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지합숙] On the Job Trai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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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JT란 On the Job Training 의 약자로 현지합숙 기간 중 각자의 부임지에서 선배단원과 함께 각 기관의 업무 등에 대한 간략한 인수인계를 받기도 하고, 지방단원의 경우에는 집을 구하기도 하는 일련의 활동 기간이다. 동기들 다들 함께만 지내다가 홀로 떨어져 홈스테이를 하면서 지내야 하는 기간이기도 해서 이제껏 배웠던 현지어를 안 쓸래야 안쓸 수 없는 기간이기도 하다. 현지합숙 기간에는 언어가 조금 부족하면 코디의 도움을 받거나 다들 부족한 현지어이지만 협동해서 어떻게든 통했는데, 이제 홈스테이 집에서 완전히 혼자다. 조금이나마 한국어를 아는 학생의 홈스테이라면 그래도 가끔씩 도움을 받을 수 있을테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 농담조로 다들 그 기간 고행의 나날이었네 하고 회고하곤 하는 OJT 이다.

    OJT 전 다들 낯선 환경에 대한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짐을 챙기곤 했다. 특히 지방단원의 경우에는 임지 파견때 짐을 한꺼번에 다 옮기기에는 너무 많기 때문에 OJT때 짐의 절반 정도는 미리 갖다둬야만 해서 챙겨야 할 것들이 더 많았다. 그런데 내 경우에는 특별히 새로움에 대한 기대는 적었던 게 사실이었다. 거주지도 계속 살던 타쉬켄트, 심지어 기관도 계속 살던 세계경제외교대였던 것. 계속 학교를 왔다갔다 한다 치면 특별히 짐들을 다른 데 옮길 필요조차 없었다. 좀 못 챙긴 것들이 있으면 기숙사에 들어가서 들고 나오면 되니깐. 선배단원도 이미 몇 차례 인사했는데, 선배단원의 말에 의하면 수업이 거의 다 종강했기 때문에 시강 등을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래도 기대가 좀 되던 것은 홈스테이. 거기서 어떤 것을 먹고, 어떤 것을 보고, 듣게될까. 그리고 그것보다 더 기대되던 것은 새로운 환경에 노출된 내 자신이 어떻게 적응해나갈까. 사실 지금까지는 한국이든, 외국이든 달리 다를 게 없었다. 동기들 다같이 돌아다니고, 다같이 공부하고, 다같이 놀다보니깐 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할 것들, 내 스스로 생각해야 할 것들도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우즈벡, 현지 문화에 직접 맞닿을 첫 순간이었던 것이다.
    세계경제외교대의 선배 단원 두 분과 홈스테이집의 학생 한 명이 나와있었다. 현지학생의 이름은 Murod이라고 했다. 선한 얼굴로 웃는 Murod과 악수했다. 한국어 중급 정도 되는 Murod은 아직 현지어가 능숙치 않은 나를 위해 한국어로 말을 건넸다. 나도 웃으면서 대답했다. 마르시루트카를 타고 한참을 갔다. 약 40분 정도는 가는 것 같았다. 홈스테이할 집을 찾기가 힘들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 선배 선생님들께서 말해주긴 했지만, 나로서는 그게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너무도 익숙한 학교 앞 아파트 같은 곳에서 학교까지 걸어서 통학하게 되는 것이 내가 예상하던 최악의 시나리오였기 때문이다. 가능한한 번잡하지 않은 곳, 익숙치 않은 곳에서부터 버스도 타고, 지하철도 타고 그러면서 왔다갔다 하는 것이 오히려 나을 것 같았다. 지리 익히기도 좋고, 약간의 긴장감도 들려면 말이다.
    마르시루트카에서 내려서 약 15분 정도를 걸었다. 어느새 어두워져 있어서 봄이어도 조금 추웠다. 타슈켄트 지역같지 않게 가로등이 드문드문 없는 듯 있었고, 거의 대부분의 집들은 1층 집들이었다. 커다란 대문들이 인상적이었고, 길가에 가로수처럼 늘어선 나무들은 웬지 모르게 애틋했다. 꼭 한국의 내 고향 시골 부안 같아서 그런 것 같았다. Murod에게 이 나무들이 무슨 나무냐고 물으니 체리나무라고 했다. 이 체리나무에 곧 꽃들이 만개하고, 그 후에 바로 체리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체리가 나올 적에 Murod의 할아버지의 딸기도 수확철이 되니 놀러오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꼭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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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리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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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스테이 집에 가는 길에 있던

    집에 들어가니 Murod의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나를 반겼다. 저녁때가 가까워진지라 저녁상도 차려져 있었다. 사실 말은 거의 통하지 않았다. 수업 초반부에 주로 배웠던 간단한 이름 소개 정도를 하고 나니 할 수 있는 말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래도 Murod의 도움도 있었고, 좋냐? 안좋냐? 라는 질문에 거의 대답하는 대화여서 큰 어려움은 없었다. 정말 화기애애한 가족이었다. 할아버지는 귀가 어두우셔서 상대방이 거의 외치듯 크게 말해야만 알아들으셨다. 그래서 나도 할아버지께 대답할 때는 유치원생이 제 목소리 크다 자랑하듯 짹짹거렸다. 우즈벡은 막내아들이 부모를 부양하는 문화인지라, 막내아들 Nematjon이 집의 가장이었고 그 아래로는 아들 둘에 딸 하나가 또 있었다. 한국으로 치면 이제 유치원생 정도 되는 나이인 그네들은 나를 신기함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면서 자기들끼리 까르르 웃어댔다. 뭐라뭐라 하는 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다들 나를 적극적으로 반기는 것은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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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밤에는 Nematjon의 형인 Umidjon이 오늘 동창회 모임이 있으니 같이 choyxona에 가자고 했다. choyxona는 직역하면 ‘다방’인데 한국과는 조금 다른 것이었다. 한국처럼 점원이 있어 서빙을 보고 그런 형태가 아니라 그냥 커다란 방이 덜렁 있고, 그 옆에 부엌까지 쓸 수가 있는 대신 서빙을 보는 점원이나 요리사 따위는 없었다. 사온 식재료들을 써서 알아서 요리를 해서 먹는 곳이었고, 구체적인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choyxona는 여자들은 갈 수 없었다. 그래서 남자들끼리 큰 솥에 고기요리도 하고, 스프도 하고 그 옆 큰 방에서 옹기종기 모여서 술과 함께 수다를 떤다. 이런 동창회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있다고 했다. 처음에는 덩치가 산더미 같은 사람들이 우글우글 모여있어서 겁이 좀 나긴 했는데, 조금 지나자 긴장이 풀려서 보드카를 몇 잔 마시기도 했다. 그리고 choyxona 다음에는 Umidjon의 친척집에를 가서 우즈벡의 축제 음식 비슷한 수말릭 만드는 데도 갔다. 수말릭은 보리를 밤새 저어서 만드는 잼 비슷한 것이었는데, 좋은 날만 만드는 것이어서 그런지 다들 완전히 축제분위기였다. 차량 스피커로 음악을 크게 틀고, 다들 춤을 추고 난리도 아니었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하면서 다들 나를 마당 스테이지(?)로 끌어내서 나도 같이 흔들어대면서 그 날 하루가 지나갔다. 첫 날치고 굉장히 많은 이벤트가 있구나 싶었다.

    사실 그 다음날들은 홈스테이 집에서 그리 많은 일들이 있지 않았다. 우리의 OJT 기간이 일주일인데 학교 관계자도 만나고, 물품 인수인계도 받고, 선배단원과 함께하는 여러 방문일정을 소화하다보니 홈스테이 집에서 뭔가를 많이 하진 못했다. 저녁을 함께 먹고, 때로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Murod과 주변을 산책하고 그런 재미가 있긴 했지만.

    내 OJT 기간 중 홈스테이가 한 축이었다면 기관에서의 일들도 제법 있었다. 사실 기관의 담당자를 만나 여러 가지 수업에 관한 세부사항을 조율하진 못했다. 이미 선임 선생님의 수업이 종강을 해버렸기 때문에 이어서 인수인계를 받을 수는 없었고, 곧 여름방학을 남겨두고 있었기 때문에 새롭게 수업을 개설할 수도 없었다. 더욱이 세계경제외교대의 수업은 정규수업이었기 때문에 커리큘럼에 맞춰서 수업을 개설해야했고, 코이카 단원을 위한 전용수업공간이 없었기 때문에 별도의 방과 후 수업을 열기도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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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사업이 필요했던 언어학부 소속의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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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임선생님과 현지 선생님들이 인사를 나누고 있다

    그래서 그런 환경이 내겐 좀 문제였다. 코이카 컴퓨터 단원을 위한 전용 수업공간이 없다는 것. 전에 하던 것처럼 원래 있는 교실을 현지 선생님들과 같이 쓰는 것을 고민해봤지만, 그렇게 되면 할 수 있는 것들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빔프로젝터를 띄울 수도 없고, 컴퓨터는 전부 러시아어 프로그램으로 세팅이 돼 있었기 때문에 일부 프로그램은 정말 난항이 예상됐다. 특히 엑셀의 경우에는 함수 조차도 전부 러시아어였기 때문에 일정의 러시아어를 익혀야만 했다. 그래서 아무래도 언어학부에 있으면서, 아무도 쓰지 않는다던 컴퓨터실에 현장사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학교에 있을 때는 현재 있는 컴퓨터실의 환경을 주로 조사했다. 이제껏 하던데로 하지 않고 새롭게 벌이는 일이어서 IT학부 및 언어학부 관계자와의 조율이 필요하긴 하겠지만, 향 후 세계경제외교대 코이카 컴퓨터 단원이 더 능동적으로 활동하려면 언젠가는 필요한 사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나에게 필요하기도 헀고 말이다.
    OJT 기간 중 매일 저녁은 거의 현지어 일기를 쓰고, 발표준비를 하는 데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우즈벡어로 글을 쓰는 것이 능숙치가 않아서 굉장히 짧은 문장이라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물론 문법이 맞은지, 틀린지는 절대 장담할 수 없었다. 그저 한우사전을 펼쳐서 갖가지 단어들을 조합하는 데 불과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것이다. 발표준비는 타쉬켄트인지라 수도에 대해 발표할 것은 그리 많지 않았고, 홈스테이-기관-현장사업 계획에 대해 주로 준비했다. 현장사업이 나 혼자 하고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무소측에 미리 어필을 해 둘 필요가 있겠다 싶어서 였다.

    OJT 기간, 1주일. 다들 같이만 있다가 따로 떨어져서 지내서 그런지 때로 시간이 참 안간다 싶긴 했는데, 이것저것 활동하고 준비하려다 보니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기도 했다. 종종 동기들에게 연락하곤 할 때 다들 재밌는 것도 많고, 새로운 것도 많지만 그래도 동기들 다시 한번 만날 날을 고대하고 있다는 말부터 나왔다. 겨우 한달반 같이 살아놓고, 겨우 일주일 떨어진 것 가지고 신파를 찍는구나 싶겠지만, 정말 모두의 마음이 그랬다. 그 짧은 기간 같이 살면서 정이 이토록 두텁게도 쌓였구나 싶었다. 다들 부임지로 뻗어 나갈때는 아쉬워서 어쩌나 하는 걱정마저 다들 했을 것이다.

  • [현지합숙] 필드트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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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부터 거창한 필드트립. 내 예상으로는 사마르칸트라는 곳 근처의 사막에를 가서 야영을 하고, 밥도 지어먹고 누군가는 힘들어서 탈진도 하고 그래도 서로 격려를 하고 부축이면서 여행하는 뭐랄까 박카스 국토대장정 비스무레한 것을 예상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번번이 예상은 빗겨나고 말았지.

    어쨌든 필드트립. 떠나봐야 안다는 필드트립이다!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거리상 그리고 여건상 꼭 사마르칸트는 들르게 되있는 것 같다. 우리의 전 기수에서는 부하라도 함께 여행일정에 있었다고 하지만 2박 3일의 일정에서 부하라까지 소화하기는 무리가 아닐까 싶다. 왜냐면 부하라까지는 거리가 너무 멀어서 우선 가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기차를 타게 되면 타쉬켄트에서 부하라까지 최소7시간은 예상해야 한다) 그리고 2박 3일의 일정으로 소화할 수 있는 사마르칸트와 부하라가 아닌 듯 싶다. 우리는 오직 사마르칸트만 갔는데도 일정이 꽤 빡빡했기 때문.

    어쨌든 사마르칸트로 필드트립 !

    기차를 탔다. 다들 들 뜬 마음으로 탑승했고 타쉬켄트를 벗어나면서까지 다들 가슴 속 조금의 설레임은 남아있었다.하지만 가도가도 변함없는 풍경. 그리 빠르지 않은 기차. 불편한 좌석 등이 그 설레임을 사르르 녹여버리고 대게 다들 잠에 들며 기차 여정 5시간을 버텼다지. 하지만 간간이 몇몇 단원들을 색다른 놀이(?)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는데 우리칸에 탔던 몇몇 일행은 심심하기도 하고, 창 밖 풍경에 감회가 새로워서 시 백일장 대회도 하고 그랬다. 장난 반으로 시작한 것이었는데 다들 멋진 시를 지어보여, 낭송까지 했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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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마르칸트에 도착하자 청명한 날씨가 먼저 우릴 반겼다. 새파란 하늘에 가느다란 구름자락이 옅게 쓸려있었다. 그 쓸린 구름자락 때문에 새파란 하늘이 더욱 돋보였다. 마치 한국의 가을하늘과 흡사했다. 4월 초라 이제 봄이겠구나,사마르칸트는 남쪽 도시니까 좀 더 덥겠지 하고 옷을 가볍게들 챙겨왔건만 시퍼런 가을하늘에 바람이 몹시도 쌀쌀했다. 열차에서 다들 기지개를 키면서 나오다가 금새 몸을 움추려야만 했다.

    역 전 앞에 대절한 시내버스가 있었는데 행선지 표지판만 이제 막 내린 거지 싶을 정도로 여타 다른 시내버스와 완전히 똑같이 생겼다. 우리 때문에 사마르칸트 대중교통에 차질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농담과 함께 차는 출발했다.

    슈퍼솜사라고 불리우는 것을 먹으로 가는 길에 거의 사마르칸트를 관통하다 시피 했는데 다들 탄성을 감추질 못했다.사마르칸트는 타쉬켄트와는 달랐다. 달라도 너무 달랐다. 타쉬켄트는 대도시지만 낡은 도시이기도 하다. 도심지 일부 부유한 동네가 아니라면 대부분 언제 지어진지 모를 회색빛 낡은 아파트 그리고 구형과 신형간판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상점들로 가득한 곳이었다. 낡았지만 역사적인 도시는 또 아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간다는 공원에를 가도 유서깊은 것을 발견할 순 없고, 20-30년 전에 세운듯한 동상이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사마르칸트는 완전히 달랐다. 도로는 깨끗했고, 깔끔하게 글씨를 써 놓은 상점들이 모두 가지런히 앉아있었다, 촘촘히 가로등이 있는 인도 그리고 도심 곳곳에 보란 듯이 서 있는 유적지들. 게다가 날씨까지 청명한 날 아니던가! 도시 전체가 하나의 공원같았다. 우즈벡 그 어디서도 못 보던 풍경이었으니 다들 놀랄 수밖에. 순간 사마르칸트로 파견 예정인 백성현 단원에게 다들 눈이 갔다. 특히 내 눈빛이야말로 오묘하게 부러움 + 질투심 + (그래도 질 수 없다는 약간의 자존감) 으로 불타올랐다. 왜냐하면 원래 내가 사마르칸트를 지망했고 백성현 단원이 타쉬켄트를 지망했었기 때문이다.사무소 측 판단으로 둘의 임지 배정지가 바뀌었는데 이유인즉슨 사마르칸트 IT 대학교가 신규 파견지역이기도 하고IT 전문 교육기관이기 때문에 하드웨어에 좀 더 능숙한 백성현 단원이 어울릴 것으로 판단했다고 한다. 뭐 나도 별다른 불평은 없었다. 사마르칸트의 예쁜 거리를 보기 전까지는… (이건 단순히 필드트립때의 감상이고, 지금은 현 기관 및 내가 사는 도시 타쉬켄트에 대단히 만족하고 있다)

    식당에 들어섰다. 조금 당황스러웠던 것은 들어서자 마자 식당의 모든 손님들의 시선. 상대적으로 수도 타쉬켄트에 비해 외국인이 적은 지방이기 때문에 다들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보내주셨다. 우리는 조금 떨어진 곳에 몰려 앉아 굶주린 배를 슈퍼솜사로 채우기 시작했다. 슈퍼솜사는 정말 생각보다 커서 보통 솜사처럼 한 손에 들고 쥐어 물으 뜯을 정도가 아니었다. 나이프와 포크를 이용해서 정밀하게 서로 분배하면서 맛을 보았다. 그리고 그렇게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우리들의 본격 탐방 일정들이 시작됐다.

    * 울르그벡 천문대, 샤흐리잡스, 레기스탄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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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는 정말 진기하다고 생각했는데 세심하게 보지 않으면 건물들이 다들 비슷하게 생겼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앞에 대형 문(?)이 있고 그 안에 들어가면 약간의 상인이 있기도 하나 대부분은 큰 광장이 놓여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가끼이서들 보면 유적지들에서 세월의 흔적이 그리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번지르르 하다. 아마도 개보수를 한 것으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바로 옆 유적지들도 모두 개보수를 하려는지 철골을 쌓아놓고 있었기 때문. 우즈벡 유적 건물의 특징은 뭐랄까, 우선 웅장하다. 웅장하게 커다란 건물을 지어놓고 그 외벽에 세심하게 코란 글귀와 그림을 그려놓았다. 아주 예전에는 이 곳이 학교이기도 하고, 사원이기도 했다고 하나 현재는 대부분 관광구역으로 기능하는 듯 싶었다.

    나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홀로 사진을 찍으면서 돌아다니기도 했는데 갑자기 저기서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것이다. 보니깐 경찰이었다. 무슨 일일까 했지만, 그리 위협적인 모양새는 아니어서 다가갔더니 이래저래 막 말을 하는데…대충 알아듣기로는 원래 이 미노르 탑 위에 올라가는 것이 금지돼있는데, 미노르 탑 위에 올라가게 해주겠다. 5,000숨만 달라하는 그런 얘기였다. 그렇게 해도 되나 싶었지만, 탑 위에 올라가서 보고 싶기도 해서 알겠다고 하고 올라갔다.내부는 개보수 중인지, 아니면 하다가 포기했던지 온갖 공사 기자재가 너저분하게 널려있었다. 요리조리 해서 어디론가로 갔더니 계단이 나왔다. 경찰들은 내게 여기로 올라가면 된다고 했다. 약 10분간 숨을 헐떡거리면서 올라갔다. 올라가서 보니 주변 유적지가 다 보였다. 그런데 맨 위에 안전장치가 별로 없어서 여유있게 감상하지는 못하고 고개를 쏙 내밀어서 한바퀴 휘둘러보고, 카메라로 사진을 조금 찍고 내려온 게 다였다. 그래도 5,000숨에 좋은 구경 잘했다 싶었다. 내려가니 경찰이 다른 친구들에게도 얘기를 해서 더 데려오라고 한다. 알았다고 하고 돌아섰는데, 정말 다른 단원들도 올라가고 싶다 하여 나름 마케팅까지 해준 셈이었다.

    * 종이공방, 논 만들기 그리고 와인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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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이 체험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그냥 종이가 풀어진 물에다가 판 같은 것을 건졌다 올리고, 내려놓으면 끝나는 것이었다. 물론 우리가 체험하지 못한 것들에 더 힘든 노동의 과정이 숨겨져 있었겠지만… 그래도 종이공방이 꽤 좋았던 것은 종이공방이 위치했던 곳의 한적한 풍경이 매우 좋았기 때문이었다. 마당에는 거위, 오리, 닭 같은 것들이 총총걸음으로 산책을 다니고 있고 한 쪽에는 물이 흐르고 물레방아 비스무레한 게 계속 물을 퍼 올리기도 한다. 아주머니들은 수다를 떨며 전통 종이로 수공예품을 만들고 계시고 한 것들, 등등. 종이를 말리는 시간 동안 우리들은 종이로 만든 수공예품을 신기하게 구경도 하고, 해지는 풍경 속을 산책했다. 소박한 즐거움이 여기저기 숨겨져 있던 곳이었다.

    논 만들기는 우즈벡의 전통 주식인 논. 러시아어를 리뾰쉬까를 만드는 집에 찾아간 것이었다. 본래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그런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조금 무심하게 우릴 맞아주긴 했지만 논 만드는 화로를 직접 구경하고, 우리가 만든 논을 직접 가져갈 수도 있어서 한번쯤 해볼만한 경험이었다.

    사마르칸트 쪽에 포도가 좋아서 와인이 유명하다고 하다. 우리도 공짜 와인을 실컷 먹겠구나, 다큐멘터리에서 보듯 생포도를 발로 직접 밟는 것도 복, 수많은 오크통 사이사이를 걸을 수 있겠구나 했지만 결론적으로 그런 것은 보지를 못했다. 공장 옆에 박물관 같은 게 하나 있는데 거기서 해당 회사에서 제조한 와인 자랑을 실컷 듣고, 시음해보고 살 사람들은 사보는 일정이었다. 개인적으로 웬만하면 사려고 했지만, 와인들이 너무너무 달아서 내 입에 맞는게 별로 없었다. 후에는 이게 마케팅 전술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거둘 수 없었던 와인공장.

    * 레기스탄 광장

     밤의 레기스탄 광장은 우즈벡에 이런 곳이 있었어? 라는 놀라움을 아니 갖을 수 없다. 반듯하게 잘 닦인 도로에는 휴지 한 조각도 없고 그 넓은 대로 양 쪽에는 촘촘하게 가로등이 불 밝히고 있다. 하지만 넓은 크기에 비해 산책하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아, 우리가 걸을 당시에는 거의 한 명도 없었다. 아무도 없는 밤의 광장에 가로등들이 그리 환하게도 켜져 있으니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도시를 걷는 듯한 이질감을 느끼게도 한다. 사마르칸트의 외양을 보면 깨끗하게 잘 가꾸어진 공원같아서 살기 좋은 것 같다 싶지만 어찌보면 너무 깨끗해서 정내미가 없기도 한 것 같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것들을 찾기가 어렵고, 인간미의 냄새를 맡기가 어렵다. 보란 듯이 가꾸어진 도시의 인도를, 단지 보면서 걸을 뿐. 그것이 사마르칸트의 득이자 실이기도 한 것 같다.

    * 샤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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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흐진다는 묘한 구석이 있다. 우즈벡은 아주 유명한 사람이거나 현자의 묘가 있으면 그 주의에 보통 다른 사람들의 묘들이 옹기종기 모이기 시작할 것이다. 이유는 그래야 복을 많이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 샤흐진다도 묘인지라 여타 다른 관광지역과는 다른 구석이 있다. 다른 관광지가 거대한 문을 시작으로 하여 관광물품 상인들의 등장 그리고 텅 빈 광장이 생뚱맞게 있었다면 샤흐진다는 단지 고즈넉하다. 웅장하게 세운 건물도 별로 없고 묘를 중심으로 하여 아기자기한 건물들을 몇 개 지어놨고, 걷다보면 기도실 같은 것도 나오고 또 더 걷다보면 일반인(?)들의 공동묘지에 도달할 수 있다. 묘터이어서 그런지 상인들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우리 일행도 삼삼오오 천천히 둘러보았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공동묘지. 우즈벡은 묘비에 고인의 사진을 새겨둔다. 그 사진들은 흑백이지만 너무 디테일하게 새겨져 있어 그들의 눈빛이 꼭 먼 하늘을 응시하는 것만 같았다.

    내게 사마르칸트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장소 혹은 다른 이에게 추천할만한 장소를 이야기하라면 샤흐진다를 이야기하겠다. 그 곳은 많은 이들의 삶이 응어리져 있기 때문에, 가장 사마르칸트답지 않은 곳이기 때문이다.

  • [2011.11.28.] 컴퓨터를 샀다

    내가 여기 온 지 한달 후부터 기획하기 시작했던 현장사업!

    현장사업이라 하면

    약 1만달러부터 3만달러 정도의 금액으로 현지 그리고 기관에 도움이 될 만한

    시설 투자 및 제작을 하는 사업이다.

    우즈벡 코이카 파견 단원들은 대부분이 학교에 파견되기 때문에

    전용 교실 마련을 목적으로 현장사업을 많이들 하는 편이다.

    한 번 현장사업을 한 교실은 약 5년-10년 정도는 현장사업을 하지 못하기도 한다.

    자본의 공평한 분배(?)라 할까. ㅋㅋ

    아무튼

    파견되기 전부터 현장사업은 한번쯤 해보고 싶었다.

    단원파견 기간 중 한번밖에 없는 기회라는데

    한번 해보고 싶었고, 뭔가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얻을 것도 꽤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파견되어 보니깐

    정말 현장사업이 필요한 곳이었던 것이다.

    컴퓨터가 똥컴이었기 때문에 그래픽 수업 등에서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파견 후 6개월이 지나야만 현장사업을 진행할 자격이 생기는 것이어서

    거의 1년이 되가는 지금…. 내 현장사업이 거의 절정(?)에 달하고 있다.

    간단한 교실 공사가 끝났고

    컴퓨터 11대를 구입했다.

    컴퓨터실이니만큼 컴퓨터가 제일 중요한 물품이었다.

    그래서!

    당장 내일부터는 새 컴퓨터와 함께 수업을 할 수 있게됐다.

    맨날 자기 집에 있는 컴터에는 오피스 2010이 있어서 오피스 2003은 너무 어렵다던 학생들.

    작업하다가 멈춰버리는 컴퓨터들의 기억

    컴퓨터 대수가 부족해서 맨날 백팩에 노트북을 짊어지고 다녔던 그날들을

    이제 모두 웃음으로 넘겨버릴수 있는 것이다!!

    물론, 내 현장사업이 끝나려면 약 한달 가량이 더 남았다.

    캠코더, 에어콘, 프린터, 사무용품 등등의 것들을

    사야만 한다.

    그래도, 벌써 감개무량하고 쵸큼 뿌듯하다.

    이제 여기가 내 교실 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깐

    이제부터

    내일

    수업준비 해야지?! ㅠㅠㅠㅠ

  • [2011.11.21.] 인터미션

    딱히 무엇을 써야겠다는 생각없이 또 이 곳을 찾았다.

    그냥 현황 정도 쓰려나 싶다.

    왜냐면 내일까지 Informatika 학부의 홍보영상물을 만들어 가야하는데

    벌써 새벽 한시가 다가오고 있다.

    초저녁 잠결을 깬다고 조금 딴 짓 한 것들을 1막으로 치고

    이 일기를 인터미션으로 치고

    2막에는 얼른 해야 할 것들을 마무리를 하고 오늘 잠에 드려는 계획.

    잘 지켜질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기록물로서 일기에 충실하여

    최근에 있었던 일은… ?

    다양한 카테고리의 일이 엮여 있었다.

    사무소에서 자꾸 이것저것 부탁을 하여

    영상파일 몇 개 만들어주고, 편집을 좀 하고 하는 것들이 있었고

    현장사업 물품 구매를 위해

    관계자와 전자상가를 왔다갔다 한 것들이 좀 있었고

    DVD 제작 완료를 위해

    역시 관계자와 이것저것 왔다갔다 했던 것.

    짬짬이 기회가 다는 데로 문화생활을 해야한다고

    재즈공연도 보고, 미술관도 가고, 파이프 오르간 연주하는 데도 갔다오고 했던 것.

    수업은 여전히 널럴하게 해주었고

    여기저기 사람들 조금 만난 것 등등.

    그 중에 제일 좋았던(?) 것은

    자이카와의 교류, 블로그 글 쓰기, 그리고 책 한권과 다큐 한편 이었다.

    자이카는 외교대 자이카 단원을 통해 만남을 트게 되었는데

    뭐랄까.

    우리와는 정말 다른 생활양식을 가진 사람이기에

    뭔가 신선했다.

    신선하면서도 우즈벡에 활동하는 외국인으로서의 동료의식이랄까, 이런 게 형성되기도 했다.

    친절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고

    암튼 꾸준한 만남을 기대하고 있다.

    블로그 글 쓰기는 뭐냐 하면

    홈페이지와 블로그가 맛탱이가 간데에도 불구하고

    블로그 글들을 갑자기 올려버린 이유는

    겨울이 다가오고, 눈이와버리니깐

    벌써 1년 이구나 섬뜩해졌기 때문.

    벌써 1년인데! 나는 약속했던 활동수기에서 아직 현지합숙훈련도 못 끝냈다니 하는 위기의식 때문에

    성급히, 억지로라도 써버렸다.

    그래도 쓰면서 옛날 생각도 좀 나고

    지금 현재도 다시금 곰씹어보기도 하고 그래서 나름 좋은 계기가 되는 것 같다.

    어서 더 분발해서 빨리 현재까지 쓸 수 있도록! 해야지.

    한 권의 책과 한 편의 다큐는 뭐냐하면

    여기와서 내가 문학을 거의 손에 대지도 않았다.

    영화도 억지로 보지 않으려 했다.

    왜냐하면, 아직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시간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

    우선 적응기라치면, 그런 안락한(?) 것들보다는

    더 집중적으로 시간을 투자해야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생각은 완전히 틀린 것이란 생각이 든다.

    현지합숙훈련 때는 맞는 얘기일 수 있겠지만

    한참이나… 내 생활패턴으로 돌아왔는데

    그 정도 짤막한 교양시간 마저 갖지 않았다니!!!

    이건 내 게으름의 탓이다, 싶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면서도

    얼마든지 시간관리만 철저히 하면… 다른 것들도 함께 해낼 수 있건만!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암튼 잠도 안오고 그래서 오랜만에 박완서의 책 한 권을 읽고 “반드시 크게 들을 것” 이란 다큐를 봤는데

    오랜만에 본 책은…. 내용이 그리 특별하지도 않았는데

    너무 재밌게 잘 봐버렸고

    “반드시 크게 들을 것” 도 또 다른 귀감이 되었다.

    암튼… 이게 내 요즘 생활 요약이었다.

    인터미션 끄읏-!

  • [현지훈련] 안전교육, 활동교육, 활동기관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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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전교육

    안전교육은 주로 코이카 자체에서 진행된 게 많았다. 소장님, 관리주임님, 사무소 현지직원분, 대사관 관계자분께서 진행하였다. 우즈벡이 여타 개발도상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치안이 안전하긴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조심해야 할 것도 상당히 많다. 거리에 경찰인력들이 많고, 우즈벡 사람들도 신고정신이 아주 투철하다고 하니 우리 자신이 법률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게 되면 바로 추방될 수 있다는 것. 우즈벡은 여타국과 달리 선교활동이 공식적으로 금지돼있다. 그렇기 때문에 선교는 무조건 금지 대상이며, 종교활동도 조심해야 한다. 그렇다고 교회, 성당도 못다니고 그런 것은 아니고, 식당같은 공공장소 등지에서 종교모임을 자주 갖거나 그래도 의심을 살 수 있다는 것 정도만 알아두면 좋다. 개인적으로 우즈벡에서 교회/성당을 다니는 것은 별 무리가 없다. 한인이 운영하는 교회/성당도 있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교민 및 단원들도 열심히 종교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안전과 건강문제에서 조심해야 할 것이 또 있는데 바로 “차조심” 이다. 신호등과 횡단보도가 있긴 있지만 시내 중심부가 아니면 지키지 않는 사례도 많고, 거의 차들이 차선이 없는 것처럼(차선이 없기도 하다) 질주를 하기 때문에 상당히 위험하다. 그리고 우즈벡 사람들의 특성인지는 몰라도 운전을 정말 재빠르게 하기도 하고, 사람이 앞을 지나가도 경적을 울릴뿐 서서 기다려주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차는 정말 조심조심 해야한다.

    * 활동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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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동교육은 분야 별 선배단원의 교육, 현장사업 교육 그리고 협력활동 교육 등이 있다. 선배단원들이 와서 해당 분야 및 활동을 어떻게 해왔다며 소개를 해주고 문답을 받는 형식으로 진행하곤 했다. 개인적으로 인상깊었던 것은 협력활동 교육. 페르가나-안디잔 등의 동부지역에서 학생들을 모아서 1박 2일 한국어 캠프를 여는 대규모 행사였다. 단원들끼리 힘을 합쳐서 그런 대규모 행사를 기획했다는 것도 놀라웠고 어느덧 연례행사로 자리잡았다는 이야기가 더 놀라웠다. 사실 이곳이 한국이었다면 그리 어렵지 않았을 테지만, 기반시설도 부족하고 자료 및 인력 모으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하면서 새삼 부럽기도 했다. 우와- 나도 저런 행사에 스탭으로 한 번 참여해봤으면 좋겠다, 하면서. (결론적으로 2회 행사때 영상 촬영일을 맡았다)

    컴퓨터 선배 단원의 교육 그리고 현장사업에 관련된 교육도 선례 및 실례들을 직접 보고 들을 수가 있어서 굉장한 귀감이 됐다.
    * 활동기관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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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동기관 방문이란 선배단원이 활동하고 있는 기관에 방문에 시설 및 현황을 확인하기도 하고 기회가 된다면 수업에도 참해보기도 하는 그런 시간이다. 우리 컴퓨터 단원은 경제대학교와 언어대학교 기관을 방문했다. 모두 현장사업이 매우 잘 돼 있는 기관들이어서 시설에 있어서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아쉽게도 수업을 참관하지는 못했지만 현 기관 사정에 대해서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한국어 단원들의 경우엔 수업을 참관하기도 했다고 했는데 참관한 수업들이 매우 인상적(?)이어서 활동에 불타는 투혼(?)을 얻어왔다고들 하는 후문이…

  • [현지훈련] 김병화 농장, 세종한글학교, 한국교육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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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병화 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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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장이다… 농장이라니깐… 어떤 농장일까, 포도농장? 왠지 포도농장이랑 잘 어울릴 것 같았다. 포도를 재배하다가 대성공을 해서, 창고 한 가득 오크통도 두고, 그걸로 와인도 만들고 와인 라벨에는 “김병화” 라는 글씨도 보기좋게 박아주고, 그러다 보니 명성이 날이 갈수록 늘어서 이렇게 우즈벡 오는 한국 사람들이 찾는 곳이 된 것은 아닐까. 그런데 그 ‘김병화’ 라는 사람은 지금 살아있는 것일까? 살아있어도 지금은 너무 높은 사람이 돼서 못 만나는 것은 아닐까. 뭐 이런 저런 잡생각이 스쳐가는 가운데 스타렉스는 점점 시골로 들어갔다.

    농장 사이로 난 오솔길을 걸으면서 수확물 등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것이란 기대와는 반대로 결론적으로 말하면 “김병화 박물관”을 한 바퀴 돌았을 뿐이었다. 박물관 관리인은 박물관을 평소에는 잠궈 두다가 예약을 하면 박물관 내부를 보여주고 설명을 해 주는 형태로 운영을 하는 듯했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 주변에는 집 몇채만 있는 시골이었다. 고려인 아주머니께서 직접 설명을 해 주셨는데, 특유의 고려인 억양과 단어가 있긴 했지만 매우 유창하신 편이어서 이해하는 데는 별 무리가 없었다. 설명으로 들었던 김병화 씨란 그러니까 소련 시대에 이 곳에서 농장경영을 너무 잘 하셔가지고 무공 훈장을 몇 번이나 받았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딴 농장으로 부를 수 있는 것이었고, 그 후로 몇 대나 더 이어서 농장경영을 잘 했던 농장주들이 이어져 왔다고 한다.
    그런데 몇 년도에 무엇무엇이 있고 등에 관해서는 그리 큰 집중이 안돼었던 게 사실. 너무 기대가 컸던 것도 있었나보다. 나는 농장을 보고 싶었는데, 말이다. 그래도 좋았던 것은 농장 근처의 풍경들이었다. 완전 시골 풍경이었는데 도로를 거니는 당나귀와 염소가 유독 많았고 아이들이 한가롭게 자기들끼리 놀고 있었다. 몇 마디 말이라도 걸라치면 눈을 똥글똥글하게 뜨고 배시시 웃으면서 즐거워하고, 카메라라도 늘이댈라 치면 또 난리법석이다. 자기를 찍어 달라고, 자기를 찍어 달라고들 말이다. (사실, 이것도 우즈벡에서 카메라 좋아하는 사람들의 서막에 불과하다할까. 정말 사진찍는 걸 좋아하는 우즈벡 사람들!)
    이런 시골에 “김병화 박물관” 이란 한글로 된 박물관이 있다는 것도 나름 신기하기도 했고, 주변 아이들과 즐겁게 사진도 찍어오고 한 산뜻한 산책같은 시간이었다.

    * 세종한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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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즈벡 타쉬켄트에는 각 대학교 한국어 학과나 코이카 단원들이 주최하는 방과 후 수업 외에도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기관들이 2개나 있다. 그만큼 우즈벡에 한국어 수요가 많다는 이야기. 그 중 하나는 세종한글학교로 지금 교장님께서 지금까지 꾸준히 한국어 교육을 해오시는 곳이고, 하나는 한국의 교육과학기술부의 자금 지원으로 운영되고 있는 한국교육원이다. 우리도 유관기관 방문 일정으로 하여 두 기관을 모두 방문해 볼 수 있었다.

    먼저 가나다 순으로 해서 세종한글학교.
    세종한글학교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다. 가스삐탈리 시장의 한국마가진 거리에서 세차장처럼 생긴 곳이 한 곳 있는데, 그 곳에서 조금 들어가 “오아시스” 식당을 지나면 바로 있던 것.
    대문을 열면 먼저 너른 마당이 먼저 반겼다. 나지막하면서도 깨끗한 건물들이 잘 가꾸어진 모습으로 있었다. 3-4개의 교실을 구경할 수 있었는데 교구 자재도 모두 깨끗하고, 벽면에는 아기자기 하게 한국 지도나 한국 사진 등이 붙어있는 왠지 모를 아늑한 느낌. 세종한글학교를 세우기부터 지금에까지 이르는 교장 선생님의 여러 일화를 들으니 느낌이 또 사뭇 달랐다. 아무것도 없는 빈 터부터 시작해서 현재 증축에 이르기까지 학교에 대해, 그리고 교육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가지신 것 같았다. 일면 한국어 단원들의 얼굴에 약간의 결의(?)가 스쳐 지나간 것도? 아,,, 아닌가? 나 한국어 단원 아니라고 막 지껄임? ㅋㅋㅋ

    *한국교육원

     한국교육원은 교과부의 지원을 받는 곳이어서 그런지 규모부터가 달랐다. 널따란 정문, 그리고 대략 4-5층 되는 건물. 우즈벡의 학교들이 다들 그리 크지 않은 것을 고려하면 조금 과장해서 거의 일반 고등학교 정도의 크기를 지녔다. 시설도 좋은 편이어서 한국어 교실은 물론 도서관, 박물관, 강당까지 갖추고 있었다. 한국교육원은 코이카 한국어 단원이 파견되는 곳이기도 했다. 거기서 여러 행정처리 및 한국어 수업을 담당한다고 들었다. 한국교육원은 시설도 시설이지만, 우즈벡 학생들에게 있어서 제일 장점은 한국어 수업 수강료가 무료라는 것.

    사실, 우리는 현지합숙훈련 일정 중에 견학만 간 것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운영이나 그 내부 사정은 모를 수밖에 없다. 위의 일정들은 우즈베키스탄 타쉬켄트에 이런 유관기관들이 있으니 이번 기회에 서로 얼굴을 트고 향 후 활동하는 데 있어서 관심이 있으면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도 있는 그런 기회제공의 차원이랄까. 사실, 우즈벡에는 유학생 및 사업가가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은 편이어서, 지나가다 한국 사람을 만나도 그냥 본 둥, 마는 둥 할 수밖에 없다. 거기에 사실 고려인들도 꽤 있어서 정말 한국 사람인지 구별하기 쉬운 것도 아니고. 암튼 일부로 찾아가기는 힘든 곳인데, 현지합숙훈련 일정 중에 있어서 인사 한 번은 잘 한 것 같았다.

  • [현지합숙] 소풍, 볼링장, 우즈벡 전통 민속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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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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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 전 기수까지는 침간산을 많이들 갔다고 했는데 우리 기수는 특별히(?) 훔손산이라는 곳으로 향했다. 이제 날씨도 서서히 풀려갈 즈음이어서 그랬는지 계곡과 산이 어우러진 곳이라 했다. 나름 소풍이라고 다들 들 뜬 마음에 차에 탔다. 선배단원들이 우리를 위해서 도시락도 싸 오셨더라. 감개무량한 마음으로 차 안에서 다 먹어 주시고, 출발!
    완전히 도시 외곽이었다. 관리주임님 말로는 저 산 한 두 개만 넘어가면 카자흐스탄이란다. 그래도 기대에 못 미쳤던 것은 산들이 전부 민둥산이었다. 모조리 붉은색 흙 투성이에 정말 간간이 말라버린 나무들이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식사장소 옆에는 시냇물도 흐르고 나름 배산임수(?) 비스무레한 곳에 자리를 폈다. 삼겹살을 구워먹고, 컵라면도 끓여먹고 베드민턴도 좀 치고 무리들을 지어 이곳 저곳으로 산책을 다니기도 했다.
    어떻게 이렇게 민둥산일까 하면서 산 귀퉁이 여기저기를 다녀보기도 하고, 길 거리에 풀어져 있는 당나귀들이랑 사진도 찍고, 계곡에 다가가서 시원한 물소리 들어보기도 했다. 관광지 같은 분위기는 없고, 그냥 한적한 시골이었다. 그래서 좋았다면 좋았지만, 조금 더 그럴듯한 경치가 있었으면 좋으련만 하고 아쉬움이 남지 않는 건 아니었다.

    * 볼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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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ulduz Bowling

    우즈벡 타쉬켄트는 볼링장이 2개 정도 있다. 그리고 안디잔, 페르가나, 카르쉬 등등 각 도시별로 꼭 하나씩은 있는 걸로 보아 볼링이 그리 생소한 스포츠는 아닌 것 같다. 국내합숙훈련 일정 중에 볼링이 있긴 있었지만, 호기심을 못 참고 우리끼리 한 번 갔다온 적도 있었고 몇몇이 볼링대회에 출전한 적도 있었다. 아무튼 볼링. 그런데 유독 타쉬켄트에 있는 볼링장은 우리나라 볼링장과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마치 클럽 같은 분위기랄까. 조명을 시커멓게 해두고 레이저 광선을 쏴대고, 클럽 음악 같은 것을 시끄럽게 틀고, 사람들은 콜라 혹은 맥주와 함께 볼링을 즐긴다. 그리고 때로는 볼링장에 무희들이 나와서 춤을 추기도 하고, 약간의 퍼포먼스 공연을 하기도 한다.
    우즈벡의 볼링은 마치 스포츠이기보다 그냥 ‘레저’ 혹은 ‘놀이’에 가깝다는 인상이었다. 왜냐면 사람들이 볼을 너무 대충 굴린다. 우리나라 볼링장에서 꼭 한명씩은 있지 않는가. 손 교정기 같은 것을 끼우고 훅볼, 스핀볼을 마구 날리시면서 200에서 300점 사이 점수대를 내시는 분들. 우즈벡 볼링장에서 그런 분은 찾아보기가 힘들 것 같다. 우선 조명이 너무 어둡고 산만해서 핀과 바닥 안내선이 잘 보이지 않을때도 더러 있다.
    암튼 그 볼링장도 공동체 활동으로 잡혀 있었고 우리들도 다른 라인도 점수대가 좋지 않기 때문에 한국과는 달리(?) 자신감 넘치게 볼을 굴려 댔다지?

    * 우즈벡 전통 민속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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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몇 지방의 역동적인 춤을 제외하고 우즈벡 전통춤을 묘사하자면 섬세하고 양식적인 손 동작이 특징이다. 우리의 합숙 초기 3.8 여성의 날이라 하여 콘서트 공연장을 찾은 적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흥이 나서 일어서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어르신들이 흥이 나면 얼쑤, 얼쑤 어깨춤을 추거나 자동차 핸들을 돌려주시는 것과는 달리 여기 춤은 손목을 휘휘 돌리면서 앞뒤로 왔다갔다 하시는 것이다. 그 모습이 어찌보면 매우 격식있게 추는 것도 같고, 또 어찌보면 귀여워 보인다. 특히 손을 휘휘- 두르면서 짓는 해맑은 표정. 그것 때문에.
    아무튼 그 민속춤을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나는 개인적으로 그날 몸이 너무 안 좋아서(전날 과…욱!) 힘들긴 힘들었다. 스텝부터해서 그 섬세한 손동작 그리고 역동적인 안디잔 춤까지 정말 맛만 봤다고나 할까. 그런데 따라하려니깐 정말 생각보다 어려웠다. 그냥 휘휘 돌리는 줄만 알았던 손목은 나름 규칙이, 양식이 있는 것이었고 모든 모션들에 순서가 정해져 있었다. 배우다보니, 아니 춤을 대충 흥에 겨운대로 추면 되지 뭘 이렇게나 외울게 많아 하면서 조금 회의가 들 정도랄까?
    생각보다 너무 짧은 시간이 배정돼 있었고 배워와 할 것은 너무나도 많아서 기억력 나쁜 내 머릿속에 남은 건 별로 없다는 게 아쉽지만 시간이 조금 넉넉하였고, 그날 내 체력만 좀 좋았더라면 더욱 남은 게 많았을 만한 시간이었다.

  • [현지합숙] 아리랑요양원

    승합차는 타쉬켄트를 벗어난 지 30분 정도가 지나서야 마을길로 들어섰다. 마을입구 부근에는 당나귀들이 무심하게 풀을 뜯고 있고, 집 앞에 나온 몇몇 아이들은 우리 일행이 탄 차를 빤히 쳐다봤다. 번잡한 타쉬켄트와 달리 무척이나 아담한 마을이었다. 우리 몇몇은 우르겐치나 안디잔 같은 소도시의 도심이 이럴거라며 농을 건네기도 하고, 몇몇은 이런 아늑한 분위기만 됐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다들 합숙훈련 때문에 타쉬켄트에만 있다 보니 오랜만에 느껴보는 한산함이었다. 울퉁불퉁한 길을 꺾어 돌아서니 한글로 된 현판이 떡 하니 걸려 있는 현대식 건물이 나타났다. ‘아리랑 요양원’ 이런 시골에 갑자기 한글로 된 현판이 걸려 있는 게 조금 이질적이기도 했지만, 머리만 아픈 끼릴문자가 아닌 한글로 된 현판이라서 반갑기 그지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기다렸다는 듯 박수부터 치며 환영해주셨다. 정말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와 똑같아 보였지만 입에서 먼저 나오는 말씀은 러시아어. 그리고 드문드문 북한말과 흡사한 한국어가 나왔다. 신기하기부터 했다. 갑자기 ‘우리 할머니’가 그 어렵다던 러시아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내레 ~~하오’ 라고 하시니 그렇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여기 우즈벡에 오시게 됐느냐고 묻자 원래 블라디보스토크에 살았었다면서 이야기를 꺼내셨다.

    고려인 1세대. 연해주에 있다가 러시아에 의해 강제이주 당했다고만 들었는데, 왜 그렇게 한건지, 어떻게 한 지는 모르고 있었다. 할머니 말씀에 의하면 러일전쟁 당시 연해주에 있던 한국인들이 일본군에 가담할까봐 열차에 무작정 태워 보냈다고 한다. 그래서 그때 죽은 사람이 반, 산 사람이 반이라고 하셨다. 당시에 대해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 기억이 할머니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겨졌을지 몰라 입을 다물었다. 할머니는 내게 어깨 마사지를 부탁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도 우리 고려인들이 부지런해. 우리 손으로 땅 일구고 다 해서 먹고 살았오. 우즈벡 사람들도 선량해서 우리 고려 사람들 다 받아줬지오. 그리고 꽉꽉! 꽉꽉! 주물루소!” 호탕하신 할머니! 할머니와 한국 동요 등을 함께 부르고 나니 오전 시간이 금새 지나갔다.
    점심식사는 우리가 직접 준비한 것들이었다. 감자수제비, 호박전, 장조림 등 나름 할머니, 할아버지 분들이 드시기 편한 걸로 했는데 반응이 생각보다 좋았다. 다들 잘 먹었다며 거푸 인사를 하셨다. 사실 전 날 60인분의 음식준비를 미리 하느라 다들 새벽 늦게 자고, 손도 다치고 고생을 좀 했었는데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점심식사 후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노래와 춤 위주로 간단하게 레크리에이션을 진행했다. 생소한 노래를 불러드릴 때는 조금 서먹서먹 하신 것 같더니 갖은 노래와 춤을 다 동원하다보니 게임을 진행하지 않아도 할머니, 할어버지들이 알아서 나오셔서 팔다리를 흔드시곤 하셨다. 어느 곳이나 할머니 할아버지는 다 똑같은 것 같다. 뭔들 해도 귀엽게 봐주시고, 호탕하게 웃고 즐기시는 모습을 보니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또 고려인이든, 한국인이든, 우즈벡인이든 다들 함께하고자만 한다면 서로 소통하고, 함께 어울릴 수 있을 것이란 약간의 자신감도 생겼다. 오늘 처음 만난 할머니, 할아버지지만 서로 어울리려고 노력하니 금새 웃고 춤추게 되지 않는가. 사실 우즈벡과 우즈벡 사람들에 관한 여러 소문을 들어 오면서 과연 우즈벡 현지 사람들을 어떻게 지내야 좋을것인가 하는 고민이 있었다. 되레 안 좋은 일이라도 겪을까봐 걱정하면서 오히려 자신감만 잃기도 했다. 물론 안전에는 유의해야 하지만 걱정이 앞서면 내 진심이 전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잠시 잊었던 것 같다.

    신나게 웃고 즐기는 시간을 보내고 나자 어느덧 가야 할 시간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우리 볼에 뽀뽀를 해주시면서 “자주 자주 놀러오라우” 하고 호탕하게 웃으셨다. 그 호탕한 웃음 굳어지지 않게 앞으로 열심히 해야겠다. 그리고 기회가 닿는 데로 집에 전화도 드려야겠다.

  • [현지훈련] 현지어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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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기수 10명 중 러시아어를 배우는 단원은 2명이었고, 나머지 8명은 우즈벡어를 배웠다. 언어 배정은 보통 도시와 배정 기관의 특성에 따라 정해진다. 예로 타쉬켄트에 있는 니자미 사범대의 경우에는 고려인 학생이 많은 편이기 때문에 러시아어를 익혀야 하며, 거의 대부분의 지방이 우즈벡어를 쓰긴 하지만 페르가나의 일부 학교의 경우엔 러시아어로 교육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러시아어를 익혀야만 한다. 그리고 일부 지방의 경우에도 우즈벡어를 쓴다고는 쓰는데 지역 사투리가 너무 강하여 차라리 러시아어를 배우는 게 낫다고 하는 지역도 있다. 내 경우에는 한국에 있을 때 선임단원 선생님께서 어떤 언어를 배울지 의사를 물어보기도 했다. 이유는 이 전까지는 러시아어를 학습하였지만, 학생들이 주로 쓰는 생활 언어가 우즈벡어이기 때문에 변경을 고려하는 상황이었기 때문. 당시 고민이 많이 들긴 했었는데 선임 단원 분과 관리요원의 추천의견에 따라 우즈벡어로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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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즈벡어 수업중 연출사진

    현지합숙훈련 2달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현지어 교육. 우리 기수의 경우엔 세계경제외교대의 우즈벡어 및 러시아어 선생님과 학습했으며 오전에 3시간, 오후에 1시간 반해서 하루 4시간 반씩 진행했다 우즈벡어를 배우는 단원이 총 8명이라 두 반으로 분반했으며, 한 반에 두 명의 선생님이 담당했다. 보통 두 선생님이 수업을 번갈아 가면서 들어오곤 했으며, 작은 교실에서 선생님과 얼굴을 직접 맞대고 수업을 진행했다.

    우즈벡어는 러시아어처럼 문법이 복잡하지 않아, 강의식 수업을 들어야만 하는 경우가 별로 없었고, 새로운 문법/표현을 배우고 바로 말해보는 형식으로 진행되곤 했다. 우즈벡어가 한국어와 어순이 같고, 어휘량이 그리 많은 편이 아니라 조금 시간이 지나자 시장을 보거나, 택시를 잡거나 할 정도의 문장은 금새 구사할 수 있었다. 선생님 두 분은 약간의 영어를 구사할 수 있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오직 우즈벡어로만 수업을 진행했다.

    하스티몸 소풍 갔을 때
    하스티몸 소풍 갔을 때

    선생님 두 분이 모두 쾌활하신 분이라 매일매일 많은 시간 수업을 들어도 그리 지루하거나 힘들지 않았다. 우즈벡 전통음식 및 차를 매번 준비해주셔서 항시 포만감과 함께(?) 수업을 들을 수 있었으며, 종종 소풍을 함께 가기도 했다. 세계경제외교대에서 트람바이를 타고 바로 갈 수 있는 TTZ 시장에 가보기도 했고, 하스티몸이라 하는 이슬람 양식의 사원 비슷한 곳에 가보기도 했다.

    8주 과정이 모두 끝나고 바로 우즈벡어를 능숙능란하게 하게 된 것은 아니지만 생활에 꼭 필요한 어휘는 어느 정도 습득할 수 있었으며 이 후의 현지어 공부는 독학으로 진행해도 될 수준은 달성한 것 같다. 항시 우리에게 “Shation (악마)” 라고 하시던 두 멋진 선생님과의 마지막 수업 시간에는 작고 귀여운 선물도 준비했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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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지훈련] 타슈켄트 시내를 훑어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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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앞에 스타렉스와 관리주임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들 뜬 우리 일행은 스타렉스에 타자마자 서로를 그리고 창 밖 풍경을 찍어주곤 했다. 어제는 도착 직 후라 정신이 없었는데 오늘은 다들 타슈켄트의 모든 것을 보고, 기록해주겠다는 듯 카메라를 두 손안에 꼭 쥐고들 있었다.
    첫 일정은 그랜드 미르 호텔의 환전소. 당장 오늘 내일부터 장을 보고, 생활을 해내려면 현지 화폐 “숨” 이 필요했기 때문. 공식환율은 약 1,400숨. 우즈벡은 공식환율과 시장환율의 차이가 꽤 있어 이 때 시장환율은 아마도 2,200숨 정도 되지 않으려나 싶다. 온 지 하루밖에 안 된 우리가 위험(?)을 무릅쓰고 시장환전을 할 수도 없으니 다들 100달러, 200달러씩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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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전소가 위치한 그랜드 미르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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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지화폐 숨으로 환전한 모습

    우즈벡의 제일 높은 화폐단위가 1,000숨(우리돈으로 약 500원)짜리니 공식환율 1,400숨으로 하더라도 뭉칫돈이었다. 다들 한 장짜리 100달러를 내밀었을 뿐인데 뭉치가 돼서 돌아오니 뭔가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잠깐 위치를 확인할 겸 코이카 사무소와 유숙소를 들리고는 우리의 첫 현지식을 경험하는 기념비적 식당 “나비 하우스”에 갔다. 꽤 넓은 공간과 좌석을 갖고 있었는데도 사람들이 붐비는 것을 보니 꽤 유명한 장소인가보다, 했다.

    말로만 듣던 “리뾰쉬까”, “샤슬릭”, “솜사”, “라그몬” 등이 코스처럼 연달아 나왔다. 먹어본 것들 대부분이 다들 입맛에 맞고 괜찮았다. 그런데 다들 그리 많이는 못 먹었는데 이유인 즉슨 음식마다 기름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하하 그런데 이건 우즈벡 음식의 서막에 불과하다고나 할까. 우즈벡 음식 중 기름지지 않은 것은 찾기 힘들 정도다)

    식사 후에는 가스삐탈리 시장으로 향했다. 몇몇 우즈벡 영상에서 보았던 것처럼 대형 스타디움처럼 생긴 지붕 아래 각종 가판이 자리하고 있었다. 야외에 있는 것은 대부분 채소류였는데 아직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채소보다는 옷걸이, 바디샤워 등등의 생필품이었기 때문에 스타디움(?) 가장자리에 위치 한 상점에 가서 옷걸이 등을 간단하게 구입했다. 물론 아직 말이 하나도 안 통하는 우리들이었기 때문에 현지합숙훈련 코디를 맡은 오이벡군이 도와주어서 가능했던 일이었다.
    시장을 나서자 익숙한 한글로 된 간판들이 늘어서 있는 게 보였다. 일명 ‘한국마가진 거리’ 랄까. 들어가보니 라면, 고추장, 된장, 커피, 슬리퍼 등등의 물품들이 가지런히 정열되어 있었다. 온 지 얼마 안 되서 한국음식이나 물품 등이 그리운 지는 모르겠고, 있을 것은 다 있구나 기억만 해두고 지나쳤다.

    그리고 줌 백화점. 각종 물품이 종류별도 다 있었는데 오이벡군 말에 의하면 가격이 시장에 비해 비싸서 자신을 비롯한 현지 친구들은 잘 이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냥 현지에 어떤 제품들이 있는지 훑는 정도로 지나치는데 인상적인 것은 한국처럼 백화점이어서 고급 물품만 진열된 게 아니라, 플라스틱 세수대야 같은 것들도 굉장히 많았다는 것. 플라스틱 세수대야 옆에 고급 메이커 향수가 진열되어 있는 게 좀 이질적이다, 라고 생각되긴 했지만 어찌보면 필요 할만한 물품들이 차별없이(?) 놓여 있어 실용적이기도 한 것 같다.

    백화점 앞 나보이 극장에서 사진을 몇 장 찍고 조금 걸으니 바로 브로드웨이 거리가 나타났다. 듣던대로 리바이스, 베네통, 망고 등등의 의류브랜드가 있었고, 한국에서 보세의류를 수입해 온다는 옷 가게도 있었다. 벌써 해가 좀 떨어져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었고, 기온도 뚝 떨어져 있었다. 시간대가 조금 늦어서 그렇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브로드웨이 거리는 이름에 별로 맞지 않게 거리가 너무 한산했다. 각 옷가게에도 손님이 그리 많지 않아 보였다. 우리 일행도 춥기도 하고, 오늘 하루 너무 많은 곳을 다니기도 해서 옷가게마다 들어가지는 않고 산책하듯 지나쳐서 아무르 티무르 광장으로 향했다.

    솜사
    솜사
    샤슬릭
    샤슬릭

    조금 신기했던 것은 숨 백화점, 브로드웨이 거리, 아무르티무르 광장까지 전부 걸어서 10분 내외 거리에 있다는 것이었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걸 보니, 여기가 우즈벡 및 타쉬켄트의 제일 중심가인가 보다, 했다. 아무르 티무르 광장은 아무르 티무르 동상을 기준으로 둥그런 로터리를 형성하고 있었다. 한 쪽에는 조금 기이하다 싶은 “우즈베키스탄 호텔” 이 있었고 각종 양식의 건물들이 옹기종기 둘러싸고 있는 형태였다. 우리나라로 치면 종로의 이순신 동상 정도의 위치를 점유하고 있나 보다 하고는, 역시나 단체사진을 몇 장 찍었다.

    각 장소에 대한 감상들을 다 쓰기에는 너무 많은 곳을 둘러봤던 하루였고, 각 장소에서 머물렀던 시간도 길지 않았다. 그야말로 뭐가 어디에 있고, 어디에 있는지 알기 위해 훑어보는 하루라고나 할까. 그냥 전체적인 인상이라 하면, 길이든 건물이든 시장 돔이든 간에 다들 건물들이 좀 크고 웅장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그 건물들이 다들 꽉꽉 들어차있지가 않고 널럴하게 배치되어 있어서 그런 느낌이 더욱 강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