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기가 필요했다. 2003년 겨울과는 또 다른 2004년 겨울이었다. 2003년 겨울이 내 스무살이 그냥 넘어가는 것이 너무 서글펐고, 무엇이든 막연한 것들에 대해서 공허함을 느꼈다면 2004년 겨울은 생각해야 할 것이 너무 구체적이어서 괴로웠다. 그것들이 내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것만 같은데, 내가 선택하는 것인지 사람들이 그렇게 선택하게끔 만드는 것인지 알수가 없었고, 3학년이 된다는 것과 군대문제도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그래 떠나자.
그런데 이번에는 좀 계획을 잡고 떠나보자, 고 생각했다. 모르는 길을 걷는다는 것도 좋지만, 해안가를 마냥 바라보는 것도 좋지만 나는… 번지점프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섬에도 한번 가보고 싶었다! 그래서 계획을 잡았다. 대천으로 가서 안면도를 갔다가 청주를 갔다가 제천을 갔다가 서울로 가자. 지도상으로보면 삼각형을 그리고 있는… 대략 차비도 그리 많이 안들면서 가볼만한 곳 다가보는 코스라고 생각했다.
대천해수욕장에 도착하니 거의 저녁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바다가 참 좋았다. 좋아서 한참을 보았지만… 추웠다. 사람도 별로 없었고 뭐 그래서 전에 그랬던 것처럼 무작정 걸었다. 걷다가 길 한편에 세워진 자전거를 보았다. 앞에 주머니가 달려있는 주로 아주머니들이 애용하는 자전거가 묶여있지 않아 얼른 타고 돌아다녔다. 이보다 더 좋을수가! 산길 비슷한 데를 다녔지만 걷는 것보다 무서운게 훨씬 덜했다. 그렇게 막 쏘다니다가 가장 허름해보이는 여관(쌀 것 같아서)에선가 잠을 잤다.
계획에 따르면 안면도였지만, 너무도 자주 들어본 섬 이름이어서 오히겨 그게 싫었다. 그래서 원산도인가 하는 곳으로 갔다. 가보니 정말 조그만 섬이었고 섬을 찾는 관광객은 없었다. 그저 조금 걸었더니 해안이 화악하고 펼쳐지는데 그 해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 혼자였다! 갑작스럽게 얻게 된 ‘나만의 해안’ 이 너무 좋아서 혼자 별 쑈를 다했다(춤까지는 안췄지만 그 정도의 것들을…;;). 외진곳을 방문한다는 즐거움 중 이런 것이 있구나 했다.
청주에 있는 친구 자취방에서를 자고 바로 제천으로 향했다. 제천 청평랜드에 국내 최고 높이의 번지점프를 하는 곳이 있다고 해서였다. 청주에서 제천으로 기차를 타고 가는데 충청도란 곳 생각보다 외진곳이 많았다. 내 고향인 전라도가 더욱 산업화(?)가 덜 되었고, 인구도 훨씬 적겠지만 전라도는 너른 평야라서 좀 허전한 기분은 덜했는데 충청도는 기찻길 사이로 첩첩산중(물론 강원도보단 훨씬 덜하겠지만)인데다가 인적도 정말 없어서 솔직히 좀 무서웠다. 만일 갑자기 이 역에서 확 내려버린다고 한다면 정말, 정말 무섭겠다 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런 기분은 청평랜드로 가는 시내버스를 타면서 부터 더했다. 그…. 뭐랄까? 가로등 불빛하나 없고, 농가하나 없고,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기분이라니… 어쨌든 그러한 곳에 청평랜드가 있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찾아가기에는 좀 번거로운 곳이다. 30분정도 기다리면 된다는 버스를 1시간이 넘도록 기다려서 겨우 타고갔다. 그리고 그 곳은 생각보다 랜드라고 부르기에 좀 초라하다고나 할까? 사람도 없고 뭐 그랬다… 하지만 국내최고높이라니깐. 하면서 어찌어찌하여 번지점프를 했다. TV에서 보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상상하길, 그 벼랑끝에서 숨을 겨우 고르고 고르면서 온갖 세상만사 다 생각하고 내가 뛸 수 있을까 없을까 수없는 물음으로 가득 채우고 그런 가파른 긴장을 탈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럴 겨를조차 없었다. 번지점프를 안했다고 랜드측에서 환불을 해야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어쨌든 손님이 안뛰고 울고불고 하면 서로 찝찝할 것은 마찬가지이어서 그랬던지 뭐 …가파른 긴장의 순간을 안줬다. 딱 엘르베이터 내리자마자 서고 , 바로 포! 쓰리! 투! 원! 번지! 를 해서 정말 엉겁결에 뛰도록 만들어 버린다.
하지만… 좋았다. 그 순간! 가슴은 쿵쾅쿵쾅하는데 몸은 슬로우비전의 영상인 것처럼 땅과 점차 가까워지고 있다는 느낌. 땅이 내게로 다가오는 듯한 느낌. 몸이 어느곳에도 기대고 있지 않고(물론 줄에 매달려 있지만) 허공위에 부유하고 있다는 느낌. 또한 어느 연예인은 울고불고 했었는데 나는 국내최고 높이를 단숨에 해냈다는 그 성취감까지!
두번째로 홀로 떠났던 여행. 첫번째 때는 거의 도보가 유일한 여정이었는데, 이번에는 배도타고, 자전거도 타고, 기차도 타고, 도시만 해도 보령, 청주, 제천 등등으로 왔다갔다, LOMO LC-A로 막 찍기도 하고, 번지점프도 하고, 중간중간에 친구도 보고 좀 숨가쁜 여정이었다.
그래도 내 나만의 해안에서 용기를 얻었다. 사는거 뭐 그렇게 까다로운게 있겠어? 그저 파이팅! 하면 그만이라지 하고, 번지점프도 하고 그랬더니 일상으로의 회귀가 두렵지 않았다. 용기를 준 내 두번째 소중한 여행이었다.
***여행지 정보
그저 조그만 섬일 뿐이지만 원산도는 한적한 곳을 걷길 좋아하는 여행객들에게 좋은 추억을 마련해줄것이다. 겨울이라 그런지 유독 사람이 없었지만 여름에는 사람이 좀 있을법도 한 곳. 사람없을 시즌에 가는 것을 추천.
청평랜드는 대중교통이 불편하고, 제천 주위에 다른 들를만한 곳도 마땅치 않은것이 좀 아쉽다. 그러나 국내최고 높이의 번지점프를 살면서 한번 해봐야지 않겠냐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기꺼이 찾아가 볼 것. 번지점프 외에도 고공 놀이기구(?) 몇개가 좀 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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