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딜 수 없었다. 참고 참아왔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현충일부터 주말까지 이어진 황금연휴를 그저 그렇게 보낼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너무너무 바빴다. 어렷을 적부터 어른들이 “나 바빠”하는 말 모두 거짓말이거나 과장일거야 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말 할수밖에 없다는게 이해되고 말았다. 그만큼 내가 바빴다. 선거나 행사준비나 시험기간이거나 하는 시기적으로 그러했던 것이 아니라, 내 3학년 1학기가 통채로 너무 바빴다. 세상에! 도대체! 어떻게! 이럴수가 있지? 라고 내가 깜짝 놀랄만큼. 그러던 중, 방학을 앞두고 황금연휴가 찾아온 것이다. 시험기간이나 마찬가지라 할 수 있는 시기였지만, 어차피 약 70프로의 출석률을 보이고 있던 3학년 1학기였다. 어떻게든 이 황금연휴만은 나만의 시간으로 보내고 말겠어라는 일념으로 며칠내내 끙끙 앓던 마지막 신문 편집을 끝내고, 끝내자마자 인쇄소가 닫기전에 충무로로 달려가 맞겼다. 아! 겨우 이틀이지만 내 시간이란게 주어졌구나!
누구도 방해 못할 나만의 시간. 나는 부랴부랴 적은 내 자금사정에 해결할 수 있을 1박 2일의 여행지를 알아봤다. 넘실넘실 푸르른 동해가 먼저 떠올랐지만 차비가 비쌌다. 서해안 쪽을 알아봤는데 추천하는 곳들이 기껏 강화도, 변산반도 등이다. 강화도는 일찌기 거의 한바퀴 돌았고, 변산반도(내 고향이다)는 말할 것도 없었다. 안면도 이름부터 식상했으나.. 뭐 그래도 안가본 곳이었으니깐. 어쨌든 그렇게 안면도로 갔다.
오랜만에 떠나온 것. 그 자체가 너무 기뻐서 그냥 또 걸었다. 그런데 전의 혼자 떠났던 여행들은 모두 겨울이어서 무작정 걸어도 좋았건만 초여름에 그렇게 걸어보디 지레 지쳐버렸다. 더욱이 안면도는 솔직히 도보여행으로 적당한 곳이 아니었다. 해수욕장이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지만 다 똑같이 생겼고, 그 곁으로는 펜션들만 멀뚱멀뚱 있을 뿐이었다. 마을같은 것도 없고 그렇다고 박물관이나 유적지가 심심치않게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펜션. 더위에 지치고 그 식상함에 그나마 지쳐버리고 말았다. MT나 가족여행으로 해서 어디 짐을 풀고 바닷가에서 오붓하게 놀고 그러기엔 좋은 곳이지만 도보여행을 하기엔 좀 무리가 따르는 곳같았다.
그래도 계속 걸었다. 그 와중에 언제부턴가 어두컴컴해져 버리고 해안도로도 벗어나서 인적 하나 차 하나 지나가지도 않는 요상한 길을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타난 저수지. 그렇게 뜻하지 않은 것이 날 기쁘게 한다. 그냥 평범한 저수지였지만 온갖 식물들이 저수지 표면에 꽃을 피워대고 있던것, 그 옆을 홀로 걷는 기분. 감동까지는 아니었지만 괜찮았다. 사람은 그렇게 아무것도 아니지만 낯선 것을 마주하면 그 생소함 때문에, 내가 또 새로운 만남을 얻었구나 하는 것 때문에 기뻐하는가 보다.
그 와중에 후배가 종강노트표지를 만들어 달라는 요구 때문에, 전화를 씹었다는 죄책감 때문에 뭐라 하지도 못하고 안면도 PC방에서 부랴부랴 포토샵이랑 설치해서 표지까지 만들어 내고… 안면도 첫째날밤은 논두렁에서 잤다.
정말 피곤했다. 역시 저렴한 여행은 체력과의 싸움이었다. 그리고 더이상 안면도에 가볼만한 곳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서울행 표까지 끊어놓고 아침이나 먹고 가야지 했는데 식당에서 뜻하지 않던 사람을 만나버렸다. 바로 나를 기이하게 쳐다보더니 혹시 성대생 아니세요? 라는 물음. 도대체 나와 연이 닿은 것처럼 생기지 않았던 웬 아저씨. 그래도 안면도에 와서 처음으로 하는 대화였다. 그 아저씨는 내가 1학년때 아주 단기간(하루) 들렀던 동아리의 선배였다. 그 선배는 졸업생 신분으로 나름 개강총회에 참석한 것이었고, 나는 단 하루간의 방문이었지만 총회란 것에 참석한 걸 기억해버린 것이었다. 그래서 그 사람은 나를 동아리 후배인줄 알고… 어쨌든 뭐 어찌어찌해서 동행하게 되었다. 서울행 표를 환불하고 수목림을 들르고, 샛별 해수욕장까지 가는 그 짧은 동행길. 그 사람이 자기 식대로 막 여기저기 다녀서 마음에 안들기는 했으나 나름 즐거웠다. 뜻하지 않던 동행자를 만나 다닌다는 것이… 뭐 그 사람이 선배랍시고 차비도 내주고 밥도 사주고 그래서 좋기도 했지만… 그렇게 동행하고 서울행 막차를 타서 짧은 1박 2일의 안면도 일정이 끝났다.
***여행지 정보
가족/동아리 등의 집단이 펜션이나 민박을 잡고 놀기에는 적당하다 싶다. 시기를 잘 맞추면 갯벌체험 등의 이벤트도 즐길 수 있다. 조개 캐기는 좀 까다롭지만.
어디 짐을 풀지 않고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해수욕장 순례보다는 좀 수목림 쪽으로 걷고 그러면 뜻하지 않던 소박하고 생소한 것들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 무조건 해안가를 따라 걸으면서 그래도 뭐 나오겠지 하다보면 펜션만 줄줄이 보기 일쑤다.
수목림의 산책로 코스가 있는데 완전 등산이다. 그래도 꽃나무만 흘겨 보는 것보다 땀흘리면서 쾌청함을 느끼는게 훨씬 좋을테니 산책로 완주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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