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기에는 스포일러가 매우 많이 있습니다
써보고는 싶은데 쓰기는 좀 무서워지는 그런 리뷰군요.
영화 “시”입니다 .
좋은 작품성을 인정받아 웬만큼 좋은 비평과 리뷰가 나왔을텐데
헛소리하면 어쩌나 걱정도 되고
제 역량으로 감당이 될 작품인지도 잘 모르겠네요.
암튼 밑밥은 이 정도 깔았으니 충분할테고 (ㅋㅋㅋ)
“시” 로 들어갈볼까요?
멋쟁이 윤할머니는 시 라는 것을 접해보고
시 라는 것을 한번 써보고 싶습니다.
시 라는 것은 지고 지순한 아름다움의 결정체 같거든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멋쟁이 윤 할머니는 소녀다운 마음으로
시 라는 것에 한 걸음 내딛고 싶어져요.
그런데 자꾸 더러운 것들이 그녀의 옆에서 아른거리네요.
하나밖에 없는 손자녀석이 집단 성폭행의 가해자라 하고
또 가해자들의 학부모님들은 별 탈 없이 마무리 지으려고 돈으로 틀어막을 궁리를 하네요.
윤할머니는 이 더러운 것들과 멀어져야 해요.
윤할머니는 아름다운 시를 써야 하니깐요.
그래서 윤할머니는 돈을 구할 궁리도 별로 하지 않고, 가해자 대책위(?) 회의를 할 때도 번번히 꽃 보러 가고 딴청 피우기 일쑤지요.
그리고 윤할머니는 그 소녀를 동정하기 시작합니다.
성당미사에 다녀오고, 사건장소인 과학실에도 가보고, 집에도 찾아가보고, 자살한 장소도 가보고 심지어는 성폭행(?)까지도요.
이것은 일종의 슬픔의 위장술입니다.
윤할머니는 죄책감도 없이 훌라후프나 하는 손주녀석이나 피해자쪽은 생각치도 않고 자기 자식 걱정만 하는 부모들과는 다른 사람이라는 거죠.
그리고 이런 슬픔의 위장술이 그녀에게서 죄책감을 덜어주고, 더러운 것에서 피하게 할 수 있으니깐요.
이렇게 더러운 현실에서 멀어져서 착한 존재 그리고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하는 존재가 되어야 시를 쓸 수 있으니깐요.
이런 행동은 일종의 ‘허세’ 와 같습니다.
싸이월드에서 맨날 쎈티멘탈과 생사를 오락가락하는 듯한 메세지를 남길때 “허세 쩌네!” 하는 그 허세요. 문학에서는 자신의 감정을 극도로 극단화 시키거나 과장해서 표현하는 그런 허세요.
그런 허세는 기존 시에서도 아주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아름다움만을 그린 시는 이제 누구도 쉽게 유치하다는 것을 아니깐
전문 시인들이 잘 쓰지 않는데요.
특히 전문 시인에게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는 허세는… 도인이 된 듯한 허세랄까요
마치 다 깨달았다는 듯 자연의 무한함을 찬양하고, 자신은 자연과 하나인 듯하고, 소유의 덧없음을 말하고, 노장사상에서 컨셉을 조금 베껴 온 그런 허세지요.
진실로 어느 정도는 그리 느끼는 순간이 있을지라도…
그런 허세는 글쎄요.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말을 하긴 쉬우니깐요.
어려운 건 현실 그리고 행동이죠.
어쨌든 다시 윤할머니.
윤할머니는 그렇게 현실에서 떨어져 나와서 열심히 시를 추구하는데
어? 이상하다? 시가 써지지가 않네요.
여기서 시라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쉽게 문학 및 예술은 순수해야 한다. 정치색이 들어가선 안된다
뭐 그런 논쟁이 80-90년대에 있었는데요.
저는 순수예술 및 순수문학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해서도 회의적입니다.
예술은 어떻게든 현실 위에 곧바로 서 있는 것이지, 예술이 어떻게 자기 혼자 떨어져 존재할 수 있답니까?!
만드는 것도 현실, 읽히는 것도 현실인데요.
제 생각에는 시 라는 것은
‘현실 위 이 몸뚱이가 토해내는 말’ 인 것 같아요.
갖은 수사적 미학은 그 말 위에서 행해져야지
수사가 몸뚱이를 점령하면서 ‘순수’ 를 주장해서는 안되는 것 같아요.
그렇게 윤 할머니는 현실과 거리를 둔 채
아름다움을 추구하지만, 시는 결국 써지지가 않고 고심하다가요.
피해자의 어머니와 부동산 사무실에서 만납니다.
윤할머니는 가해자의 할머니로
피해자의 어머니는 피해자의 어머니 그대로.
윤할머니는 그녀와 마주할 수가 없습니다.
윤할머니가 피하려고만 했던 자신의 죄책, 그리고 피하려고 한 그 몸부림 자체도 모두 죄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거든요.
그녀는 뛰쳐나옵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순수함을 위해 성폭력까지도 체험하게 했던 그 할아버지한테서
돈을 뜯어내죠. 그리고 손자를 경찰에 넘깁니다.
윤할머니는 이제 자신이 책임져야 할 것, 그리고 자기 자신이 안아야 할 죄를 받아들인거죠.
그리고 그날 밤에야
그녀의 시가 쓰여집니다.
그녀가 진정 현실위에 바로 서서, 피해자를 볼 수 있게 됐거든요.
그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했거든요.
그래서 그녀가 쓴 소녀의 시는 이제 허세가 아닐 수 있습니다.
내용외의 이야기를 좀 하자면
정말 완성도가 탁월한 영화였습니다.
꾸민듯한 그리고 만들어 낸 듯한 효과가 거의 없었어요.
보통 젊은(?) 감독들이 미장센 효과를 줄 때는 그것을 연출한 티가 납니다.
아, 저 화면구성을 위해 이렇게 카메라를 무빙시켰구나.
아, 캐릭터를 드러내기 위해 저런 미장센을 취하는구나.
그것을 맞추는 재미 또한 퀴즈 같아서 재미가 쏠쏠하죠.
특히 박찬욱 감독은 그런 퀴즈를 많이 내줘서 좋아하는 편이기도 해요. 거기다가 답이 보통 명확하기도 하구요.
그런데 이창동 감독의 “시”는
곰짚어보면 화면구성, 미장센, 상황묘사 등등의 디테일이 너무 완전해서 영화 속에 모두 녹아들어가 버렸어요.
퀴즈를 찾을 수조차 없습니다. 찾는다하더라도 답이 이건가, 저건가 싶습니다. 다 연결되어있거든요.
그냥…. 아…. 역시 거장인가 싶었습니다 ㅠ
( 그렇다고, 미장센 퀴즈를 내는 감독들이 덜 숙련됐다는 뜻은 아니에요. 그냥 스타일이 다른거죠.
근데 요즘 제게 이런 스타일에 좀 꽂혔나봐요 )
PS : 제가 2010 최고의 한국영화를 뽑으라면 “시” 를 뽑겠습니다. 그런데 최신영화를 못본 게 많아서 그리 선택의 폭이 넓진 않았습니다 ㅋㅋ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