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8.9.] 걷다가 보니

    어제는 일찍 자는 데 실패. 도저히 8시에 일어날 리 만무했다. 6시 쯤 잠에 든 것 같으니깐. 그렇게 늦게 잘 줄은 몰랐다. 어제 밤 배가고파 오징어 맛 나는 발효치즈를 막 쥐어 뜯었던 것이 화근 인 것 같았다. 몸에 기운은 없고, 잠은 안오고… 결국 푸른 새벽 혹은 아침 즈음에야 잠에 겨우 든 거지. 그래도 패턴을 조금이나마 조정하고자 11시에 일어났다. 그것도 친구 덕택에 . 몸이 피곤해서 어디 집에 있으면 낮에 팩- 하니 쓰러져버릴 것만 같았고, 우선은 어디로든지 나가야겠다 싶었다. 간단히 아점이랍시고 배만 겨우 채워넣고 길을 나섰다.

    바람이 솔솔- 부는 날씨.

    매일 40도가 넘는 날씨 속에 오랜만에 만나는 솔솔 바람이었다. 마치 부하라에 갔을 때처럼.

    “검정치마” 2집을 귀에 꽂고 걷는 데, 단순하게 날씨 하나 때문에 기운도 좀 나는 것 같고, 기분도 좋아졌다.

    택시를 잡아타고 경제대학교에 갔다.

    혹시나 하긴 했으나, 여권만 검사하고 들여보내줬다.

    도서관은 생각보다 깨끗했다. 에어콘도 나오고 학생들도 득실대지 않으면서 텅 비어있지도 않고… 남의 시선 안 받을만한 구석탱이에 가서 자리 잡았다. 어댑터도 있어서 노트북에 전기까지 꽂고…. 역시나 또 액세스. 책으로 봤던 것을 한번씩 해보는 데, 흥미가 없어서 그런지 쉽게 진도는 나가지 않고 50페이지 가량 했으려나 하는데.. 도서관이 4시에 문을 닫는다더라 ! 여름방학이어서… 뭐 어쩔 수 없지. 사실은 액세스 하기가 너무 싫어서…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지.

    돌아오는 길은 걸어가기로 했다.

    아… 자전거만 있었더라면 생각이 절로 들었지만, 뭐 우선 당분간은 없는데로 살아봐야지 하면서 걸었다. 그늘을 찾아서 걸으니 그다지 덥지 않았다.

    운하 근처에 가서는 그 쪽으로 길을 틀었다.

    멀리서 사람들이 앉아 있는 모습이… 마치 회화의 한 풍경인 것만 았다.

    그런데 가까이서 보니

    사람들이 초록색(?) 물에 풍덩풍덩 물장구를 치고 있었다.

    근데… 돌이켜보면

    나는 코이카에 떠나기 전에… 아마 거기가서 제일 잘 적응하는 것이란 현지 사람들이랑 똑같이 사는 걸꺼야.

    무조건 현지 사람들이 먹는 것 먹고

    길거리에서 파는 것도 여기 사람들 다 먹는 거니깐 라면서 가뿐하게 먹어주고

    입는 것, 자는 것 다… 여기 기준에 맞춰 생활하는 것이

    가장 잘 체험(?)하는 것이고, 가장 잘 사는 걸꺼야.

    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사뭇 다르지.

    음식 적응이 잘 안되서 ‘젤린’ 혹은 ‘긴쟈’ 라면 끔찍해하고 (젤린은 여기 특유의 향신료. 싸아- 한 맛이 나는)

    길거리에서 파는 정체모를 음료수들을 먹기는 어렵고

    저 초록색 물에 풍덩풍덩 빠지는 것은 상상하기가 어렵지…

    우즈벡은 라이프 스타일에 선택의 폭이 넓은지라

    굳이 그래야 할 필요가 없으니깐… 이렇게 하던데로 살아갈 수가 있는 것 같다.

    잘 하고 있는건지, 잘 못하고 있는 건지

    판단은 안 서지만

    언제가 아쉬워 할 수도 있을런지…

    그러니.. 조만간 현지식당에 가서 샤슬릭이나 좀 뜯어야 겠다 ㅋㅋ

    암튼… 기분좋은 냄새가 나는 운하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그 옆길을 걸으면서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아직까지 한번도 지나보지 못했던 그 대통령길도 가보고…

    역시나 기관총 든 경찰들이 한껏 여유를 부리고 있더군.

    집 앞에 고양이들에게 인사를 해 주고

    (역시 날 보면 토끼더군 =.= )

    집으로 왔다.

    도서관에서 있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그래도 새로운 곳에 갔다 왔다는 사실에

    그리고 미래(수업이지만)를 준비하러 갔다는 것 때문에

    그리고 오가는 잠깐의 산책이 좋아서…

    나름 보람찬 하루라고 생각하고 있다 !

  • [2011.8.7.] 그저 토해내는 것, 그것

    술을 조금 먹어서 다른 것을 할 수 없을 것 같아 이 곳을 열어본다.

    너무 술을 먹어 독을 토한다는 느낌으로 이 곳에 내 지저분한 앙탈들을 털어놓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도 좀 든다.

    그래, 그러면 된거지.

    그냥, 요새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6개월이란 시간. 반년이란 시간이 그리 쉬운 어술은 아닌게지.

    그 6개월이란 시간이 금방 지나갔고

    나는 아직 제대로 된 게 없다

    내 인생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지 하는 생각도 가끔씩 드는구나.

    사실, 꿈 이란 게 말은 쉽지

    하고 싶은데로 사는 거야 라는 것도 말은 쉽지

    그것이 어느 순간 잔인한 생활로 돌아서서 나를 바라보곤 할 때

    숨이 허걱 하고 막히는 것

    지금 이 순간의 상대적 박탈감

    제대로 지내고, 지내고, 지내서 어느새 바른 볕이라도 볼 수 있을까 생각도 드는구나.

    그리고 종종은

    내가 쳇바퀴 돌듯 사람들 다 사는데로 부속품으로 살진 않으려 하는구나 하는 생각도 해보고…

    지금, 그리고 미래에 대한 생각은

    그저 생각이 겹친다.

    생각이 얽히고, 얽히고 또 얽혀서

    지금 순간, 내가 하고 싶은데로 살아가게끔 만들기도 하네.

    불안, 불안, 불안 속에서

    내가 사실 불안한 것은

    내 불안한 인생의 과정 그 자체를 수긍하지 않고

    그 불안의 통로를 거쳐 언젠가는 볼 그 ‘영광’ 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

    나는 그 ‘영광’ 때문에 사는 것이냐

    불안의 통로 그 자체에서 살 수는 없는 것이냐

    그것 때문.

    이번엔 그냥 토해냈구냐, 그냥.

    근데, 결론없이

    그냥, 그러면 되는 것.

    지금 이 순간은

    그래도 되지 않겠어?

  • [2011.8.5.] 전에

    전에,

    전… 이랄 것도 없지.

    학창시절동안

    종종…

    친구들끼리 노는 게 좋아서

    다 필요없고

    우리끼리 집 구해서 같이 지내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었지.

    같이 먹고

    같이 놀고

    같이 자고

    같이 !

    먹고, 놀고, 자고

    먹고, 놀고, 자고 …

    이렇게만 지냈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붕 뜬 기분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했었지.

    그랬었어…

    에잇,

    이제 8월인 걸!

  • [2011.7.22.] 여름날

    서늘하게 잠겨있던
    샛노란 장판에
    맨살을 맞대며
    몸을 들이눕는, 그런 것

    아- 싸-ㄹ- 하게
    콧등 적셔오는
    시큰하기 그지없는
    항상 과거의, 그 것

    종종 생각해내며
    그때
    여름햇살은 참 눈부셨는데
    내 입 속에 넣었던 그 건
    머리를 때리듯 차갑기도 했었지
    라고 기억하는…

    그런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 [2011.7.19.] 부하라 그리고 사막여행

    기차에 타는 순간, 이걸 어떡해야 하나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1평이 조금 넘는 비좁은 공간에 2층 침대가 두개 있었고 찜통이었다. 기차에 탑승한 시각은 8시. 그리고 우리의 도착 예정시간은 다음날 오전 10시 정도였다. 앞으로 약 14시간 정도 남아있었다. 에어콘은 누군가가 나온다고 한 것 같은데 전혀 틀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기차가 출발하면 조금 낫겠지 하는 생각으로 누워봤지만 그다지 나아지진 않았다. 12시 무렵까지 찜통이었다. 무엇보다도 다음 날 일정이 지장이 될까, 그게 신경도 쓰이고, 기차는 무슨 영문인지 자꾸 서기만 하고 마냥 잠 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약 4시 쯤 잠든 것 같았다.

    부하라에 내리는 순간 폭폭 찌는 더위가 기다리고 있겠지 하고 예상했지만, 생각만큼 덥지는 않았다. 모래바람이 꽤나 불어댄 것이 그나마 더위를 식혀주고 있는 듯했다. 간단히 점심을 먹으로 가는 길에 부하라의 유적지 사이사이를 돌아보게 되었는데, 느낌이 상당히 좋았다. 사마르칸트는 웅장하고 깨끗한 건물들이 위엄을 자랑하듯 서있다면, 부하라는 조금은 낡아서 세월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전통 양식의 건물들이 아기자기 하게 모여있었다. 또 사마르칸트와 다른 점은 사마르칸트는 도시 전체를 잘 꾸며놓은 공원처럼 깨끗하게 닦아놓고 사람들도 이 공원을 더럽히면 안된다는 듯 조심조심 하는 것만 같았는데 부하라는 원래 이런 양식대로 살아왔다는 듯 여유가 있었다. 내겐 개인적으로 부하라의 풍경이 훨씬 마음에 들었는데… 그건 건물양식 하나하나가 예뻐서 그렇다기 보다는 이런 풍경과 어울리는 사람들의 ‘생활’이 너무도 자연스러워 보였기 때문이다.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움. 그 자연스러움들이 한데 뭉쳐서 부하라라는 하나의 마을 그리고 도시를 형성하고 있었다. 부하라를 걸으면서야 비로소 아, 이 곳이 외국이구나 라고 새삼 느끼기도 했다.
    사실 수도 타쉬켄트는 별 다른 문화양식이 없는 단지 사람이 많고, 상점이 많은 도시라 달리 느낄만한게 많지 않았다. 안디잔은 그냥 작은 도시일 뿐이었고, 페르가나는 조금 고급스러운 작은 도시. 사마르칸트는 커다란 공원에 온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부하라는 달랐다. 다른 풍경과 그 풍경에 한껏 어우러져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전통적인 양식에 사는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조급함이 없고, 스치는 타지 출신 우리들을 힐끔힐끔 바라보면서 다들 나름의 자기 일들에 몰두하고 있었다. 이 곳에서 사는 사람들이 부럽다… 라는 생각을 하게 할 만큼.

    부하라에 여유있게 머물면서 지내면 좋으련만 다들 함께 모이자고 일정을 잡은 것이기 때문에 시간이 넉넉치가 않았다. 약 이틀을 머무르고 사막으로 향했다. 나보이에서 더 위 쪽으로 올라가야 하는 사막으로.

    우즈벡의 사막은 흔히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나오는 사막처럼 고운 모래, 선인장 그리고 전갈 혹은 하이에나가 있는 그런 곳을 상상하면 안된다. 그냥 메마른 땅이며 그 곳에는 총총이 말라 비틀어진 나무들이 질긴 생명력으로 자리잡고 있다. 동물은 달리 본 게 별로 없었다. 사막은 야영장이 있는 곳까지 약 5시간을 차로 끊임없이 달려야만 한다. 도로는 그래도 반포장 도로 정도 되는 게 있어서 그 다지 어려운 점은 없었다. 그냥 에어콘이 나오는 차 안에서 풍경들을 감상하다가 지치면 잠에 들면 그만이다.

    야영장은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식사도 생각보다는 잘 나왔고, 화장실도 있고, 전기도 나왔다. 샤워실도 있었는데 있는 지를 다들 모르고 있어서 사용하지는 못했다. 우리 일행은 야영장 근처에 있는 바다 같은 호수에 잠시 물놀이도 하고, 낙타를 타기도 했다. 낙타타기는 이동 할 거리가 있어서 타고 이동하는 건 아니고 그냥 약 20분 거리정도 되는 산책을 한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생리적인 현상인지 아닌 지는 잘 모르겠지만 낙타가 계속 울고 있어서 마음이 아프긴 했다. 묶여있는 낙타를 굳이 일으켜서 한 바퀴 돌고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 인간의 욕심이란… 이런 생각도 좀 들기도 하고, 코이카 와서 내가 참 호강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그래도 하고 싶은 마음, 뭐든 경험하고 싶은 욕심은 버리기가 참 힘든 듯. 밤에는 모닥풀을 피워주고 악사가 나와서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다. 그래도 무엇보다도 그 야영장이 좋았던 것은 드넓은 사막에 둘러쌓여 있다는 것, 그 것 자체였다. 시끄러운 그 무엇도 없고, 눈을 어지럽히는 것도 없다. 단지 끝없이 메마른 땅과 하늘이 있을 뿐이었다.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 내가 책임져야 할 것, 내가 고민해야 할 것 등등의 것들 전부를 잠시는 유예해도 될 것 같은 느낌. 이랄까.

    그렇게 부하라와 사막 그리고 사마르칸트를 거쳐서 수도 타쉬켄트로 돌아왔다.
    무엇보다도 이번 여행이 즐거웠던 것은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있어서가 아니었을까.

  • [2011.7.1.] 이제 7월이닷

    7월 1일 ! 진짜 여름의 중심에 다가간다고나 할까.

    내가 살고 있는 타쉬켄트는 생각했던 것보단 덥지 않다. 요즘은 선크림도 안 바르고 다닌다. 물론 그건 타쉬켄트만의 이야기 일 수 있다는 것.

    부하라나 카르쉬. 정도면 정말 타는 듯한 더위란 이런 거군,을 느낄 수 있다 하던데. 뭐 난 아직 못느껴봐서 모르겠다.

    지금까지의 타쉬켄트 여름은 한국여름보다 더 나은 듯. 햇빛이 눈부시긴 하지만 찜통같은 더위는 아니니깐.

    주변 지인들에게 언급하곤 했지만, 이 방학을 마음 편하게 보내진 못하는 것은

    역시 수업 걱정이 계속된다.

    우즈벡어는 계속 정체고,

    아직 액세스를 위한 시간은 갖지 못했고

    6월은 훌렁 지나가버렸다.

    7월 1일.

    산뜻하면서도 동시에 무서워지는 숫자군.

  • [2011.6.30.] 바라보고 있으면

    하늘 위에서 바라 본 우즈벡은 생각했던 것보다 이채로웠다. 아파서 제대로 보지도 못했지만, 불빛으로 범람하던 페르가나. 다음 번 너를 제대로 봐줄게, 하는 지키기 못할 약속을 하며 스쳐지나 간다. 여기가 나만간일까, 어딜까 할 때 쯤에 불빛들이 또 총총이 모여있다. 조금 더 지나니 불빛이 한산하다. 그래도 불빛이 끊어지는 곳은 별로 없었다. 드문드문이라도 가로등이 있어 작은 물줄기를 이루고 있었다. 타쉬켄트까지.

    시커먼 대륙에 총총이 박아놓은 빛의 구조물들. 어찌보면 잔인하고, 이기적이기도 하지만 예쁘다고 느끼는 것은 어찌할 수 없었다. 오로지 빛무리로 이뤄놓은 형상을 지켜보다보니 마치 이곳이 해안가인 것만 같았다. 총총 불을 밝힌 선박들과 작은 섬들 그리고 빛무리를 이루는 항구. 전에 제주도와 광주 사이를 왔다갔다 할 때 봤던 해안들은 참 예뻤지.

    비행기를 탈 때마다 조금은 설레고, 신나면서 동시에 애틋해진다. 매번 제주도의 ‘그 곳’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탈 때도 그랬다. 위 에서 내려다보다 보면 이까짓 세상 머리 위에서 보면 별 것도 없구만, 시끌벅적 사소한 것에 목숨 걸면서 살 것 있나 그런 생각도 해보고, 이렇게 비행기를 타고 어디 새로운 곳으로 가 봤으면 좋겠다 생각도 해보고, 이것저것 추억도 되새김질 해보고, 내가 살면서 가장 멀리 떠날 곳은 어딜까. 페루, 칠레, 아르헨티나 이런 곳 땅이나 밟아보고 죽으려나 이런 생각도 해보고… 스무번 넘게 탄 비행기인데도 이러고 있다. 한 50번 타다보면 질려서 그런 생각도 끊어질려나.

    암튼 이번 여행은 너무 아파서(장염인듯) 제대로 보지도 못했지만, 뭐 사람들을 만난데 의의를 둬야지.

    사실 여럿이서 함께 떠나는 여행은 같이 간 사람들끼리 노닥이는 재미라지.

    이것저것 새로움을 맛보려면 혼자 떠나야지.

  • [국내훈련] 그 이후…

    k13

    국내훈련이 끝나고 출국일까지 짧게는 2주 정도 길게는 한달 반 정도 대기하게 되는 것 같다. 우즈벡은 딱 한 달정도를 대기하도록 되어 있었다. 한 달 정도면 그 동안 못 만나 본 사람 만나보고, 출국 준비하고, 짤막한 여행이라도 다니고 그러기에 딱 적당한 것 같다. 너무 짧으면 말할 것도 없고, 너무 길면 할 일없이 늘어지니깐. 그리고 대부분의 국가가 한달 정도는 대기하는 것 같았다. 현지사정이나 비행기 사정등으로 인해 유독 짧게 대기하고 가는 국가도 있댔지만 62기에서 너무 빨리 간다 싶은 국가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

    훈련이 종료되자 마자 인터넷에 개설된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약속들이 잡히기 시작했다. 모두 양재동에서 훈련을 받았지만, 출신지는 전국구라 주로 지역별로 모임을 많이 갖았던 것 같다. 부산모임, 광주모임, 서울모임 등등. 그리고 파견 국가별로도 국별모임을 갖기도 했고, 연주회 준비를 했던 사람들끼리 연주회 모임을 갖기도 하고, 사적으로 여러 쌍쌍모임을 갖기도 하고… 100여명이나 되다보니 셀 수도 없는 모임의 꽃을 피워냈던 듯.

    나는 개인적으로 고향이 전북인데, 서울에 자취를 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아예 짐을 고향집으로 내려보내야만 했다. 게다가 출국준비도 해야되지, 고향집이랑 서울집이랑 왔다갔다 하면서 사람들도 조금 만나야지 하다보니 시간이 조금 빡빡하긴 했다. 그래서 모임에는 자주 참석하지 못하고, 서울에 있을 때 애들 조금 본 것이랑, 국별모임 참가한 것 밖엔 없었다.

    우즈벡 파견자는 모두 10명인데, 출신지는 부산, 대구, 광주, 대전, 군산, 성남, 서울 등 역시나 강원, 제주 뺀 전국구인지라 남한의 지리적 중심(?) 대전에서 국별모임을 갖았다.

    그 동안 자주 연락도 한 지라 오랜만에 만났어도 오랜만에 본 것 같지 않았더랬지. 또 소풍 온 것처럼 “대전오랜드” 라는 동물원 겸 놀이동산을 구경하고, 간단하게 식사를 하는 회동을 갖았다. 걸출하게 밤을 지샐 줄 알았는데, 다들 출국준비 겸 사람들 만나느라 정신이 없기도 하고, 지방에서 만난지라 왔다갔다 하는 게 부담이 돼서 말이다. 그리고 어차피 우즈벡에서 2년동안 서로 부대낄 것을 아는데, 뭐 하면서 각자 출국준비 정보를 공유하고 공항에서 만나길 약속했다.

    출국준비를 하는 것은 정말 하루하루가 지름신일 정도로 살 것도 많았는데 그와 관련된 것은 다른 포스트에서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우선 국내훈련일지는 이 것으로 마무리 짓는다 ! 블로그 포스트도 한국을 뜨겠구나!

    아래 동영상은 국내훈련 동안 찍있던 동영상을 편집해서 만든 것. 매번 카메라를 들이댈수는 없어서 주로 다이나믹한(?) 부분들을 위주로 찍어서 강의시간 등은 별로 없지만 특별활동 위주로 어떻게 진행되나 볼 수가 있을 것. 다만, 우즈벡 단원들 위주로 찍혔다는 것 감안해야 할 것 !

  • [국내훈련] 발단식

    발단식 날이 다가왔다. 국내훈련의 마지막 날이라 해단식이 아닌, 발단식. 이제부터 훈련생이 아닌 ‘코이카일반봉사단원’ 이라는 의미이리라. 내심 기다려왔던 훈련 종료일. 그렇지만 이제부터 갈 길이 진짜 삼천리 혹은 삼만리 (그 이상?) 일 100여명의 파견 예정자들이었다. 가장 멀리가는 국가는 어딜까? 파라과이 혹은 에콰도르 정도가 될 것이다. 가장 가깝게는 몽골이나 인도네시아 인데, 그래도 파견 후 1년 동안은 한국 땅을 밟기가 힘들 것이다. 특별한 사고나 이유가 없다면.

    이미 파견국가, 파견도시, 파견기관 그리고 출국일까지 안내를 받았기 때문에 파견될 곳과 일정에 관한 걱정은 별로 없는 것 같았다. 그것보다는 한 달동안 함께 지냈던 사람들과 갖는 마지막 공식일정이라는 생각에 아쉬움이 큰 것만 같다. 친밀했던 사람들과 기념 사진이라도 한 장 더 간직하고자 각자의 카메라가 그야말로 쉴 틈이 없었다. 나도 끊임없이 찍고, 끊임없이 찍혔던 것 같다.
    우리 발단식 때는 산악인 엄홍길씨가 오셨다. 다들 좀 있으면 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간다는 생각에 조금은 비장해하기도 했는데, 수직각도로 지구 끝에 갔다오셨다는 분이 오시는 바람에 잠깐 머쓱해지기도 했다지?! 여러 대표인사(?)들의 축사가 끝나고, 각기 수료증을 받고, 함께했던 교관들과 작별의 악수 혹은 포옹을 나눴다.

    그리고 기다렸던 만찬의 시간.
    연주회 모임팀은 그 동안 짬짬이 연습했던 공연을 멋지게 보여주었고, 우리는 뷔페식과 함께 하면서 서로 모자랐던 이야기 꽃을 피우기도, 서로의 연락처를 주고받고, 언제 어디서 만나자고 약속을 했다.

    이 소중한 인연의 끈을 놓지 말자며 약속하고 약속하던 작별의 시간.
    그렇게 발단식이 끝나고 다들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 [2011.6.22.] 요새 듣는 음악

    여기와서는 새 앨범을 잘 못듣고 들었던 앨범을 주로 듣게 되더라.

    특히나 “생각의 여름” 앨범을 꽤나 많이 들었고

    “가을방학” 앨범도 정말 많이 들은 듯.

    겨울 날씨때는 “나윤선” 노래도 많이 들었는데

    여름이 오니 듣기가 조금 힘겨워지기도..

    그래서 여기저기 방황하다가

    “옥상달빛” EP 앨범을 듣게되고

    지금은 “옥상달빛” 1집 앨범을 듣고 있다.

    “장기하와 얼굴들” 새앨범도 같이 듣고 있고…

    “허클베리핀” 5집은 조금 긴장이 될 정도로… 기대하고 있어서

    여유가 있을 때 집중 탐미(?)하려고 아껴두고 있는 중.

    여기 와서는

    잔잔한 노래를 더 찾게 되는 것 같다.

    우즈벡어 공부도 해야하는데

    이어폰을 끼면 어쩔 수 없이 음악을 틀 수밖에 없네.

    하아~

    조금 여유가 생기면 기타도 배워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