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31.] 을지로입구, 토요일 아니 2009년 1월 31일

**풍경 1

어떤 옷을 입었건 상관없이…
갖은 협박을 하는 이도 있었고
엄살을 부리는 이도 있었다
긴장감에 가득 차서 땀까지 흘리는 이도 있었고
욕을 하고 비명을 지르는 이도 있었다.
나를 아프게 한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하나도 밉지가 않았다.

솔직한 마음으로..
시장통의 실랑이인것처럼 오히려
이 편이 속시원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무서웠던 것은 휙- 휙- 지나쳐버리는 군중들.
김선우 시인의 <헤모글로빈, 알코올, 머리칼> 이란 시가 다시 한번 떠오르는 순간.

**풍경 2

매일 밤 불을 밝히던 롯데백화점의
전구들이
그토록 괴이하게 보일수도 있는 것이다.

사방에서 불을 밝힌 것들이
가만히, 아주 가만히 멈춰서서 지켜보고 있고

도로 위의 사람들은
그래, 내가 얼마나 망가지는 지 보여줄게, 그래도 가만있을꺼니!
하고 비명을 지르는 듯했다.

으르렁 거리는 도시의 굉음속에서
서로 고통을 주고받던 사람들
괜찮다.
그래도 괜찮다.
그래도 그 순간 주인공이 된 셈 치는 것이지.

지하철 한 정거장을 지나치기 전까지는…

**김선우 시인의 시

-헤모글로빈,알코올,머리칼-

(머리가 깨진 날 기뻤어요
내상보다 외상이 덜 위험하거든요)

보도블록을 깨다 손목 베이자 불타는 머리칼,
바리케이드 위에 살점을 널던 팔십년대
그 격렬한 외상의 날들
자고 일어나면 새살이 돋아 있곤 했지요
추억의 쓴물에 어금니를 담그거나
이적성 표현은 아닙니다

구십년대는 우울한 내상의 날들이어서
걸핏하면 넘어지고 발목을 삐는데
피 한방을 흐르지 않고 멍만 듭니다
세계 인구의 열배도 넘는 세포가 모여 이룬,
육체의 나날은 출혈없이 평화롭습니다

그런데 어제 머리를 깼지요
만취해 돌아오다 길에 누워버렸습니다
두개골은 멀쩡하고 상처도 크지 않은데

폭포처럼, 피 흘리는 머리칼
친구의 웃옷을 벌겋게, 치마를 물들이고
길바닥에 누워 해실해실 웃더랍니다
“아아 상쾌해” 하면서 말예요

빨간 다알리아 꽃들이(기억나요?)
뭉텅뭉텅 꿈 밖으로 걸어나갑니다
편지를 썻다가 구겨버렷어요
– 내 몸은 나를 보호할 의지가 없나봐
방금 당신께 전보를 쳤습니다
– 안 보이는 상처가 나를 시들게 해
다알리아 꽃모갱이를 꺾으며 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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