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포선라이즈-리차드 링클레이터] 그리고 비포선셋

언젠가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고 그러겠지만 그러던 중 언젠가 안좋은 날도 있겠지. 그럴 때 나도 좋을 때가 있었어 하면서 과거의 연인들을 하나씩 떠올려 볼 때 나올 수 있는 하나쯤… 그렇게 두 주인공간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다음날 해가 뜨기 전까지 비엔나에서의 하루. 누군가 다른 곳을 쳐다볼 때 상대방의 얼굴을 훔쳐보면서 키워지는 사랑은 금새 불타오르지만 그들은 계속 다짐하듯 되내인다. 그저 오늘 하루 뿐인 것이라고, 원거리에서 연락처를 서로 건네주어 종종 연락하다가, 이따금씩 연락하다가 결국 식어버리는 그런 시시함과 상투함을 원치 않았던 그들은 원 나잇 스탠드식 쿨한 사랑으로 끝내자고 하면서도 계속 오늘 하루를 아쉬워한다. 이후의 약속과 사랑의 맹세를 미루고 미루던 그들은 결국 마지막에 가서야 6개월 후에 만나자면서 헤어진다. 이 헤어짐의 순간속에서 영화는 종결되고 둘은 과연 계속 사랑할까요? 라는 물음이 관객에게 주어진다.

비포선라이즈가 내게 너무 놀라웠던 것은 멜로영화의 공식을 전혀 따르지 않고 있으며, 흥미를 끌만한 요소들을 곳곳에 투입하지 않고 인물의 현실성만으로 영화를 진행시키고 있다는 점이었다. 보통 연인영화에서 서로 사랑하다가 싸우고, 다시 화해하고, 하지 못할 말을 한 것을 후회하며 기차 플랫폼에서 유치하게 달려가 키스하고 그런 뻔한 레퍼토리를 깨버리고 있다. 둘은 사랑을 키워나갈 뿐, 논쟁을 조금이나마 할 뿐. 갈등하는 순간조차 없다. 물론 하루라는 제약된 조건이 계속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역할을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두 배우 외의 다른 인물조차 등장하지 않고, 해괴한 사건조차 일어나지 않고, 특별한 과거조차 지니지 않고 있다. 지극히 평범한 과거, 지극히 평범한 생각을 갖고 있고, 서로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사랑에 대한 느낌의 공유로 전체 시간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이 대단한 현실감각과 정교함. 그리고 마지막에 남겨주는 물음. 그들의 사랑은 계속될까요? 바로 이것. 우리는 액자속에서만 작품을 보는데에만 너무 익숙해왔던 것일지도 모른다. 뭔가 허전함과 아쉬움이 가득 느껴지지 않는가. 그런데 액자속에서 해결된다는 것은 어찌보면 기만아닐까? 동화속 주인공들은 모두 해피엔딩이지만 그 해피엔딩의 액자를 벗어나자마자 둘은 머리끄댕이를 잡고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을지도 모른다. 서로 사랑함이 불타올라 키스하다 돌부리에 걸려 뇌진탕으로 죽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둘의 사랑의 영원한 연속성으로 간직하고 푼 이 관찰자들의 욕구. 영원성은 현실상에서 모조리 존재할 수 없다는 현실적 인식을 간직해야한다. 이후에 그들은 10년을 살 수도 있고, 50년을 살수도 있으나… 모두 영원할 수는 없다. 그럴바엔 차라리 오픈시켜버리는 것이다. 둘은 하루를 사랑했었습니다. 이후에 그들이 얼마동안 사랑을 더 할까요? 각자의 대답속에 둘의 사랑이 있다. 비포선라이즈는 상투적이지 않은, 사랑의 진정성을 아끼고 싶어하는 그들이 주는 큰 선물이다, 큰 물음이다.

그리고 9년 후.

9년 후 그들은 다시 만날 수 있었다. 파리였다. 남자는 하루의 사랑이야기를 책으로 써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여자는 환경운동가가 되었다. 남자는 이미 결혼을 하였고, 여자는 연인이 있지만 둘 다 행복하지 못하다. 그것은 그 추억으로 간직해야 할 그 하루의 추억이, 아쉽게도 지켜지지 못한 6개월 후의 약속이, 그들의 발목을 계속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보다 더한 사랑을 찾아내지 못했던 것이다. 비포선라이즈가 추억으로 간직해 볼 사랑을 만들어보자… 고 하다가, 우리 이 감정을 추억속에서 보석처럼만 빛나게 하기 위해 하루로 끝내자 라는 지켜보지 못할 되내임이 계속 있엇다면 비포선셋은 그 하루가 짓누루는 연속성과 지금 맞지 않는 현실사이의 갈등이 있고, 또한 시간의 쫓김이 계속된다. 비포선셋은 해가 지기 전까지인데 공간배경은 본편보다 훨씬 단순해졌지만, 그 인물의 색채는 여전히 빛난다. 멜로영화에서 이렇게 멋지게 속편이 나올수도 있구나를 내게 각인시킨 최초의 작품이 아닐까 한다. 하긴, 멜로영화에서 속편이 나온 것만 해도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예상하는 대로 비포선셋의 종결도 그들은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지 않는다. 여자는 남자를 유혹하듯 춤을 추고, 남자는 여자의 쇼파위에서 여자를 보고 있다. 음악은 흘러나오고, 둘은 지금 이 순간의 연장을 강렬하게 열망하고, 둘은 또한 현실의 장벽을 또 알고 있다.

비포선라이즈가 사랑의 영원성에의 물음으로 가득차있다면, 비포선셋은 사랑의 현실감각이 여기에 조금 덧대어진 느낌이다. 똑같은 이야기를 똑같은 방식으로 했다면 영화는 그야말로 속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겠지만, 비포선셋은 이것 하나를 보아도 괜찮을 정도로 나름의 물음, 나름의 작품성을 간직하고 있다. 그 장점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말이다.

생동하는 캐릭터.
그들이 모조리 허구임을 알지만, 그들의 관계도 각본임을 알지만…
나에게 다가와 버리는 둘의 눈빛.

내가 그들의 사랑을 만들어 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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