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워낭소리를 이제야 보는군요.
암튼, 독립영화 사상 최고의 흥행과 최고의 스캔들을 불러 모았던 그 논란의 작품입니다.
뭐, 기사에 나왔던 수익분배를 어떻게 할 것이냐
이런 문제는 별로 중요한 문제같지는 않아요.
그 당시, 기자들이 왜 이 문제를 그렇게 집요하게 파헤쳤는지… 참 얄밉기만 하네요.
좀 이야기거리가 될 만한 논란은
워낭소리에 독립다큐의 진정성이 얼마나 묻어있는가에 관련한 문제였을 것이에요.
독립다큐에 그다지 접근해 본 적이 없는 저와 같은 일반 관객들은 이미 TV에서 주로 나오는 ‘인간극장’ 류의 다큐에 익숙해져 있을텐데요.
TV에서 주로 나오는 다큐는 극적인 요소가 상당히 많이 개입되어 있다는 데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이를테면, 슬픈 구간에서 슬픈 BGM을 촤악 깔아놓고, 인물 클로즈업을 싸악~ 해주고… 하는 등의 연출법 같은 것들이죠. 또는 더 심하게는 제작자가 본 상황과 맞지 않게 영상을 짜 맞추어,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 버릴수도 있고, 다큐 대상자에게 어떤 행동을 요구할 수도 있겠죠.
그렇게 될 때, 극적인 다큐의 목적은 이제 대상자로부터 어떤 이야기를 끌어내는가가 되겠지요?
이에 반해 독립다큐는 이와는 달리 정말 진실성을 간직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이건 뭐 누가 딱 못박은 것은 아닌데요.
한국 독립 영화/다큐의 정의가 역사과 맞부딪혀 오면서 형성되었기 때문이랄까요?
한국 독립 영화/다큐의 태생과 발전은 독재 정권과 민주화와 맞서 싸우던 전투적인 조건이었습니다.
90년대 후반에 나왔던 “파업전야” 같은 작품도 상영자체가 불법이어서, 학교에서 틀 때라도 정문에서 학생들과 경찰들과 전투를 치루면서 작품을 봐야 했다고 하더라구요.
특히나 암울한 시대속에서 독립 다큐는 대중 매체와 언론에서는 절대 다루지 않는 이야기들을 현장에서 싸우는 사람들과 함께 싸우면서… 찍고, 상영하고… 그랬을 테니…
독립다큐라는 정의 자체가 묘연하긴 하면서도
독립다큐로서 지켜야 할 가치들이…. 요구되는 것이겠지요.
(근데 저도 잘 몰라요… 얼핏 듣고, 얼핏 읽은 것들입니다)
워낭소리는 그리 볼 때 여러 의심을 살 수 있는 촬영화면들이 꽤 있는 것 같아요.
소가 눈물 흘리는 장면같은 것이나 시위 장면 앞을 지니가는 소
크레인을 써서 촬영한 씬들이나… 하는 것이지요.
아마.. 크레인등의 장비를 쓰고, 2년간의 촬영씬들이 모였다면…
그것을 조금만 조합해서 어느 정도 감정을 극대화시켰던 것은 아닐까 하는 진실성에의 의심이 생기게 되는 것이지요.
근데… 전 여기에 대해서… 판단을 잘 못내리겠습니다.
제가 독립영화와 독립다큐를 그리 많이 본 것도 아니고, 따로 공부를 한 것도 없고, 제작해본 것도 아니고… 저는 아직 그런 것 왈가왈부 할 자격이 없는 것 같아요.
근데… 그냥… 제 마음이 가는 것은
제작자를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감정을 극대화 했던 것 같지는 않구요.
딱히 이것저것 뒤섞어서 조합했더라도, 할아버지 할머니가 느끼는 감정, 소가 느끼는 감정을 다르게 해석한 것 같지는 않거든요…. 물론 뭐 소의 감정을 인간이 어찌 알겠습니까만은.
전 암튼..
워낭소리를 정말 정말 가슴 아리게 봤습니다…
소를 너무하게 다뤄서 감정이입이 잘 안된다는 비판도 꽤 있는 걸로 아는데…
뭐 할아버지와 소의 관계가 그런데 어찌하겠습니까.
그리 비판을 할 것은 아닌 것 같아요.
그 늙은 소를 어떻게 그리 험하게 다룰 수 있느냐는 비판은 그리고 조심할 필요가 있어요.
애완견을 키우는 환경과 생업환경에서 동물을 키우는 환경은 이해하는 잣대를 좀 달리 해야 합니다.
애완견은 기를 조건이 되는 사람이 순전히 인간화한 동물을 반려자로 키우는 것이지만
할아버지의 소의 경우에는 그런 것이 아니잖아요.
암튼, 암튼, 암튼
할아버지와 소가 교감하는 그 특이한 방식이
한국 농촌, 한국인, 늙음과 죽음
을 아주 제대로 포착했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보는 내내 가슴이 너무 아렸습니다.
PS: 워낭소리 촬영장을 놀러가셔서 무례를 저지르는 분들이 꽤 있다고 하던데요. 거기 그리도 가고 싶을까요? 워낭소리에 담긴 현장은 한국의 시골 어디에도 널린 걸로 생각되는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