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홍상수] 스크린 밖으로 스르륵 나온 그들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갖고 있는 다양한 결들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먼저 영화 속에 등장하는 배우들의 연기에 반해버린다. 이것은 대단히 특이한 메쏘드 연기라고 생각한다. 보통 여타 영화의 경우, 그 연기자임을 잊어버리고 극 중 배역이 되어버린 배우를 바라보게 되는데 홍상수 감독 영화의 경우 배역의 이름은 곧잘 잊어버린다. 그보다도 배우의 본명 그대로 나는 그들을 걱정하고 있다. 어? 김민희씨 정재영씨가 실제로 서로 좋아하게 돼버린 것 같은데 어떡하지?! 하는 주책스러운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홍상수 감독이 구축해놓은 영화세계로 빨려 들어갔다.

 
홍상수 감독은 그 특유의 예민한 감각으로 배우와 장소의 씨실, 날실을 뽑아내고 그것들로 그만의 영화세계를 직조해간다. 그 영화세계에는 이러면 어떨까? 라는 그만의 다양한 형식적 실험이 가미되어 있는데 그 상상과 실험으로 벌어져 있는 간극이 관객이 들어갈 수 있는 틈새이다. “지금은 맞고…” 에서는 그것이 같은 장소, 상황에 놓인 주인공의 태도의 변화였다. 그 변화는 이전을 떠올리게 하고 중첩되면서 대조하게도 하지만 헷갈리게도 한다. 마치 내가 실제와 영화의 경계를 헷갈렸던 것처럼. 내 개인적으로는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라는 도발적인 선언을 수행하고 있는 선두주자가 홍상수 감독이 아닌가 싶다.

 
홍상수 감독의 여러 영화 중 이 영화를 꼽았던 것은 2부 결말에서 주인공들의 감정이 내게 오롯이 닿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맞고…” 1부를 보면서는 어?! 저 배우들이 진짜로 좋아하게 된 것 같은데?! 라고 걱정했다면, 2부를 보면서는 저 배우들이 지금 1부를 완전히 없다고 생각하는게 과연 진짤까? 그들은 2부의 초면인 상황을 그냥 그런 척하고 있는 건 아닐까? 라고 의심하고 있었다. 1부에서 일정의 감정이 쌓였고, 그것은 2부에서 완전히 초기화된 게 아니라 점점 더 높아지기 시작했으며, 눈 내리는 재회에서, 극장 대화에서 절정을 이뤘다. 애틋하고 애잔함이 그토록 강렬했던 것은 나도 모르게 그들을 영화 밖으로 꺼내버렸거나, 나를 둘러싼 세상이 이미 영화가 돼버렸기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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