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예뻤을 때-공선옥] 지난 시절에의 감회

*** 개인적인 경험

나의 대학시절.

잔디밭에서 통기타를 들써앉고 막걸리를 마시던 낭만적인 기억도 별로 없었고
정권의 폭압 때문에 애꿎은 희생을 당했던 분통한 이야기도 별로 없었고
어쩜 저리 우수을까 싶은 용암물(?)처럼 끓던 애틋한 로맨스도 별로 없었고
전 재산과 목숨까지 다 바쳐 동기선후배를 지키려고 했던 의리도 별로 없었고
못 이길 가난 때문에 상처받던 누군가의 가슴 애달픈 이야기도 별로 없었다.

그냥 없었다가 아니라
‘별로’ 없었다 인 것은
유사한 경우는 있었기 때문이다.

잔디밭에서 통기타를 들써앉고 막거리를 마시진 않았지만
잔디밭에서 맥주 몇 잔을 마셔보긴 했고

정권의 폭압 때문에 애꿎은 희생을 당했던 분통한 이야기는 없었지만
누군가 연행되었다가 훈방으로 혹은 벌금형으로 풀려나긴 했고

어쩜 저리 우수을까 싶은 용암물(?)처럼 끓던 애틋한 로맨스는 없었지만
나름(?) 애틋했던 연애들은 주의에 널려 있었고

전 재산과 목숨까지 다 바쳐 지키려고 하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 서로를 위해주는 의리는 있었고

못 이길 가난 때문에 상처받던 누군가의 이야기가 엄청나게 애달픈 것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가슴 아픈 사정이긴 했다.

이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유사한’ 경우의 상황들에서
나는 ‘진짜 80년대’에나 느낄 법한
느낌과 감정상태를 가지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도 ‘이래봤다’ 라는 인정상태에 오르고자 노력했던 것은 아닐까?

그건 어떤 그리움이었다.
그 ‘그리움’은 유별나게도 겪어보지도 못한 것들에 대해 ‘그리움’을 느끼고 있었고
그래야만 하지 않을까 하는 어떤 당위도 가지고 있었다.

뺀질나게 “내가 대학시절에는 짱돌과 쇠파이프와 최루탄이…” 라고 이야기하던 아저씨들 때문이었을까.
대학 시절의 상투적 이미지로 굳어져버린 것들을, 나도 겪어봐야 추억이라도 남을 것이다 라는 내 욕심 때문이었을까.

지금 돌이켜보면
내 대학시절은 노스탤지어를 찾는 몸부림이었던 것도 같다.
그 노스탤지어에는 일명 386세대가 곧잘 말하는 대학시절의 이야기가, 영화 “박하사탕”의 이미지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고
나는 그 곳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때라고 해봤자 90년대도 아니고, 21세기였던 걸 말이다.
어찌보면 참 우습기만 한 내 순진함이다.

21세기에 20대를 사는 내 이야기는 잃어버리고
80년대 이야기에 자기 동일시를 해 버린 것이다.

*** 작품

80년대 대학가에 일어나는 온갖 상투적인 이야기들이 다 담겨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애달픈 첫사랑, 사생아를 낳는 친구, 얽히고 섥힌 삼각관계, 폭력이 난무하는 밑바닥 가정
야학, 위장전입하는 운동권, 각성하는 노동자, 공장 여공의 현실, 공권력의 폭력, 고문 후 군대가서 의문살해당한 남학생, 최루탄에 맞아 죽는 아이

등등..

너무 잔인한 이야기이지만
그것들이 주는 울림이 커서 그러했던지
그것들은 너무 자주 봐온 것들이기도 하다.

영화 “박하사탕” (헛, 더 생각은 안나네?!)
황석영, 공지영, 임철우의 소설
온갖 시들…

그런데… 공선옥의 작품에서 저 전형적이고 상투화 된 이야기들이 나오는데도
가슴이 찌릿찌릿하다.

그건
예전 이야기를 하는 자로서 “가오다시”를 잡거나
지나치게 착하게 굴면서 “애걸복걸”하는 일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공선옥의 작품에서
이 찌린내나는 현실은 지긋이… 풀어져 나온다.

눈물 흘릴 구석도 그리 많지 않고
분노로 주먹을 불끈 쥘 구석도 별로 없었다.

제목처럼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이런 일이 있었지요.
그 기억을 추억으로 간직해보려 해요

라고 그냥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그래서, 별 부담감도 없이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내 대학시절을 한번 돌이켜도 보았고

앞서 펼쳐놓았던 온갖 감회도 함께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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