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7.15.] 왼손잡이 이야기

2명씩 앉는 탁자에

오른손잡이가 왼쪽에 앉고, 왼손잡이가 오른쪽에 앉아있어

밥 먹을 때마다 서로 팔꿈치를 부딪쳤다고 한다.

그럴 때

“넌 왜 왼손잡이 인거야!”

라고 고함을 질러야 할까?

예외적인 왼손잡이 때문에 오른손잡이가 불편해졌다고 생각해야 할까?

둘이 자리만 서로 바꾸면 더 넒은 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

다른 사람. 더 구체적으로, 다른 신체적 특질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 수가 적은 사람 들에 대해 적대적 혹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심기어린 감정을 품는 경우가 많지는 않은가?

괜시리 함께 있게 되면 상당부분 신경써야 하고, 도와야 하거나 그래야  하므로 말이다.

그런데 장애인 혹은 소수자는 본래 장애인과 소수자의 영원기준에 의해서 장애특질, 소수자가 되게 하는 특질의 존재 이후부터 그렇게 불리는가?

좀만 생각해보면 정말 그렇지 아니한 것을 알 수 있다.

한가지 예를 보자.

현재는 사람들의 거의 반 이상이 눈이 나빠 안경을 쓴다. 그중 어떤 이들은 안경이 없으면 거의 사물을 보지 못할 정도로 시력이 나쁜 사람도 있다. 그런데 안경이 만약 없었다면 그렇다면, 시력이 나쁜 이들은 시력장애인이 다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시력이 나쁜 사람을 장애인이라 하지 않는 것은 우선 시력이 나쁜 사람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  때문은 아닐까? 시력 안 좋은 사람이 있기 때문에 물안경을 만들어도 도수있는 것을 만들어야 하고, 수업시간에 ‘눈 안좋은 사람은 앞에서 들으세요’ 라는 선생님의 말도 추가되어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불편사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력 안 좋은 사람이 너무나도 많아 일반화 되어 있기에 그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정상의 범주에 들여놓은 것이다 . 조선시대에 어느 임금 혹은 선비(이름 생각 안남) 시력이 나빠 안경을 쓰기 시작하였는데 그때는 안경이라는 것을 쓴 사람이 조선에 거의 없어, 안경을 굉장히 해괴망칙한 기구정도로 보았다고 한다. 그때시절에 안경을 쓴 다는 것은 어쩌면 지금시대에 휠체어를 타고 있다는 것 처럼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우리가 장애라고 불리우는 것은 기술적 지원, 사회적 제반시설로서 얼마든지 비장애의 범주로 둘 수도 있는 것이다. 달리 엄청난 재정과 과학기술이 필요하지도 않다. 턱이 없이 평평한 건물을 지어둔다면 휠체어를 탄 장애인도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끊임없이 NO 배려로 일관해왔던 것은 아닐까? 그런 쓸데없는 부가비용에 돈을 낭비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인간이면, 시민이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경제적 이유로 인하여 좀만 참어 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비유컨대 인질범이 소수를 죽인다고 협박할 때, 다수가 안락하게 평온하기 위해 가차없이 그 소수를 포기하는 생각과 흡사할 수 있다. 그냥 좀 참지. 라는 생각 앞에 단 한번이라도 내가 그 당사자라면 이라는 가정법을 가져본 적이 있을까? 그 쉬운 가정법 아래 그 서슬퍼런 당신의 공격성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코멘트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