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을 예약했지만

    밤을 예매했지만 사실상 보지 못한 것고 같은 결과이다. 3.1절 시위날에 종로를 관통하는 272 버스를 타고, 중간에 내려서 지하철을 타고 허겁지겁 극장까지는 잘 갔지만 영화 시작 후 15분 정도나 봤으려나 쭉 잔 것은 아니었지만 계속 자다깨다를 반복했고 중간에 영화와 관련된 꿈까지 꾼 바람에 영화 내용을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게 됐다.

    내가 본 것이라곤 이탈리아의 풍경, 중간에 흑인 댄서가 춤을 추던 것. 뭔가의 풍경으로 끝나는 엔딩 이게 전부였다.

    지나가다거 어떤 관람객의 후기같았는데 연출과 촬영이 정확하게 결합되어 있다, 라는 말소리가 인상깊게 들렸다. 나도… 느껴보고 싶었지만 술 먹고 다음날은 무리였구나

  • 2025년 첫날

    딱 1년 전. 동대문 메가박스에서 영화를 보고 나와 청계천을 따라 따릉이를 타고 가는데 타닥타닥탁 저 먼 뒤편에서 불꽃놀이 폭죽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1월 1일. 해가 바뀌어 있었다. 아, 새해에는 저렇게 폭죽을 터트리는 구나, 하고 알쏭달쏭한 마음가짐으로 남은 길을 자전거를 타고 갔다. 그때, 하던 일은 마무리가 되었고, 일단 2024년에 달리 계획이라곤 별로 없어 필리핀 어학연수라도 가야하나, 그런 고심을 하던 참이었다. 연말연시는 지난 1년 잘 살았나, 를 되돌이켜보기보단 앞으로 또 1년동안 무엇이 펼쳐질지, 걱정하는 타이밍이간 하다만- 지금은 좀 다른 것 같네. 2024년, 그래도 체력이 허덕일 정도로 바쁘게 지냈다고, 최선을 다했다고는 못하지만 언제나 자족하는 최선의 한계치가 너무 높아버리니 그럭저럭 다시 되돌아가도 비슷한 텐션으로는 살겠지. 싶을 정도까진 했으니, 그거면 됐다 싶다. 후회가 되는 선택들도 있었지만, 이미 지난 일이 되버린 걸 어쩔 순 없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또 해야 할 일이 있으니, 2025년을 뭉뜽그려 걱정할 여유가 아직은 없나보다. 그리 좋은 현재는 아니지만, 일단을 지금 고비를 힘껏 넘어봐야지 뭐.

  • 241106

    뭔가를 써야한다는 생각으로 들어왔는데 마음이 복잡하고 심란해서 뭐부터 써야될지 모르겠다-

    계속 뭔가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책무를 겹겹이 두른 시간들

    결국은 체력문제로 귀결되는 것도 같다

  • 갑자기 든게된 두 노래

    Living Stone의 Architect 였다. 원래 감미로운 미성톤의 팝노래를 듣던 편인데

    뭐지? 신선한 에너지의 보컬이었다.

    생각보다 나이가 어린 아티스트라서 놀래기도

    그리고 또 한가지 곡을 유튜브 뮤직 알고리즘이 들려줬다.

    New Rules 라는 가수의 Pasta 라는 곡.

    뭔가 보컬 발성이 리빙스턴이랑 비슷하다.

    Architect는 노래분위기에서 가사를 대충 추측할 수 있었는데, 이건 노래제목이 Pasta ? 뭐지? 유리상자 같은 느낌의 가사인가? 싶어서 가사 해석을 좀 살펴봤는데…

    가사가 좀 마음에 안든다. 묘하게 잘난체하는 느낌? 악동뮤지션이 찬혁만 3명인데 계몽적인 가사의 노래를 하는 느낌?!

    그래서 리빙스턴은 다른 곡들도 더 찾아들어볼 것 같고… 뉴룰스는 조금 짜게 식어버린 편…

  • 꿈에서

    꿈에서 울었다. 거의 통곡이었다.

    낮잠이었다.

    일어나고나서, 진짜 눈에 눈물이 맺혀있는건 아닌지 확인했다.

    없었다.

    그런데 마음은 통곡했던 것처럼 울렁거리고 있었다

  • 탈의실에서

    내 세면용품을 담은 파우치는 원래 트래블용이라서 그런지 샤워실을 스치기만 해도 물을 한가득 머금고 있곤 했다. 일단, 정리를 하면서 타월로 닦아낼 요량으로 옷 보관함 쪽에서 이리저리 정리를 하는데 바닥에 물이 좀 떨어졌다. 탈의실 정리하시는 김광규 닮으신 분께서 물을 다 털고 나와야한다고 말씀해주셔서 알겠다고 하고는, 물품 정리를 다 마친 후에 한쪽 구석에 있는 밀대걸레로 물기를 쓰윽 닦았다. 옷 챙겨 입고 나서려는데 그 김광규 닮으신 분께서 내가 있던 자리를 검사하러 가시려나 모양이다. 계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나와 서로 스쳐가는데 가시는 걸음 뒤로 나를 45도 각도로 찌릿, 눈빛을 쏘시는데… 순간적으로 느와르 영화의 한 장면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다행히도, 내 자리는 밀대걸래로 쓱쓱 밀었기에 물기없이 깔-끔. 난 태연히 신발을 신고 나왔다.

  • 더 베어 봄

    시즌 1의 마지막 에피소드를 보면서 어? 라디오헤드는 거의 치트키 수준 반칙아닌가? 했지만 눈물이 주르륵… 시즌2는 좀 그러네 하면서 보다가 리치의 성장서사 시퀀스. 아, 이건 과한 거 아닌가? 했지만 테일러 스위프트의 노래를 차 안에서 부르면서 가는 리치의 열광적인 모습을 보고는 또 눈물 주르륵…

    라디오헤드는 원래 좋아했지만, 테일러 스위프트는 너무 메이저의 냄새가 풀풀나는… 그녀의 채도가 너무 높아서 나랑은 안맞네- 했었는데 . 그 유치했던 Love story 를 그 이후에 몇번을 더 찾아 들었고, 들을 때마다 차 안에서 자기 자신의 삶에 열광하는 리치의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보고나서 며칠동안은 노래 들을 때마다 울컥해버리는…

    그냥 더 베어는 너무 열광적인 드라마였던 것이다

  •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올 때마다 이런 종류의 생각이 든다. 모던하고 거대한 이 공간은 잠시 내 계급을 잊어버릴 수 있는 특유의 몰입을 선사하는, 참 특이한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 관람자들은 서로를 의식하고 때론 경쟁도 한다. 지금 나는 이 고급예술에 완전하게 동기화되었다고 선언을 하고 싶은 욕망에 관한 경쟁이다. 역설적인 것은 고급예술이 대상으로 하는 것이 무척 불쌍한 사람들이란 점이다. 구조와 일체화를 시도하지 못하고 미끌어져 대상이 된 사람들. 그 사람들이 구조와 자기 자신 사이의 틈. 예술가가 틈 그 자체에 가치를 부여한다. 나는 틈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이야. 틈을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야. 틈은 아름다워. 틈은 예뻐- 이런 식으로. 어떤 식으로든 그 틈을 활용해 스펙타클을 만드려고 노력하는 과정…

    관람자가 그 과정에 완전히 동기화되었다고 말하고 싶어하는 것.

    혹은 더 나아가 과정이 유의미하지만, 역량의 부족이라고 판단하고 싶은 마음.

    그 욕망은 관람자의 특권이자 이 공간에서 벌어지는 특유의 놀이이기도 하다. 미술이 공공장소에서 벌어지는 합당한 이유가 그것인지도 모르겠다.

  • 해금

    스마트폰 중독, 도파민 중독, 쇼츠 중독, 집중력 저하 이런 이슈가 남일 같지 않은 것이 유튜브에만 가면 한번씩… 클릭할 수 밖에 없는 푸바오, 어이없는 고양이 등… 에 빠져 삼매경을 보내는 일이 하루에 꼭 몇번씩 있었다.

    조금 느긋한 도파민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며, 도서관에서 소설책이라도 빌려 읽어야지- 하면서 좀 보고 있다.

    새해 첫 책, 장강명의 댓글부대 부터 시작해서

    중간에 디디에 에리봉의 랭스로 되돌아가다 를 읽고

    어제는 장류진의 일의 기쁨과 슬픔을 읽었다.

    일의 기쁨과 슬픔은 단편소설집이었고

    문체가 읽기 편해서 그런지… 어제 하루만에 다 읽어버렸다는 것이 인상깊다고 생각하는 중.

    하루에 책 한권을 펼치기 시작해서, 그날 하루에 다 끝낸 일이 정말정말 없었던 일인데- 참 오랜만이구나

    조금씩 조금씩 성미 급한 뇌를 느리게 만들어야지, 하는 목표로

    거의 절독했던 책과 문학에 해금을 풀어야겠다.

    혁명의 넝마주의란 책을 오늘 빌려왔는데 어렵지 않으려나 모르겠네

  • 마의 산

    한 1년 전쯤 그랬다. 책 좀 읽어야지. 난 맨날 누워서 읽으려고 하니깐 전자책에 도전해봐야지. 그리고 을유문학사세계문학 전집 100권 세트를 큰맘먹고 질렀다. 에헷, 일년동안 이 100권 중 얼마나 읽을 수 있으려나, 혼자서도 궁금해하고 그랬는데, 결론은 1권이었다. 그것은 세계문학전집의 첫번째 책이 토마스만의 “마의 산” 이었기 때문. 아 정확히 말하자면 마의산 상권, 하권 이렇게 2권.

    내가 이토록 작품 하나를 긴 기간동안 읽은 게 별로 안되는데(어려우면 중간에 포기해버리기 때문)

    역대급 중에 하나였다.

    지금껏 돌이켜보면

    중학교 때인가 가브리엘 마르께스의 “100년동안의 고독” 이건 초중반부가 힘들었지만, 후반부는 빠른 속도로 훌훌 읽었었고

    군대에서 “발터벤야민의 문예이론” 이건 아무리 되넘겨 읽어보더라도 도저히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는데… 지금 시점에선 번역의 탓으로 조금 돌려본다.

    그리고 이 “마의 산”

    내용 자체가 난해하다기 보다는, 이거 왜 갑자기 또 이런 사소구리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한담? 하는 순간, 또 내 나름의 딴생각을 해버리면서 눈은 텍스트를 분명 훑고 있지만 내용은 들어오진 않는 그런 희안한 경험. 아, 도저히 안되겟다 하면서 읽다맑다를 연거푸 한 끝에 1년이 걸렸다.

    드디어 명작을 하나 읽었다, 뭐 이런 감흥보다는 드디어 넘겼다… 는 느낌으로 첫 작품을 읽었으니, 을유문학사 세계문학전집 연말엔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을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