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의 아들 태수는
아버지가 소망하던 엘리트 코스로 다가가면 갈수록 아버지에게 경멸을 받으면서 성장한다.
태수 아버지의 이러한 이중성은 태수의 아버지가 태수를 예비 대결자로 상정하였기 때문이다. 태수 아버지는 ‘완전한 타자’에게는 자신은 무너지지 않고, 자기가 만들어 놓은 또 다른 ‘분신-아들’ 만이 자신을 무찌를 수 있다는 오만한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이런 아버지 밑의 태수는
아버지에게는 경멸을 받을지언정, 다른 이에게는 그야말로 ‘엄친아’ 이다.
특히 태수의 곁에선 필수에게는 더더욱.
필수가 보기에 태수는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서
영국에서 유학한 엘리트이기도 하며
항시 자기가 하는 일에 자신감이 가득 차 있으며, 콤플렉스 따윈 존재하지 않을 만큼 자유분방하고
여자들에게 인기도 많을 만큼 외모도 준수하고
다른 이들에게 신뢰를 안겨 줄만큼 대인관계 성격도 굿이다!
아아~ 그야말로 엄,친,아
하지만 태수는
인정욕망으로 가득 찬, 빈 껍데기이기도 하다.
태수는 학생운동에 가담하는 등 아버지의 권위체계에 도전하는 듯하지만
태수의 행위는 완전히 인정욕망에 사로잡힌 행위였다.
친구 필수가 대신 써 준, 시를 낭독하여 수배생활을 하며 운동권 내 스타가 되고
친구 필수가 대신 써 준, 반공교육 관련 문건을 군대에서 써 내놓고
친구 필수가 대신 써 준, 논문으로 교수가 된다.
태수는 그가 제출한 진실성 자체에는 큰 관심이 없다.
필수가 대신 써 준 것들로, 태수 자신이 더 인정받기를
더 그의 아버지에게 다가가기만을 욕망했을 뿐이다.
또한 태수는
반성할 줄 모르는 인간이기도 하다.
태수는 지나간 시간에 대해 생각할 줄 모르는 인간이다.
그는 오직 아버지에게 다가갈 자신의 미래에 대한 생각으로만 가득 차 있고
그는 오직 현재 자신이 즐기고 있는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이다.
누군가 태수에게 지나감 속에서 과거에 도려냈던 상처에 대해 묻는다면
태수는 선한 얼굴로 미소짓고 말 것이다.
그 선함은 위선적인 선함이 아니라, 지나갔기 때문에 자신은 잊었을 뿐이라는 천연덕스러움이다.
상처를 벌려놓았던 자 – 태수 는 사라지고 그 앞에 천연덕스러운 허공만이 남은 것이다.
쉽게 망각하는 것은 권력자의 속성이다.
부이든, 권위이든
어느 한 곳에 편중되기 위해선 다른 많은 것들의 착취를 동반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게 형성된 권력자는, ‘착취’를 봉합하기 위해서
과거로의 시선을 거두고 발디디고 있는 현재에서 미래만을 바라보라고 한다.
빼앗기고, 상처받은 자들을 현혹시키는 것… ‘환상’ 이다.
그 환상은 이른바 너도 저렇게 될 수 있어 라는 욕망에 기반하고 있는데
그 환상에 휩쌓이는 순간, 권력자의 발 아래서 권력자에게 포섭된 자로서 충실해 질 것이다.
환상은 과정을 묻지 아니하는데… 또한 언제나 달성될 수 없다는 속성을 지닌다.
그런 ‘환상’을 적극적으로 파괴하는 것은 아마도 ‘과거’ 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태수도…
필수는
그렇게 순간 순간을 살아가는 태수를
한 권의 책으로 보존하는 행위를 돕는다.
태수가 쓰고싶다던 자서전적 소설이었다.
태수는 자신의 과거를 돌이키면서 자신도 반성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것의 집필마저 필수의 몫으로 돌아간다.
필수는 ‘책’ 이란 매개체를 얻었다.
그런데 책le livre이라고 하는 것은 세상에 내어놓는 순간 무한히 지속될 시간의 권위를 부여받는 것이다. 책의 의미와 내용은 인간의 한계로 완벽한 것이 될 수 없더라도, 책은 권위적이고 배타적이며 독립적인 특성을 갖는다. 그것은 신적 권위에 버금가는 것이 될 수 있다.
(-데리다의 개념)
필수는 책을 통해
태수의 과거를 송두리채 복원시킨다.
영원히 정지된 시간을 갖는 ‘책’을 통해 과거를 모조리 현재화 시킨다.
그 현재화된 과거가 연극으로 펼쳐지는 것인데
이렇게 현재화된 과거가 태수라는 인물로 응축되는 그 순간
필수는 이제 태수를 찌를 수 있게 된다.
태수를 향하는 칼은 이제 허공이 아니다.
과거를 ‘지나감’ 으로 내팽개치던 태수가
모든 현재화된 과거로 응축된 태수가 되고
태수의 아버지로 동질화 되가는 태수가 된다.
필수는
그렇게 과거의 복원과 함께
새로움을 창조한다.
그것은 책이 신적 권위를 갖는 매개체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리하여 친구 필수를 찾아가려는 것으로 마무리 될 것 같던 태수의 결말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를 죽이고, 자기 파멸하는 과정으로 바뀐다.
그렇게 필수는 태수를 찌르고
태수가 그랬던 것처럼 손을 씻는다…
극 중에서 경찰이 필수에게 싸인을 부탁할 때
필수는 싸인은 편집자가 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하는 것이라 만류하였지만
정작 싸인을 해야 할 것은 필수였다.
**다른 후기!
삼방면으로 관객석을 배치한 설정또한 매우 좋았던 듯하다.
그리고 “태수” 역을 맡았던 “최광일”씨의 연기. 그야말로 최고였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