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장선우] 예상과는 다른 그러나 실패

수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이 영화에 대해서 나는 ‘좋았다’ ‘괜찮았다’ ‘재미있었다’ 라는 류의 말을 들어본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모두 ‘저질이다’ ‘포르노이다’ ‘토할것같았다’ ‘엽기적이다’ 라는 평이었으며 말하던 이는 잠시 미간을 조금 찌푸렸던가. 그것은 내 기억이 만들어 둔 환영-이미지 였던가. 암튼, 영화가 그렇게도 만인이 통용될 수 있도록 악하게 만들어 질 수 있는걸까? 그런 악평속에서 봐서 그런지 나는 생각했던 것보다는 저질영화는 아니구나 했다. 뭐랄까. 자극적으로 타락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거기에 아주 빈약한 이유근거를 찾고, 이것이 폭로요! 라고 이야기하면서… 음… 더 엽기적일수록 마치 더 급진적인척 그런 제스쳐를 취하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다. 요란스러운 세상이 되면서 폭로예술, 고발예술인 척 온갖 원조교제요, 성폭행이요, 살인이요 등등의 매우 급진적(?)인 엽기 박물관을 연상케하는 것들! 그런 영화는 아니었던 것이다.영화는 처음에 씻김굿을 이야기한다. 죽은 이의 부정을 풀어주어 극락으로 보내주는 굿이 씻김굿이 아니던가. A학점감이라면서 스탭인지 영화감독인지 영화의 기획목표를 제일 처음에 씻김굿이라 이야기하는데, 영화 자체가 판타지가 되어 주겠다는 것이다. 그리하요 이 영화로 하여금 시청자의 응집되어 있었던 성욕을 풀어헤쳐주겠다 또는 발휘시켜주겠다 하는 것. 실제로 영화는 자기 자신이 계속 판타지라는 주문을 계속 세뇌시키듯이 걸고있는 게, 중간에 삽입곡의 가사가 ‘나는 판타지’ 를 계속 반복하고 있고… 영화 자체가 이것은 판타지라는 식으로이다. 카메라 앵글만 봐도 아니 이건 장난을 친 건지… 하는 식으로 어색한데, 마치 은밀하게 뒤에서 찍은 듯하며, 삽입곡들은 요상한 트롯이 나오게 되며, 주인공 외의 등장인물들은 지극히 전형화 되어 있어서 마치 게임 속의 인물들인것만 같다. 또한 단락 나누듯이 각 행위별로 소제목들을 나누고 있어서 이번엔 뭐가 나오겠군, 충분히 예상할 수가 있다. 아! 영화는 스토리라 할 게 거의 없기 때문에 몇몇 급반전을 제외하고는 모두 예상할 수가 있긴 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웰메이드 영화랑은 거리가 멀다. 하지만 그것이 이 영화의 기획자가 목표했던 것이기도 할 것이다. <거짓말>은 상상력을 요구하며, 시청자가 보고 있는 현실과 맺고 있는 연결선이 있다. 그리고 감독의 요구는 그 연결선을 어떻게 하면 적극적으로 움직여 볼 수 있을까 하고 연구해보는 것이다. 보통 몰입식 장르영화들의 평가는 재미에서 시작해서 재미에서 끝난다. 주제라는 것을 어떻게 재미있게 요리했느냐에 따라서 장르영화들의 웰메이드냐, 비웰메이드가 정해지지 않던가. 그런데 <거짓말>은 그런 류의 판단을 애초부터 빗겨나가고 있다. 갑자기 쌩뚱맞게 출연진이 등장하여 촬영당시의 소감류를 말하고, 앵글은 편집을 한 건지 안 한건지 어색하게 휘둘러 대고, 스토리라 할 것은 거의 전무하고 하니 말이다. 영화는 자기 자신은 판타지이다 라고 먼저 이야기하며, 한 사람의 욕망을 극한으로 추적해본다. 연인이 좋은 것은 자기다 뭐든 다 좋다는 연인의 소유욕. 그 소유주(?)의 요구가 극한으로 치닫을수록 그 소요육의 만족감은 좀 더 커질 것이라는 발상에 우선적으로 기반한 듯 하다. 그런데 이 판타지는 ‘판타지’ 로서의 지위확보에 충족하고 있다. 영화는 어떻게 하면 관객을 최면효과와 흡사한 상태로 만들어버릴 수 있을까, 어떻게하면 자기 동일화 시키고, 몰입시킬 수 있을까를 연구해야 하지만, 이 영화는 그렇지 못하다. 이 영화의 성행위는 로망스적 섹스가 아닌, 동물적 섹스이며 집요한 욕망의 지극히 현실적인 모양태이다. 로맨틱한 음악 한번 흐른 적이 없이 트롯 비슷한 게 제멋대로 난무하고 있으며, 깨는 듯이 나는 판타지라고 중얼거리는 것은 또 뭐람. 이 영화에서는 등장인물 따위, 공간적 배경, 시간적 배경 그저 아무렇지도 않아도 됩니다 라고 자기 스스로 나래이션 하는 영화이다. 이 영화의 감상방법은 몰입이 아니라 보면서 상상하세요. 정도라고 해야 맞을까? 그래서 이 영화는 이것 자체로, 이 내부에서만 평가해서는 안될 것같다. 시청자와 영화와의 관계에서 이 영화는 시청자의 욕망을 어떻게 요리하였는가가 관건이 될 것이다.영화의 시도는 이런 것들이 아닐까. 하지만 나는 이 영화의 이 시도가 매우 실패했다고 연긴다. 대다수 관객들의 평이 우선 그렇고, 또한 몇몇 혁신적인 기획들이 초반부에 버라이어티하게 펼쳐지다가 후반부에 갈수록 똑같은 양상의 반복적인 영상들을 드러내고 있다. 앵글도 초반부에 긴장감을 펼치면서 독특한 효과를 내던 것이 중반부부터는 아예 그런 것이 없어지고 만다. 뭔가 시도하다가 말아버린 느낌. 그리고, 이 영화의 애초 시작점. 그것은 SM적 변태적 섹스욕보다는 일종의 보편적 성욕, 아니 성욕보다는 소유욕에 기반한다고 생각하는데 이 소유욕은 연애사에 있어서 얼마나 구태의연한 개념인가. 관계를 넘어선 소유. 소유를 통한 관계? 그런데 <거짓말>이 간과하고 만 것인 ‘관계’ 였다. 남녀간의 동물적 인간의 소유욕에 앞서, 동물적 인간의 관계부터 먼저 성찰해보았더라면 영화는 일편적이지 않고 좀 더 웅숭깊게 펼쳐졌을 것을…. 영화는 속설대로 저급영화는 아니었지만, 실패한 영화였다.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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