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의미를 자기 규정해야만 하는 혹독한 자유를 선포한 것이 근대이지만, 정령 거리로 쏟아져 나왔던 것은 자유로운 개인이 아닌 제국주의 또는 식민지의 국민들이었다. 그런 제국-식민지 시대 속, 제국주의 국민들의 내면을 섣불리 판단내릴 순 없겠지만, 식민지 국민 혹은 식민지 개인의 풍경에, 우린 매우 익숙할 것이다. 현재까지도 자욱을 이따금씩 드러내곤 하는, 다소 상투적이라고 생각해봤던 그것. 그런 상투성 속에, 우리 역사속의 김구가 갇혀있지는 않은가 생각해본다. ‘조국독립을 위해 이 한 몸’ 바쳤던 역사적 영웅이자 위인이란 사고의 틀 속에 ‘왜?’ 라는 이유가 빠져있는 것도 같다. 또한 한국사의 정점에 위치했던 김구가 방향했던 목표지점은 어디였던가. <백범일지>라는 자전적 기록의 면면들을 전형적 위인전이 아닌, 다중의 텍스트로 본다면, 죽어버린 위인 김구는 살아있는 개인 김구로 볼 수 있는 여지가 필자는 있다고 생각한다.
가지를 잡고 나무에 오르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니지만,
벼랑에 매달려 잡은 손마저 놓는다면 가히 대장부로다.
위의 대장부가 바로 김구가 지향하는 삶이지만, 위의 모토에서 풍기는 대담한 결단력이 김구를 어디로 방향하게 하였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릴 적부터 동학접주로 활동하고, 의병에 참가하는 등 자부해도 될 만큼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김구에게 자주독립국가라는 이상(理想)은 근대적 사고체계에서 이뤄지기 보다는 오히려 봉건적인 사고체계안에 놓여있었다. 김구 인생의 커다란 전환기가 되는 스치다의 살해 계기는 ‘국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이 왜인을 죽였노라’ 였다. 사실상 스치다란 개인의 그 어떤 악행도 김구는 목격한 적이 없다. ‘여하튼 칼을 차고 숨어 다니는 왜인’ 이기 때문에 ‘국가와 민족에게 독버섯’으로 생각되었던 것이다. 또한 김구 자신이 의병을 떠나기 이전에 일제에 의한 일가와 개인의 수난 등. 직접적인 계기 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김구에게는 조선의 쇠락과 수모가 꼭 자신의 쇠락과 수모로 등치되었던 것이고, 자신을 조선의 대장부로 위치짓고 있었다.
김구는 어떤 이론적 학습에 의해 결단하기 보다는 그의 인생과 맞닿아 있던 여러 가지 체험들로부터 자신의 가치체계를 정립해왔다고 할 수 있기에, 1870년대에 태어난 김구가 봉건적 사고체계 안에 놓여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무작정 봉건성이라는 딱지를 붙일 수만은 없는 것이, 김구는 아직 봉건적인 사회 속에서, 양반과 상놈의 구별없는 사회를 꿈꾸고 있었다. 동학에 입문하게 되었던 것도 신분차별 없는 새 세상이 그의 마음과 맞았기 때문이었다. 단문으로 요약하자면, 치하포 사건까지 김구는 조선의 계통을 이으면서, 신분차별 없는 독립된 공동체를 꿈꾸었다.
김구의 사고의 전환기가 언제인지 정확히 추정할 수는 없지만, 위의 목표문장에서 조선의 계통을 이으면서는 괄호를 치게 된다. 김구에게 조선이란 외연이 없어진 연 후에도, 그가 공동체를 위한 ‘대인배’로의 길을 접지 않았던 것은 민족이란 외연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민족은 어떻게 서는가. 그것은 바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핵심적 활동을 했던 것처럼 근대적 국가 체제라는 형식으로 귀결이 되는 것인데, 김구는 오로지 외세에 의존하지 않는 우리 민족끼리라는 생각으로 근대적 국가 체제 앞에 괄호 쳐진 ‘서구 자본주의적’ 이란 엄청난 수식어를 놓쳐버리게 된다. 사회주의 운동 진영을 도외시 혹은 냉대하면서 중도 우경향을 취하는 것이다. 김구는 제국주의의 간섭에서 벗어난 한국의 실현이 모범이 되어, 전 세계 모든 국가가 그렇게 되도록 하자라는 사해 동포주의적 사고를 보이기도 하지만, 우선 우리 민족부터 라는 선후관계가 확실하였고, 그 실천적 방향은 이미 자리잡고 있는 자본주의적 근대성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상황은 이제 막 봉건에서 서구 근대성과 접점을 형성하기 시작한 한반도라는 공간적 배경. 그리고 그 속에 놓인 김구가 조금은 편향적인 활동 모습을 보이는 사회주의 운동진영을 대하면서 이미 예고되어 있었던 것이다.
김구를 봉건성의 자장 안에 놓아보고, 좌우의 스펙트럼 안에 가두어 봄은, 결국은 한계적인 중도 우익적인 인물이었다는 단정을 내리기 위함이 아니다. 그것은 ‘민족의 지도자’ 라는 수식어가 종종 붙여지곤 하는 김구라는 인물을 조금 더 선명하게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다. 우경향을 취했다고 해서 그것이 어떤 흠집이 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좌경향이든, 우경향이든 그것이 흠집이 되는 것은 그런 정치성이 사사로운 이익과 결부되어 있거나, 누군가에게 폭력을 행사하였을 때라고 나는 생각한다. 헌데 김구는 기이할 정도로 자신의 직접적인 현실문제와 관련없는 대장부정신 하나로 인생을 살아온 것만 같다. 우선 <백범일지>에서 보이는 바에 따르면 말이다. 어떤 객관적 자료조사도 없는 상태에서, 추측으로 김구란 한 인물에 대해 평가를 내린다는 것은 엄청난 폭력이 될 것이다. 필자가 <백범일지>에서 본 김구의 풍경은, 그래서 여기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