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갑자기 어떤 형상이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그 자신이었는데, 어떤 부위였고, 미세한 조직같은 것이었다. 점점 윤곽을 나타내는 것은 이음새 같은 것이었다. 자신의 피와 뼈와 근육으로 된 이음새가 선명하게 눈앞으로 다가왔다. 심장박동소리와 함께 박동하면서 달려들던 그것이 눈앞에 온 순간, 그는 눈을 감아버렸다.
그리고, 그 자신과 그 자신이 바라보던 그.
이렇게 둘이 아닌 하나가 됨을 알 수 있었다.
경직된 근육과 뼈의 고통을 느낄 수 있었지만, 계속했다.
오늘 하루가 그에게는 너무도 불만족스러웠던 것이다.
서울의 상쾌하지 못한 공기가 거뿌 달려들었고
모기같은 것들이 다리 언저리에서 맴돌고 있었다.
창 하고 소리가 났다.
쇠와 쇠가 부딫히는 그 소리가 마치 그의 이음새 근육에서 나는 듯했다.
한번 힘을 더 내보다가 그도 그만 앉아버렸다.
헤드폰에선 전에 즐겨듣던 음악이 그를
전의 그 감정으로도, 지금의 즐거움으로 안내해주지 못했다.
뻐근한 몸이 힘을 잃었는데, 그리 상쾌하지 못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는 지금의 그 상태가 맘에 들었다.
생각이 오늘하루를 넘어서고 있던 것이다.
드디어 벗어나고 있던 것이다. 가장 아픈 자학으로부터.
서울의 야경과 이질적으로 배치되는 서울성곽, 그리고 수다를 떠는 사람들.
항시 전에 관찰자처럼 느껴지며 봐왔던 것들이 이질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두팔과 두다리를 가진 제 자신이
그래도 지금 이 순간, 힘겨워 하고 있다는 게 제법 살아있다고 느꼈던 모양이다.
그는 그 이후 산책을 했다.
가깝지만 한번도 가보지 못했던 한성대에 들어가보았고
그 근처의 아파트 단지에도 들어가보았다.
짐승이 자기영역을 넓히듯이
홀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지겨웠고, 나태했고, 자학했던
오늘 하루를 씻어냈다.
그리고
언젠가 여행을 떠난다면
순간을 기록하는 것이 달리 사진뿐이 아니라
스케치북과 수채물감등을 챙겨서
못 그리는 그림으로나마 남겨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최근 들어 그가 떠올린 그 어떤 생각보다
참신했던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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