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 삼도봉 美스토리] 갈팡질팡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요즘 영화를 보고 몇 줄로 축약해서 쓰는 숙제를 하곤 하는데…
삼도봉 미스토리의 주제를 한 줄로 확 축약해서 쓰는 걸 시도해본다면

“농민들의 애환과 삶”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런데 막상 이렇게 축약해보지만, 찝찝한 점들이 좀 있다. 위의 주제로 축약하기에는 연극 자체가 포괄하고 있는 접점들이 부수적으로 더 존재하고 있는 것도 같고,
또 그것이 삼도봉 미스토리가 품고 있는 시사적인 ‘접점’이라고 여기기엔 형상화 작업이 그리 성공적으로 이뤄지고 못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상도봉 미스토리는 웃음과 감동, 시사성 그리고 다양한 에피소드들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고 있고, 그 어느 것도 쉽게 건져올리지 못하고 있다.

연극은 추리극을 모티브를 취하면서 다양한 사투리를 구사하는 농민들의 과거를 추적한다.
추리극으로 일종의 서스펜스 몰입효과를 주면서 농민운동가, 이장 그리고 결혼 못하는 시골 청년, 강원도 농민들이 ‘양키놈들의 쌀’ 을 불태우려고 하기까지의 기억들을 더듬으려고 하는데…
내용상으로 양키놈들의 쌀을 불태우기 까지에 그들 기억은 필연성을 갖고 있지 않다.

이장은 아내가 떠난 것을 비통해 하기 때문이고
결혼 못하는 시골 청년은 국제결혼 사기를 당하였기 때문이고
농민운동가는 아들을 안타깝게 잃었기 떄문이고
강원도 농민은 강원도에 사는 비애가 있기 때문인데…

그것이 양키놈들의 쌀과 도대체 무슨 관련이 있어서, 갑자기 불을 지르려고 하는 것이란 말인가. 차라리… 양키놈들의 쌀을 불지르려고 하는 것보다, 각자의 고통과 비애를 더욱 심화시켜서 그냥 산불을 내려고 하였다는 설정으로 갔으면 더욱 그럴 듯 할 수도 있었을 것을 말이다. 물론 각자의 고통과 비애를 심화시키기엔 등장인물들이 너무 많고, 각자의 이야기가 관련성을 갖고 있지 않다.
또한 작품에선 농민이기 때문에, 그러했지 않은가. 라고 당위적으로 주장하는 편인데, 그들이 농민이어서 어떤 현실적 맥락과 접점을 지녔는지 말해줘야 할 것 아닌가. 그저 농민이어서 가난했고, 그저 농민이서 자연과 싸워야만 했고… 한다고 지금껏 도시 사람들이 갖고 있는 통념과 어느 정도의 전제에서 그대로 출발하고, 그것이 자연스레 진행되는 사유패턴은 농민분들 참 불쌍하지 라는 겉도는 동정심으로 흘러간다. 그러할진데 농민의 애환에 감동을 느낄 수가 없고, 연극이 최종 목적지로 소망하고푼 미국 헤게모니의 폭력에 대한 분노에는 더 다다를 수가 없다. 통념과 정서에서 출발하지 말고 현실성을 직접 보듬어 안아야 감동이 오는 것이란 단순한 진리를 연극은 놓치고 있다.

극은 농민들의 현실성과 개연성을 지닌 애환에 집중하기보다, 캐릭터와 에피소드에 더욱 방점을 찍고 진행하고 있는데… 그러면 과연 캐릭터와 각기 에피소드들은?

충청도, 전라도, 강원도의 사투리를 구사하는 배우들이 각기 등장하는데… 이건 솔직히 매우 개그콘서트스럽고, 진정성을 상실한다. 그리고 도대체 왜 삼도의 농민들이 나와야만 하는가. 그것에 대한 주제적인 이유, 필연성이 전혀 존재하지 않으니… 삼도 사투리를 연습한 배우들의 노력을 보여주려고 했구나 하는 미약한 감탄만 나오게 한다.

그리고 그들 각자의 기억의 퍼즐들은, 맞춰지지 않고 따로 노는 에피소드들에 불과하다.
각 에피소드들은 웃음에서 출발하여 신파로 흘러가는 투스텝 구조를 지키면서 넘실넘실 흘러가는데… 주제의식의 형상화와 진정성을 상실한 캐릭터로 인해, 각 에피소드에 몰입할 여지가 별로 없다.
그저 음악과 조명이 짜내는 넘쳐 흐르는 정서를 관찰하게 두거나, 혹은 저 짜내는 신파에 절로 반응하는 눈물샘을 느끼면서, 아 젠장… 하게 된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겉도는 가운데…
극은 결말에 치닫는데.. 극이 최대의 서스펜스로 품고 있었던 도대체 누구의 시체인가에 대한 대답이 희안하다.
결론적으로 시체의 실체는 밝혀지지 않은 채, 그것이 일종의 메타포 장치였다는 것이 드러나는데… 말해보자면..

미국산 쌀 푸대에서 나온 시체가 빵으로 형상화 되었다는 데 주목해보아야 한다.
쌀 푸대에서 미국의 것, 빵이 나왔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머리 없는 시체라는 점은… 바로 극을 보는 ‘당신’ 과 ‘당신들’에게 경고하고, 부탁도 하는 것이다. 농민들을 이렇게 시름에 빠트리는 미국 헤게모니가 비단 농민만이 아닌 당신에게 까지 미칠 수 있다고… 그래서 이렇게 머리 없는 시체가 바로 당신의 모습이라는 뭐 그런…

뭐 그런데… 이런 ‘고차원적(?)’ 은유에 도달하기까지 과정이 갈팡질팡 비실비실 하였으니… 이건 뭥미~ 라는 반응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작위적으로 웃음, 시사, 은유, 시사성, 캐릭터 이 모든 것을 여기저기 쑤셔넣은 듯한 이 연극은… 너무 자신감 혹은 소신이 부족했다. 이것저것 뒤섞어 놓은 퓨전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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