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5.24.] 어떤 핑계에 대한

“가능할까요?”
“희망이 없는 삶은 죽은 삶이죠.”
“하지만 한 사회의 희망이 개인의 희망은 아니지 않습니까?”
“교묘한 거짓말이죠. 그 누구도 자기가 속해 있는 사회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순 없어요. 종교적 신비주의자들 역시 마찬가지죠. 차이가 있을 뿐이지 어떤 식으로든 개인의 삶이 사회와 완전히 단절될 수는 없는 거죠.”
“모든 사람들이 그런 희망을 만들면서 살기를 바란다는 건 욕심이 아닐까요?”
“그렇지만 같이 사는 사회니만큼 관심은 가져야 하죠. 한 사회의 불행이 개인의 불행으로 이어질 수도 있으니까요.”
그녀는 마치 나를 두고 말하는 듯싶었습니다. 상관 없다고, 관심 없다고 쳐다보지도 않았던 것들에게 그 어떤 저항도 한번 제대로 못 한 채 철저하게 짓밟힌 나를 두고 말하는 듯싶었습니다.
-이인휘 [내 생의 적들]

나는

여성이 아니라고
동성애자가 아니라고
장애인이 아니라고
이주 노동자는 아니라고
월급 100만원 미만의 노동자는 아니라고
비정규직은 아니라고

그 때 그곳에서 고문받던 그 사람이 아니니깐

더 골치아파하고 싶지 않아서
나만은 조금이나마 행복해지고 싶다고

모든 것을 체념한 듯

혹은

푸르른 자연 속에서
안위도식하는 것이 더 위대한 것이라고
내 가정의, 내 연인의, 내 친구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두 쪽 눈을 모두 감은 채

모든 것을 초월한 듯

그것은 모두 무채색을 가장하지만
그것은 지독하게
다수의 바탕색을 따르는 것

처음부터 타고 있던 버스 안에서
파이 한 부스러기를 움켜잡고
그것, 조금
놓치지 않기 위해 애쓰는 것에
다름 아닐지도 모른다

또 어쩌면

매트릭스 세계의
전원 공급 밧데리

식물인간 육체 속에서
환각의 뇌세포들이
행복해! 행복하다고!
라고 외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지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없이
도저히 인지할 수 없어
지금 먹고 있는 스테이크 맛 외에, 그 무엇도
없다면 그것으로 족할 테지만

어찌할 수 없겠지만

누구든 이미 알고 있다

네오가

당사자들이
저항하는자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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