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를 기다리며(사무엘 베케트) : 나무의 의미

고도를 기다리며는 특별한 조명이나 무대배경을 필요로 하지 않고 설정될 것이라 어느 시골길. 미정의 시대. 나무 한 그루만 있는 공간에서 오전-오후 정도만을 알려줄 수 있는 단순한 조명만을 필요로 한다. 이것은 부조리극이 심도 있는 줄거리와 플룻의 변화에 치중하기 보다는 등장인물의 대화와 행동양식에 의존하는 특성에 관여된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무대는 나무 한 그루를 필요로 하는데 텅 빈 공간에 나무 한 그루만 달랑 서있는 격이 여서 당연히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킬 것으로 이 나무는 존재한다는 자체로 관객 각개에게 여러 의미로 작용할 수 있다. 또한 이 나무와 등장인물간의 관계성에서도 나무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나무는 자연이며, 초월적인 관찰자적 위치
고도를 기다리며는 어느 사회의 어느 경향에 국한 받지 않고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이 인간의 본연적 실존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부조리극의 일반적인 경향일지도 모른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인간과 사회에의 관계성․인간의 생과 시간․인간 생의 목적의식의 상실의 부조리를 지적하고 있다.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매일매일 정체를 알 수 없는 고도만을 기다리며 다른 어떤 생산적인 활동도 하지 않는다. 고도를 기다리는 것은 둘에게 있어 막중한 의무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현 상황에 있어 어찌할 수 없는 선택의 문제이기도 하다. 고도라는 정체불명의 사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생의 목적의식의 상실의 부조리를 나타내주고 있다. 그들에게 고도는 생의 목적이자 지금 상태에서 변화를 꾀할 수 있는 가능성의 희망이다. 그들의 이러한 상실을 현대사회에 비추어 더 주목해 보자. 인간은 태어났기에 생을 산다. 몇 천일이 될지 몇 백일이 될지 모를 하루들을 보내지만 하루하루에 특별한 목표 없이 하루하루는 그냥 행복해지기 위해 산다고 한다. 여기서 행복이라는 이상적인 가치는 돈․명예․권력 등의 다소 물질적이고 규정할 수 있는 가치로 상정되어 이를 쟁취하기 위해서 고통과 고난도 감수한다. 그러나 위의 가치들은 행복의 완벽한 대표성을 띄지 못한다. 행복이란 지극히 추상적이면서 심리적인 가치인데다가 이상점이라는 절대성을 띄고 있지만 돈․명예․권력 은 구체적이고 표면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물질적인 가치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에서 만족하게 할 수 없는 상대성을 띄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모순 속에 인간의 생의 목적을 상실까지 이르는 것이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이러한 상실의 부조리를 지적하고 있다. 두 등장인물은 이러한 상실의 극한형태로써 무의미한 대화를 통해 시간을 흘려보내고 생을 존속시키지만 고도를 기다리는 것 밖에 어떠한 다른 의욕적인 활동도 벌이지 않는다. 여기서 고도는 현대사회에 막연하게 다가오는 행복이란 개념과 비슷한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나무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나무는 우선 여기서 이 둘의 무의미한 대화를 지켜보는  관찰자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둘은 텅 빈 공간에서 하고 대화를 하는데 다른 한 개체로 나무가 존재한다. 나무는 이 둘의 대화에 직접적으로 참여하고 있지는 않지만 계속 그들을 관찰하는 존재로서 작용한다.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도 은연중에 나무가 지켜보고 있다는 듯 행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대화를 하다가도 가끔씩 나무를 쳐다본다든지 나무에 대해 무관심한 것 같지만 나무의 변화 등에 굉장히 신경 쓰곤 한다. 나무는 단순히 관찰자의 위치로 파악할 수 있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 나무는 자연을 대표하기도 한다. 나무 하나가 자연물의 하나로 파악할 때, 이는 등장인물들과 상당히 대조되는 성격이다. 자연의 대표인 나무는 생의 목적의식의 상실상태 따위를 초월한 존재이며 중간에 잎이 나기도 하는 등 생존을 위한 창조적 활동을 표출하기도 한다. 그러나 두 등장인물은 현 상황에서 고도만을 기다리며 어떤 다른 활동도 벌이지 않는다. 그냥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다. 등장인물들과 대조해 볼 때, 나무는 자연으로 더 확장시켜 보자면 절대자적 위치의 관찰자로 존재한다.

․ 나무의 다른 의미; 등장인물들과 공유점을 형성할 수 있는 존재
나무는 자연의 대표성의 성격으로 관찰자적 위치의 의미로만 해석되는 것이 아니다. 나무는 또한 한계적인 존재로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과 공유점을 형성할 수 있는 존재다. 나무의 의미에 파고들기 전에 설정해 두어야 할 것이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 둘의 관계이다. 둘은 서로 티격태격 싸우다가 토라지기도 하고 서로 아껴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둘은 그 자체로 인간의 사회성을 의존시켜 주는 관계이다. 서로는 서로의 관계없이는 안되기에 서로 죽여주기의 자살을 할 수도 없다. 하나가 먼저 죽으면 남은 하나는 죽여줄 대상이 없기 때문에 말이다. 둘은 둘 자체로 하나의 사회이다. 그런데 둘 만의 관계의 사회성의 공유점을 나무에서 찾을 수 있다. 나무는 하나의 인간의 형상과 비슷하게 서 있음으로 대화의 상대자 등으로 존재 할 순 없지만 간접적인 사회 형성의 기재이다.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가 나무에 목을 매달아 죽으려고 했지만, 나무 가지가 나약하여 목을 맬 수 없음. 그리고 앙상한 나무 등의 외면은 이러한 나무의 사회성을 강조한다.

․ 나무의 위치
나무는 정중앙 혹은 중앙 쪽에 있되 나무가 등장인물들을 대면하는 위치에 두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그것이 나무의 이중적인 성격을 양쪽으로 대응하는 측면이다. 나무가 정중앙에서 노려보듯 지켜보고 있으면 나무의 자연성과 절대적인 관찰자 위치를 강조하는 측면이 될 테고, 약간 측면에서 보고 있다면 사회성을 약간 강조할 수 있는 경향이 있을 것 같다. 대체로 중앙 쪽에 위치하되 관객과 등장인물을 지켜보는 듯한 나무. 앙상한 가지를 위로 뻗음이 흡사 인간의 형상을 취하는 것이 적절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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