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천만인이 넘었던 영화를 쳐봤습니다. 시작은 실미도 부터이군요. 그리고 태극기 휘날리며, 왕의 남자, 괴물. 그리고 해운대입니다. 몇 년 후면 천만관객 넘은 영화들이 10위권을 구성할 시대도 올 것 같은 분위기입니다. 벌써 5편이니깐요. 그다지 좋은 현상같지는 않네요. 그리 인구가 많지도 않은데 천만이라니요. 여기에는 영화사의 독과점 문제도 얽혀있는 것 같고, 배급사 횡포 문제도 있는 듯합니다. 괴물 때 김기덕 감독이 지적하기도 했었죠. 신기록이 뭐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닌데, 언론에선 또 그리도 날뛰는지요. 신기록입니다. 하는 것을 마치 스포츠 기록처럼 보도하네요. 영화라는 것은 상품이지만, 그래도 예술인 것인데…. 천만, 천만 막 이러니깐 철저히 상품같아 보이네요. 암튼 좀 느낌이 그렇습니다. 해운대를 봐서 그럴까요?
천만 넘은 영화 중에서 제가 보지 않은 것은 실미도 뿐이군요. 그래도 실미도는 대략 압니다. 영화가 나오기 전에 원작 책을 읽었거든요. 책이 저질이라 볼 마음이 뚝 떨어졌었는데, 영화가 떠서 굉장히 의외였어요.
그런데 저 중에 태극기 휘날리며는, 제가 좋았다는 사람 볼 때마다 두루두루 욕하는 영화입니다. “어떻게 저게 천만을 넘을수가 있어, 참내.” 그런데 두루두루 욕해줄 영화가 하나 더 생겼습니다. 해운대이죠.
망한 영화는 그래도 애틋한 마음이 들지만, 그리 고 퀄리티가 아닌데 뜬 영화는 팍!팍! 씹어주셔야 합니다.
암튼 해운대.
우선 볼거리가 있다는 거가 사람들을 이끌었겠죠. 이제 보니 천만 넘은 영화가 모두 그렇습니다. 괴수 영화 괴물, 전쟁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도 그렇고… 왕의 남자는 사극에 춤과 노래로 사람들을 이끌었겠네요. 해운대는 재난영화군요. 거기다가 최첨단 CG를 발라놓셨다고 하니, 뭐 호기심이 발동할 만 합니다.
그런데 제 취향은…. CG가 얼마나 뛰어나건 뭐하건 영화 호감도에 별 영향을 못미칩니다. CG는 개인의 노력이기 보다, 돈을 얼마나 투하하였느냐에 따라 그 퀄리티가 나와요. 돈 많은 헐리우드 CG가 자연스러운 것은 어쩌면 당연스럽죠. 전 스토리가 저질이어도 CG 기술 하나는 인정해야겠다는 한 때의 ‘디워’를 도저히 용납 못하겠어요. CG가 얼마나 뛰어난지, 안뛰어난지만 본다 한다면 게임 동영상을 보지, 왜 영화를 보는걸까… 이런 생각까지 듭니다. 그리고 해운대의 CG가 특히나 거부감이 들었던 것은, CG가 스토리에 협조하는 기술로 쓰이는 게 아니라 스토리를 깨고 있어서 그랬습니다.
마치, 그래 한번 보여줄게 하는 식으로 화려한 동선을 자랑하는 CG가 현실감 없이 툭툭 튀어나와버리는 것이죠. CG는 어디까지나 스토리 안에 있어야지, 그러면 됩니까. 그래도 헐리우드의 CG는 자연스럽고 안정감이 있었는데, 해운대의 CG는 스펙타클을 보여주겠어 흐흐흐 제작자의 욕심이 드러날 만큼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었습니다. 마치 처음 포토샵을 배운 사람이 포토샵 필터 이것저것을 막 써 놓은 듯한, 촌스러움이었어요.
그리고 스토리의 주요 줄기를 구성하는 에피소드들이 하나같이 전형적이고 진부해요.
여기서 갈등은 넘쳐납니다. 약간은 옴니버스 같은 분위기를 내서 그런지요.
설경구와 하지원의 러브러브와 설경구의 트라우마가 하나 있구요. 그 트라우마로 들어가면 설경구와 송재호의 갈등이 있구요. 엄정화와 박중훈과의 이혼부부 갈등이 하나 있구요. 또 뭐 있더라, 아. 이민기와 강예원의 러브 스토리도 하나 있군요.
그런데 문제는 이 모든 에피소드들이 하나 같이 상큼함이 없다는 겁니다. 설경구는 큰 아버지만 보면 화를 내고 있는데, 그의 트라우마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가 없게 되어 있어서 별로 공감이 되질 않아요. 하지원도 마찬가지에요. 설경구의 청혼을 거절했을 때, 정말 그것 때문에 거절한게 맞아? 라고 느낄만큼 기계적인 반응들을 합니다. 진정성이 없어요. 진정성이.
여러 에피소드들에 배우들이 끼워맞쳐진 느낌이에요. 이혼부부의 이야기이든, 설경구의 트라우마이든, 이민기-강예원 커플 이야기이든… 너무도 상투적인 이야기인데, 또한 너무도 몰입하기 힘들게 두었어요. 그냥 여기는 이렇고, 저기는 저렇더라 정도에요. 그런 이유는 영화가 에피소드를 너무 많이 만들어 두어서 그럽니다.
빨간리본 달기 등의 유치한 에피소드들을 빼고는, 여기 에피소드는 주로 관객에게 안타까움을 선사하려거나, 부산의 지역색깔을 드러내고자 하는데요. 롯데 팬들의 신문지 응원, 광안리 불꽃축제 같은 것들을 너무 쉽게 넣어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역시나 예상했던 데로,
그놈의 메가 쓰나미가 몰려 왔을 때, 모든 갈등들이 일순간에 팍! 하고 해결되는데, 여기에도 일말의 고민과 주저함이 없이, 쓰나미가 왔으니 서로 울고불고, 화해합니다. 엄정화의 전화통화나, 송지호가 설경구 잡아주는 것은 좀 너무하다 싶더라구요. 어느 정도 현실성이 있는 거긴 하지만요. 연출방식이 이건 좀 아니다 싶네요. 장중한 음악 촤악~~~ 깔고 나서, 일말의 눈동자 흔들림 하나 없이 사실은 정말 당신을 사랑했어 라고 기계적으로 고백하는 그들은 감동을 주는 사람들이 아니라, 관객의 구경거리였을 뿐이었습니다. 슬로우 모션도 너무 많이 썼어요. 괜시리 영화 길어지게 말이죠.
아, 그리고 한국형 재난영화를 만들어보겠다는 제작자의 욕심은 보이는데, 왜 헐리우드 재난영화의 것들을 그대로 갔다 썼는지… 차오르는 물 때문에 전신주가 잠기는 순간에 애태우는 씬은 제가 본 헐리우드 영화의 한 장면인데요. 영화 제목이 뭐였더라. 고등학교 때 본 그 영화 장면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순간이어서 차마 제가 낯뜨거워 지더군요. (제목을 알아내면 이건 추가해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연기연출을 못한 듯, 경력있는 연기자들이 모조리 TV 드라마 같은 ‘한국식’ 연기의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 같군요. 매너리즘이에요! 매너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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