다니- 몸이 더워지더니 잠 든 시각은 새벽 4시가 넘었을 것이다. 침대로 몸을 넣은 게 11시 쯤이었건만.

    오전에 잠깐 깼었다. 팟캐스트가 계속 틀어져있었다. 수면의 질이 좋지 않았겠군. 하며 다시 잠을 청하고 깬 시각은 오후 12시. 그제서야 일어날 맘이 생겼다. 그래도 일찌감치 세수를 하면 한심한 꼴을 면할 수 있을꺼야. 배를 채우고, 일찌감치 세수를 하고, 물티슈 따위로 바닥을 문지르고 나니 오후쯤. 낮시간부터 까페에 가면 좀 애매하다 생각했다. 여유있다는 탓에 딴청만 부릴 것이 뻔했다. 그는 집 PC로 한번 도전해보기로 했다. 역시 주기적인 패턴으로 크롬창을 열고, 유튜브 사이트를 들락날락했지만 그래도 긴 시간이었던지라 성과는 있었다. 2페이지에 조금 못미쳤지만. 아예 아무것도 없었던 것에서 뭔가가 생겼다는 것. 그 희망을 쥐고 저녁엔 을지로4가로 향했다.

    그는 BC카드 건물 로비의 매끈함이 너무 공허하고 유령같다, 라고 생각했고 이리 늦은 밤시각에도 사람들이 빽빽하게 차 있어서 아니, 지금이 시험기간이었나? 라고 순간적으로 혼동하기도 했다. 고도의 집중력은 아니었지만 꾸준히 뭔가를 해보았더니 그래도 제법 분량이 됐다. 됐다. 내일, 일요일이 있으니깐 오늘은 이걸로 어느 정도는 됐다, 싶었다.

    그는 오늘은 뭔가 생산성 있는 하루가 된 것 같다는 생각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그리 우울하지는 않았다만, 왜 다른 날들은 잘 되지 않았던 것이었을까?

    마감이 있고 없고의 차이였을까?

    아니면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지니고, 포기하고의 차이였을까.

  • 어떤 멜로영화를 보고

    러브는, 러브스토리는, 멜로영화는 시간과 대결하는 것이 아닐까? 궁극적으로는 시간과 대결하게 되고 절묘한 순간에-꼭 예상할 수 없는 어떤 타이밍이 아닌, 그렇다고 예보될수도 없는 곳인데- 비약이 들어가면 아, 여기서 껑충 뛰어버렸구나, 하고 사후적으로 깨닫는 지점을 만들어주는 순간, 바로, 그때서야 러브란 참 비릿하고, 서슬퍼런 것이구나- 하는 멜로영화의 비정함에 다시금 놀라고 말 것이다

    어떤 순간에는 조바심이 나더라도 꿋꿋하게 버텨버리는 것. 거기서 돋아나는 힘이 있다고 그는 믿고 있다

  • 지나가는 겨울

    겨울이 지나가고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 하천옆길을 지나면서였다. 좀 춥긴 한데 그 기세가 확실히 다르구나, 라고 생각했다. 욕하면서 가던 길을 수월하게 갔다. 2026년의 여름은 또 새롭게 아련할테인데, 그걸 어떻게 채우게 될까, 계속 뭔가에 쫓기는 것만 같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는 퇴근 후의 시간이 무용하게 지나버린다고 생각한 지가 꽤 됐다. 염색을 하면서 갑자기 화장실 청소를 시작했다. 근래에 계속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이 고질적인 곳, 보이는 때만 하얘지는 것이겠지만- 이렇게 하나하나 내버려둬 버리면 더이상 뭔가를 지켜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큰솔과 작은솔을 번갈아가서면서 문질러대다보니 제법 그럴듯해 보였고, 놀랍게도 이건 깊은 어딘가에서부터 끌어오르는 악취야, 라고 생각했던 그 비린냄새가 꽤 많이 없어졌다. 심연처럼 어두운 세탁기 밑까지 건드리지는 못하더라도, 자자-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포기하지 말고 살아내면 구리게만 살게 되지 않을거야. 생각보다 꽤 보람차구나. 하면서 그는 괜시리 들떴다. 집중해서 보지 못했던 인디아송의 몇 부분이라도 조금 틀어볼까, 했던 구상은 지켜내지 못했지만 큰 좌절을 주진 않았다.

    며칠전부터 감돌던 조바심과 질투심의 원인은 근래 글을쓰지 못한다는 것도 있었지만 자꾸만 그의 삶을 다른 것들과 비교해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결국 미련이라고 할 수 있을 법한 단순한 것들. 그땐 왜 그걸 몰랐을까? 라고만 푸념짓는 것들.어찌보면 지난 시간들속에 운이 좋았던 것도 꽤 많았건만 그런 것은 모두 당연한 것으로 치부해버렸기에 마음 속 한만 깊어지는구나, 라고 그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그렇게 작은 것들에 조바심일 날 때는 얼토당토하지 않은 거대한 것들을 생각해버리면 된다. 우주라 할지, 죽음충동이랄지. 그러면 비리고 비린 일상의 텃텃함을 빗겨나가기 위해 몸부림치는 망상과 제멋대로의 관념으로부터 찰라이겠지만, 벗어날 수도 있다. 그는 그렇게 위안한다.

  • 2월 3일

    늦게 일어날 수 있는 좋으날이었다. 10시반경에만 일어나도 꽤 괜찮은 컨디션을 선사한다. 이보다 이르면 피곤하고 이보다 늦어도 피곤하다. 그의 경험상 그랬다. 오늘은 수리된 카메라를 찾으러 가기러 한 날이었다. 20년 전쯤 사둔 Contax T2. 구매한 가격이 30만원쯤 했었던 것 같다. 상태도 꽤나 좋앗건만 그의 투박한 손이 이리 떨어트리고 저리 떨어트리고 한 바람에 뒤에 깨진 부분도 있고, 켤 때마다 뭔가 걸리는 감도 있고… 더욱이 건전지의 전력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문제까지 있었다. 수리비는 딱 30만원. 구매가만큼이었다. 그래도 구형 카메라가 지금은 가격에 제법 올라 70만원이 넘고 그랬다. 어찌보면 사두기는 잘했다. 투박하게 떨궈대서 그렇지. 수리하시는 사장님께 네고를 요청드릴까 하다가 거지당근 처럼 여겨질까봐 차마 입밖에 내뱉지 못했다.

    카레라를 받고 나선 시간이 애매하게 떴다. 카페를 가기엔 중간에 저녁식사시간이 걸릴 것 같았고, 그렇다고 어디 딴 데가서 시간을 때울만한 곳도 없었다. 결국 카페를 갔다. 명성이 엄청났지만, 그는 한번도 안가봤던 우래옥. 일전에 을밀대와 의정부 평양면옥에서 한번씩 평양냉면을 먹어봤지만 그냥 괜찮긴 한데- 좋아한다고 말할 순 없는, 그냥 별미군.. 이라고 생각했었던 그였다. 우래옥은 어떨까.

    맛있었다. 감칠맛이 진한데 인위적이지 않은 감칠맛에 끝에 휘감는 묘한 동치미 국물 비슷한 맛. 평양냉면은 원래 슴슴하니 이것의 킥은 우래옥 매장에 휘몰아치던 불고기 구이의 향이 아닐지…

    그리고 그는 그날도 배탈이 났다. 빨리먹거나 많이 먹거나 하면 꼭 배탈이 나는데 우래옥에서 정신머리가 나간 나머지 빨리 먹고 많이 먹기까지 했기 때문에….

  • 영화를 본 것도 아니고 안본 것도 아니고

    ㅇ그는 어제 새벽4시에 집에 들어갔고 잠에 든 시각은 새벽5시쯤 되려나 보다. 오늘 약속시간은 1시였기에 마음 놓고 잘 수가 없었다. 오전 9시쯤 한번 깼다가, 아- 조금 더 돼, 하면서 오전 10시, 11시. 이런 식으로 설잠을 연장해가면서 겨우 12시에 집을 나섰다. 약속은 별 거 아니었다. 어떤 물품을 전달해주기만 하면 되는 것. 일단 학교까지 나와서 물품을 전달해주고 나니, 아- 이제 뭐하지? 덥고 졸린 기운은 남아있고, 뭔가 생산적인것을 할 수는 없는 체력상태고… 민생지원영화할인쿠폰이 발급되기 시작했으니, 킬링타임용 영화라도 싼맛에 봐볼까- 하면서 동네극장에 상영작들을 살펴봤는데 딱히 뭐가 당기진 않았다. 그래도 극장에서보면 나름 재미있게 볼 수 있을지도 몰라- 라며 그는 F1 을 예매했는데 쿠폰까지 먹이니 결제금액이 1천원 밖에 되지 않았다. 오, 진짜 이 정도라면 진짜 사람들 영화 많이들 보는 거 아니야? 극장의 활기, 다시 불어이나??? 라고 잠깐의 의문이 들었지만, 상영목록을 보니… 그런덱 뭔가 후킹이 당기는 컨텐츠가 없긴 했다. 최근에 전지적 독자 시점이란 영화가 블록버스터 인 것 같던데- 좋지 않은 평을 더 많이 봐 온 터였다. 그는 앞으로 한두시간만 더 시간 때운 뒤에 영화 상영시간에 맞춰서 봐야지~ 하면서 시간 때우고 있는데, 서울아트시네마의 “얼굴과 시선” 이란 영화제목과 스틸컷이 눈에 확 들어왔다. 요한 판 더르 쾨컨 이란 생소한 감독의 회고전이고 필름 상영이라고 한다. 서울아트시네마의 프로그래머는 이번 필름 상영전을 다시 볼 수 없을 수도 있다고 자신의 SNS에 글까지 남겨두고 있었다. 대학로에서 서울아트시네마는 273버스가 한번에 가니까 교통도 좋았다. 그는 지체없이 동네극장의 F1 을 예매취소하고, 서울아트시네마의 얼굴과 시선을 예매했다.

    서울아트시네마의 극장에 들어가서 앉자마자, 그는 위기감을 느꼈다. 아- 졸린데? 그런데 그는 아주 가끔씩 정말 잠도 많이 못자고 체력이 없는 상태에서도 자지않고 영화를 본 적이 기적처럼 있었던 것을 기억했다. 스크린 오른에 빛이 투사되고 있는 것을 보니 세로자막이었다. 그가 최근에 세로자막으로 본 영화는 거의 100% 확률로 잠과의 사투를 벌이다가 패배한 적이 있었다. 불길했다. 사영까지는 약 15분 남아있었다. 그래, 차라리 영화 시작 전에 자두자- 그러면서 그는 호흡을 정렬하고 눈을 감았다. 잠깐 5분 정도 잠에 들었나보다. 그는 영화의 첫 장면을 본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는 꿈을 꾸었다. 꿈 속에서 영화 상영이 끝나고 그는 자신의 의자에 초코렛 따위가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는 그 초콜릿을 주워먹었다. 그는 극장을 나오면서 고양이를 한마리 발견했다. 그 고양인는 왠일인지 자신의 고양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그 고양이를 데려가려고 했지만, 고양이가 그를 원치 않았다. 그는 그래서 깨달았다. 아, 이 고양이는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키우는 고양이였지?! 그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서울아트시네마를 나섰다. 그리고 그는 꿈에서 깼다. 영화는 계속되고 있었다. 질환으로 죽음을 앞둔 남편 그리고 그의 아내가 서로의 얼굴을 맞대고 침대에 맞대에 있었고 화면은 두 얼굴을 가득 차게 프레임에 담았다. 카메라는 이따금씩 움직였는데 그것은 핸드헬드가 같지는 않았는데 픽스 카메라 특유의 딱딱한 느낌도 아니어서 참,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나래이션으로 누군지 모를 이가 자신의 작품에선 사랑을 담게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의 출산 장면이 나왔고, 항해를 시작하는 배와 그걸 배웅하는 사람들의 애절한 장면이 나왔다. 그리고 바다를 배경으로 영화가 끝났다.

    분명 첫씬을 보긴 했었으나, 도중에 개꿈까지 꾸면서 휘발되어 버리고- 그에게 남은 것은 끝나기 전에 3씬 정도? 이것을 영화를 보았다고 할 수 있을까? 좀 있다가 저녁 7시 타임에는 같은 감독의 16미리 필름 영화를 상여한다고 하는데, 그는 그것또한 괜히 들어갔다가 수면시간만 늘릴 것 가탕 두려웠다. 결국 허수아비돈까스에서 코돈부로를 먹고 그는 자전거를 탔다.

  • 성북천에서서

    그가 얼마 전에 겪었던 일화가 있는데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하기로 한다. 근느 그날도 늦은 저녁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여름밤엔 음악이야. 라며, 성기완의 앨범을 들으면서 돌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성북천을 자전거로 달려가고 있었다. 성북천은 한쪽은 보행자 전용이고 한쪽은 자전거 전용인데 그날도 자전거 전용인 도로를 걷거나 뛰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잠깐 잠깐 길을 건너가나 그런 사람들은 그러려니 싶지만 아예 작정한 러닝크루 따위가 자전거도로로 뛰고 있으면 그것 참 꼴보기 싫다, 라고 생각하는 그였다. 그래도 아직까지 그렇게 사람들이 많지는 않으니깐… 그럭저럭 다닐만 하군, 하며 돌아가던 길 갑자기 어떤 할아버지가 그를 멈춰세웠다. 그 할아버지는 다급한 기색으로 오면서 초등학생 5학년 정되 되는 남자아이를 보았느냐고 대뜸 물었다. 그리고 약간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인데… 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는 순간적으로 왔던 성북천을 오면서 기억나는 행인이 있었나 돌이켜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성북천을 자전거로 내달리면서 오로지 아, 성기완의 음악- 오랜만에 들으니 참 좋다, 가을에 들어도 매력적이지만 여름밤에 듣는 매력 또한 있구나. 하면서 자기만의 세계에 매몰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는 할아버지게에 본 게 없다, 라며 고개를 젓고 다시 자전거로 길을 갔다. 이어폰을 끼고 자전거로 내달리면 풍경을 참 못보게 되는구나, 앞으로 이어폰을 조금 덜 끼어야 하나? 초등학교 5학년 쯤 되는 남자아이라면 키와 몸짓이 어느 정도 되는 거지? 도무지 감이 안오는데, 아 조카… 조카는 다른 또래보다 키가 꽤 커서 이제 거의 170에 육박하는 중학생인데… 그것보다 조금 작은건가? 그런데 저 할아버지는 그 아이의 할아버지인데 아이를 봐주는 건가? 이런 잡생각으로 머리를 가득 채우고 가는데 한 1키로 쯤 더 갔을까. 눈에 띠는 아이가 있었다. 보자마자, 쟤다!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게… 키와 몸짓이 딱 초등학교 5학년이란 이런 것이다, 하는 정도의 크기였고 무엇보다도 다른 행인들처럼 앞만 보면서 걷고 있는 것이 아니라… 뭔가 어디로 갈지 몰라 하는 듯 혹은 길을 잃은 듯 이리저리 주변 사람들에게 계속 시선을 옮기며 당황스러운 기색이었다. 그는 자전거를 멈추고 잠시 그 아이를 봤다. 뭐라뭐라 혼잣말을 하는 기색까지 발달장애가 있는데… 라고 할아버지가 말했던 그대로였다. 할아버지는 내가 왔던 길 와중에 아이를 본 적 없냐고 물어봤었지만, 이 아이는 한참 앞에 있었구나.. 그가 그 아이에게 할아버지가 너를 찾고 있다, 저 밑에서- 라고 말을 걸어보았다. 그 아이는 조금 안정을 찾으며, 거기가 어디냐고 되물으면서 할아버지가 있었던 쪽으로 걷기 시작했고 그도 그 아이와 함께 동행했다. 그리고 한 500미터를 가니 그 할아버지가 그 아이를 보며 반겼다. 할아버지는 그에게 감사인사를 표하면서도, 그 아이에게 이 녀석아, 네가 그렇게 뛰어가면 할아버지 숨 차서 못 따라간다고! 라며 꾸짖었다. 잠시, 그는 이들의 삶과 일상을 자연스럽게 추정했다만, 꾸벅 인사를 하며 다시 집으로 자전거를 타고 갔다.

  • 여름의 절정

    여름의 절정에 이르렀다. 그는 여름밤의 묘한 설레임 때문에 자꾸만 음악을 찾곤 했다. 음반을 통채로 듣는 것을 즐겨하건만, 스포티파이 무료버전을 쓰기 때문에 듣고 싶은 곡도 제대로 듣고 있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스포티파이가 랜덤재생 해 준 3호선 버터플라이의 깊은 밤 안개 속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그는 추억이 돋아 3호선 버터플라이와 성기완의 음악을 연거푸 들었다. 남상아는 국내 최고의 보컬이었으며, 성기완은 멋있는 중년이었다. 그가 한창 음악을 듣던 때에 그는 원래 3호선 버터플라이보다는 허클베리핀에 빠져있었다. 하지만 까만타이거 부터 조금 거리감이 생기더니 그 다음 앨범은 팔로우하는데 실패했었는데, 그 사이에 3호선 버터플라이의 명반 Dream talk 때문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 비키세요요

    자전거에 트레일러를 달고 가는 여자가 그의 앞에 있었다. 트레일러는 그리 크지 않았고 가방도 헐렁해 보이는 것이 가벼워 보여다. 그녀의 귀 쪽에는 두터운 헤드폰 덮개가 보였다. 그가 그녀를 유심하게 보게 되는 것은 그녀의 자전거 속도가 지나치게 느렸기 때문이었다. 언뜻 뒤편을 살폈을때 그의 뒤로도 무더기로 줄을 지어 선 자전거들이 있었다. 그에게 모든 책임이 있는 것만 같았다. 트레일러를 단 구조적 문제 때문에 자전거 속도가 느려진 것이 아니었다. 그 이유를 넘어선 다른 것이 그녀의 자전거를 더 느리게 하고 있었다. 아마도… 자신만의 속,도?

    그는 신호가 있는 횡단보도를 계기로 해서 차라리 차도 쪽으로 달림으로써 그녀의 뒤꽁무니를 벗어날 수 있었다. 토요일 저녁, 웬일로 차가 별로 없었고 그는 마음껏 속도를 낼 수 있었다. 그의 뒤에 있던 그 무더기 자전거의 조바심으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었다. 꽤 달렸다고 생각했을 때, 그는 다시 자전거도로로 올라섰다.

    청계천 자전거도로의 제일 큰 문제는 행인이었다. 청계천 바로 옆으로 걷는 길은 모두 인도였지만, 청계도로에서 그 인도로 가기 위해선 2층 정도 높이의 계단을 내려가야만 했다. 을지로나 청계로 따위를 잠깐 걷는 이들이, 청계천이나 좀 보면서 걸어볼까? 한다면 제법 탐나는 것이 자전거도 도로였다. 게다가 청계천 자전거도로는 인도가 아닌 차도랑 맞닿아 있어서 자전거 도로로 걷던 행인이 잠시 비켜줘야한다면 더 내키지 않는 차도로 내려서야만 했다. 자전거 전용도로라는 표지판이 있지만, 저 마음 모르는 건 아니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마주칠때마다 종을 쳐대도 비키지 않는 행인을 연거푸 만나게 되면 그는 조금씩 짜증이 나는 것이다. 을지로 주변에는 외국인 관광객이 꽤 되는데, 오히려 외국인 관광객들은 자전거 도로에 잘 올라서질 않건만, 한국인들이 더 자전거도로에 진을 치고 배리어를 형성하고 있으니 얄밉기 그지 없었다

    먼 발치부터 약 6명 정도 되는 중년의 남성 무리들이 자전거도로에 진을 치고 걸어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멀찌감치서부터 종을 울려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취했던지, 그들끼리 흥이 난 건지 그들은 이리저리 움직이며 걸으면서도 조그만 틈도 내주지 않았다. 이제 바로 가까이까지 와서, 자전거가 그들의 뒤꽁무니를 따라 걷게 될 형국이었다. 그는 종을 쉴 새 없이 울려댔지만, 그들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그때 “비키세요!” 라는 어떤 여성의 외침. 그 외침소리에 중년의 남성들은 엉거주춤 틈을 만들면서 흩어졌다. 그가 뒤를 돌아보니, 그녀였다. 트레일러를 몰고 ‘자신만의 속도’ 로 그의 앞에 있던 그녀가 어느새 여기까지 도달했단 말인가.

  • 월요일의 피곤

    그의 일요일은 비어있었다. 전날 별 일정도 없겠다, 그는 한껏 방심했다가 낮잠을 푸지게 자버렸고, 밤이 되서야 아, 이래도 또 잠이 올 것인가- 로 불안해하다가 멜라토닌 2알을 꿀떡 삼켰다. 논렘수면까지는 다다들지 못한 것 같지만 그래도 제법 잠이 오게 된 데에 만족했다.

    날씨도 꿀꿀한 월요일. 특별히 바쁘게 움직어야 할 것은 없었다. 그는 느긋하게 방학 전에 공지 올리면 좋을 것들을 좀 올려뒀다. 그러고 나니 끝이었다. 뭘, 어떻게 해야하나… 오후 4시가 넘어가자 지독하게 졸리기 시작했다. 오후 2시경에 졸지 않은 대가였다.

  • 영화 두편

    그는 극장에 들어설 때부터 이거 심상치 않은데, 라고 생각했다. 이번에도 불길했다. 그래도 사람들이 꽤나 취소 티켓을 구히가 위해 애쓰던 영화인데 허무하게 자면 안돼지. 그는 폰으로 잠 깨는 지압법 따위를 검색했다. 관자놀이 압박, 손가락 사이 압박, 귓볼 당기기가 나왔다. 영화는 첫 컷부터 멋있었다. 와 기차와 정면으로 서있었도 꿀리지 않는 주인공의 표정. 그리고 음악까지. 명작임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두번째 씬부터 몽롱해지기 시작했고, 지압법을 동원하고, 물을 마시고 했지만 견딜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자, 이제 상쾌하지? 이제 잠이 깼으니깐 이제부터 제대로 보는거야? 앞에 못봤던 부분들은 집에서 보충하면 돼. 라고 생각했던 순간이 약 4번 정도. 그 4번도 이후에 다시 잠들었기에 도르마무처럼 계속 반복했던 것이다. 정말 신기한 것이 컷이 바뀔때마다 해당 컷들은 필사적으로 보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다. 그가 집에가서 약간 소름돋았던 것이 그것이었는데, 그가 보지 않은 미지의 컷은 없었다는 것이다. 어떻게든 컷의 바뀜을 인지해놓고, 몽롱해졌으며 눈을 껌벅껌벅 댔던게 분명하다. 그래도 그는 엔딩 적 약 5분 정도는 제대로 보았다는 데 위안하기로 했다. 극장낮잠이 습관들은 것일까, 세로자막에 약한 것일까, 아예 극장에서 영화를 볼 수 없는 인간이 되어버린 걸까… 하지만 씁쓸해할 여유는 없었다. 바로 홍대로 넘어가서 또 예매해둔 6시 영화를 보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20분만에 광화문에서 홍대까지 대중교통으로 이동해서 영화를 본 다는 게 가능한걸까? 의구심이 들었지만 그는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6시 영화는 한국 다큐멘터리였고 개봉할 작품처럼 보이지가 않았고, 또 앞부분 조금을 놓치더라도 따라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결론적으로 아주 무사히 세이프했다. 심지어 그는 극장에 들어가기 전에 화장실도 들렀다. 다큐멘터리의 첫 시작이 멋없고 무심하게 시작되었던 것은 좋은 징조였다. 자신이 뭔가 더 중요한 것을 보여줄게, 라는 자신있는 태도처럼 보였다. 하지만 점점 의구심을 자아내는 것들이 있었다. 제일 의아했던 것은 사운드였다. 일터에서 노동하는 다양한 인물들에 관한 다큐이건만 현장음이 거의 죽어있고, 인물이 움직이는 사물 따위에 폴리 사운드를 끼워넣어져 있었다. 사운드로 공간을 확장하는 설정 자체가 없었다. 그리고 주제에 맞춤한 미디어 소스와 일관된 나래이션들. 나래이션은 인터뷰 했던 내용을 토대로 글을 정렬해서 등장인물이 읽은 듯 들렸다. 다큐의 구성과 달리 왜 사운드가 심하게 정렬되어 있는 거지? 이토록 납작하게. 그리고 멋없이 시작했던 화면은 점점 보기 재미있는 화면, 미적인 화면, 임팩트를 줄 수 있는 피사체의 유혹에 쉽게 넘어갔다. 이강현 감독이 계속 연상되었는데, 촬영에 있어서 상대방을 알고싶어 하는 호기심이 느껴지지 않았다. 극 중 등장인물들도 지나치게 단정되어 있었던 것이, 그들은 쉬는 날 집안에서조차 메이크업을 유지하고 있었다. 결국 말하고자 하는 바가 직접적으로 수면으로 떠오르기에 이르는데, AI 시대에 노동의 가치 라고 요약해야 하나? 그는 GV를 보지 않고 극장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