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역까지는 꽤 먼줄 알았지만 3호선은 그날따라 빨랐다. 내 면저시각은 10시 15분이었는 이 속도로 간다면 9시 조금 넘어서 도착할 것 같았다. 나는 서둘리 예상문제들을 훑어봤다.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영어 자기소개를 시키면 어떡하지 하는 것과 그래도 내 전공학과가 독어독문학과니 독일어를 시키면 뭐라하지 하는 걱정과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영어는 다들 잘 할테니 그냥 따로 준비를 해오지 못한다고 괴기면 될 텐데. 독일어는 어차피 잘 알아듣지 못할테니 막 이것저것 씨부려볼까? 근데 뭐라고 씨부리지? 쥐어 짜보니
- Mein Name ist ***.
- Ich Komme aus ***.
- Ich Studiere Deutchesprache und Literature in *** Universitaet.
라는 세 문장만 생각났다. 그리고 Auf Widersehen ! 이란 마지막 인사. 아, 4년동안 대학 등록금을 삼성에 기부만 했구나! 저 앞의 문장은 사실 고등학교때 배운 게 아니던가. 하는 여러모로 잡생각들과 함께 양재동에 도착했다.
버스가 생각보다 일찍오지 않아 시간이 조금 지체됐으나 아직 여유는 있었다. 코이카 훈련센터에 도착하니 9시 30분 정도.
좀 놀랜 것은 드문드문 있는 화살표를 따라 들어갔긴 들어갔는데 1층에 들어가니 무슨 박람회처럼 생긴 아프리카 문화 체험 전시 같은 것만 있고 아무도 사람이 었었던 것이다. 면접자 안내사항에 보니 5층 대강당으로 오라는 했는데, 건물을 아무래도 잘못 들어갔나 싶었다. 어쨌든 그냥 엘르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올라가보니 거기서부터 면접 진행요원(?)들이 있었다. 대강당에 들어가보니 이미 지원자들이 대강당의 2/3는 매우고 있었고, 각기 뭔가를 열심히 풀고 있었다. 인적성검사였다. 나도 인적성검사 시험지와 OMR 카드를 받으면서 지원자들을 쓰윽 훑어봤다. 20대 중반 이후부터는 대게 정장을 그 이전은 대게 새미정장을 입고 있었다. 면접때 은근히 신경쓰이는 게 옷차림이나 헤어스타일 같은 것이었다. 특히 학교면접도, 입사면접도 아닌 봉사면접이라서 뭘 입고가야하나 고민이었다. 그냥 NGO 봉사단체였다면 깔끔하게만 입고가면 될 것 같은데, 코이카는 그래도 외교통상부 산하기관인지라 뭔가 관 주도의 보수적인 분위기가 아닐까? 하는 의상 선택에 관한 여러 잡생각들. 그래서 결국 그날 내가 선택한 것은, 청파지, 셔츠, 자켓. 정장이 마땅한 게 없었던 탓이었다. 그래도 쓰윽 훑어보니 그다지 잘못된 선택은 아닌 듯 싶었다. 나와 비슷한 컨셉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인적성검사지를 받아들고 자리를 찾아 앉았다가 면접 준비를 해볼까, 아님 인적성 검사를 풀까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인적성검사를 풀기로 했다. 따로 준비해봤자가 아닐까 라는 생각과 귀찮음 때문에. 면접은 모두들 각자 자리에서 인적성검사지를 풀다가 부르면 3명씩 나가서 보고 오는 것이었다. 대충 30문제 정도 인적성검사를 풀었을 때, 나를 포함해 3명을 불렀다. 가면 목소리 크게 내야지 라고 되내이면서 면접실 쪽으로 갔다. 왜냐면 가끔 난 사람들이 다 들릴 정도의 목소리겠지 하고 내면, 사람들이 도무지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할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알았던 것은 군대에 있을 때였는데, 무슨 군 생활 감상기 같은 발표대회가 하나에 나간 적이 있었다. 나는 전경이라서 부대에서 하는 뭐 그런 형태가 아니라 경찰서장과 간부 경찰들 글리고 전의경 대원들이 모여서 하는 그런 행사였다. 그때 마이크를 쓰고 말하는 거라 대충 이 정도 목소리면 낭랑하게 울려퍼지겠지 하고 감상문을 읽었는데, 끝나고 나니깐 다들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하나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아, 충격! 경찰서장이 끝났을 때 요즘 젊은이들은 사기충전이 제대로 안된 것 같다는 얘기가 괜히 나온게 아니었구나를 깨달았던 나름 치욕(?)의 순간이었다. 근데 그런 적이 예전 학회 발표회 때에도 한번 있었다. 나는 분명 이 정도면 꽤 큰 목소리다, 라고 말하는데, 안 들렸다는 것이다. 아마 목소리도 목소리겠지만 발음이 좋지 않은 탓도 크리라. 아 비염.
어쨌든, 이번엔 목소리를 크게 내보자 하면서 면접실 앞에 앉았는데 좀 긴장됐는지 심장의 펌프질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겨우 이런 면접에 이래선 안돼지 하면서 진정을 시키려는 와중에 나를 불러냈다. 들어가 앉자마자 자기소개 한번 해보세요 라는 요청. 앉자마자 시키는 자기소개에 당황하면서, 뭘 말하지 하는 순간 입은 이미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봉사정신이 투철한 의지의 청년으로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이름도 말하지 못하고 ‘정말’ 횡설수설을 했다. 심사관들은 새로 들어 온 지원자의 자기소개서를 훑어보느라 그리 집중하지 않은 게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바로 맨 왼쪽에 있던 30대 중반의 남자가 직무적성을 보겠으니 책상위에 놓인 항목 중 두가지를 택하라고 했다. 1) 오피스 프로그램 2) 개발 프로그램 3) 하드웨어, PC 4)웹 프로그래밍 같다. 오피스 프로그램 외의 2,3,4 는 모두 내게 생소한 것이었지만 그래도 ‘객체지향’ 이란 걸 알아뒀으니 1과 4를 택했다.
- 엑셀의 피벗 테이블에 대해 말하시오
- 엑셀의 Count IF 함수에 대해 말하시오
- 엑셀의 시나리오 기능에 대해 말하시오
- 서버언어와 클라이언트 언어에 대해 설명하시오
- 상태표시줄에 메시지를 표시하는 윈도우 프로그래밍 명령어는 ?
- 플로피 디스크의 섹터구성에 대해 말하시오
- 윈도우 가상 메모리를 말하시오.
오피스 문제는 거의 아는 거였으나 말로 설명을 하자니 난감해서 약간 횡설수설했고, 웹프로그맹과 일반 컴퓨터 분야 문제는 거의 모르는 것이었으나 대충 이게 아닐까 하는 식의 추측을 남발했다.
낙담할 틈도 없이 바로 “인성면접”을 보기 시작했다.
- 전공분야가 아닌데 컴퓨터 분야를 지원한 이유는?
- 현지에 가게되면 정말 생각했던것보다 힘들텐데 봉사단에는 왜 지원하는가?
- 2년이란 시간동안 한국을 떠나게 되 있을텐데 향 후 진로계획은?
- 자기목표가 뚜렷한 편이고, 준비할 것도 많을텐데 2년의 기간이 걸림돌이 되진 않겠는가?
직무적성 면접관은 직무 관련 대답할 때 ‘어 저 대답이 아닌 것 같은데’ 하는 시크한 태도를 보여줘서 좀 의욕을 상실했었지만,인성면접할 땐 그냥 대화하듯이 얘기해서 왠지 느낌이 좋았다. 그리고 내 주특기인 생글생글 웃으면서 말하기로 일관했던 게 왠지 인성면접관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줬을 거라는 나만의 자기 위안이랄까.
돌이켜보면… 내 지망국가였던 ‘세네갈, 우즈베키스탄, 에콰도르’를 좀 고려했던 것 같다. 세네갈을 지원했다라… 그 쪽은 예상보다 많이 힘들텐데 라는 말을 했을 때, 지원국가를 선택할 때 정보가 없어서 고민을 많이 했지만 기왕이면 더 새로운 곳, 더 많은 것을 겪을 수 있는 곳을 택했다고 했을 때 인성면접관이 제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던 것 같아서?!
어쨌든 객관적인 결과를 놓고 볼 때 직무적성면접은 망쳤고, 인성면접은 만족스러웠다. 이제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하면서 면접실을 나왔고, 남은 인적성 검사를 풀었다. 인적성 검사는 그냥 예, 아니오로 대답하는 건데 성격과 위험성 정도를 보는 것 같다. 기억나는 문제는
- 나는 새로운 곳에 갔을 때 잘 어울린다.
- 나는 가끔 귀신을 본다.
- 우리 가족들은 나만 없으면 더행복할 것이다.
는 등의 문제들이 약간씩 중복되면서 100문제이다. 근데 정말 푸는 게 지겨웠다. 사교적으로 결과가 나와야 코이카가 만족할텐데, 라는 유혹을 떨쳐내긴 어려웠고 그렇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다는 심리적 갈등도 있는데다가, 나왔던 문제가 똑같이 나오면 동일하게 답을 해야만 되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판정오류 로 인해 실격 처리가 될 수도 있다고 했으니.
그렇게 면접, 인적성검사까지 다 치루고 나오니 11시가 넘어있었다. 돌아올 땐 버스를 탔는데, 버스를 타는 내내 직무적성검사 예상답안을 만들어 볼 걸 이란 후회가 감돌았다. 그래도 끝내놓고 나니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되겠구나 하면서 마음이 후련해졌다. 객관적인 상황은 좋지 않았지만, 뭔가 느낌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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