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5.28.] 복귀 이후 돌아보면…

    복귀 이후 시간이 느리게 가지 않았다. 빨리 갔다고 말은 못하는 것을 내가 시간 가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보냈기 때문이다. 시간은 그냥 그냥 흘러갔다는 식으로 갔다. 근무시간이 그러한 것도 있고, 뭐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괜찮으면서도 괜찮지 않다. 시간이 빨리 흘러가기를 바라지만 그 동안 내가 되도록 많은 것을 남기기를 바라는데 완전히 충실히 했다고는 말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이것도, 저것도, 그것도 하고 싶어 다들 포기하고 싶지가 않다.
    요즘은 토익과 영어공부 고민인데 진정 한 김에 850점 맞았으면 좋겠다. 솔직히 그 장학금 외에는 쓰일 곳이 만무할것이다! 라고 결심했건만..  이게 내가 조금이나마 나약해졌다는 증거일까? 우선순위를 확정하지 못하겠다. 시간은 한정되었는데, 거기에 요새 더욱이 시간의 흐름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주섬주섬 흘리고 있는데 내 목표의식이라는 것이 아직 뚜렷하지 않아서 그래서 내가 지금 불안한 것일테다.

    모든 것을 확정짓는 다는 것은, 내가 바라지 않는 일이고 그럴 일도 없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지금 같은 상태도 일부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바꾸어 생각하면 이 불안들이 있기에 내가
    조금이나마 더 나아지게 되는 연유일것을…

    부정도 긍정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마음.
    그러나 그 부정에서 계속 변증하는 나.

    말한만큼… 어떻게든 해보자고!

  • [안면도] 황금 연휴를 보내자!

    견딜 수 없었다. 참고 참아왔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현충일부터 주말까지 이어진 황금연휴를 그저 그렇게 보낼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너무너무 바빴다. 어렷을 적부터 어른들이 “나 바빠”하는 말 모두 거짓말이거나 과장일거야 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말 할수밖에 없다는게 이해되고 말았다. 그만큼 내가 바빴다. 선거나 행사준비나 시험기간이거나 하는 시기적으로 그러했던 것이 아니라, 내 3학년 1학기가 통채로 너무 바빴다. 세상에! 도대체! 어떻게! 이럴수가 있지? 라고 내가 깜짝 놀랄만큼. 그러던 중, 방학을 앞두고 황금연휴가 찾아온 것이다. 시험기간이나 마찬가지라 할 수 있는 시기였지만, 어차피 약 70프로의 출석률을 보이고 있던 3학년 1학기였다. 어떻게든 이 황금연휴만은 나만의 시간으로 보내고 말겠어라는 일념으로 며칠내내 끙끙 앓던 마지막 신문 편집을 끝내고, 끝내자마자 인쇄소가 닫기전에 충무로로 달려가 맞겼다. 아! 겨우 이틀이지만 내 시간이란게 주어졌구나!

    누구도 방해 못할 나만의 시간. 나는 부랴부랴 적은 내 자금사정에 해결할 수 있을 1박 2일의 여행지를 알아봤다. 넘실넘실 푸르른 동해가 먼저 떠올랐지만 차비가 비쌌다. 서해안 쪽을 알아봤는데 추천하는 곳들이 기껏 강화도, 변산반도 등이다. 강화도는 일찌기 거의 한바퀴 돌았고, 변산반도(내 고향이다)는 말할 것도 없었다. 안면도 이름부터 식상했으나.. 뭐 그래도 안가본 곳이었으니깐. 어쨌든 그렇게 안면도로 갔다.

    오랜만에 떠나온 것. 그 자체가 너무 기뻐서 그냥 또 걸었다. 그런데 전의 혼자 떠났던 여행들은 모두 겨울이어서 무작정 걸어도 좋았건만 초여름에 그렇게 걸어보디 지레 지쳐버렸다. 더욱이 안면도는 솔직히 도보여행으로 적당한 곳이 아니었다. 해수욕장이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지만 다 똑같이 생겼고, 그 곁으로는 펜션들만 멀뚱멀뚱 있을 뿐이었다. 마을같은 것도 없고 그렇다고 박물관이나 유적지가 심심치않게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펜션. 더위에 지치고 그 식상함에 그나마 지쳐버리고 말았다. MT나 가족여행으로 해서 어디 짐을 풀고 바닷가에서 오붓하게 놀고 그러기엔 좋은 곳이지만 도보여행을 하기엔 좀 무리가 따르는 곳같았다.

    그래도 계속 걸었다. 그 와중에 언제부턴가 어두컴컴해져 버리고 해안도로도 벗어나서 인적 하나 차 하나 지나가지도 않는 요상한 길을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타난 저수지. 그렇게 뜻하지 않은 것이 날 기쁘게 한다. 그냥 평범한 저수지였지만 온갖 식물들이 저수지 표면에 꽃을 피워대고 있던것, 그 옆을 홀로 걷는 기분. 감동까지는 아니었지만 괜찮았다. 사람은 그렇게 아무것도 아니지만 낯선 것을 마주하면 그 생소함 때문에, 내가 또 새로운 만남을 얻었구나 하는 것 때문에 기뻐하는가 보다.

    그 와중에 후배가 종강노트표지를 만들어 달라는 요구 때문에, 전화를 씹었다는 죄책감 때문에 뭐라 하지도 못하고 안면도 PC방에서 부랴부랴 포토샵이랑 설치해서 표지까지 만들어 내고… 안면도 첫째날밤은 논두렁에서 잤다.

    정말 피곤했다. 역시 저렴한 여행은 체력과의 싸움이었다. 그리고 더이상 안면도에 가볼만한 곳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서울행 표까지 끊어놓고 아침이나 먹고 가야지 했는데 식당에서 뜻하지 않던 사람을 만나버렸다. 바로 나를 기이하게 쳐다보더니 혹시 성대생 아니세요? 라는 물음. 도대체 나와 연이 닿은 것처럼 생기지 않았던 웬 아저씨. 그래도 안면도에 와서 처음으로 하는 대화였다. 그 아저씨는 내가 1학년때 아주 단기간(하루) 들렀던 동아리의 선배였다.  그 선배는 졸업생 신분으로 나름 개강총회에 참석한 것이었고, 나는 단 하루간의 방문이었지만 총회란 것에 참석한 걸 기억해버린 것이었다. 그래서 그 사람은 나를 동아리 후배인줄 알고… 어쨌든 뭐 어찌어찌해서 동행하게 되었다. 서울행 표를 환불하고 수목림을 들르고, 샛별 해수욕장까지 가는 그 짧은 동행길. 그 사람이 자기 식대로 막 여기저기 다녀서 마음에 안들기는 했으나 나름 즐거웠다. 뜻하지 않던 동행자를 만나 다닌다는 것이… 뭐 그 사람이 선배랍시고 차비도 내주고 밥도 사주고 그래서 좋기도 했지만… 그렇게 동행하고 서울행 막차를 타서 짧은 1박 2일의 안면도 일정이 끝났다.

    ***여행지 정보
    가족/동아리 등의 집단이 펜션이나 민박을 잡고 놀기에는 적당하다 싶다. 시기를 잘 맞추면 갯벌체험 등의 이벤트도 즐길 수 있다. 조개 캐기는 좀 까다롭지만.
    어디 짐을 풀지 않고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해수욕장 순례보다는 좀 수목림 쪽으로 걷고 그러면 뜻하지 않던 소박하고 생소한 것들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 무조건 해안가를 따라 걸으면서 그래도 뭐 나오겠지 하다보면 펜션만 줄줄이 보기 일쑤다.
    수목림의 산책로 코스가 있는데 완전 등산이다. 그래도 꽃나무만 흘겨 보는 것보다 땀흘리면서 쾌청함을 느끼는게 훨씬 좋을테니 산책로 완주를 추천한다.

  • [보령-원산도-청주-제천-서울] 나만의 해안 그리고 번지점프를 하다

    시기가 필요했다. 2003년 겨울과는 또 다른 2004년 겨울이었다. 2003년 겨울이 내 스무살이 그냥 넘어가는 것이 너무 서글펐고, 무엇이든 막연한 것들에 대해서 공허함을 느꼈다면 2004년 겨울은 생각해야 할 것이 너무 구체적이어서 괴로웠다. 그것들이 내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것만 같은데, 내가 선택하는 것인지 사람들이 그렇게 선택하게끔 만드는 것인지 알수가 없었고, 3학년이 된다는 것과 군대문제도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그래 떠나자.
    그런데 이번에는 좀 계획을 잡고 떠나보자, 고 생각했다. 모르는 길을 걷는다는 것도 좋지만, 해안가를 마냥  바라보는 것도 좋지만 나는… 번지점프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섬에도 한번 가보고 싶었다! 그래서 계획을 잡았다. 대천으로 가서 안면도를 갔다가 청주를 갔다가 제천을 갔다가 서울로 가자. 지도상으로보면 삼각형을 그리고 있는… 대략 차비도 그리 많이 안들면서 가볼만한 곳 다가보는 코스라고 생각했다.

    대천해수욕장에 도착하니 거의 저녁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바다가 참 좋았다. 좋아서 한참을 보았지만… 추웠다. 사람도 별로 없었고 뭐 그래서 전에 그랬던 것처럼 무작정 걸었다. 걷다가 길 한편에 세워진 자전거를 보았다. 앞에 주머니가 달려있는 주로 아주머니들이 애용하는 자전거가 묶여있지 않아 얼른 타고 돌아다녔다. 이보다 더 좋을수가! 산길 비슷한 데를 다녔지만 걷는 것보다 무서운게 훨씬 덜했다. 그렇게 막 쏘다니다가 가장 허름해보이는 여관(쌀 것 같아서)에선가 잠을 잤다.

    계획에 따르면 안면도였지만, 너무도 자주 들어본 섬 이름이어서 오히겨 그게 싫었다. 그래서 원산도인가 하는 곳으로 갔다. 가보니 정말 조그만 섬이었고 섬을 찾는 관광객은 없었다. 그저 조금 걸었더니 해안이 화악하고 펼쳐지는데 그 해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 혼자였다! 갑작스럽게 얻게 된 ‘나만의 해안’ 이 너무 좋아서 혼자 별 쑈를 다했다(춤까지는 안췄지만 그 정도의 것들을…;;). 외진곳을 방문한다는 즐거움 중 이런 것이 있구나 했다.

    청주에 있는 친구 자취방에서를 자고 바로 제천으로 향했다. 제천 청평랜드에 국내 최고 높이의 번지점프를 하는 곳이 있다고 해서였다. 청주에서 제천으로 기차를 타고 가는데 충청도란 곳 생각보다 외진곳이 많았다. 내 고향인 전라도가 더욱 산업화(?)가 덜 되었고, 인구도 훨씬 적겠지만 전라도는 너른 평야라서 좀 허전한 기분은 덜했는데 충청도는 기찻길 사이로 첩첩산중(물론 강원도보단 훨씬 덜하겠지만)인데다가 인적도 정말 없어서 솔직히 좀 무서웠다. 만일 갑자기 이 역에서 확 내려버린다고 한다면 정말, 정말 무섭겠다 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런 기분은 청평랜드로 가는 시내버스를 타면서 부터 더했다. 그…. 뭐랄까? 가로등 불빛하나 없고, 농가하나 없고,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기분이라니… 어쨌든 그러한 곳에 청평랜드가 있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찾아가기에는 좀 번거로운 곳이다. 30분정도 기다리면 된다는 버스를 1시간이 넘도록 기다려서 겨우 타고갔다. 그리고 그 곳은 생각보다 랜드라고 부르기에 좀 초라하다고나 할까? 사람도 없고 뭐 그랬다… 하지만 국내최고높이라니깐. 하면서 어찌어찌하여 번지점프를 했다. TV에서 보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상상하길, 그 벼랑끝에서 숨을 겨우 고르고 고르면서 온갖 세상만사 다 생각하고 내가 뛸 수 있을까 없을까 수없는 물음으로 가득 채우고 그런 가파른 긴장을 탈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럴 겨를조차 없었다. 번지점프를 안했다고 랜드측에서 환불을 해야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어쨌든 손님이 안뛰고 울고불고 하면 서로 찝찝할 것은 마찬가지이어서 그랬던지 뭐 …가파른 긴장의 순간을 안줬다. 딱 엘르베이터 내리자마자 서고 , 바로 포! 쓰리! 투! 원! 번지! 를 해서 정말 엉겁결에 뛰도록 만들어 버린다.

    하지만… 좋았다. 그 순간! 가슴은 쿵쾅쿵쾅하는데 몸은 슬로우비전의 영상인 것처럼 땅과 점차 가까워지고 있다는 느낌. 땅이 내게로 다가오는 듯한 느낌. 몸이 어느곳에도 기대고 있지 않고(물론 줄에 매달려 있지만) 허공위에 부유하고 있다는 느낌. 또한 어느 연예인은 울고불고 했었는데 나는 국내최고 높이를 단숨에 해냈다는 그 성취감까지!

    두번째로 홀로 떠났던 여행. 첫번째 때는 거의 도보가 유일한 여정이었는데, 이번에는 배도타고, 자전거도 타고, 기차도 타고, 도시만 해도 보령, 청주, 제천 등등으로 왔다갔다, LOMO LC-A로 막 찍기도 하고, 번지점프도 하고, 중간중간에 친구도 보고 좀 숨가쁜 여정이었다.

    그래도 내 나만의 해안에서 용기를 얻었다. 사는거 뭐 그렇게 까다로운게 있겠어? 그저 파이팅! 하면 그만이라지 하고, 번지점프도 하고 그랬더니 일상으로의 회귀가 두렵지 않았다. 용기를 준 내 두번째 소중한 여행이었다.

    ***여행지 정보

    그저 조그만 섬일 뿐이지만 원산도는 한적한 곳을 걷길 좋아하는 여행객들에게 좋은 추억을 마련해줄것이다. 겨울이라 그런지 유독 사람이 없었지만 여름에는 사람이 좀 있을법도 한 곳. 사람없을 시즌에 가는 것을 추천.

    청평랜드는 대중교통이 불편하고, 제천 주위에 다른 들를만한 곳도 마땅치 않은것이 좀 아쉽다. 그러나 국내최고 높이의 번지점프를 살면서 한번 해봐야지 않겠냐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기꺼이 찾아가 볼 것. 번지점프 외에도 고공 놀이기구(?) 몇개가 좀 더 있다.

  • [춘천] 아늑했던

    역사기행 명목으로 갔던 추천. 원래는 지리산이 계획이었으나 갑작스러운 폭설로 인하여서 춘천으로 급선회. 딱히 역사기행이라 말할 만큼 체험한 것은 없었으나 호반의 도시 춘천을 느꼈다.

    춘천은 뭔가 뿌옇고 아늑한 도시다. 이건 순전히 어느 이미지성에서 비롯한 내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어쨋든 그렇다.

    춘천은 뭐 그렇게 크게 내놓을 만한 것은 없지만 아기자기 한 것들이 도처에 널려 있어서 자전거 여행을 하기에 제격인 듯 싶다. 좀 멀리는 남이섬(좀 멀다;;)이 있고, 김유정 민속촌도 시 외곽즈음에 있고, 춘천 내부에도 이곳저곳 아기자한 것들이 많다. 소양강댐이라든지, 춘천호라든지 , 고슴도치섬이라든지, 갖은 공원이라든지 그것들이 모두 춘천이라는 아우라로 녹아내리면서 춘천이란 도시 참 좋다 라고 감탄하게 만든다.

    겨울철에는 빙어낚시라는 이벤트가 있어서 우리 일행도 도전해보았지만 몇 시간을 해봐도 잘 되지 않더라. 하지만 충분히 재미있었고 바로 옆에서 파는 빙어를 초고추장에 찍어먹는걸로 만족할 수 있었고, 관광도시라 그런지 포장마차 거리, 닭갈비 거리 같은 것들도 많고 그래서 더욱 즐겁다. 원조중에 원조라는 막국수(믿을 수 없지만) 도 꽤 먹음직한 도시다.

  • [부산-경주] 처음 떠나다

    강화도는 가까우면서도 먼 곳이라는 말이 딱 맞는 곳이다. 서울 근교라고도 할 수있으면서도 지하철이 안다녀서 그러한지 왠지 어딘가 박혀있는 곳 이라는 생각만 들게 하고… 그 가까운 곳 언제 한번 갈 일 있겠지 하면서도 그 언제가 쉽사리 다가오지는 않는 곳이다. 저 멀고 먼 동해안, 안면도 등지는 핑계만들어서 가볼 일 있어도 강화도는 쉽사리 그래 지지가 않는다. 나만 그런 것일까? 내게 강화도는 그러하였다. 국사시간에만 종종 나오던 강화도는 수도권 근교라 맑고 깨끗한 곳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고, 그렇다고 그리 가깝지도 않아서 기왕에 갈꺼면 좀 멀리 동해안이나 가보자 하는 식으로 떠돌아서 도로로 한박에 연결되어 있던 섬, 강화도는 쉽사리 내게 다가 오지 않았던 것이다.1학년때 역사기행 명목으로 강화도에 갈 기회가 생겼다. 그때서야 강화도 지도를 처음으로 유심히 보게 되었는데, 강화도는 정말 여러 장점을 지닌 섬이다. 가깝기 때문에 저비용으로 바다와 산 그리고 유서깊은 여러 역사 유적지까지 꼭꼭 챙겨다닐 수 있으며 강화도 본섬(?)이 좀 크고 도로와 연결되어 있어 섬의 정취를 느낄 수 없었다면 바로 옆에 붙어있는 여러 잔섬(?)들을 한번씩 가보면 작은 섬들의 정취를 정말 두루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강화도는 어디 한 곳에 관광객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곳이 없이, 여기저기 두루 다니면서 느낄만한 곳이라서 여름에도 그리 북적대는 곳이 없다. 그러면서도 숙박을 해결할만한 곳은 웬만큼 갖추어져 있다.기행반 일행은 신촌에서 강화도로 한큐에 가는 버스를 탔다. 대교를 건넜긴 했어도 버스로 한큐에 가버리니 섬에 온 것인지, 아닌 지 좀 그러하였는데… 바다냄새는 별로 나진 않았어도 서울과는 다른 한적하고 적적한 여유로움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 상점도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있지 않아 좋았다. 여기저기 뿌려져 있듯 한 진들과 돈대 등 유적지를 먼저 탐방하는 우리 일행에게 우선 놀라웠던 것은 거의 무제한 히치하이킹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버스 대중교통이 그리 편리하게 되어있진 않았고 걸어갈 수 없어서 맛들이기 시작한 히치하이킹이었는데 우리 일행은 총 8명이었는데…. 서로 편을 갈라서 히치하이킹을 하여도 차가 지나가기만 한다면 거의 10분도 채 안되어서 차를 잡을 수 있고, 거의 섬의 정 반대편까지 가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선뜻 가시는 길이라면서들 데려다 주었다. 아! 이 섬의 민심! 하면서 맛들인 우리들은 그 이후 석모도에서 버스를 한번 탔을 뿐, 그 외 모든 교통수단을 히치하이킹으로 해결하는데 아무 문제도 없었다.역사기행이었지만 역사적 배경지식이 없었던 우리 일행은 각종 유적지를 돌아보는 데는 솔직히 그리 큰 감회가 없었다. 정말 기억에 남는 것은 태어나서 가장 길었던 갯벌! 한밤중에 뛰며 걸었던 동막해수욕장의 갯벌은 바닷물 있는 곳까지 닿는데 30분 가량 걸렸다. 돌아올 때는 등대의 불빛이 우리를 졸졸 따라오더니만 그것은 육군 경비병의 감시망이었다. 밤에는 해안 출입금지 임에도 불구하고 쌩까고 갔던 우리는 이후 군인들에게 신분확인을 받아야 했지만… 꽤 흥미진진한 경험이었다. 우리를 기다렸던 나머지 일행이 우리가 영화 “해안선” 처럼 총맞고 돌아올 줄 알았다고 걱정하였지만, 어찌되었든 정말 잊을 수 없었던 장장 한시간의 갯벌체험이었다.그런데 바로 그 다음날 비가 엄청나게 쏟아졌다. 마니산으로 가려 하였던 우리 일정을 수정하여 바로 석모도를 갔다가 여행일정을 마무리 하기로 하였는데, 비가 퍼부어 대던 석모도 보문사는 정말 “운치 있었다” 무슨 암자까지 엄청나게 많은 계단이 있었는데 우산을 쓰는게 부질없어 비를 그대로 맞아가며 나다녔던 보문사. 맨발로 걸었던 그 모든 정취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본래 3박 4일 일정이 폭우로 2박 3일 일정으로 줄여지고 말았지만 그 짧은 기간에 그리도 다이나믹한 기억을 남겨주었던 강화도. 여유가 된다면 이후에 꼭 한번 다시 찾아가 볼 섬, 내 기억속에 생생함으로 가까워진 섬 강화도였다.

  • [강화도] 폭우, 갯벌 그리고 히치하이킹

    강화도는 가까우면서도 먼 곳이라는 말이 딱 맞는 곳이다. 서울 근교라고도 할 수있으면서도 지하철이 안다녀서 그러한지 왠지 어딘가 박혀있는 곳 이라는 생각만 들게 하고… 그 가까운 곳 언제 한번 갈 일 있겠지 하면서도 그 언제가 쉽사리 다가오지는 않는 곳이다. 저 멀고 먼 동해안, 안면도 등지는 핑계만들어서 가볼 일 있어도 강화도는 쉽사리 그래 지지가 않는다. 나만 그런 것일까? 내게 강화도는 그러하였다. 국사시간에만 종종 나오던 강화도는 수도권 근교라 맑고 깨끗한 곳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고, 그렇다고 그리 가깝지도 않아서 기왕에 갈꺼면 좀 멀리 동해안이나 가보자 하는 식으로 떠돌아서 도로로 한박에 연결되어 있던 섬, 강화도는 쉽사리 내게 다가 오지 않았던 것이다.1학년때 역사기행 명목으로 강화도에 갈 기회가 생겼다. 그때서야 강화도 지도를 처음으로 유심히 보게 되었는데, 강화도는 정말 여러 장점을 지닌 섬이다. 가깝기 때문에 저비용으로 바다와 산 그리고 유서깊은 여러 역사 유적지까지 꼭꼭 챙겨다닐 수 있으며 강화도 본섬(?)이 좀 크고 도로와 연결되어 있어 섬의 정취를 느낄 수 없었다면 바로 옆에 붙어있는 여러 잔섬(?)들을 한번씩 가보면 작은 섬들의 정취를 정말 두루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강화도는 어디 한 곳에 관광객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곳이 없이, 여기저기 두루 다니면서 느낄만한 곳이라서 여름에도 그리 북적대는 곳이 없다. 그러면서도 숙박을 해결할만한 곳은 웬만큼 갖추어져 있다.기행반 일행은 신촌에서 강화도로 한큐에 가는 버스를 탔다. 대교를 건넜긴 했어도 버스로 한큐에 가버리니 섬에 온 것인지, 아닌 지 좀 그러하였는데… 바다냄새는 별로 나진 않았어도 서울과는 다른 한적하고 적적한 여유로움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 상점도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있지 않아 좋았다. 여기저기 뿌려져 있듯 한 진들과 돈대 등 유적지를 먼저 탐방하는 우리 일행에게 우선 놀라웠던 것은 거의 무제한 히치하이킹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버스 대중교통이 그리 편리하게 되어있진 않았고 걸어갈 수 없어서 맛들이기 시작한 히치하이킹이었는데 우리 일행은 총 8명이었는데…. 서로 편을 갈라서 히치하이킹을 하여도 차가 지나가기만 한다면 거의 10분도 채 안되어서 차를 잡을 수 있고, 거의 섬의 정 반대편까지 가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선뜻 가시는 길이라면서들 데려다 주었다. 아! 이 섬의 민심! 하면서 맛들인 우리들은 그 이후 석모도에서 버스를 한번 탔을 뿐, 그 외 모든 교통수단을 히치하이킹으로 해결하는데 아무 문제도 없었다.역사기행이었지만 역사적 배경지식이 없었던 우리 일행은 각종 유적지를 돌아보는 데는 솔직히 그리 큰 감회가 없었다. 정말 기억에 남는 것은 태어나서 가장 길었던 갯벌! 한밤중에 뛰며 걸었던 동막해수욕장의 갯벌은 바닷물 있는 곳까지 닿는데 30분 가량 걸렸다. 돌아올 때는 등대의 불빛이 우리를 졸졸 따라오더니만 그것은 육군 경비병의 감시망이었다. 밤에는 해안 출입금지 임에도 불구하고 쌩까고 갔던 우리는 이후 군인들에게 신분확인을 받아야 했지만… 꽤 흥미진진한 경험이었다. 우리를 기다렸던 나머지 일행이 우리가 영화 “해안선” 처럼 총맞고 돌아올 줄 알았다고 걱정하였지만, 어찌되었든 정말 잊을 수 없었던 장장 한시간의 갯벌체험이었다.그런데 바로 그 다음날 비가 엄청나게 쏟아졌다. 마니산으로 가려 하였던 우리 일정을 수정하여 바로 석모도를 갔다가 여행일정을 마무리 하기로 하였는데, 비가 퍼부어 대던 석모도 보문사는 정말 “운치 있었다” 무슨 암자까지 엄청나게 많은 계단이 있었는데 우산을 쓰는게 부질없어 비를 그대로 맞아가며 나다녔던 보문사. 맨발로 걸었던 그 모든 정취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본래 3박 4일 일정이 폭우로 2박 3일 일정으로 줄여지고 말았지만 그 짧은 기간에 그리도 다이나믹한 기억을 남겨주었던 강화도. 여유가 된다면 이후에 꼭 한번 다시 찾아가 볼 섬, 내 기억속에 생생함으로 가까워진 섬 강화도였다.

  • [강릉-동해-삼척] 만들어 가는 여행

    이 영화는 사실 좀 지루하게 보았다.
    내가 이 영화에 대해 알고 있었던 배경지식(?) 혹은 추측이 완전히 틀려버렸기 때문이었다. 영화 포스터만 오래 전부터 봐 왔었는데, 어린애가 왕이랍시고 대신들의 큰절을 받고 있으니… 나는 코믹영화인 줄 알았다. 프린세스 다이어리나 뭐 주성치식 그런 영화 같은 것?

    보는 내내 도대체 웃긴 부분은 언제 나오지??

    이랬으니,

    완전히 틀려먹은 것이다!!!

    스토리를 지루하게 보고 있어도
    그래도 묘하게 끌어 당기는 것이 있었는데

    후에 생각해 보길 그것은 한 ‘사람’ 의 인생.
    황궁의 신기했던 것들이 차츰 지루해질 때 쯤
    격동하던 시대에 감옥에 갇힌 듯이 살게 되는
    중국의 마지막 황제라는 한 ‘사람’

    그 사람은 한 인간이기 보다 하나의 조건이었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이유중 근본적인 것은
    삶의 목적을 스스로 정해야한다는 고통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
    그 아이러니한 즐거움떄문이 아닌가

    그런데, 중국의 마지막 황제는 인간에 앞서
    조건지움의 생이었다.

    구역은 황궁. 품위는 황제 그러나 권력은 잃어버린 중국의 마지막 황제.
    영화는 여기에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다.

    그리하여, 격동기를 맞는 중국의 시대적 상황을 배제하고 있으며
    중국을 중국인의 눈으로 보기 보다 서구의 휴머니즘적 시각으로 견지하고 있는 듯하다.

    사실, 나는 중국의 격동기 시기의 복잡다나한 문제들을 잘 알지 못하여
    서구 휴머니즘적 시각으로만 본 마지막 황제가 그리 이상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후에 생각해보기에 마지막 황제라는 근대와 현대의 격렬한 충돌의 시기에 가장 정점에 서있어야 할 인물이, 제국주의 점령과 투쟁의 시기에…

    그를 하나의 관찰자로 격하시키고, 인간극장 같은 영화를 만들어버린 면이 없지않구나 하는 생각은 들었다…

    그러나, 그보다 내 가슴을 퍽! 하고 떄리는 순간이 있어서
    나는 이 영화를 꽤 오랫동안 기억하게 되었다.

    몇십년을 감옥에서 보낸 예전의 황제였던 이 ‘사람’ 이
    공산주의 중국을 구경꾼마냥 지나가버리고

    그가 갇혀있던 황궁의 의자에 다가가던 그 순간.
    어린애가 묻는다.

    아저씬 누구세요?

    나는 예전에 이곳의 주인이었단다
    라고 대답했던가?

    어떤 말을 했던 그건 별로…
    그 보다는 할아버지가 다 되버린 그 한 ‘인간’ 이 해설프게 웃던 그 표정, 얼굴, 모습

    한 사람의 인생이라는 게
    한 순간에 강제되고, 그 순간에 그 사람의 인생이 어쩌면 멈추어버렸구나.
    그 동안 지나버린 기나긴 시간을 그가
    고통으로 받아들이면서 또한
    자조적 웃음으로 넘겨버리는 지혜를 얻게 되었구나…

    하고 그 사람의 인생이
    내 가슴을 퍽! 하고 쳐버렸다.

  • [마지막 황제-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한 사람의 인생

    이 영화는 사실 좀 지루하게 보았다.
    내가 이 영화에 대해 알고 있었던 배경지식(?) 혹은 추측이 완전히 틀려버렸기 때문이었다. 영화 포스터만 오래 전부터 봐 왔었는데, 어린애가 왕이랍시고 대신들의 큰절을 받고 있으니… 나는 코믹영화인 줄 알았다. 프린세스 다이어리나 뭐 주성치식 그런 영화 같은 것?

    보는 내내 도대체 웃긴 부분은 언제 나오지??

    이랬으니,

    완전히 틀려먹은 것이다!!!

    스토리를 지루하게 보고 있어도
    그래도 묘하게 끌어 당기는 것이 있었는데

    후에 생각해 보길 그것은 한 ‘사람’ 의 인생.
    황궁의 신기했던 것들이 차츰 지루해질 때 쯤
    격동하던 시대에 감옥에 갇힌 듯이 살게 되는
    중국의 마지막 황제라는 한 ‘사람’

    그 사람은 한 인간이기 보다 하나의 조건이었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이유중 근본적인 것은
    삶의 목적을 스스로 정해야한다는 고통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
    그 아이러니한 즐거움떄문이 아닌가

    그런데, 중국의 마지막 황제는 인간에 앞서
    조건지움의 생이었다.

    구역은 황궁. 품위는 황제 그러나 권력은 잃어버린 중국의 마지막 황제.
    영화는 여기에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다.

    그리하여, 격동기를 맞는 중국의 시대적 상황을 배제하고 있으며
    중국을 중국인의 눈으로 보기 보다 서구의 휴머니즘적 시각으로 견지하고 있는 듯하다.

    사실, 나는 중국의 격동기 시기의 복잡다나한 문제들을 잘 알지 못하여
    서구 휴머니즘적 시각으로만 본 마지막 황제가 그리 이상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후에 생각해보기에 마지막 황제라는 근대와 현대의 격렬한 충돌의 시기에 가장 정점에 서있어야 할 인물이, 제국주의 점령과 투쟁의 시기에…

    그를 하나의 관찰자로 격하시키고, 인간극장 같은 영화를 만들어버린 면이 없지않구나 하는 생각은 들었다…

    그러나, 그보다 내 가슴을 퍽! 하고 떄리는 순간이 있어서
    나는 이 영화를 꽤 오랫동안 기억하게 되었다.

    몇십년을 감옥에서 보낸 예전의 황제였던 이 ‘사람’ 이
    공산주의 중국을 구경꾼마냥 지나가버리고

    그가 갇혀있던 황궁의 의자에 다가가던 그 순간.
    어린애가 묻는다.

    아저씬 누구세요?

    나는 예전에 이곳의 주인이었단다
    라고 대답했던가?

    어떤 말을 했던 그건 별로…
    그 보다는 할아버지가 다 되버린 그 한 ‘인간’ 이 해설프게 웃던 그 표정, 얼굴, 모습

    한 사람의 인생이라는 게
    한 순간에 강제되고, 그 순간에 그 사람의 인생이 어쩌면 멈추어버렸구나.
    그 동안 지나버린 기나긴 시간을 그가
    고통으로 받아들이면서 또한
    자조적 웃음으로 넘겨버리는 지혜를 얻게 되었구나…

    하고 그 사람의 인생이
    내 가슴을 퍽! 하고 쳐버렸다.

  • [빌리 앨리어트-스티븐 달드리] 지금 나는 빌리 처럼 살고 있을까?

    빌리 앨리어트는 가장 오랫동안 아주 생생하고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있는 영화이다. 기억력이 그리 좋지 않은  나는 아무리 영화를 좋게 보았다고 해도 몇 씬과 함께 그것들이 주는 어리둥실한 느낌들로 영화를 추억하곤 하는데, 빌리 앨리어트만은 아주 생생하게 내 머릿속에서 발을 또각거리면서 춤을 추고 있다. 그것은 가끔씩 홀로 묻는 질문 때문일것이다

    지금 나는 빌러처럼 살고 있을까?

    나는 지금 나에게 충실한가? 나는 지금 꿈을 향해 달리고 있는가? 나는 지금 그럼 적어도 꿈을 향해 달릴 준비를 하고 있는가?

    탄광촌 마을의 시멘트 바닥에서 발가락이 부러질 듯 춤을 추는 빌리. 마치 자아를 저주하는 듯 광기에 서려있다. 나는 왜 발레를 좋아하는가. 발레를 출 수 없다면 이 발가락을 부러트려버리고 말겠어. 라는 듯 빌리의 춤은 그 딱딱한 시멘트 바닥에서 계절이 바뀌는 동안에도 계속되고 결국 보수적이던 아버지도 형도 빌리에게 발레를 허용하고 만다. 결국 비상하는 빌리. 그 빌리가 있기까지 아버지는 변절자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파업이 진행중인 광산의 엘르베이터를 타고 말았을 것이다.

    꿈을 가진 것, 그것을 향한다는 것이 위대한 일이고 당연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면서도 이 잔혹한 현실을 동시에 말하고 있다. 동화같지만 않은 현실의 중압감. 영화는 결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대의를 배반하라고 말하고 있지 않다. 그랬다면, 빌리 아버지가 엘르베이터 타는 모습이 그렇게 암담해 보이지만은 않았을 것이며, 후에도 쇠락해가는 광산촌을 벗어나지 못한 아버지와 빌리의 형을 그려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현실이다. 현실의 중압감 속에서 자기세대에서 이루지 못했던  꿈을 빌리에게 투영하는 것. 왜 다음 세대에 넘기는가. 자기세대에서 끝장을 봐야지 않는가라고 따져 물을 수도 있겠다. 이것은 중요한 한계이기도 하면서 지극힌 현실적인 반영이기에 그 문제의식과 풀이과정을 이제 빌리 앨리어트를 본 관객들에게 넘기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초국적 자본을 비판하면서 코카콜라를 마시는 것.
    제 3세계에서의 노동착취를 안타까워하면서 나이키 신발을 신는 것.
    한달을 10만원이 안되는 돈으로 이어나가는 극빈층이 존재한다는 걸 알면서도 따뜻한 아랫목의 낭만적 겨울을 생각하는 것.
    어쩌면 여가생활을 한다는 것 자체.
    어쩌면 인생을 즐겨라 라는 단어 자체.

    내 자신의 외부의 것들을 모두 부정해야만 하는현실.
    그러면서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

    그런 현실속에 나는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딜레마이고
    그러하여 어찌할 수 없는 것인가

    그럴 수 없다. 함부로 자신이 타자와의 존재가치를 비교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지만
    내 자신을 내가 심판할 수는 있다.

    최소한의 선을 두는 것.
    가볍지 않은 꿈을 꾸는 것.

    내 꿈을 살아가려는 그 지난한 과정.

    외부의 타협적이고 고정적인 가치들이 정체하라고 말할 때
    한번 내 자신에게 물어보자.

    나는 지금 빌리처럼 살고 있을까?

    그 언제라도 명쾌한 답변을 내릴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 그 끝없는 물음의 과정속에서
    어느때에는 빌리처럼 비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 [샤인-스콧 힉스] 불멸의 영화

    어제 그리고 그제
    잠을 많이도 잤다

    그래서 오늘은 참았다

    그 대신 거의 아무것도 못했다.
    낮에 독일어 공부를 좀 하긴 했으나 저녁 이후로는…
    거의 수다를 떨면서 시간을 보냈다고 함이 옳으리라

    글도 안 쓰고
    책도 안 읽었다

    그래 오늘은 잠 참은 적응기간이라고 치자
    내일부터가 진짜일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