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2.7.] 그들은 영화같았고, 우린 너무 순진했고…

    “원천봉쇄” 였다.

    청계광장 쪽으로는 단 한 사람도 지나가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전경버스 사이사이 틈새에도 경찰들이 배치되어 있었고
    지하철 역 입구, 인도 할 것 없이 모두 경찰이 배치되어 있었다.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을지로입구역에
    자전거를 받히고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우연히 상복입은 유족들을 만났다.

    그들을 한참을 따라가다 보니
    빙빙 돌아 어느새 종로 2가였다.
    유족들을 따르는 행렬은 대략 10명 정도나 됫었던 것 같고
    종로 2가에 모여있던 사람들은 대략 200명 정도 되었던 것 같다.

    원청봉쇄에 막혀
    비밀리에 종로2가에 모인 것 같았다.
    종로 2가에서도 경찰들은 횡단보도와 인도를 막고 있었다.

    사람들이 경찰들을 피해
    겨우 도로로 진입하기 시작하였을 때

    게임 동영상 인 것처럼
    영화인 것처럼
    시커먼 것들이 불쑥 불쑥 나타나
    사람들을 겨누고
    색소총을 쏘아댔다.
    바로 이어지는 것이 검거조였다.
    경찰들은 도로 위의 사람들을 무작정 뒤쫓고, 잡아채려고 했다.
    누군가의 패딩모자가 어느 경찰의 손 끝에 만져졌다가 달아나는 풍경도 있었다.

    그 순간이
    정말, 솔직히 너무나도 공포스러웠다.
    마치 그들은 FPS 게임의 캐릭터처럼 불쑥 나타나서 사람들을 겨누고
    뒤쫓고,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여기저기로 도망치고…
    사람들은 쫓던 경찰들은 한데 모여 짐승의 그것같은 고함을 지르고
    사람들은 분노와 두려움을 동시에 달래며
    색소를 닦아내야만 했다.

    그리고…
    경찰을 피해 종로와 을지로를 빙빙 돌아
    퇴계로에서 사람들이 겨우 모였을 때..
    그때 인원이 대강 500명이나 될까…
    인도에서 겨우 도로로 나왔을 때
    전속력으로 무리지어 뒤쫓아오는 경찰들

    나는 자전거를 타고 있었는데
    자전거 페달을 있는 힘껏 밟아도
    경찰들과의 간격이 좁혀지지 않을 만큼
    그들은 전속력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집회대오보다 몇배는 많은 그 시커먼 것들이
    도로를 모두 메운채 뒤를 바짝 쫓고 있었고

    뒤쳐지는 몇몇 사람들은
    바로 경찰들에 의해 바닥에 내팽겨쳐졌다.
    사람들은 그야말로 살기 위해 전속력으로 뛰었다.

    설마 이렇게 잔인할줄은 몰랐다.

    나는 자전거를 탔기에 그나마 안전한 축이었지만
    경찰들이 그렇게 시민들을 다룰 줄을 몰랐다.
    우린 너무 순진했다.

    예전에 온갖 돌맹이와 물대포를 주고받던 때도
    방패로 찍고, 발길질을 했던 때도
    이렇게 공포스럽진 않았다.

    그 시절 경찰은
    저지선을 지키려는, 일종의 방어전선이었다.
    시민들은 경찰들의 방어전선 틈새로 이리저리 진격로를 살피려 하다 안되면
    도로 위에서 우리의 요구를 외쳤다. 그들이 보란 듯이..

    그런데 오늘의 경찰들은
    도로 위에 올라온 자들은
    단 한명도 용납할 수 없다는
    완벽한 검거작전이었다.

    영화인것처럼
    FPS 게임인것처럼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인것처럼

    사람들을 몰아 붙이고, 연행하기 위한
    최선의 몸짓을 보여주었다.

    예전에 집회가 끝나면
    그래도 뭔가 내가 시민으로서 책임있는 행동을 했다는 뿌듯함이 있었는데

    오늘은 그야말로 처참히 뭉개졌다.
    시민으로서의 나의 자존심을 뭉개고
    두려움에 떨게했다.

    집에 돌아갈 때
    일렬로 선 경찰들 옆을 지나는데
    그들이
    색소총을 쏠 때처럼
    퇴계로에서 전속력으로 쫓아 올 때처럼
    나를 잡아채고
    바닥에 뭉개버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몸이 먼저 반응하기도 했다.

    잊혀지지 않을, 오늘의 풍경들.
    서울 한 복판에 경찰들이 나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잡아채려고 하고
    사람들은 도망가야만 했고

    그들은 80년대 액션영화를 찍고 싶었는데
    우린 오늘 너무 순진했다.
    지난 평화로웠던, 그나마 인권보장의 목소리라도 낼 수 있었던 시절(상대적으로)의
    연장선에 있는 하루겠지 라고 생각해버렸던 것이다.

  • [2009.1.31.] 을지로입구, 토요일 아니 2009년 1월 31일

    **풍경 1

    어떤 옷을 입었건 상관없이…
    갖은 협박을 하는 이도 있었고
    엄살을 부리는 이도 있었다
    긴장감에 가득 차서 땀까지 흘리는 이도 있었고
    욕을 하고 비명을 지르는 이도 있었다.
    나를 아프게 한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하나도 밉지가 않았다.

    솔직한 마음으로..
    시장통의 실랑이인것처럼 오히려
    이 편이 속시원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무서웠던 것은 휙- 휙- 지나쳐버리는 군중들.
    김선우 시인의 <헤모글로빈, 알코올, 머리칼> 이란 시가 다시 한번 떠오르는 순간.

    **풍경 2

    매일 밤 불을 밝히던 롯데백화점의
    전구들이
    그토록 괴이하게 보일수도 있는 것이다.

    사방에서 불을 밝힌 것들이
    가만히, 아주 가만히 멈춰서서 지켜보고 있고

    도로 위의 사람들은
    그래, 내가 얼마나 망가지는 지 보여줄게, 그래도 가만있을꺼니!
    하고 비명을 지르는 듯했다.

    으르렁 거리는 도시의 굉음속에서
    서로 고통을 주고받던 사람들
    괜찮다.
    그래도 괜찮다.
    그래도 그 순간 주인공이 된 셈 치는 것이지.

    지하철 한 정거장을 지나치기 전까지는…

    **김선우 시인의 시

    -헤모글로빈,알코올,머리칼-

    (머리가 깨진 날 기뻤어요
    내상보다 외상이 덜 위험하거든요)

    보도블록을 깨다 손목 베이자 불타는 머리칼,
    바리케이드 위에 살점을 널던 팔십년대
    그 격렬한 외상의 날들
    자고 일어나면 새살이 돋아 있곤 했지요
    추억의 쓴물에 어금니를 담그거나
    이적성 표현은 아닙니다

    구십년대는 우울한 내상의 날들이어서
    걸핏하면 넘어지고 발목을 삐는데
    피 한방을 흐르지 않고 멍만 듭니다
    세계 인구의 열배도 넘는 세포가 모여 이룬,
    육체의 나날은 출혈없이 평화롭습니다

    그런데 어제 머리를 깼지요
    만취해 돌아오다 길에 누워버렸습니다
    두개골은 멀쩡하고 상처도 크지 않은데

    폭포처럼, 피 흘리는 머리칼
    친구의 웃옷을 벌겋게, 치마를 물들이고
    길바닥에 누워 해실해실 웃더랍니다
    “아아 상쾌해” 하면서 말예요

    빨간 다알리아 꽃들이(기억나요?)
    뭉텅뭉텅 꿈 밖으로 걸어나갑니다
    편지를 썻다가 구겨버렷어요
    – 내 몸은 나를 보호할 의지가 없나봐
    방금 당신께 전보를 쳤습니다
    – 안 보이는 상처가 나를 시들게 해
    다알리아 꽃모갱이를 꺾으며 울었습니다

  • [화려한 휴가-김지훈] 살아남은자의 슬픔

    우연히도
    이 영화가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임철우의 <봄날>을 힘겹게 힘겹게 다 읽었을 때를 즈음하여
    이 영화가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다지 좋게 보이지가 않았다.

    뭔가 우려먹기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게 사실이고
    역사적 진실을 앞세워서 돈 벌어먹으려는 상술만 같아 보였다.
    아마도 몇몇 역사적 재현을 짜깁기 하고, 대단히 숭고한 척만 하다가
    쫄딱 망하겠지
    싶었는데
    놀랍게도 영화는 흥행에 성공했다…

    의뭉스러워서 봤는데
    영화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대중장르영화의 테두리 내에서
    이야기해야 할 것을 분명하게 이야기 해주고 있다는 데 의의가 있는 것 같다.

    적당한 코믹터치로 무거운 주제 속에서 웃음을 유발시키기도 하고
    멜로와 형제애를 전면배치하면서도 거대한 스케일의 정황 정황들을 놓치지 않고 긴장감 있게 이끌어 내는… 그야말로 상당히 공을 들였으리라.

    그래도 좀 아쉬웠던 부분은
    광주항쟁의 역사적 사실들을 알고 있지 않더라면 오독할 수 있는 부분이 상당히 있을 수 있다는 것과
    전두환 등을 비롯한 역사적 범죄자들과 시국에 대한 분석이 별로 없었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몇몇 인물의 액션극으로 흘러가는 바람에
    광주 시민 중 일부만이 각성하여 항쟁을 이끌었다는 등의 인상을 풍기는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액션 장르의 도식을 차용하고 있었기에
    위의 문제점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너무나 거대한 스케일의 역사적 사건이라
    모든 것을 충족시킬 수 없다는 점
    나도 알고 있다.
    모든 것을 충족시키려면 다큐멘터리가 되고 말겠지.

    장르영화라는 테두리 내에서
    그래도
    화려한 휴가는 해야 할 이야기를 충분히 하고 있는 듯하다.

    “우린 폭도가 아니야!”
    라는 외침과

    제일 마지막 장면에서 시도하는 것이 마음에 와닿는다.

    거의 모든 출연진들이 나와서 사진을 찍는 풍경인데
    모두가 활짝 웃음을 피우는 것과 달리
    정작 웨딩드레스를 입은 이요원은 굳은 표정을 시종일관 유지한다.

    그것이 현재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은유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하여 화려한 휴가는 그것의 역사적 사건을 관찰하는 것에만 머무르지 않고
    현재까지 연장선을 긋게 된다.

    현재까지 닿는 연장선.
    영화가 시종일관 강조하는 만큼
    “우린 폭도가 아니야!” 라는 외침을 기억하는 것이 우선이겠지만…

    그런데 그것을 넘어서서
    살아남은 자를 슬프게 하는 근본적인 대상을 영화는 지시해주지 못하고 있다.
    영화가 거기까지 조금만 더 나아갔더라면

    박근혜를 비록한 한나라당 일파의 단체 영화관람 등의
    아이러니한 해프닝이 벌어지지 않았으련만…
    말이다.

  • [2009.1.20.] 철거촌의 기억

    이제 대학 새내기를 막 벗어나던 2004년 연초.
    상도동 철거촌의 골리앗을 방문해 본 적이 있었다.

    봉쇄된 철거촌의 벽 앞 골목에 밀집하여
    이런 저런 항의 구호를 외치곤 있었고
    사복경찰인지 용역깡패인지 우리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위협하는 눈초리를 주긴 하였지만
    전혀 철거촌 앞에 있다는 느낌조차 들지 않았다.

    그 곳은 중앙대 후문에서 도보로 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웠고
    우리가 서 있는 곳 바로 옆에는 슈퍼 등을 비롯하여 온갖 상점이 즐비해 있었다.
    이런 서울 한 복판에

    골목 구멍가게처럼 철거촌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도저히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 시절 내가 살았던 방배동의 그 호화스러운 주택 사이사이에 끼어있던 판자 같은 것이 집인 줄 몰랐던 것처럼

    나는 서울이란 공간에, 한국이란 공간에
    아직 현실감각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던 것이다.

    암튼 그 곳에서 안에 몇 명정도 구호물자 등을 들고 가자는 계획이 세워지고
    나는 ‘아직은 새내기(?)’라는 특권으로 선발(?)되어 들어갈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해서 들어가보게 된 그 곳은
    그야말로 딴세상이었다.

    그저 뇌리에 떠오르는 것은
    “이곳은 전쟁터”
    라는 것 뿐이었다.

    온갖 허물어진 가옥들과 가구 등의 집기들이 어지러운 벌판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골리앗이 그 중심에 서 있던 그로테스크한 풍경.

    인간이란게 참 무정하구나 라고 느끼게 한 풍경에서
    우리는 철조망과 방해물들 사이를 빙빙 돌아 골리앗으로 들어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전기, 물 같은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환경이었다.
    ‘골리앗’이란 구조물도 그리 튼튼해보이지 않았다.
    공간은 매우 협소하였고
    빛도 제대로 들어오질 않았다.

    내가 만나 얘기 나눴던 분은
    몇날 며칠을 추위와 배고픔과 물 부족 등의 그야말로 총체적(?) 열악함에 시달려 있었던 듯하다.

    같이 온 중앙대 분들 중 몇은 여기에 가끔씩 방문하고 그랬던 지
    서로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디지털 카메라의 플래쉬를 터트려서 사진을 찍을 때
    그 분은 다시 은행강도 같은 복면을 썼다.

    서울 복판 속 딴 세상에서
    그 분들과 나누었던 대화가
    내게 현실감각을 주었나보다.

    이 후,
    버티고 누었던 철거민을 크레인이 짓눌러서
    두 다리를 절단시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용역깡패들이 사시미칼을 들고 쳐들왔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도

    그럴 리가… 라는 의심이 들지 않았다.
    작은 분노만 속에서 들끓게 했다.
    현실은 보이는 것 보다
    훨씬 더 잔인한 곳이야라는 사실만 확인해주었다.

    오늘 철거민 관련 사건을 뉴스로 접하면서
    사람들의 반응을 지켜보면서

    그리 오래되지 않은 기억과 감상을 떠올려본다.

    철거민들의 투쟁이 과격하다지만
    다리를 절단하려는 크레인이 달려들고
    어린아이와 할머니까지 있는 골리앗을 통째로 뒤엎으려하고
    사시미칼을 들고 용역깡패들이 오는데도

    촛불 하나만 밝히고 있을 순 없지 않은가.
    주류 언론은 냉담하다 못해 악의적이기만 한데…

    그리고 철거민들이 돈 욕심 때문에 그런다고 오해하시는 분도 있는데
    그것도 단연코 아니다.

    철거민들은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생존의 길목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 것이다.
    돈 욕심 하나로 크레인과 물대포와 사시미칼과 몇 년동안 대응할 수 있겠는가.
    단순 팔짜를 펴겠다고 전기도, 물도, 빛도 없는 그 공간에서 버티면서 전투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단순 보상 정도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더 이상 갈 곳이 없게 만든 억압적 환경에
    어쩔 수 없이 저항하게 되는 것이다.
    “살기 위해서!” 말이다.

    아무쪼록 이 잔인하고도 잔혹한 현실이란 공간에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최소한의 환경을 보장해주었으면 한다.

    가신 고인분들께 명복을.,,

  • [2009.1.18.] 을지로 4가, 일요일

    덕수궁은 생각보다 찾기가 쉬웠다.
    서울의 학교는 별다른 입구 없이
    슈퍼마켓처럼 골목에 놓여있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시험을 마치고 돌아오는 데
    조급했던 마음이 풀어지고 나니
    주변이 보였다.

    무척이나 흐린 날씨였다.
    언제든 계절을 모르던 골목
    을지로4가 근처였다.

    그는 여름에
    카메라를 수리하러 이 곳을 헤맨적이 있었는데

    번잡하게 놓인 금속부속들과
    좁은 점포속에 쭈그려 앉은 중년 혹은 노년의 사람들이

    도시의 내장같다고 생각했었다.
    소장 보다는 대장
    그리고 그것을 관통하는 일은
    여름에도 무척이나 서늘한 것이었다.

    일요일이라 점포들은 모두 문을 닫고
    지나가는 행인 하나 없었다.

    그냥 두어도 회빛풍경인 것을
    그는 마침 들고 온 것이 흑백필름이라고

    골목골목을 헤매듯

  • [2009.1.18.] 저녁하늘 저물다

    온갖 하늘이 멎어버린다

    고개를 내밀고
    쳐여다보면
    멎은 하늘 뒷편에서
    태양이 나를 외면하고 있었다

    누구라도 뛰쳐나와
    누구든, 무엇이든 소망하려는 그 순간

    멎은 하늘은
    쇳덩어리를 놓아버린다

    그렇게 날이 저물고
    지상은 타오르기 시작한다

  • [브로콜리 너마저-보편적인 노래] 다르게 들린 사랑 노래

    우린 긴 춤을 추고 있어
    자꾸 내가 발을 밟아
    고운 너의 그 두 발이 멍이 들잖아
    난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해

    이 춤을 멈추고 싶지 않아
    그럴수록 마음이 바빠
    급한 나의 발걸음은 자꾸 박자를 놓치는 걸
    자꾸만 떨리는 너의 두 손

    함께라면 어떤 것도 상관없나요
    아니라는 건 아니지만 정말 그런 걸까
    함께라는 건 그렇게 쉽지 않은데
    그만큼 그만 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우린 긴 꿈을 꾸고 있어
    문득 꿈을 깨진 않을까
    눈을뜨면 모든 게 사라져 버리는 건 아닐까
    마치 없었던 일 처럼

    난 눈을 감고 춤을 춰

    지겹게도 반복되는 사랑 노래들 속에서
    유독 내게 브로콜리 너마저의 음악만이
    다르게 들렸던 것은

    숱한 대중가요들이
    그대를 보면 기분이 좋아, 원츄 원츄
    이거나
    그대를 잃어 죽을것 같아, 슬퍼, 슬퍼
    라는 직설적 상투어만 무한반복하고 있었던 데 반해

    브로콜리 너마저의 음악은
    소박한 일상을 이야기하고
    상투적이고 보편적인 러브스토리를 이야기하지만

    어찌보면 직설적이면서도
    어찌보면 고도의 은유를 구사하면서
    ‘색다르게’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자차>에서 앙증맞게 이별을 은유하고
    <춤>에서 관계를 은유하는 것 등등.

    이것은 단순 이야기방식과 수사의 방식을 다르게 했다는 노력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 듯하다.
    진솔한 일상체험에서 건져올린 아기자기한 사랑이야기이면서
    동시에, 거절할 수 없는 사랑의 교훈이고 곧 그것은 인생의 교훈일 수 있는 것은

    그대를 얻으면 모든 걸 다 얻을 것만 같이 좋고
    그대를 잃으면 모든 걸 다 잃을 것만 같아 싫고
    의 1차원적 감정의 문제를 뛰어넘어

    사랑하더라도 언젠가는 이별을 해야할 것을 알고
    행복하더라도 언젠가는 이순간이 끝날 것임을 아는
    사랑과 인생에 대한 성찰을
    브로콜리 너마저는 간직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그들의 아기자기한 노래는
    설레임과 애수를 동시에 자극하고 있다.

    EP 앨범부터 귀에 확 들어오진 않았지만
    은근히 계속 맴돌던 브로콜리 너마저

    이번 정규 1집에서는 EP에서의 약간
    지저분하게 들리던 음들이
    개선되고, 좀 심플해지고 어찌보면 세련되졌다.
    <앵콜요청금지> 같은 경우는 EP에서는
    뭔가 가슴을 찌르르하고 울리던 느낌이 있었는데
    정규 1집에서는 느낌이 많이 달라진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정규 1집의 느낌도 내겐 그리 나쁘지 않다.

    다만 무척이나 아쉬운 것은
    브로콜리 너마저가 이번 1집 앨범 발매와 동시에
    공식적인 활동중지에 들어갔다는 것. ㅠㅠ
    남녀 두 보컬의 목소리처럼
    화음 잘 맞는 밴드도 찾기 힘든데 말이지.
    아무쪼록 다시 의기투합 해서 2집도 들어봤으면 하는
    팬의 간절한 소망을 남겨본다.

  • [2009.1.10.] 너를 보내는 숲

    드러눕자
    쟤네들이 운다
    온갖 언어들은 징징대고
    흘러넘친다

    드러눕는다
    드러눕는다

    흙이 파묻던 것이
    무엇이지
    알 수 없지만

    사방의
    빛 무리들
    때문에
    내가 운다
    내가 운다

  • [2009.1.2.] 서울횡단

    그의 기억 속에 서울이란 도시는

    각 지하철역으로 분절되어 있어서

    새로운 지하철역에 내리곤 할 때면

    어떻게든 기억해두려는 듯 주변 상점이고, 지나가는 사람이고

    유심히 봐두곤 했었다.

    그것은, 은근 재미있는 것이었다.

    마치 RPG 게임의 마을 순례를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수많은 지하철역마다 펼쳐져 있는 건물들, 사람들, 거리, 길… 등등

    “서울이란 그러고 보면 얼마나 풍요로운가!”

    그렇게 생각했을 적도 있었다.

    어쩌면 2003년 겨울을 떠올리면서,

    자전거 폐달을 밟기 시작한 여정이 서울의 끝에 도달했을 때

    이토록 허무하게 종결될지는 몰랐다.

    혜화에서 안양직전에까지 폐달을 밟아오면서

    그의 머릿속을 맴돌던 연속하고 있는 서울이란 공간의 형상은

    ‘이 괴물같은 도시’

    란 것이었다.

    끝없이 성장하려고만 하는 그 거대한 금속 유기체에게는

    인간이란 안중에도 없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그렇기에…

    서울 안 사람들의 삶에 매력이 있는 것은

    그 괴물과 대결하면서

    현재를 버텨내는

    그 다양한 풍속사에 있지 않은가 싶다….

  • [2008.12.28.] 겨울의 기억

    국민학생이었을 때
    주번이랍시고
    양동이 한 가득
    석탄을 받아오는데
    눈덩이처럼 맺힌 그 한 덩이
    얼마나 탐스럽게 빛나던지
    불쑥
    주머니에 넣어오던 기억이 난다

    훔쳐 온 그때의 온기가
    식어버린 건
    이십대 어느 무렵
    희미해져버린
    어느 겨울
    아마도
    서울의 변두리
    그 곳에 마주 서 있던 내가
    그만

    내가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