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어느 초등학교에서
초등학교 1학년의 문학수업은 이런 식으로도 진행이 된다고 한다.
선생님이 랭보의 시를 읽어주고, 적혀있는 시를 읽으면서…
아이들은 그 시에 어울릴만한 그림을 그려본다고 한다.
라는 말을 듣는데, 그만 전율이 흘러버렸다.
우리는 고등학교 때까지
김수영의 풀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민중” 이라는 답밖에 내릴 줄 모르는데 말이다.
사지선다형 혹은 오지선다형 중에 ‘정답’을 가리키고 있는 번호를 싸인펜으로 칠하기 바쁘고
더러는 이 문제를 자신이 재빠르게 풀었는가 촛침을 확인할 수도 있고
더러는 이 문제들의 이합집산으로 자신이 어느 대학에 갈 수 있을지 도표를 그려보기도 할텐데 말이다.
그래서 어느 비평가가 김수영의 풀을 “여성의 욕망” 으로 해석하였을 때,
3류 비평가로밖에 욕할수밖에 없겠지.
그렇게 배워먹었으니깐…
랭보의 시를 오독하는 낙서와 그림을 그리는 초등학교 1학년생이 있다 하더라도
그는 정말 훌륭한 독자이다.
그는 자신이 향유하였고, 해석하였고, 자신이 재창조시켰다.
하지만
우리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의 독자들은
이미 굳어버렸거나, 응고하고 잇는 중이다.
김수영의 풀을 민중으로 빨리 선택하게끔
우리는 문학이 아닌 수리영역을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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