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합숙] 필드트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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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부터 거창한 필드트립. 내 예상으로는 사마르칸트라는 곳 근처의 사막에를 가서 야영을 하고, 밥도 지어먹고 누군가는 힘들어서 탈진도 하고 그래도 서로 격려를 하고 부축이면서 여행하는 뭐랄까 박카스 국토대장정 비스무레한 것을 예상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번번이 예상은 빗겨나고 말았지.

어쨌든 필드트립. 떠나봐야 안다는 필드트립이다!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거리상 그리고 여건상 꼭 사마르칸트는 들르게 되있는 것 같다. 우리의 전 기수에서는 부하라도 함께 여행일정에 있었다고 하지만 2박 3일의 일정에서 부하라까지 소화하기는 무리가 아닐까 싶다. 왜냐면 부하라까지는 거리가 너무 멀어서 우선 가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기차를 타게 되면 타쉬켄트에서 부하라까지 최소7시간은 예상해야 한다) 그리고 2박 3일의 일정으로 소화할 수 있는 사마르칸트와 부하라가 아닌 듯 싶다. 우리는 오직 사마르칸트만 갔는데도 일정이 꽤 빡빡했기 때문.

어쨌든 사마르칸트로 필드트립 !

기차를 탔다. 다들 들 뜬 마음으로 탑승했고 타쉬켄트를 벗어나면서까지 다들 가슴 속 조금의 설레임은 남아있었다.하지만 가도가도 변함없는 풍경. 그리 빠르지 않은 기차. 불편한 좌석 등이 그 설레임을 사르르 녹여버리고 대게 다들 잠에 들며 기차 여정 5시간을 버텼다지. 하지만 간간이 몇몇 단원들을 색다른 놀이(?)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는데 우리칸에 탔던 몇몇 일행은 심심하기도 하고, 창 밖 풍경에 감회가 새로워서 시 백일장 대회도 하고 그랬다. 장난 반으로 시작한 것이었는데 다들 멋진 시를 지어보여, 낭송까지 했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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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르칸트에 도착하자 청명한 날씨가 먼저 우릴 반겼다. 새파란 하늘에 가느다란 구름자락이 옅게 쓸려있었다. 그 쓸린 구름자락 때문에 새파란 하늘이 더욱 돋보였다. 마치 한국의 가을하늘과 흡사했다. 4월 초라 이제 봄이겠구나,사마르칸트는 남쪽 도시니까 좀 더 덥겠지 하고 옷을 가볍게들 챙겨왔건만 시퍼런 가을하늘에 바람이 몹시도 쌀쌀했다. 열차에서 다들 기지개를 키면서 나오다가 금새 몸을 움추려야만 했다.

역 전 앞에 대절한 시내버스가 있었는데 행선지 표지판만 이제 막 내린 거지 싶을 정도로 여타 다른 시내버스와 완전히 똑같이 생겼다. 우리 때문에 사마르칸트 대중교통에 차질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농담과 함께 차는 출발했다.

슈퍼솜사라고 불리우는 것을 먹으로 가는 길에 거의 사마르칸트를 관통하다 시피 했는데 다들 탄성을 감추질 못했다.사마르칸트는 타쉬켄트와는 달랐다. 달라도 너무 달랐다. 타쉬켄트는 대도시지만 낡은 도시이기도 하다. 도심지 일부 부유한 동네가 아니라면 대부분 언제 지어진지 모를 회색빛 낡은 아파트 그리고 구형과 신형간판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상점들로 가득한 곳이었다. 낡았지만 역사적인 도시는 또 아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간다는 공원에를 가도 유서깊은 것을 발견할 순 없고, 20-30년 전에 세운듯한 동상이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사마르칸트는 완전히 달랐다. 도로는 깨끗했고, 깔끔하게 글씨를 써 놓은 상점들이 모두 가지런히 앉아있었다, 촘촘히 가로등이 있는 인도 그리고 도심 곳곳에 보란 듯이 서 있는 유적지들. 게다가 날씨까지 청명한 날 아니던가! 도시 전체가 하나의 공원같았다. 우즈벡 그 어디서도 못 보던 풍경이었으니 다들 놀랄 수밖에. 순간 사마르칸트로 파견 예정인 백성현 단원에게 다들 눈이 갔다. 특히 내 눈빛이야말로 오묘하게 부러움 + 질투심 + (그래도 질 수 없다는 약간의 자존감) 으로 불타올랐다. 왜냐하면 원래 내가 사마르칸트를 지망했고 백성현 단원이 타쉬켄트를 지망했었기 때문이다.사무소 측 판단으로 둘의 임지 배정지가 바뀌었는데 이유인즉슨 사마르칸트 IT 대학교가 신규 파견지역이기도 하고IT 전문 교육기관이기 때문에 하드웨어에 좀 더 능숙한 백성현 단원이 어울릴 것으로 판단했다고 한다. 뭐 나도 별다른 불평은 없었다. 사마르칸트의 예쁜 거리를 보기 전까지는… (이건 단순히 필드트립때의 감상이고, 지금은 현 기관 및 내가 사는 도시 타쉬켄트에 대단히 만족하고 있다)

식당에 들어섰다. 조금 당황스러웠던 것은 들어서자 마자 식당의 모든 손님들의 시선. 상대적으로 수도 타쉬켄트에 비해 외국인이 적은 지방이기 때문에 다들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보내주셨다. 우리는 조금 떨어진 곳에 몰려 앉아 굶주린 배를 슈퍼솜사로 채우기 시작했다. 슈퍼솜사는 정말 생각보다 커서 보통 솜사처럼 한 손에 들고 쥐어 물으 뜯을 정도가 아니었다. 나이프와 포크를 이용해서 정밀하게 서로 분배하면서 맛을 보았다. 그리고 그렇게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우리들의 본격 탐방 일정들이 시작됐다.

* 울르그벡 천문대, 샤흐리잡스, 레기스탄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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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정말 진기하다고 생각했는데 세심하게 보지 않으면 건물들이 다들 비슷하게 생겼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앞에 대형 문(?)이 있고 그 안에 들어가면 약간의 상인이 있기도 하나 대부분은 큰 광장이 놓여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가끼이서들 보면 유적지들에서 세월의 흔적이 그리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번지르르 하다. 아마도 개보수를 한 것으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바로 옆 유적지들도 모두 개보수를 하려는지 철골을 쌓아놓고 있었기 때문. 우즈벡 유적 건물의 특징은 뭐랄까, 우선 웅장하다. 웅장하게 커다란 건물을 지어놓고 그 외벽에 세심하게 코란 글귀와 그림을 그려놓았다. 아주 예전에는 이 곳이 학교이기도 하고, 사원이기도 했다고 하나 현재는 대부분 관광구역으로 기능하는 듯 싶었다.

나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홀로 사진을 찍으면서 돌아다니기도 했는데 갑자기 저기서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것이다. 보니깐 경찰이었다. 무슨 일일까 했지만, 그리 위협적인 모양새는 아니어서 다가갔더니 이래저래 막 말을 하는데…대충 알아듣기로는 원래 이 미노르 탑 위에 올라가는 것이 금지돼있는데, 미노르 탑 위에 올라가게 해주겠다. 5,000숨만 달라하는 그런 얘기였다. 그렇게 해도 되나 싶었지만, 탑 위에 올라가서 보고 싶기도 해서 알겠다고 하고 올라갔다.내부는 개보수 중인지, 아니면 하다가 포기했던지 온갖 공사 기자재가 너저분하게 널려있었다. 요리조리 해서 어디론가로 갔더니 계단이 나왔다. 경찰들은 내게 여기로 올라가면 된다고 했다. 약 10분간 숨을 헐떡거리면서 올라갔다. 올라가서 보니 주변 유적지가 다 보였다. 그런데 맨 위에 안전장치가 별로 없어서 여유있게 감상하지는 못하고 고개를 쏙 내밀어서 한바퀴 휘둘러보고, 카메라로 사진을 조금 찍고 내려온 게 다였다. 그래도 5,000숨에 좋은 구경 잘했다 싶었다. 내려가니 경찰이 다른 친구들에게도 얘기를 해서 더 데려오라고 한다. 알았다고 하고 돌아섰는데, 정말 다른 단원들도 올라가고 싶다 하여 나름 마케팅까지 해준 셈이었다.

* 종이공방, 논 만들기 그리고 와인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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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체험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그냥 종이가 풀어진 물에다가 판 같은 것을 건졌다 올리고, 내려놓으면 끝나는 것이었다. 물론 우리가 체험하지 못한 것들에 더 힘든 노동의 과정이 숨겨져 있었겠지만… 그래도 종이공방이 꽤 좋았던 것은 종이공방이 위치했던 곳의 한적한 풍경이 매우 좋았기 때문이었다. 마당에는 거위, 오리, 닭 같은 것들이 총총걸음으로 산책을 다니고 있고 한 쪽에는 물이 흐르고 물레방아 비스무레한 게 계속 물을 퍼 올리기도 한다. 아주머니들은 수다를 떨며 전통 종이로 수공예품을 만들고 계시고 한 것들, 등등. 종이를 말리는 시간 동안 우리들은 종이로 만든 수공예품을 신기하게 구경도 하고, 해지는 풍경 속을 산책했다. 소박한 즐거움이 여기저기 숨겨져 있던 곳이었다.

논 만들기는 우즈벡의 전통 주식인 논. 러시아어를 리뾰쉬까를 만드는 집에 찾아간 것이었다. 본래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그런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조금 무심하게 우릴 맞아주긴 했지만 논 만드는 화로를 직접 구경하고, 우리가 만든 논을 직접 가져갈 수도 있어서 한번쯤 해볼만한 경험이었다.

사마르칸트 쪽에 포도가 좋아서 와인이 유명하다고 하다. 우리도 공짜 와인을 실컷 먹겠구나, 다큐멘터리에서 보듯 생포도를 발로 직접 밟는 것도 복, 수많은 오크통 사이사이를 걸을 수 있겠구나 했지만 결론적으로 그런 것은 보지를 못했다. 공장 옆에 박물관 같은 게 하나 있는데 거기서 해당 회사에서 제조한 와인 자랑을 실컷 듣고, 시음해보고 살 사람들은 사보는 일정이었다. 개인적으로 웬만하면 사려고 했지만, 와인들이 너무너무 달아서 내 입에 맞는게 별로 없었다. 후에는 이게 마케팅 전술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거둘 수 없었던 와인공장.

* 레기스탄 광장

 밤의 레기스탄 광장은 우즈벡에 이런 곳이 있었어? 라는 놀라움을 아니 갖을 수 없다. 반듯하게 잘 닦인 도로에는 휴지 한 조각도 없고 그 넓은 대로 양 쪽에는 촘촘하게 가로등이 불 밝히고 있다. 하지만 넓은 크기에 비해 산책하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아, 우리가 걸을 당시에는 거의 한 명도 없었다. 아무도 없는 밤의 광장에 가로등들이 그리 환하게도 켜져 있으니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도시를 걷는 듯한 이질감을 느끼게도 한다. 사마르칸트의 외양을 보면 깨끗하게 잘 가꾸어진 공원같아서 살기 좋은 것 같다 싶지만 어찌보면 너무 깨끗해서 정내미가 없기도 한 것 같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것들을 찾기가 어렵고, 인간미의 냄새를 맡기가 어렵다. 보란 듯이 가꾸어진 도시의 인도를, 단지 보면서 걸을 뿐. 그것이 사마르칸트의 득이자 실이기도 한 것 같다.

* 샤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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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흐진다는 묘한 구석이 있다. 우즈벡은 아주 유명한 사람이거나 현자의 묘가 있으면 그 주의에 보통 다른 사람들의 묘들이 옹기종기 모이기 시작할 것이다. 이유는 그래야 복을 많이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 샤흐진다도 묘인지라 여타 다른 관광지역과는 다른 구석이 있다. 다른 관광지가 거대한 문을 시작으로 하여 관광물품 상인들의 등장 그리고 텅 빈 광장이 생뚱맞게 있었다면 샤흐진다는 단지 고즈넉하다. 웅장하게 세운 건물도 별로 없고 묘를 중심으로 하여 아기자기한 건물들을 몇 개 지어놨고, 걷다보면 기도실 같은 것도 나오고 또 더 걷다보면 일반인(?)들의 공동묘지에 도달할 수 있다. 묘터이어서 그런지 상인들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우리 일행도 삼삼오오 천천히 둘러보았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공동묘지. 우즈벡은 묘비에 고인의 사진을 새겨둔다. 그 사진들은 흑백이지만 너무 디테일하게 새겨져 있어 그들의 눈빛이 꼭 먼 하늘을 응시하는 것만 같았다.

내게 사마르칸트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장소 혹은 다른 이에게 추천할만한 장소를 이야기하라면 샤흐진다를 이야기하겠다. 그 곳은 많은 이들의 삶이 응어리져 있기 때문에, 가장 사마르칸트답지 않은 곳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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