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쉴틈없이 일하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고
더 절실한 이유는 필요로 하는 것이 너무도 많았다.
캠코더, 노트북 부터 해서 일상 생활용품까지…
그가 일한 곳들은 예전에 비해 비교적 다채로웠다.
LG전자에서 SK텔레콤(물론 본사 쪽은 아니지만)
어찌보면 대기업 릴레이겠지만, 그저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우선 그것은 그 어떤 것도 아닌 단순 아르바이트 였던 것이며
그것도 정말 초단기 아르바이트 였으며
무엇보다도 그를 의기소침하게 만든 것은
그가 만들 수 있는 ‘인적 재산’ 이라는 것이 그에게 별로 소용이 없을 것 같아서 였고
짧게 나마 배우게 되는 관련분야의 이야기들이 정말 이공계 ‘현장 이야기’ 라는 것이었다.
그는 어찌되었든 문과대생이었다.
설거지 할 때는 설거지 생각만 하여라 라는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하지만,
…
물론 그는 지금 설거지 생각만 하고 있긴 한데
그저 J가 떠올랐다.
독학과 희곡 비평 수업에서
본 늙다리까지 졸업않고 남아있는 학생이 바로 J었다.
소규모 과인 만큼 강사/교수와 친분이 두터운 학생들의 분위기라
수업방식이 비교적 자유롭게 그러면서도 발표수업으로 진행이 되는 데
비평 토론 수업이니 만큼 발표조와 토론조의 논점에 따라
수업이 몰려가는 그런 분위기였다.
그런데 독문과 학생들의 마인드는 얼마나 경영학 혹은 경제학적 마인드인지
발표조이든, 토론조이든
모든 것을 계량화시키고, 도표화시키고, 비쥬얼화시키기에 바빴다.
토론 주제는 그것이 맞느냐, 틀리냐에 대한 사실 확인 여부에 불과하였는데 그것은 하나도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 속에서 그나마 전체 줄기를 잡아 주었던 것은
항시 J였던 것이다.
J는 작품의 화두는 물론
강사/교수가 의도하고 있는 커리큘럼을 아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J는 체계적이고 논리적이면서 또한 독창적이었기 때문에
강사/교수는 물론 학생들을 모두 만족시키는 학우였다.
그렇게 항시 수업을 주도하고, 새로운 비평적 관점을 꺼내주었던 J는
중간고사가 끝나면서부터 정장을 입고 오기 시작했다.
거의 매일같이 입사지원서를 냈던 곳에 면접을 보고 오는 길이었던 것이다.
미리 작품을 읽지 못했던 J는
그 이후. 손을 들지 못하였으며
기말고사조차 10분만에 나가버리고 말았다.
J가 어색하게 웃으면서 강사/교수에게 시험지를 제출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그때는 시험보던 모든 학생들이 그를 쳐다보고 있었던 것 같았다.
J는, 답안을 쓸려면 쓸 수 있었던 것이었다.
비평문제였기 때문에, 얼마든지 핀트가 조금 어긋나더라도 어느 정도 점수를 맞을 수 있는 글을
그는 제출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J는 10분만에 교실을 나섰다.
그는 J가 떠올랐던 것이다.
언제나 밝은 얼굴로 토론 수업을 진행하던 문과대생 J는
마지막 시간에 미안한 얼굴을 보이면서 교실을 제일 일찍 떠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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