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랑가족-공선옥] 입 막힌 자들의 입을 대신 터주는 자로서의 소임

‘연옥에서 고고학자처럼’에서 이명원씨가 공선옥씨를 이렇게 지칭했었던 것 같다. 공선옥씨 자신이 그렇게 말하였던가, 확실히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입 막힌 자들의 입을 대신 터주는 자

나는 그때까지 문학 그리고 예술이라는 것은 뭔가 본질적인 문제를 접근해야만 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어떤 유랑기가 나오더라고 주인공이 겪는 사람들과 나는 먼저 맞닿지 않았다. 나의 물음은 항시 주인공이었다. 저 ‘주변환경’ 들이 주인공의 주체에 어떻게 영향 미치는가, 작가는 저 주인공에게 왜 저런 주변환경을 제공하고, 이 이야기를 왜 이렇게 펼쳐내는가… 주안점은 언제나 주체의 성찰이이었다. 그 혹은 그녀의 심정변화가 어떻게 나타나는가, 주인공이 영혼이라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주인공이 환경적 권력형태에 대해서 얼마나 예민하게 나타내고 있는가…

그것들은 일개 작가의 입장을 파고들고 푼 마음이었다. 나는 어쩌면 이제까지 ‘작품으로서의 작품’ 의 접근방법의 기본조차 모르고 있었던 것도 같았다. 공선옥의 작가로서의 자기 입지를 듣는 순간, 나는 내가 이제까지 작품읽기의 오류를 인지했던 것도 같다.

작가는 그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일수도 있다. 그는 어떤 현자도, 철학자도, 운동가도 아니고… 또한 상처입은 영혼이 아니어도, 파란만장한 경험을 보유하고 있지 않아도 글을 쓸 수 있을지 모른다. 글을 쓸 수 있어서, 입 막힌 자들의 입을 대신 터주는 자로서의 소임을 품고서 말이다.

오히려 거기에는 어떤 제스쳐도 존재하지 않는다.
자기가 겪든, 안 겪든 간에 말을 해야 할 것을 말 해야 한다는 것에 충실한 것.
숨기지 말아야 할 것을 드러놓는 일을 했다는 것에 충실한 것.
기본적인 인간애로부터 우러나온, 더없이 인간적이고 그게 바로 더없이 우리 삶의 천착하여 진보적인 소설가의 모습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공선옥이 인지하고 있는 ‘입 막힌 자’들은 가난한 자들이다. 좀 더 해설하자면 생존의 늪더미에서 살아가고, 권력의 근처에도 연관이 없으며 앞으로의 희망조차 막막한 자들이다. 작가는 가난한 자들의 이야기들을 지긋이 풀어낸다. 그들이 너무도 착하고, 성실한 동화 속 주인공 같은 사람들이라고도 이야기 하지 않는다. 그들은 때론 ‘죄’를 짓기도 하며, 시기하고, 서로를 경멸하고, 또 다독거리기도 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인간상들이다. 그들은 예술이라는 것도, 뭔가 고귀하여 영원히 간직해야 하는 것들도, 존재의 의미같은 것도 묻지 아니한다.
단지 좀,만,더 행복하게, 행복하게는 아니더라도 좀,만,더 잘 살아볼려는 소박한 욕구만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삶은 작가의 작품속에서 지극히 자연스러워서 왜 이래야만 하는가 하는 의문점을 낳게끔 한다.

그런데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인 것은, 이 세상에서 ‘부자’ 라는 존재는 소수만을 지탱해준다는 사실이다… 진실이다. ‘부자’라는 개념어의 태생적 존재가 그러할진데, ‘가난한 자’ 의 의미가 중립적이지 아니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현실조건 아래서 가난한 자들은 죄인처럼 살아가고 있다. 마치 악인인것처럼, 동화 속에 등장하는 게으른 자, 죄인, 추인… 온갖 숨겨야 할 것들로 존재하고 있으며 그들은 현실의 항상적인 대다수라는 것.

작가는 그들의 불편한 이야기들을 텍스트로 끄집어 낸다.

그러면서 자뭇 조심스럽게 독자에게 물어보고 있다.

이럴 수 없는 거잖아요.
이럴 순 없는 거잖아요.

‘멋진 한 세상’ 의 단편집에서의 이야기가 단편 각개마다 강렬하면서도 부드러운 물음과 그 관찰에서 나온 것이라면 ‘유랑가족’ 의 연작소설에서는… 뭐랄까, 그보다는 조금 더 어두워지면서 좀 더 다양한 생태상을 연작소설의 틀거리에 담아내려고 한 노력이 돋보인다. 서로 엮이는 사람들 간에서 공선옥 소설에서 보지 못했던 긴장감이 나타나고 있지만, 그 부분의 성과에 있어서는 나는 자뭇 유보하고 싶다… 약간은 유기적이지 못하면서, 속도조절이 일정치 못하다고나 할까… 그리고 다양한 이야기들이 동어반복적인 형태를 보이고 있다는 부분이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하지만…

입막힌 자들의 입을 대신 터주는 자로서의 작가 공선옥은

여전히 우리 사는 세상에서나
나에게서나

정말 소중한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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