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영화를 부탁해 -발로 뛴 삼인방 어린이에게 영화를 묻다.
“네들이 영화 맛을 알기나 알어?”어른들의 속마음은 그랬을지 모른다. 집에서 TV나 보면 되지. 애들에게 영화, 극장이 무슨 사치냐고. 그리고 어린이 영화가 없던 것은 아니라고 항변할 수도 있다. 전체관람가 영화가 얼마나 많냐는 식으로 말이다. 헌데 영화 속 이미지의 폭력성과 선정성의 허용 정도를 지시하는 전체관람가가 모두 어린이를 위한 영화라고 할 순 없지 않은가. 그리고 주로 한국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주로 만들어지는 슬랩스틱 코메디나 신파물이 얼마나 아이들 을 심도깊게 고려하였을까 우려스럽다. 아이들이 진정 원하는 영화는 무엇이고, 아이들에게 필요한 영화는 무엇일까? 제법 할 수 있는 고민이기도 한데, 그 어느 곳에서도 어린이 관객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려는 노력은 없었던 것 같다. 항시 ‘수용자’ 란 주체에서 미끄러져버렸던 어린이 세대. 그런 어린이들의 목소리를 우리가 직접 들어보았다.
“영화 좋아하니?” “네! 좋아해요!”
첫 인터뷰 장소는 정독 도서관이었다. 부산스럽게 인터뷰를 준비하다가 우연히 길을 지나던 아이에게 다짜고짜 들이댔다. 첫인상이 조숙했던 초등학생 A군은 <벤자민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참 인상 깊었다고 했다. 헐… 이거 생각했던 것과 다르잖아! 이른바 ‘애들이 좋아할만한’ 이란 관용어가 붙었던 온갖 슬랩스틱 코메디 영화들이 우장창창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 이후, 도서관 마당에 놀기 위해 오는 아이들에게 차례로 인터뷰를 시도했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서먹하게 굴다가, 영화이야기가 나오자 들뜬 목소리로 좋아하는 영화들을 나열했다. <과속스캔들>, <우주전쟁>, <해리포터>, <쿵푸팬더> 등이 쏟아져 놔왔다. 그 중에는 <워낭소리>도 있었다. 어린이들은 ‘어린이 답지 않게’ 15세 이상의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했으며, 전체관람가 영화 중 좋아한다고 이야기한 것은 <워낭소리>를 제외하곤 거의 전부 외국 애니메이션 이었다.
“한국 어린이 영화요? 너무 유치해요.”
과거 1980~1990년대는 어린이 영화기 활황이었다. 당대 최고 인기 개그맨들은 어린이 영화를 제작하여 소위 대박을 터뜨렸고, 극장은 물론 비디오 시장에서도 그야말로 핫hot한 콘텐츠로 명성을 떨쳤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10년전 이야기. 요즘 아이들의 감수성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 비교적 최근 개봉된 영구 씨리즈의 연장판인 <갈갈이 패밀리>를 아이들은 아예 들어본 적도 없다하였고, 어린이 영화라고 나오는 것들은 너무 유치하다고 답했다. 어떤 아이는 어린이 영화는 거의 다 슬프고 뻔한 것이라 싫다고 했다. 기억을 되짚어보니 <안녕, 형아>, <마음이…> 같은 영화가 떠올랐다. 아이들을 주연으로 하는 한국영화는 왜 그렇게 신파적이고, 착하디 착한 영화만 만들어졌는지 말이다. 우린 아이들에게 너희는 이 정도면 재밌어하지 않겠어? 하면서 어린이 영화를 던져주고 말았던 것은 아닐까. 아이들이 한국 어린이 영화를 외면하게 된 것은 어찌보면 예견된결과였을지 모른다.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외화에 의존하거나 어른 영화를 봐야만 했던 것이다. 어떤 아이는 <추격자>를 언급하여 우리를 경악하게 했다.
“어른 영화는 너무 잔인하고, 야한 장면도 막 나와요.”
도서관 일대에서 벗아나 우린 학교를 찾아가보기로 했다. 먼저 재동초등학교. 헌데 그날은 놀토였을 뿐이고, 우린 몰랐을 뿐이고… 텅 빈 운동장만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혜화초등학교로 향하였는데, 그곳에는 10명 남짓한 아이들이 모여 야구를 하고 있었다. 학원이다 공부다 시달리는 요즘 초등학생들이 이렇게 야구를 하고 있는 모습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잠시 외곽에서 이야기 중인 두 아이에게 접근을 시도했다. 앞서 인터뷰했던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15세 이상 관람가를 주로 본다고 대답하는 아이들. 어떤점이 싫으냐고 묻자, 선정적이고 잔인한 장면이 너무 많다고 했다. 이후 낙산공원에서 만났던 아이들도 어른 영화가 재밌긴 재밌는데 보고싶지 않은 장면을 보게 되서 싫다고 대답하였다. 너무도 ‘재미없게끔’ 만들어져서 ‘어쩔 수 없이’ 재미있는 어른용 영화를 보면서 감수할 수 밖에 없는 아이들의 희생이 참 씁쓸했다.
“어떤 영화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어?”
“어린이들이 많이 나오는 영화가 좋아요.”
우린 좀 더 차분하게 아이들이 원하는 영화가 무엇인지를 듣기 위해서 현재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고 있는 친구 녀석과 ‘접선’했다. 친구에게 우리가 이런 목적으로 아이들 이야기를 듣고자 한다니, 흔쾌히 협조를 받을 수 있었다. 강북구 모 초등학교 4학년 아이들을 직접 만나 어떤 영화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는가란 질문을 던져보았다. 주로 코미디, 액션, SF, 판타지 등을 좋아한다 하면서도, 아이들은 한편 자신들의 이야기를 직접 담은 영화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엄마하고 선생님한테 혼나는 이야기, 학원을 너무 많이 다녀서 힘들어 하는 아이 이야기, 왕따 이야기도 영화로 만들어졌음 좋겠다고 했다. 아이들이 평소에 느끼던 것, 하고 싶은 것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지금 아이들이 즐겨보는 어른들을 위한 영화에는 절대로 나오지 않는 소재들이었다. “그런 영화를 사람들이 보러 올까?”라고 물으니”그래도 그런 영화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어른들도 같이 봐줬으면 좋겠어요.”라고 아이들이 답했다. 부끄러워졌다.
“극장에 왜 안가냐구요?” 인터뷰 내내 극장시설이나 환경적인 문제도 빈번히 거론 되었다. 성인에 비해 많은 제약이 있는 아이들은 주로 어른(부모)에 의해 영화를 관람하는 경우가 많았다. 친구들끼리 극장에 가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고, 가려고 해도 부모의 허락을 얻기란 좀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그밖에도 아이들은 여러가지 문제를 감수하면서 영화를 봐야만 한다. 신장이 성인에 비해 작기 때문에 앞자리의 어른에 의해 화면이 가려지거나, 화장실 사용의 불편함(상영중에 화장실에 갈 수 없음), 기본적인 극장 매너를 어기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 등이 있었으며, 극장에 어린이만 갈 경우 어른들이 무시하는 듯한 시선을 보낸다고 답한 아이도 있었다.
한국에서 주로 어린이를 대상으로 만들어 지고 있는 80년대 영구시리즈의 연장판이나 다소 신파적인 어린이 이야기는 아이들의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었다. 어린이들은 생각했던 것보다 자기 자신의 문제에 대해 진지하였다. “어린애들은 원래 이런 걸 좋아해”라며 변화없는 어린이 영화만 생산하는 것은, 어린이들을 더욱 성인용 영화나 외국 애니메이션으로 발 돌리게 할 것이다. 이젠 어린이 세대가 품고있는 소망과 욕구 그리고 그들 세대의 문제에 대해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또한 한국 어린이들의 ‘영화 볼 권리’를 위해 어린이 전용극장 등 시설 정책적 문제에 대한 노력도 함께 진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상황, 어린이 영화 제작에 도전하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온 3인방 타조, 아랑, 나미는 한 자리에 모였다. 그네들은 각자의 자리에 앉아 아이들을 위한 영화를 고민해본다. 자뭇 엄숙한 그러나 그닥 어울리진 않는 그들의 진지한 모습.
타조: 아이들이 의외로 코미디는 유치하고, 착한 애가 나오는 영화는 신파라서 재미없다고 하더라.
아랑: 생각해보니 그래. 코미디는 그렇다 쳐도, 착한 어린이가 풀어가는 착한 줄거리는 그야말로 아이들이 그렇게 크길 바라는 어른들의 소망일뿐이지. 전혀 아이들이 원하는 내용은 아니야.
나미: 어린이 영화에는 어린이가 없더라. ㅋㅋ 인터뷰도 한 김에 어린이의 욕망을 표출해 줄 수 있는 영화, 만들어 보자 우리!
아랑 : 대책 없다.(한숨) 하루 만에 그게 가능하겠어?
타조 : 음……. 어렵지 않을 것 같기도……. 해보자. 못 할 것 없어. 좀 빡빡하지만 ㅋㅋ
아랑 : 흠… 아이들의 욕구라면 인터뷰에서도 여러 가지가 있었지. 학교, 공부, 부모님이 꾸중하시는 것, 왕따 문제… 이런 게 소재가 될 수 있겠다.
타조: 그래, 아이들은 그런 욕구를 갖고 있어. <지각대장 존>이라는 그림동화를 보면, 학교 가기 싫은 아이의 욕구를 실현해주면서, 그것이 마냥 나쁘다고 이야기하지 않고 오히려 그런 욕망을 이해 못하는 어른들을 풍자하잖아.
아랑: <마법의 설탕 두 조각>이라는 동화도 있어. 거기에 보면 잔소리 듣기 싫은 아이의 욕구를 판타지로 실현시키면서 강제하지 않는 교훈을 주고 있지.
나미: 우리가 초등학생일 때 무슨 생각을 하면서 지냈더라?
신속하게 회상모드에 들어가는 삼인방. 타조는 학교가 활활 타는 소망을 고이 품었고, 나미는 구준표 같은 재벌아빠가 짠~하고 나타나 주기를 바랬던 기억을 떠올린다. 아랑은 죽도록 미워하던 아이가 가는 곳마다 도랑에 빠지는 꿈을 살포시 떠올리며 흐믓해 한다. 과연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을 아름다운 동심을 가지고 있었구나~
나미: 아이들이 대체로 비일상적인 판타지를 좋아했었으니까, 판타지로 풀어보는 건 어때?
아랑 : 그래! 학원을 너무 많이 다니는 아이가 학원가방 때문에 점점 작아지는 거야.
타조 : 그거 <마법의 설탕 두 조각>에서 잔소리 하는 엄마 점점 작아지는 거랑 비슷한데?
나미 : 근데 작아지는 걸 어떻게 표현해? 그 특수효과를?
잠시 흐르는 정적…….
타조 : 그럼, 만만한 초능력 같은 걸 해볼까? 내용은 엄마의 잔소리가 듣기 싫은 욕망을 실현시키는 걸로.
아랑 : 어떻게?
나미 : 얘들아, 난 천잰가봐~! 잔소리만 필터링 하는 초능력이 생기는 거야. 잔소리할 때만 엄마 목소리를 무음 처리하는 거야. 잔소리할 때 엄마 목소리를 무음처리 하는 거지!
타조 : 오, 그 정도 특수효과는 가능해! 그러면 결말을 어떻게 끝내지? 계속 못 듣고 끝나나?
나미 : 멍~
아랑 : 이렇게 해보면 어때? 잔소리만 골라서 안 듣다가 필요할 때조차 못 듣게 되서 이번엔 잔소리를 그리워하게 되는 거야.
나미 : 굿!
_제목: <잔소리가 싫엇!>.
_테마: 잔소리 듣기 싫은 주인공 청 테잎으로 귀 막는 스킬 획득하여 겪는 좌충우돌 어드벤쳐 판타지
만들어진 영상은 아래 주소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다만, 정말 하루만에 모든 촬영이 끝났다는 점. 생전 처음 써보는 캠코더로 촬영하였 다는 점. 무지 많이 고려해주세요. 결과보단 과정이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유후훗!
_영상주소 : https://youtu.be/QnU89qahjco
_P.S: 주인공 제외한 인물 1인 3역 이상은 기본이니 이름표를 보고 파악해 주실 것.
충무로엔 아무것도 없다.
오늘 타조와 나미의 데이트 장소는 충무로 입니다. “미국에 헐리웃이 있듯이, 우리에겐 충무로가 있다!” 라는 막연한 환상은 변두리 청년 타조와 나미의 꿈을 잔뜩 부풀려놓았습니다. 충무로에 가면 영화 촬영 현장을 직접 목격할 수 있어서 장동건이 영화 찍다 코 파는 것도 볼 수 있고, 카페엔 영화인들이 바글바글, 거리에는 온통 영화인들의 손바닥이 찍혀있을 것만 같았죠.
드디어 충무로역 도착! 오오, 생긴 것부터 웬 석기시대 동굴 같은 분위기. 이것은 정녕 한국 영화의 기원이 있는 곳임을 은유하는 건가요? 조금 올라가보니 대종상 사진들이 보이기까지 하네요. 기대백배 충전하여 지하철역 밖으로 나가려던 타조와 나미. 앗, 지하철역 한쪽에 웬 센터 같은 것이 있네요. <재미동 극장>이라 써있습니다. 헌데, 속에는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있군요. 이런, 뭐, 리모델링중인가보지. 하고 타조와 나미는 아쉬움을 남기고 지하철역을 나섭니다.
나섰죠, 나섰는데.. 뭐 그리 별 다를 것 없는 도심 풍경이 타조와 나미 앞에 있습니다. 허둥대는 타조를 보며 나미가 오랜만에 3겹 미간 주름을 만들어 주시는군요. 타조는 얼른 아무 골목으로 쏙 들어가 버립니다. 어랏, 이건 뭔가요? 타조와 나미는 마치 고향과도 같은, 너무도 구수한 골목풍경에 좀 당황합니다. 이쪽으로 돌아도 인쇄소, 저쪽으로 돌아도 인쇄소 뿐이군요. 타조가 여기 인쇄소가 많은것은 한때 충무로 영화 포스터 제작을 맡기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리 되었다고 나미에게 알려주는군요. 내가 인쇄소 보러 왔니? 여기 오면 온갖 스타들 손도장 타일이 쫙 깔려 있을 거라며! 당황한 타조는 나미를 다른 골목으로 이끕니다.
여기는 웬 사진 현상소만 가득하군요. 나미에게 타조가 또 아는 척을 합니다. 여기 사진관이 많은 것은 배우 지망생들이 사진을 찍으면서 이렇게 된 거야. 헌데 나미가 그거 확인하러 충무로에 왔던가요. 나미의 표정이 일그러집니다.쩔쩔매는 타조에게 그 순간 저 멀리 극장하나가 보입니다. 오오 그 이름도 많이 들어 본 대한극장이에요. 얼른 나미를 이끌어 휘달려 가는데요. 자세히 보니, 그저 멀티플렉스 극장일 뿐이군요…타조가 어쩔 수 없이 ‘다이버 지식검색’ 정보를 꺼내서 다시 한 번 나미를 고양시키려 합니다. 옛날에는 여기에 영화제작소가 있었고, 여기엔 뭐가 있었고… 주절대는 타조에게 나미가 묻습니다.“그런데 지금은 뭐 어쨌다는 거지? 아무것도 없잖아. 근데 뭐가 충무로 영화야?”
한국영화 하면 맨날 졸졸 따라오는 이름 충무로. 지금은 제작사조차 철수 했다 쳐도, 한국영화의 역사적 기원으로 불리 우는 충무로를 한국인들은 마음속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왜 충무로에는 아무것도 없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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