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2.9.] 해후

할 일도 없고, 시간이 적당히 남았을 때. 약 1년에 한번 정도는 중고등학교 동창들의 싸이홈피 스토킹을 해보는 듯하다.

연락하는 친구들 말고, 연락할 일도 없고 다시 볼 것 같지도 않은 동창들.
서로 스쳐지나도 아는 척도 잘 못하고 지나갈 법한 그런 친구들일수록 더 재미있는 법이다.

학교 이름으로 들어가서는 이름 목록을 쓱 훑어본다.
뇌리 여기저기서 쏟아내는 단면, 단면들.

누구는 사소한 다툼 하나만 떡 하니 떠오르고, 누구는 우수꽝스러운 말투만 떠오르고, 누구는 코 파는 장면만 떠오르기도 한다. 도대체 이 친구와 내가 무슨 관계였는지 서로 말은 나눠본 사이였던지 조차 희미하다.

관계없다. 그래도 상관없이 재미있으니깐.

보다보면, 참 세월무상이란 생각이 절로 든다.

육중한 몸을 자랑하던 친구는 벌써 애 아빠가 돼서 아이 사진을 올려놓고 있고, 훈남으로 급반전한 찌질이가 싸이를 온통 ‘Love is’로 장식하며 잔뜩 허세를 부릴 땐 키득키득 웃음을 참으며 이 놈이 얼마나 찌질이었는데 속엣말을 해보기도 한다. 차 한 대 뽑아 달려주시는 부자 친구를 보면 역시 ‘있는 놈은 끝까지 있고, 없는 놈은 끝까지 없는 것인가’ 하고 잠시 감회(?)에 젖어보기도.

이렇게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다 보면, 어느 순간 누가 나처럼 내 홈피를 들어가 본 적도 있을까 하고 궁금해지기도.
내 동창들의 기억속에 나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지기도.

그리고 내 학창시절을 반추해본다.

분명 학교킹카보다 찌질이에 좀 더 기울어져 있을 내 동창들의 기억들일텐데,
관계없다.

그러면 내 동창들이 와서 이 놈 기대만큼 여전하구만 혹은 그래도 나이드니깐 조금은 더 낫네 할 것 아닌가. 기대감은 안 줬을 테니.

얼마 전 머리를 짧게 깎았는데 가늘게 나 있는 이마 주름을 감추기가 힘들구나 했다. 시간은 훠얼훠얼 흘러가고, 모두들 흘러가듯 살아간다. 각기 다른 물살에 휩쓸려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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