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훈련] 첫날 밤

대학교 논술고사를 본답시고 서울 고모댁에 갔던 적이 있었다. 어머니와 함께였는데, 그때 기억이 이상하기만 한 것은 왜 항상 고모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였는데 항상 혼자였던 느낌이 나는 것일까. 돼지갈비도 먹고, 시장에서 족발도 사와가지곤 같이 먹고 그랬는데. 실제와 기억이 길어 올리는 느낌이 항상 일관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때는 이상하게도 헤어지려 하는 연인의 느낌인 것처럼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함께인 느낌이 별로 없었다. 내 기억에 남은 것은 어머니와 고모와 있던 그 시간들이 아니라 내가 거대도시 서울과 부유하듯 둥둥 떠 있는 오묘한 느낌 그 자체였다. 아마도 대입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그리고 대학을 합격하든 불합격하든 내 인생이 더 이상 고향 부안에 머무르면 안 된다는 것. 이제 서울이 됐든 어디가 됐든 타지에서 내 삶을 내 스스로 끌고가야 한다는 여러 잡생각들이 겹쳐 있었나 보다. 그래서 서울이라는 거대 형체를 탐색하듯 혹은 조금은 자포자기한 자세로 그것과 마주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 곳이 내가 살만한 곳인지, 결국 이 곳을 받아들여야 하는 곳인지 하면서… 찬찬히 그렇게 서 있었고 결국 그 이후로 계속 서울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지난 기억에 완전히 합치되는 인과관계를 찾는 것은 결국 불가능한 일. 지금 돌이켜보건대, 가장 유리할 것만 같은 원인을 찾고, 그럴 것이다라고 믿는 것이 결국 나의 과거가 되지 않으려나 싶다.
본래 늦게 자는 습성 때문에 서울 상계동의 그 아파트에서도 유독 잠에 들지 않아, 밤이 참 길었다. 지방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사촌형의 방을 홀로 쓰게 됐는데, 그 방은 왠지 갑갑증을 불러일으켜 곧잘 거실에 나가있곤 했다. TV를 틀면 소리 때문에 전부들 깰 것만 같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창 밖 베란다 밖을 바라보는 것 뿐이었다. 베란다에서는 사거리가 하나 보였는데, 그 밤에서 새벽까지 차들은 쌩쌩 달리고 있었다. 신호등이 가로막으면 잠시 쉬다가 대충 빨간불이 끝날때쯤이다 싶으면 열심히 엑셀을 밟던 그이들.
누가, 이 시각에, 어디를 가는 것일까 ?
라는 짤막한 물음이 끝나기도 전에 새로운 차들이, 새로운 사람들이 스쳐지나 갔다.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을 그저 바라보는 것.
앞으로 내가 보낼 시간들이 대충 그런 시간들로 채워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막연한 예감을 그때 했던지, 아니면 돌이켜보는 지금 새롭게 만든것인지 확실치는 않다. 어쨌든 난 그 고모집에서 밤마다 베란다 문을 열고, 휙-휙- 지나치는 차들을 한참씩 바라보곤 했다.

우즈베키스탄 타쉬켄트에서 첫날 밤에 그날의 기억, 그 느낌이 갑자기 떠올랐다.
쌩쌩 지나가는 찻소리, 휙휙 지나치는 그이들을 바라보는 느낌조차 흡사했다.

누가, 이 시각에, 어디를 가는 것일까 ?
나와, 대화를 할 법한 사람일까?
그를, 만날 수 있을까?

라고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차는 휙-휙- 지나간다.

바라보다가 나는 잠이 든다.
앞으로 1년 364일 정도가 남았다.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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