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10.16.] 편집중

    동부캠프가 끝났고, 나에겐 편집할 영상이 쌓였다.

    촬영 영상은 약 100기가.

    D-1 일 영상이 사라진 것이 못내 유감이지만 뭐 소스가 부족하지는 않으니깐.

    암튼 꾸역꾸역 하는데…. 허리도 좀 아프고…

    계속 확인하고 편집하는 게… 쉽지만은 않군.

    언제나 편집하는 것은 골머리가 아프다.

    이번에는 영상이 너무 대규모여서도 그렇지만

    BGM 찾는 것도 쉽지만은 않은 일.

    인터넷이 빠르지도 않고, 종량제인터라… 인터넷에서 새로운 음악을 받기가 쉽지만은 않고

    있는 것 중에서 어떻게든 찾아서 해야하는데

    내 단골메뉴 Gontiti 도 쓸 만한 건 거의 써버렸고

    정말 눈 씻고 찾아해매이고 있다… ㅠ

    한국어 마을 축제라 한국어 가수 중에 찾아야 할 것 같은 제약사항도 좀 있네.

    언제나 편집은 심신을 피로하게 만들지만

    내 미약한 재주로나마

    다른 사람에게 약간의 추억거리라도 준 다면… 그게 보람인게지.

    우즈벡에 와서느 정말 영상을 많이도 찍고

    편집 , 배포도 많이 했는데

    다들 가족들과 떨어져 있어서… 내가 만든 영상으로나마 소식을 전달했다고 하니..

    조금 뿌듯하기도 했었다.

    이번에는 100여명에 가까운 학생들에게 배포될 거라고 하니

    배포 그 순간의 흐뭇함을 위해… 또 꾸역꾸역 해보자구!

    그런데, 문제가 좀 있다면!

    내 GH1이 바로 어제, 전사하셨다 ㅠㅠㅠ

    이 GH1 이 내 두번째 GH1 인데…. 저번과 같은 증상으로 전사했다는 게 유감.

    그래서,,, 저번에도 그랬듯이… 원인도 모르겠고, 대처법도 모르겠고,, 그야말로 그냥 … 패닉상태랄까 ㅠㅠㅠ

    그리고 여기 DJinside 도 베타버젼으로 업데이트 했더니

    방명록 새글보기와 로그인에서 오류가 발생하고 있다. 인터넷도 원활하지 않아 땜빵질도 어려워

    그냥 정식 안정화 버젼이 나올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 심각한 오류는 아닌 것 같아서.

    어쨌든.

    저번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이거 편집만 끝나면…. 편집만 끝나면….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

  • [2011.10.12.] 오랜만에 Informatika 학부 그리고 …

    순순히 진행된다 싶었더 현장사업은, 학교 공문이 자세하지 못하여서 다시 받아야 한다고 한다.

    Marguba 한테 맨날 신세만 지는 것 같다. 또 노력하겠다고 답변을 해주겠지. 그래도 그녀는 부탁한 것들을 시일내에 답변을 잘 준다.

    이번에는 금요일까지 노력해보겠다고 했다. 현장사업은 시간이 문제지 다른 문제는 별로 없다.

    기관 평가서를 받으로 오랜만에 Informatika 학부에 갔다.

    내 수업을 알아서 받아간 이 후부터는 별로 Informatika에 왕래할 일이 없었다.

    학부장에게 기관 평가서 이야기를 하자, 학부장은 동료 교사에게 시킨다. 그런 것은 좀 나 없는데서 시키고 그러면 안되나? 싶었지만 한 시간 있다가 준다는 말에 그래 얼른 아무렇게나 체크해서 줘라. 했다.

    한 시간 후에 다시 학부에 가니 웬 회의를 하고 있다.

    서류를 달라니깐 우선 좀 앉아봐라 하고선, 회의를 시작한다.

    잘 알아듣지도 못해서 회의에 참석하고 싶지 않았지만, 뭐 어쩔 수 없지.

    중간에 내 관련한 이야기를 한 것도 같기도 하고, 아닌 것도 같다.

    확실히 내 우즈벡어는 완전히 정체 혹은 퇴화하고 있다 ㅠ

    회의가 끝나자, Abduqodir가 갑자기 내 교실을 가보고 싶다고 한다.

    그래 뭐 보여주지 했는데… 갑자기 이 교실에서 금요일에 자신의 수업을 하면 안되냐고 한다. 이번에 학생들이 많이 들어와서 그렇다나.

    하지만,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안되는 일이다!

    수업공간이 부족하다는 건 엄연히 핑계일 것이다

    왜냐하면 원칙적으로 보자면 나 또한 Informatika 학부에서 수업을 진행해야 하는데, 따로 언어학부 강의동으로 빠져나왔으니 내가 진행하는 수업(2그룹 뿐이지만)만큼 공간이 남을 것이다.

    또 지금 이 교실은 Informatika 학부에선 어디에 있는 지도 몰랐을 정도로 공간에 대한 아무런 권한이 없는 곳이며, 학부 건물 또한 다르다. 언어학부 소속의 공간이기 때문에 마음대로 Informatika 학부에게 사용하라고 허락하기도 애매한 처지다. 공간이 부족하다면 Informatika 학부가 주관하는 공간에서 알아서 소화를 해야 하는 게 맞지 않겠는가.

    그리고 분명 처음에는 한 그룹만 쓰겠다고 하겠지만, 점점 더더 쓰려고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코이카 단원 전용 공간으로서 수업 공간이라는 게 무용지물이 되고, 사람이 바뀌면서 사용권한을 잃을 위험도 있다.

    그리고, 현장사업 이후에는 새 컴퓨터, 캠코더, 빔 프로젝터 등등 도난 위험이 있는 물품도 상당한데 공용 소유가 되버리면 관리가 어려워진다.

    우선은 해당 공간에 대한 사용권한은 내 고유의 권한이 아니기 때문에 코이카 관리자 및 언어학부 쪽과도 대화할 필요가 있다고 대답했다.

    우선은 알았다고 하며 가는데… 순순히 가지 않고 갑자기 다음 주부터 수업하는 파워포인트 관련한 수업자료 및 프레젠테이션을 보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그건 뭐하려고 보려고 하냐고 하니, 그냥 수업때 쓰는 자료가 있지 않겠느냐고 한번 봐야겠다고 한다.

    아오- 빡쳐!

    저번에도 모든 프로그램마다 프레젠티이션을 준비하라고 해서 무려 40장짜리 PT를 준비해갔는데,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Abduqodir 였다.  그게 일종의 시험이라고 이야기해서 우즈벡어로 대본까지 준비해갔었는데 말이다. 빔프로젝터까지 챙겨갔었는데 말이다!

    암튼, 이번에는 크게는 신경쓰지 않으려고 한다. 그에게 수업자료가 마음에 들던, 마음에 들지 않던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정말 좋지 않게 되는 경우… Abduqodir 가 학부장이니 다른 선생님들에게 내가 수업할 능력이 되자 않는다고 꼬질러서 정규수업을 주지 않는다 해도

    뭐, 정규수업에 크게 집착하지 않으려 한다. 우선 공간은 확보했고… 대부분의 코이카 컴퓨터 선생님들처럼 방과 후 수업을 알아서 진행해도 되는 거니깐.

    사실, 그게 더 보람있는 일인 것도 같으니깐.

    처음에는 여러모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나에겐 교활하게만 느껴지는 사람이다.

    암튼. 암튼.

    오랜만에 왕래한 Informatika 학부와의 문제는 여전했다.

    그래도 해당 일들이 끝나고 나선…. 나름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JICA 로 온 일본어 교사 카쉬나 씨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카쉬나씨는 한국말도 웬만큼 하고, 우즈벡어도 해서 더듬더듬 우즈벡어로 서로 대화했는데… 나름 새로웠다.

    시리아에 이어서 두번째 JICA로 왔다는 카쉬나씨.

    둥글둥글한 성격에 학생 및 다른 선생님들과의 교류도 많은가 보다.

    그런데 아이러니 한 것은

    카쉬나씨는 한국 드라마를 정말 좋아해서 이거이거 재밌게 봤다고 이야기를 하면

    나는 전부 다 모르는 것이고,  Umid 가 자신도 좋아한다고 한국말로 맞장구를 친다.

    내가 “이누드 잇신” 을 좋아한다고 이야기를 하자

    또 카쉬나씨는 정작 모르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헐헐 –

    암튼 일본 JICA 단원과 더듬더듬 우즈벡어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었다.

    다른 JICA 단원드도 한번 만나보고 싶다.

  • [2011.10.8.] 머리가 복잡할때는

    ‘객관성’ 이라는 말이 완전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개인적으로 별로 좋은 말이 아니라고도 생각하고 있긴 하지만

    상황이 미묘하게 얽혀있을 땐

    그 객관적으로 보자 라는 말을 되내일 필요도 좀 있다

    객관성이라는 게 뭐 별건가

    그냥 내 자신의 행동에 대한 되돌아 봄을 의미할 수도 있고

    비행기 위에서 내려다 보듯

    내 자아에서 조금 떨어져 본다는 것이지, 뭐.

    나와 타인이 맺고 있는 감정의 결들을

    온순히 쓰다듬어 본다는 것이지, 뭐.

  • [2011.10.4.] 안디잔 다녀왔습니다

    정말 다사다난 많은 일들이 있었고

    오늘은 결국 낮부터 쓰러져서 새벽까지 잠을 자고 말았다.

    캠프는 힘든만큼 느꼈던 바가 많았지만

    지금은 정리해서 쓸 수가 없구나

    나중에 써야겠다

    지금은…

    조금, 혼란스럽다

    그냥 사진만 남기고 총총

  • [2011.9.28.] 동부 가기 전

    솔직히 여행이라는 것은

    여행 그 자체가 중요할 때도 있지만

    여행이란 어떤’일탈’ 자체가 중요할 때도 있는 것 같다.

    뭐 거창하고, 대단한 스펙타클 여정이 아니더라도

    그냥 일생 생활 반경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잠깐 지낸다는 게 중요할 때가 있는 것 같다.

    내게 지금이 조금 그런 것 같기도 하네.

    뭐 볼 거라곤 손톱만큼도 없는 곳이라고 해도

    그냥 내게 있어 익숙한 생활반경이 아니라는 것

    조금이마 낯설고, 이것저것 조심조심해야 할 공간

    그래서 그런지 조금이나마 더 거침없이 굴 수 있는 공간

    그게 내게 조금은 필요했나보다.

    왜냐구?

    그냥, 그럴 때가 다들 있지 않나?

    암튼…

    잠깐의 동부 여정이 내게 있어서

    조금의 터닝포인트가 됐으면 한다

    별 것 아닌 일정과 여정이지만

    그냥 그렇게 내가 의미부여를 하고 싶어진다

    어디로나로 떠났다가

    내 생활반경으로 다시 돌아왔구나 했다는

    그것 자체를 느끼고 싶다

    하하

  • [현지훈련] 첫날 밤

    대학교 논술고사를 본답시고 서울 고모댁에 갔던 적이 있었다. 어머니와 함께였는데, 그때 기억이 이상하기만 한 것은 왜 항상 고모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였는데 항상 혼자였던 느낌이 나는 것일까. 돼지갈비도 먹고, 시장에서 족발도 사와가지곤 같이 먹고 그랬는데. 실제와 기억이 길어 올리는 느낌이 항상 일관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때는 이상하게도 헤어지려 하는 연인의 느낌인 것처럼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함께인 느낌이 별로 없었다. 내 기억에 남은 것은 어머니와 고모와 있던 그 시간들이 아니라 내가 거대도시 서울과 부유하듯 둥둥 떠 있는 오묘한 느낌 그 자체였다. 아마도 대입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그리고 대학을 합격하든 불합격하든 내 인생이 더 이상 고향 부안에 머무르면 안 된다는 것. 이제 서울이 됐든 어디가 됐든 타지에서 내 삶을 내 스스로 끌고가야 한다는 여러 잡생각들이 겹쳐 있었나 보다. 그래서 서울이라는 거대 형체를 탐색하듯 혹은 조금은 자포자기한 자세로 그것과 마주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 곳이 내가 살만한 곳인지, 결국 이 곳을 받아들여야 하는 곳인지 하면서… 찬찬히 그렇게 서 있었고 결국 그 이후로 계속 서울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지난 기억에 완전히 합치되는 인과관계를 찾는 것은 결국 불가능한 일. 지금 돌이켜보건대, 가장 유리할 것만 같은 원인을 찾고, 그럴 것이다라고 믿는 것이 결국 나의 과거가 되지 않으려나 싶다.
    본래 늦게 자는 습성 때문에 서울 상계동의 그 아파트에서도 유독 잠에 들지 않아, 밤이 참 길었다. 지방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사촌형의 방을 홀로 쓰게 됐는데, 그 방은 왠지 갑갑증을 불러일으켜 곧잘 거실에 나가있곤 했다. TV를 틀면 소리 때문에 전부들 깰 것만 같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창 밖 베란다 밖을 바라보는 것 뿐이었다. 베란다에서는 사거리가 하나 보였는데, 그 밤에서 새벽까지 차들은 쌩쌩 달리고 있었다. 신호등이 가로막으면 잠시 쉬다가 대충 빨간불이 끝날때쯤이다 싶으면 열심히 엑셀을 밟던 그이들.
    누가, 이 시각에, 어디를 가는 것일까 ?
    라는 짤막한 물음이 끝나기도 전에 새로운 차들이, 새로운 사람들이 스쳐지나 갔다.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을 그저 바라보는 것.
    앞으로 내가 보낼 시간들이 대충 그런 시간들로 채워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막연한 예감을 그때 했던지, 아니면 돌이켜보는 지금 새롭게 만든것인지 확실치는 않다. 어쨌든 난 그 고모집에서 밤마다 베란다 문을 열고, 휙-휙- 지나치는 차들을 한참씩 바라보곤 했다.

    우즈베키스탄 타쉬켄트에서 첫날 밤에 그날의 기억, 그 느낌이 갑자기 떠올랐다.
    쌩쌩 지나가는 찻소리, 휙휙 지나치는 그이들을 바라보는 느낌조차 흡사했다.

    누가, 이 시각에, 어디를 가는 것일까 ?
    나와, 대화를 할 법한 사람일까?
    그를, 만날 수 있을까?

    라고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차는 휙-휙- 지나간다.

    바라보다가 나는 잠이 든다.
    앞으로 1년 364일 정도가 남았다.
    설렌다.

  • [현지훈련] 인천공항에서 타슈켄트 공항으로

    새벽같이 일어나서 씻기 시작했다. 친구녀석은 아직 잠결이다. 우즈벡에선 해산물 먹기가 힘들다고도 하고, 출국 전 먹는 마지막 식사가 될 것 같아서 호사롭게 비싼 초밥집까지 데려다줬건만 세상 모르고 쿨쿨이군. 간촐하게 씻고 단복을 챙겨 입으려니 친구 녀석이 눈을 비비며 일어나 대문까지 나와준다. 갈게, 잘가. 이 정도로 작별의 시간은 짧았다.
    고려대 앞 거리가 아직 가로등 불빛으로 붉다. 드문드문 사람들이 입김을 호호 불며 잰걸음을 한다. 밝은 편의점 앞을 걸을 땐 사람들이 힐끗 나를 쳐다보기도 한다. 단복이 그리 평범하지만은 않은가 보네. 어찌보면 기차역에 계신 아저씨들 옷처럼 생기기도 했고, 어찌보면 교복처럼 생기기도 한 것 같네. 암튼 오랜만에 입어보는 유니폼 옷깃을 훌훌 털으며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공항버스는 일찍 왔고, 사람들이 주섬주섬 타는 모양 따라 가 앉았다. 예정시각보다 30분은 일찍 공항에 도착할 것 같았다. 공항까지는 가는 동안 내내 창 밖 풍경만을 주시했다. 그냥 생각이 여러모로 겹쳐 들었는데, 그 중 가장 큰 것은 막연한 설레임인 것 같았다.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이미 날이 밝아 있었다. 각자 캐리어에, 배낭에 맨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우선 어디로 가야하나 싶었다. 약속 포인트로 먼저 가야하나. 입출금 ATM에게 먼저 가야하나. 택배사에 먼저 가야하나. 에잇, 처음 외국 나가는 티 나게 엉거주춤 하지 말자구! 시간여유가 있었으니 택배사부터 갔다. 가는 길에 세네갈에 출국하려는 단원들을 우연히 만났다. 길게 인사하고 그럴 여유도, 시간도 많이 없어 간단히 잘 챙겨 나가시라고 하고 갔다. 조금 일찍 도착하긴 했지만 나도 은근히 신경쓸 게 많았는데 택배사에서 물품을 찾고, 핸드폰을 정지시키느라 통신사에 전화를 하고, 초과 수화물 비용을 계산하기 위해 ATM에서 출금을 하고 등등. 혼자 이것저것 하려니깐 일이 많은 것 같았다.

    공항에서 단체사진

    그 이후부터는 우즈벡 단원들이 함께 움직이는 것이어서 그냥 왁자지껄 분주했다. 가족들과 함께 나온 단원들 사진을 찍어주기도 하고, 짐 정리를 다시 해야 하는 단원을 좀 도와주기도 하고, 게이트를 나서기 전 우즈벡 단원 모두 모여 단체사진을 한 장 찍고 그렇게 출입국 게이트를 나섰다.
    그리고 비행기. 우즈벡 항공사 비행기를 타서 한국인 승무원도 없었고, 한국말도 잘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국내훈련때 조금이나마 익혔던 러시아어는 출국 준비하는 한달 사이에 모두 초기화가 되버린 바람에 승무원과의 대화를 시도하진 못했다. 그래도 우즈벡은 약 7시간이면 도착하기 때문에 달리 승무원의 도움을 받을 일이 없어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전면 스크린에는 러시아어가 더빙된 영화를 상영하고 있었다. 현지 훈련부터는 우즈벡어를 공부할 예정이니 내가 저 영화를 이해할 날은 평생에 없겠군. 이런 시덥지 않은 생각을 하며 우린 날아가고 있었다. 어제 늦게자고, 오늘 일찍 일어나는 바람에 조금 잠에 들기도 했는데 일어나보니 이제 1시간 정도만 있으면 우즈벡에 도착할 것 같다고 한다. 점점 설레여졌다. 내가 설레임을 느꼈던 것은 뭐랄까. 낯선 환경 그 자체라 할까. 미국이나 유럽처럼 흔히 영화에서 봤던 장소도 아니고, 거의 가진 정보 없는 나라에 가게 된다는 것 그것 자체가 내게 흥미를 끌었던 것 같다. 볼 거리, 들을 거리, 먹을 거리 등 모든 것들이 내게 새로움을 다가올거라는 기대. 어저면 거기서 나 또한 한국과도 다른 모습으로 겪고, 느끼고 성장할 거라는 기대가 모락모락 피었던 것 같다. 어쩌면 이건 외국 처음 나가보는 촌놈의 막연한 로망스였다고나 할까.

    기내에서
    기내에서
    착륙학즈음 우즈벡 풍경

    비행기 창으로 드디어 우즈벡의 풍경들을 보인다. 평지에 드문드문 있는 잿빛 건물들. 그마저도 눈으로 뒤덮여 있어서 어떤 건물인지는 지레짐작 해야하는 그런 낮은 풍경들. 비행기가 드디어 활주로를 미끌어지기 시작했다. 저 멀리 네모난 개털모자 같은 것을 쓴 중년의 남성이 무심하게 걷고 있는 게 보였다. 생각보다 의외의 풍경이었다. 아무리 인터넷에서 검색해봐도 우즈벡이 추운 나라라는 말은 없었고, 50도에 육박하는 여름을 경험하게 될 더운나라라는 정보밖에는 없었는데… 여긴 마치 러시아처럼 생겼다는 게 내가 느낀 우즈벡의 첫 인상이랄까. 좀 쓸쓸해 보이는 풍경이다, 라면서 내가 지녔던 로망스의 일정 부분이 휘발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는 우즈벡 땅을 처음으로 밟았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백인이 활주로 한 가운데 서 있고, 양 갈래에 버스가 서 있었다. 영어로 우리에게 뭐라고 하는데 비행기 소리 때문에 시끄럽기도 하고, 영어 실력이 미천하기도 해서 그냥 고개만 끄덕였더니 사람이 적게 탄 버스를 가리키며 그 쪽으로 타라고 한다. 우리는 엉거주춤 그 쪽으로 타니 공항을 한 바퀴 뺑 돌아 출입국 관련 기관이 있는 건물로 간다. 공항이야 한국 공항과 뭐 별 다를 게 없었다. 단지 건물들이 좀 낮고, 잿빛이라는 것 정도. 공항의 입국 심사대에 줄을 섰다. 한국에서 읽었던 수기들에 의하면 입국 심사대에서 괜시리 시간을 끌어서 한 시간 이상은 소요될 것이라고 했는데 생각보다 수월하게 입국 심사를 마칠 수 있었다. 아마도 관용여권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입국심사를 통과하니 관리주임님과 선배단원들이 나와 계신다. 짐을 나르면서 간략하게 인사를 하고, 우리 동기는 타쉬켄트 공항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휘날리는 우즈벡의 눈발속에서 찍었던 그 사진. 각자 마음 속에 간직한 설레임 때문인지 다들 흐뭇한 표정으로 나왔다.

  • [2011.9.25.] 이제

    지금 중요하고, 절실하게 느껴지는 것들도

    조금만 시간이 흐른 뒤 돌이켜 보면

    별 것, 아니게 될 때가 많지

    지금 있는 공간에선

    최상의 가치로 여겨지는 것이

    다른 곳에선 무용지물할 것들도 있겠지

    지금까진

    단지 할 수 있을만한 것들을

    해왔다면

    이제부턴 하고 싶은 것들을

    찾아 보기 시작할 때가 된 것 같다

    무엇이

    내 삶에 더 필요한지를 보고

    그걸 바라볼 때가 된 것 같다

    우선 동부 좀 다녀오고…

  • [2011.9.16.] 꿈, 페루, 우즈벡 그리고 정전

    꿈을 꿨다.

    사마르칸트 였다. 밤이 되었고 나는 카메라를 챙겨 나갔다. 찍으려는 대상이 딱히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산책 겸 사마르칸트 밤 풍경을 찍으려 했던 것 같다. 가로등이 많은 사마르칸트지만 그래도 어둡기 때문에 단렌즈를 챙겼다. 조금 걷다보니 레기스탄 근처 대로였다. 지난번 동기들과 함께 걸었을 때처럼, 그 깨끗하고 넓은 거리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우선 좀 걸었다. 저 앞에서 누군가 한 패거리가 나타났다. 조금 겁이 났지만 무시하고 걸었다. 그들과 내가 가까워질때쯤 그들이 내 어깨에 맨 카메라를 빼앗으려 했다. 저항했지만 그들이 완강한 힘으로 카메라를 빼앗었다.

    그리고 꿈이 깼다.

    오늘 사무실에서 얼핏 들은 바가 있었는데 페루에서는 거의 평상복 차림으로도 잘 못다닌다고 한다. 거의 거지꼴을 하고 다녀야만 절도 등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페루에 한 번 다녀왔다는 단원에게서 들은 얘기라니깐 믿을만한 이야기였다.

    언젠가 코이카 파견 국가들을 전부 훑어 본 적이 있었는데, 그 중 가장 구미가 당기는 나라가 바로 페루였다. 멀고 먼 남미에 있고, 스페인어를 쓰고, 나라 크기도 그리 작지 않은데다가 바다를 끼고 있고, 가볼만한 곳도 많을 것 같고… 왠지 이름이 멋있고. 그래서.

    그리고 오늘 밤 여기 집에 온 이후 처음으로 정전이 됐다. 우즈벡에선 종종 있는 일이지만,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선 좀처럼 정전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아직 정전이 풀리지 않았다. 창 밖을 봐도 모두 새까만 것을 보니 이 쪽 지역에 전부 정전된 듯 하다. 저 멀리 마가진 젬축이 있는 꼭대기 층에 불이 켜진 것을 보아 광범위한 정전은 아닌 듯하다. 뭐 무섭거나 그런 것은 아닌데 잠 안오는 밤에 정전이 되버리니깐 할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노트북 배터리도 약 2시간밖에 안되니깐.

    아무튼 내가 우즈벡의 수도 타쉬켄트에 있다는 것 자체가 수많은 가능성을 내포하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밤에도 여기저기 나다닐 수 있고, 나름 문화생활이라고 하는 것들도 찾아 다녀볼 수 있는 환경이니깐.

    그 가능성들을 가지고 내가 무엇을 하고, 어떻게 성장할지가
    바로 관건이라는 것이지!

  • [2011.9.14.] 나, 영어도 시작하려구

    우즈벡 현지어라고 말할 수 있는 언어는 두가지이다.

    우즈벡어 그리고 러시아어.

    여기 사람들은 신기하게도 두 가지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러시아어는 어렵고

    학교 기관에서 우즈벡어를 더 많이 쓰기 때문에

    나는 우즈벡어를 배웠고

    우즈벡에 온 지 약 6개월이 됐다.

    이제

    현지어가 어느 정도 됐냐고?

    어느 정도 됐겠어?!

    꼴랑 6개월로 내 짱똘이 때굴때굴 굴러갈 것 같아!!!!!!!!!!

    사실, 열심히 현지어를 공부한다면…. 6개월만에 진짜 잘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난 한국어도 제대로 못듣는 놈이어서 그런지

    제대로 현지어 공부에 집중하지 않아서 그런지

    (난 독문학과였는데도 독일어 안 하던 그런 놈이였어!!!!!!!!)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하겠고

    더듬더듬 아는 어휘 몇 가지로 사고, 먹고, 택시타고만 겨우겨우 산다.14

    그 정도 어휘로 계속 살려면 답답하지 않겠냐고?

    그냥 못 알아듣는 것도 익숙해지고, 못 말하고 대충 바디 랭귀지로 하는 것도 익숙해진다고나 할까…. ㅠㅠㅠㅠㅠ

    그리고 평소에 만나는 사람들은 모조리 한국사람이고 ㅠㅠㅠㅠ

    암튼… 그런데도… 영어를 시작하려는 이유는

    수업은 막상 시작했는데… 어휘가 너무 후달려서 설명이 거의 되지 안된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그래도 영어를 매우 잘해서 (나보다 다들 잘하는 듯)

    영어로 설명하려는데…. 영어도 너무너무 안된다.

    여기와서 더 파괴되었는데… 그래도 꼴랑 아는 몇가지 우즈벡어라고

    자꾸 영어가 아닌 우즈벡어가 튀어나오려고 한다.

    물론, 여기에는 우즈벡어 어순이 한국어 어순과 거의 흡사하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영어 문장 구사가 더 어려워져버리고 말았다는 것.

    영어 어휘도 조금씩 파괴되고 있다는 것.

    그래서 …

    수업을 위해서도 그렇고, 뭐 나중에 쓸모도 있을 것도 같고 그래서 영어도 같이 공부해보려고 한다.

    우즈벡어도 꾸준히는 하고 말이다.

    그래서 오늘부터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근데…. 정말 나…. 영어 못하더군 ㅠㅠㅠ

    뭐 영어도 단기 목표가 아닌 장기 마스터플랜으로 잡고 하면

    뭐 조금이라도 성과가 있겠지.

    그래서 텀블러에 쓰던 일기도 다시 쓰려한다.

    월수금일은 우즈벡어

    화목토는 영어로

    쓰려고 하는데!

    물론 매일은 못쓰고… 그냥 내킬때마다 한번씩 써보도록 하지.

    두가지 언어를 같이 배운다는 것은…

    모험이 될지, 기회가 될지

    지켜보자구!

    PS: 근데 영어 일기 무료로 첨삭지도 해주는 그런 사이트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