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20.] 철거촌의 기억

이제 대학 새내기를 막 벗어나던 2004년 연초.
상도동 철거촌의 골리앗을 방문해 본 적이 있었다.

봉쇄된 철거촌의 벽 앞 골목에 밀집하여
이런 저런 항의 구호를 외치곤 있었고
사복경찰인지 용역깡패인지 우리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위협하는 눈초리를 주긴 하였지만
전혀 철거촌 앞에 있다는 느낌조차 들지 않았다.

그 곳은 중앙대 후문에서 도보로 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웠고
우리가 서 있는 곳 바로 옆에는 슈퍼 등을 비롯하여 온갖 상점이 즐비해 있었다.
이런 서울 한 복판에

골목 구멍가게처럼 철거촌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도저히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 시절 내가 살았던 방배동의 그 호화스러운 주택 사이사이에 끼어있던 판자 같은 것이 집인 줄 몰랐던 것처럼

나는 서울이란 공간에, 한국이란 공간에
아직 현실감각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던 것이다.

암튼 그 곳에서 안에 몇 명정도 구호물자 등을 들고 가자는 계획이 세워지고
나는 ‘아직은 새내기(?)’라는 특권으로 선발(?)되어 들어갈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해서 들어가보게 된 그 곳은
그야말로 딴세상이었다.

그저 뇌리에 떠오르는 것은
“이곳은 전쟁터”
라는 것 뿐이었다.

온갖 허물어진 가옥들과 가구 등의 집기들이 어지러운 벌판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골리앗이 그 중심에 서 있던 그로테스크한 풍경.

인간이란게 참 무정하구나 라고 느끼게 한 풍경에서
우리는 철조망과 방해물들 사이를 빙빙 돌아 골리앗으로 들어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전기, 물 같은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환경이었다.
‘골리앗’이란 구조물도 그리 튼튼해보이지 않았다.
공간은 매우 협소하였고
빛도 제대로 들어오질 않았다.

내가 만나 얘기 나눴던 분은
몇날 며칠을 추위와 배고픔과 물 부족 등의 그야말로 총체적(?) 열악함에 시달려 있었던 듯하다.

같이 온 중앙대 분들 중 몇은 여기에 가끔씩 방문하고 그랬던 지
서로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디지털 카메라의 플래쉬를 터트려서 사진을 찍을 때
그 분은 다시 은행강도 같은 복면을 썼다.

서울 복판 속 딴 세상에서
그 분들과 나누었던 대화가
내게 현실감각을 주었나보다.

이 후,
버티고 누었던 철거민을 크레인이 짓눌러서
두 다리를 절단시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용역깡패들이 사시미칼을 들고 쳐들왔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도

그럴 리가… 라는 의심이 들지 않았다.
작은 분노만 속에서 들끓게 했다.
현실은 보이는 것 보다
훨씬 더 잔인한 곳이야라는 사실만 확인해주었다.

오늘 철거민 관련 사건을 뉴스로 접하면서
사람들의 반응을 지켜보면서

그리 오래되지 않은 기억과 감상을 떠올려본다.

철거민들의 투쟁이 과격하다지만
다리를 절단하려는 크레인이 달려들고
어린아이와 할머니까지 있는 골리앗을 통째로 뒤엎으려하고
사시미칼을 들고 용역깡패들이 오는데도

촛불 하나만 밝히고 있을 순 없지 않은가.
주류 언론은 냉담하다 못해 악의적이기만 한데…

그리고 철거민들이 돈 욕심 때문에 그런다고 오해하시는 분도 있는데
그것도 단연코 아니다.

철거민들은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생존의 길목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 것이다.
돈 욕심 하나로 크레인과 물대포와 사시미칼과 몇 년동안 대응할 수 있겠는가.
단순 팔짜를 펴겠다고 전기도, 물도, 빛도 없는 그 공간에서 버티면서 전투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단순 보상 정도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더 이상 갈 곳이 없게 만든 억압적 환경에
어쩔 수 없이 저항하게 되는 것이다.
“살기 위해서!” 말이다.

아무쪼록 이 잔인하고도 잔혹한 현실이란 공간에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최소한의 환경을 보장해주었으면 한다.

가신 고인분들께 명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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