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시인 김정란이 한국문단은 칸트주의에서 멈춰있다고 했을 때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했는데… 그 물음이 내 머릿속에 남았나 보다…
미학과 철학강의를 접할 때마다 그 물음에 대한 답을 한번씩 준비해 보곤 하는데…
오늘 처음 들은 박영욱의 <들뢰즈의 매체 예술의 이미지>에서 또 일정부분 추측할 수 있었다.
칸트는 ‘예술은 천재가 하는 것’이란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예술이란, 아니 예술이라 할 것도 없이 취미라는 것 자체는 어떻게 보면 근현대 이전까지 인텔리 계급만의 산물인 것이다. 그와 그녀들의 예술이란 이미지는 그 자체 그대로가 아니라 표상하는 것. 무엇을 표상하느냐 하는 것은 더 물을 필요도 없이 근현대 이전의 유구불변의 물음 ‘본질’ 이다. 그리하여 예술은 정적인 것이었으며, 어떻게 보면 계몽적인 것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에 대한 안티로 나온… 매체예술, 모더니즘 회화… 그것은 전통예술의 정적인 개념을 깨는 것이다. 그것은 언제나 변형 가능한 것이고, 관찰자는 관찰하지만 않고 영향 미치는 존재이며 예술/이미지는 일상속에서 언제나 존재하여 누구나 생성, 변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 나는 이것으로 또 하나의 커다란 문제 틀거리를 얻었다. 아주 미약한 기본적인 개념이지만, 애매모호했던 것이 광활한 지평으로 열리니, 또 ‘읽어야만 하는 책’ 이 늘어버렸다. 그리하여 나는 기쁘다…
이 매체예술의 강의가 끝나고 다시 정리해야겠는데… 아직까지 고민사항을 정리해본다면, 예술이라 함은 그 자체로 자의성을 갖는 것이 아닌지라, 그 이미지 자체로 즐거움이라 함은 아직 전통예술을 대체할 수는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언어가 그러하듯이 예술은 어떤 형식과 규칙에 의거한 ‘게임’ 혹은 ‘해석게임’ 이라는 것. 말의 다층적인 부분을 언어의 직조망으로 얼개지었듯이, 현상의 다층적인 부분을 개념과 예술의 직조망으로 짜 보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물론 근대까지 이어 내려왔듯이 그것 자체를 바라보는 고정적인 시각은 물론 거부해야 한다.
안티는 결국 부정한 것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 것.
길항작용 속에서 사람과 사람이 만드는 것들은 모두 사람으로 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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