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표류기-이해준] 웰메이드 했습니다

“김씨표류기”의 영어제목은 Castaway On the Moon입니다. 캐스트어웨이죠? 근데 뭐 어차피 모두 로빈슨 크루소 계열이니 정통성을 따질 필요는 없을거에요. 모두 동일한 구조입니다. 표류하고, 혼자 이것저것 다 해먹고 살고, 외로움에 못이겨서 사물들한테 인간성을 투여해서 같이 살기도 하고, 그러다가 거기서 나오죠. 나온 후에는 변화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현대판 로빈슨 크루소인 캐스트 어웨이가 완전히 그 구조를 준수하면서 현대화한 영화를 만들었다면 김씨표류기는 그 규칙들에서 한참을 빗겨납니다.

로빈슨 크루소와 캐스트 어웨이의 주인공들은 어쩔 수 없이 낙오되어서 진정 구조만을 기다리는 갇힌 인물인데 반해
김씨표류기의 김씨는 갇혀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는 단지 사람들이 사는 도시에서 떨어져 나와있는 사람이에요. 그는 나올려면 얼마든지 나올 수가 있습니다. 단지 한강의 밤섬이라는 데 있을 뿐이니깐요. 영화 중간에는 짜장면 배달까지 됩니다.

김씨는 암튼 밤섬에 표류되는데, 나가고 싶지가 않습니다.
그에게 도시는 너무도 잔인한 세상이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그 잔인한 도시에 살기에 제 자신은 너무도 무능력하죠.
여기서 김씨 표류기가 로빈슨 크루소에서 빗겨나간, 아이러니적인 재미가 도드라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커다란 빗겨감이 있는데요.
여배우와의 로맨스에요.
저는 포스터와 예고편만 보고 그 밤섬에서 우연히 만남 남녀가 같이 표류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로빈슨 크루소처럼 표류를 하는 건 김씨 혼자 뿐인 건 맞는데 여배우 려원이 그것을 시종일관 관찰하고, 편지를 통해 소통하는 것으로 했더군요.
그리고 그 개연성은 여배우의 독특한 캐릭터 설정으로 기가 막히게 해결해 버립니다.

로빈슨 크루소는 너무 오래 전에 읽어서 생각이 잘 안나는데요.
적어도 캐스트 어웨이는 아마 결혼을 앞둔 주인공이 그 떨어진 시간 후 약속했던 여자의 변화를 목도하는 이별 이야기인데요.

김씨 표류기는 둘이 같이 사는 것도 아닌데
관찰하고, 관찰당하고
편지쓰고, 답장쓰는 것으로

새로운 만남을 이야기해줍니다.
둘이 러브러브할지 안할지는 모르겠는데요.
그것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닌듯해요.

중요한 것은, 소통을 통한 두 주인공의 ‘변화’ 이죠.
도시 속에서 떨어져 살던 두 주인공이
어떻게 자신을 극복해나가는 가 하는 바의 이야기가
보는 이로 하여금 훈훈한 감동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꽤나 잘만들어졌어요.
전체적인 흐름도 그렇고, 디테일적인 섬세함들이 돋보입니다.
영화 곳곳에 숨어있는 유머들은 단순한 몸개그가 아닌 대단히 아이러니적인 시사 개그급이에요. 하나하나 우리의 경험들과 맞닥드리게 하거나, 주인공들의 캐릭터와 딱 맞아떨어지죠.
앞뒤가 정말 잘 맞아 떨어지는 시나리오에요.

정말 매력이 곳곳에서 넘쳐흐르는 영화라고 생각하는데요.
흥행에선 왜 그리 큰 재미를 못보았을까요… 좀 아쉽습니다.

적어도 과속스캔들보다는 훨~~~씬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되는데요.

그런데 딱 한 가지 지적 아닌 지적을 해보자면 나래이션이 너무 많고, 좀 어투가 부자연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건 그리 결정적 단점이라 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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