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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픽션다이어리-정윤석] 90년대 중후반의 재구성 그리고 죄와 벌

    90년대 후반 –

    내 나이가 그때 – 중학교때 정도 됐을 때인데 –

    시대의 흐름을 읽을 수 있을리 없다.

    사실 난, 중학교 동창들 중 대다수를 우연히 만나게 되면 –

    쟤가 아는 애인긴 한데 – 그래서 얼굴이 익긴 한데 – 나랑 어떤 관계였던 거지?

    친했던 건가 ???

    라는 무지막지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는데 –

    이것저것 사회적 이슈와 그에 반응했던 나의 기억을 온전히 지니고 있을 리 없다

    그래도

    지존파,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사건은 기억하고 있는데

    그 파장이 너무 컸던 지라

    사건 후에도 끊임없는 설교와 강론 들이 이어져서 그랬지 않나 싶다.

    난 고등학교때까진 거의 신문, TV 뉴스들도 일체 (재미없어서) 안 보는 그런 평범한 아이였기 때문.

    논술 대비 세대가 아니어서 그랬다 할까 ㅎㅎㅎ

    ( 그러나, 내 대학입시 직전에 논술이 생겨, 대학교 들어갈 때 논술을 쳤다… 쿨럭 )

    암튼 사건 후에

    교과목 선생들도 한마디씩 코멘트를 날리고

    학원선생도 한마디씩 코멘트를 날리고 했던 것이

    내 안에 쌓여서 –

    당시에 충격받았던 사건이었지만, 충격받은 것처럼 생각되기도 하고 그런 것 같다.

    90년대 후반에 대한 다큐를 보다보니

    그냥 잡생각이 많아져서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잡설들만 – 주저리주저리 했구나..

    어떘든 – 이 다큐를 보니 –

    내 기억속에 이름과 이미지로만 남았던 것들

    지존파는 그냥 조직폭력배.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는 그냥 부실공사가 원인이었던 것.

    들이 입체감 있는 형상으로 되살아 난다.

    그래도 입장을 가지고 있던 게 하나가 있는데

    전두환과 노태우 사면 건이다…

    이건, 전라도 특성인지는 몰라도 –

    사형, 무기징역을 받았던 사람들이 …

    어떻게 며칠만에 그냥 풀려나지???

    이 생각을 나도 가졌기 때문.

    암튼

    다큐에서 다루는 내용은 어쩌면 단순하다 –

    권력자는 간접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있고

    가진게 없는 자는 삐뚫어지고 있는데 …

    삐뚫어진 사람들만 악마라고 칭해지고 있는 거

    뭔가 이상하지 않아?

    조금 식상한 주젠데?!

    라고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 또 막상 다큐를 보다보면 그렇지가 않다.

    문장으로 줄여놓은 것처럼 단순한 주제를 담고있는 것은 아니고

    잘 연결되지 않는 지존파,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전두환과 노태우 그리고 김영삼  이

    꼬리를 물고서 여기저기 접점들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잘 몰랐던 것들에 입체감을 만들어주기도 하였고 –

    또 다큐가 나래이션 하나 없이 진행되는데

    매끄럽고 또 세련됐다…

    암튼 추천.

  • [정글만리] 할아버지의 웅장한 썰

    도서관의 책장 몇칸을 빼곡이 채워두고 있는 조정래 이라는 이름은 그의 작품을 읽어보지도 낳고, 크게만 느껴졌다.

    더욱이 검은색 북커버에 “태백산맥” 이라는 한자 표지. 예전에 대학생들이 저 책을 갖고만 있어도 처벌받을 수 있었던, 금서 라는데, 저항의 이미지까지 덧씌워진다.

    검은표지의 빨간 타이틀의 간지!
    검은표지의 빨간 타이틀의 간지!

    책을 있는 그대로 유희하기보다, 정복욕심을 갖고 있는 나이기에 – 나도 한때 “태백산맥”에 도전해 본 적이 있었다.

    중학교때인가, 고등학교때인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만. 겨우겨우 1권을 읽어내고-

    “아니 세상에 이걸 10권까지 언제 다 읽는담. 시험공부할 시간도 없겠는데 – “

    하면서 나중에 기회가 있겠지, 하고 덮었다. 대충 그 시절에 10권짜리 “삼국지”도 읽었고, 이문열의 “변경”도 거의 다 읽었었는데 – “태백산맥”만 1권만 읽고 덮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 재미가 없어서였다.

    자연스럽게 읽는 속도는 더뎠고, “태백산맥”의 군인들은 눈밭을 걸어다니기만 했다.

    내가 당시 “태백산맥”을 다 읽지 못했던 것은 내가 아직 그런 거대한 문학을 읽기엔 부족했나보다 –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중에 웬만큼 그런 대하소설을 이해할 수 있을 적에 다시 접해야겠다, 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당시 조정래는 멀어지고, 후광은 더 커졌다.

    그리고 태백산맥에 다시 도전해보지는 못했지만

    베스트셀러에 꾸준히 한 자리를 꿰차고 있는 “정글만리”라는 책에 호기심이 생겼다.

    이게 중국을 다루고 있는 건지, 뭔지… 사전 정보는 전혀 없었고 –

    그냥 조정래 신작소설이라는 것과, 꽤 흥행에 성공했다는 것만 알고 책을 열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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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은 쑥쑥 잘 읽혔지만

    한 1권 절반 정도를 지나면서 – 이건 좀 비판적으로 볼 필요가 있겠는데 라고 생각하기 시작하고

    1권을 다 읽을 때 쯤이면 실망인데 – 라고 생각하게 됐고,

    2권 중반부를 지나면서부터는 – 이거 또 시작이군… 라는 혀 끌끌이 계속되고 3권 끝에 이르렀다.

    내가 조정래라는 작가에 대해서 잘 모르면서, 후광만 키워온 탓에

    책을 읽기 전 기대치가 너무 높았나 보다.

    “정글만리”는 문학성이라는 것 자체를 논하기가 어려운 – 뭐라해야하나. 그냥 통속소설이라고 해야하나.

    문학성이 높다, 낮다, 감동을 받았다, 못받았다 – 라고 이야기하기가 불가능하도록

    철저히 문학성 자체는 버리고 있다.

    일단 스토리 얼개 라는 것 자체가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느슨하고

    인물은 내적 그리고 외적 갈등 없이 평면적이다.

    그리고 몇몇 인물은 필요에 의해서 꺼내었다가, 쥐도새도 모르게 버려져있다.

    스토리와 인물은 철저히 보여주고, 듣게 해주는 데에 종사하고 있으며

    인물의 입 뒤에는 조정래의 수다스러운 입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것은 – 하나의 소설 작품이기보다는

    작가의 썰을 풀기 위해서 – 동원된 하나의 수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도 나오는 줄 모르겠지만, 어렸을 적에 과학 탐구 만화 같은 게 꽤나 있었다.

    거기선 이제 똘이와 영희 같은 애들이 나와서는 공룡의 세계 같은 곳에 간다.

    그리고는 둘이서 이것저것 새로운 것을 볼 때마다 똘똘한 똘이가

    “아 저것은, 티라노 사우르스인데, 앞 다리가 어쩌구 저쩌구, 그리고 평소 육식 습성이라 우리는 지금 도망쳐야돼!”

    라면서 에피소드 곳곳마다 과학 정보를 주는 것이다.

    똘이가 힘이 역부족이면 중간중간에 흰머리에 안경 쓴 박사님이 나와서 설명을 해주면

    똘이와 영희는 박수를 짝짝짝 치면서 –

    “아, 그렇구나 ~!! 앞으로는 이렇게 해야겠구나~” 라고 감탄하고

    박사님은 똘이와 영희에게

    “어익후~ 녀석들. 금방금방 배우고 기특하기도 하지~!”

    라는 손발 오그라드는 훈훈함의 연속으로 진행되는 과학탐구 만화 말이다.

    “정글만리”를 읽으면서 꼭 그러한 과학 탐구 만화를 읽는 듯한 느낌이었다.

    인물들이 겪는 에피소드는 대게 무언가를 설명하기 위한 작위적 에피소드일 때가 많으며 그 에피스도 곳곳마다 인물들에게서 나오는 썰은 엄청나게 길다.

    그래서 인물들이 다 말이 많고, 역사와 경제 문제에 해박하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너무 많은 말을 쏟아낸 것 같아, 무안할 지경에 이르면 –

    “아이고 중국에서 오래살다 보니 역사학자가 다 되셨군요”

    라는 병풍 인물들로 하여금 추임새를 넣는 센스를 종종 사용해가면서 말이다.

    인물들이 쏟아내는 말들이 제일 중요하기에, 그 곁가지들은 모두 순식간인데다가 전형적이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남녀의 이야기는 이 사랑보다 더 행복한 순간은 없다 라는 식으으로 끝내버리기 일쑤다.

    그렇다면,

    문학성을 내팽겨치더라도 인물의 입 뒤에 조정래의 말들이 가치있다면 –

    이 소설의 가치는 충분할지언데 – 그 말들은 마치 술 취한 사람 말을 듣는 것처럼 같은 말을 반복해서 듣게되고

    그냥 여기저기서 긁어모은 잡상식들과 인상주의 분석에 지나지 않는다.

    그냥 중국에 관심 많으신 동네 어르신 이야기를 육성으로 든는 정도랄까.

    계속해서 중국인구 많고, 지금은 G2지만, 몇 년 안에 인구를 무기로 G1에 이를꺼다.

    서양애들은 중국애들을 얕보고 있지만, 절대 그럴 애들이 아니다. 

    라는 게 주요 기둥이고 그 곁가지로 중국사람들의 본성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나오는 게,

    중국인들은 돈이라면 환장을 한다. 

    중국 여자들이라면 명품이라면 환장을 한다.

    체면과 명예를 중요시한다.

    성 문화가 문란하다. 

    등등이다. 그래서 이게 원래 중국사람들의 DNA 에 새겨져있다고 얘기하는데

    나는 이러한 본성론 자체에 대해서 동의를 못하겠는 것이다.

    우선 구획짓기 자체부터 의문인데…

    “정글만리”에서는 우선 서양과 동양으로 구획짓기를 하고, 동양은 중국, 한국, 일본, 동남아로 구획을 나누다.

    그래서 각각 구획들의 본성이라 함은

    서양애들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잘 나간다며 콧대 높은 애들

    중국은 돈을 밝히긴 하지만 계속 성장할 수밖에 없는 무서운 아이들

    한국은 나름 깡다구가 있어서 지금까지 잘 해왔듯 잘 할 것 같은 애들

    일본은 잘 나갔던 과거에 연연하는 꼰대들

    동남아는 열대애들 특성으로 게으른 애들

    뭐 이런 식으로 설정하고, 여러 에피소드를 들면서 맞지? 맞지! 라고 강요하는데

    이런 광범위한 구획짓기가 가능하냐는 것이다.

    우선 이야기의 주 무대인 중국만 해도 그 엄청난 인구가 또 얼마나 세분화해서 나뉠 수 있느냔 말이냐. 그리고 그 국가 사람들의 성향이 그렇다고 해도 모두가 그런 것도 아니고, 그런 경향이 조금 있다라는 것 뿐인데 – 그것이 마치 핏줄을 타구 유유히 흘러서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이렇게 강한 강변으로 독자들에게 색안경을 씌워서 얻는 것보단 잃는 게 더 많을 것 같다.

    한국만 해도 보자. 한국 안에 얼마나 많은 다양성이 존재하는가.

    그 안에서도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라는 삼분법마저 가능하고 – 충청도는 느리고 멍청하고 – 전라도는 사기꾼이고, 경상도는 사람들이 드세다 – 라는 인상을 씌우는 게 가능하다. 이러한 인상을 가짐으로써 각각 지역 사람들을 이해하기가 더 편리해지는가. 오히려 필요치도 않는 구분법인 것을.

    국가와 민족에 대해서 이러한 인상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 여기저기서 주어들은 얘기들을 조금씩 과장해서 말하고….

    가끔은 국가 구획에서 넘어서서 남성, 여성의 본성에 관한 이야기도 감초처럼 집어넣는다. 주요 요지는 N극과 S극이 만나듯, 둘이 서로 만나야만 하고, 성매매를 금지하는 것은 본성을 거스르는 것이기에 말도 안되는 일이다 라는 것들.

    그러면서 과거사를 사죄하지 않는 괘씸한 일본을 디스하고

    한국은 강한 중국에서도 잘 살아남는 용하고 영리한 민족이라고 칭찬하여서

    은근한 애국심을 자극했던 게 주요 흥행의 요인같은데, 이것은 소설가 김진명이 자주 사용했던 전략 아닌가.

    그런데 김진명 보다 못한 것이,

    김진명은 어느 정도 스토리의 얼개가 탄탄하고, 자료조사도 나름 잘 되어있는데 –

    소설 “정글만리”는 그냥 말 잘하는 할아버지의 썰에 가까운 정도라는 것이다.

    그래서 결론은

    조정래라는 문학가가 갖고 있던 후광은 “정글만리”에서 우좡창창 무너졌다는 것.

  • [딸에게 보내는 편지 The Kids Grow Up] 아빠의 성장기

    일요일, 늦은 첫 식사를 하겠다고 계랸후라이와 스팸을 구어내고 여차여차 우당탕탕 TV 앞 거실 소파에 앉았는데 막상 검정 TV 에 무엇을 틀어낼 지 막막하다.

    좀 전에는 가벼운 미드(프렌즈, 빅뱅이론) 같은 것을 하나 틀어두면 집중해서 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대충 20분짜리 식사시간으로도 딱 맞았는데

    보고 또 보고, 우려먹기를 너무 많이했다

    가끔 – 재밌게 보았던 영화를 다시 틀어서 일부를 보기도 하는데 –

    끝까지 보는 것도 아니고 – 일부만 보기가 그리 당기지도 않는다

    외장하드를 뒤적거려보니

    분량이 되긴 하지만 EIDF 다큐들이 있는 걸 보고

    이것도 언젠가 조끔씩 보고 해치우려고(?) 했던 것이고

    극영화처럼 그렇게 스토리 이해하려고 머리 싸매지 않아도 되니깐

    대충 파일 이름 순으로 정렬된 것 중에서 하나를 틀었다

    “딸에게 보내는 편지”

    뭐지? 좀 신파성 냄새가 나는데?!

    우선, 배고푼데 이것저것 가릴 여유란

    없지.

    우선 틀었다.

    무슨 시한부 인생을 사는 부모의 유언 같은 것을 생각했었는데

    (다큐 내에선 아무도 죽지 않는다 ㅎㅎ)

    그것보단 훨씬 쿨하고, 심플하게도 –

    그저 뉴욕에 있는 딸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LA 로 대학보내는 기로를 주요 시점으로 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걸 찍은 딸의 아버지가 다큐멘터리 감독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 다큐멘터리의 현재시점은 고작 딸이 고등학교 졸업하고 LA 대학으로 가는 스무살 때쯤이지만

    딸이 여섯살 정도부터 홈비디오로 시작해서 스무살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

    아빠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이 쭉 – 거의 최소한 10년 넘게 촬영을 해온 것

    그래서 딸의 어렸을 적 모습과 아빠와 한 약속들이

    현재와 교차가 될 때마다

    풋… 세월이란

    이란 풋웃음이 아니 나올 수가 없다

    d02.jpg

    그래서 나무를 올라타고선 자랑하는 딸아이의 모습부터

    위의 졸업파티 드레스에 몸을 우겨넣고 힘들어하는 딸의 모습으로 순식간에 점프하는 진광경들을 볼 수 있지.

    이 다큐의 영문 제목은

    “The Kids Grow Up”

    인데..

    내용이든, 주제든, 소재든… 영문 제목이랑 더 맞는 것 같다

    다큐의 느낌을 살려 한역해보자면

    “애들은 다 크게되는 법이지요”

    정도가 될까

    어른들이 이야기하듯 푸념을 더 담아서..

    주안점이 우리 사랑스러운 딸의 성장모습을 봐주세요 라기 보다는

    딸의 성장모습을 꾸준히 카메라로 지켜봐오면서

    사랑스러워하면서도

    딸의 독립을 섭섭해하고, 두려워하는

    한 어른의 또다른 성장기(?) 랄까.

    그리고- 다큐답게

    다큐감독과 그의 가족들의 삶을 송두리채 여과없이(뭐 여과가 없을 순 없겠지만)

    보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게되서 좋았다

    보면서 –

    참 부럽다는 생각도 많이 했고

    나도 나중에 저런 기회가 주어지면 저렇게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는데 라는 생각도 해보고

    평소에

    나도 일상생활 같은 걸 카메라를 들고 동영상을 돌려대는 취미가 있기 때문에

    딸애가 찍지 좀 말라고 – 성질 낼 때는…

    이입되서 – 엄청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그게 다 너를 위해서 그런거야!” 라며 ㅋㅋㅋ

    그리고 미국식 삶과 문화의 다른 단면들을 관찰하게 되어서 좋았다

    예를 들어 – 딸애의 프랑스 남자친구 로맹이라는 놈이

    일년에 5주 정도 집에 와서 지내는데 미성년자인데도 – 부모들은 딸애 방이 그냥 재우고

    다큐감독이 밤에 이상한 소리가 나면 어쩌지? 걱정되지 않아? 라고 하면

    다큐감독 와이프가 아래와 같이 대답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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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든지 밖에서 잘 수 있는 애들이라구

    라고 태연하게 대답한다 ㅎㅎ

    침대도 하나 같던데 ㅎㅎ

    사실, 한국에서는 은근히 이성간 내외하게끔 하는 문화가 남아있는게

    상당히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나라서 그런지

    저렇게 믿고 자유롭게 두는 것은 매우 부러웠다

    그리고

    다큐감독의 아버지도 종종 등장하시는데

    웃는 상이 너무 귀여우신 분

    d04.jpg

    그런데 나름 화끈한 면이 있었는데

    바로 6개월 전인가

    다큐감독의 친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그 해에 바로

    지금 캡쳐에 나온 분과 재혼하신 것 ㅎㅎ

    그리고 다큐감독에게는 딸애의 오빠가 하나 있는데

    이 오빠는 입양한 양아들이다

    그런데 조금 쇼크는 ㅎㅎ

    이 양아들은 어렸을때부터 친부모와도 좋은 관계를 맺으면서 지낸다고 한다

    그럼 이 양아들은 부모가 둘인 셈

    매일 연속극만 보면 네가 내 핏줄이야 라며

    울고불고 짜는 게 일상인 한국에서는

    이런 자연스럽고 태연함이 조금 충격으로 다가올수밖에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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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이 아들은

    다큐감독이 종종 인터뷰하는데 느껴지는게..

    뭐랄까 – 부자관계 대화라기 보다는

    베스트 프렌드의 느낌?!

    다큐감독이 와이프의 말에 의하면

    피터팬 컴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한

    애어른이라고는 해도 ㅎㅎ

    암튼 –

    그런 것도 좀 부러웠다.

    효도라는 거창한 것은 치워버리고

    깊은 우정 같은 것으로 부자-부녀 관계를 채워넣는 것이…

    암튼

    오랜만에 본 다큐였는데

    예상외로 얻은게 꽤 많았다

    얻은거라고 하니깐 – 좀 경제적인 개념 같은데 –

    여러모로 많이 생각하게 해주고

    배우게 해준 것 같다

    보는 내내 가슴 찡하게도 해주고

    다큐라는게 갖고 있는

    강한 힘이란

    이런 거구나 했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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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미 부분에 딸의 대학교 기숙사에서 작별인사하는 다큐감독

    카메라맨인덕에 몇번 등장하지 않기에 등장해서 – 더욱 반가웠던 – ㅎㅎ

  • [무산일기-박정범] 여기서 살아남아야 합니다

    * 여기에는 스포일러가 상당수 있습니다.      승철은 북한에서 배가 고파 옥수수를 빼앗기위해 친구와 싸움을 하다가 친구를 죽인 과거를 갖고 있다. 그게 트라우마가 돼서 절대 남을 때리지 않기로 했나보다.    남한에서 승철은 전단지 붙이는 애들이 개무시 당하고, 하나밖에 없다는 친구놈이 사기치고, 어쩌다가 휘말린 싸움에서 쳐맞아도 – 그저 고개만 숙이고 바보처럼 당하기만 한다.    하지만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고  배를 굶주리게 하는 건 북한이나 남한이나 똑같았다.  그래도 북한에서는 다들 비등비등하게 사니깐  제 자신이 비루하게 느껴지진 않았었는데 –    남한의 화려한 네온사인과 하하호호 웃으면서 레저를 즐기는 사람들이 승철의 눈에 쓸쓸히도 맺힌다. 그리고 – 북한 사람이라는 출신지가 하나의 벽이 되어 투명유리 바깥으로 나갈 수 없게 만든다.    남한에서 다시 굶주리게 된 승철은 다시 사람을 때리고, 친구에게서 돈을 빼앗는다.    “여기서 살아남아야 한다.” 라는 애통한 외침이 영화 전반에 잔잔히도 흐른다.    승철처럼 아무에게도 팔리지 않던 강아지 백구,  백구를 껴안은 승철이 애틋하였듯, 살아남은 승철이 마주한 죽은 백구는 또 다른 깊은 여운을 남긴다.

  • [아르고-벤 애플렉] 자기반성은 페이크, 스릴러는 리얼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했다는 사전정보만 있었을 뿐. 액션 스타일인지, 멜로 스타일인지조차 모르고 봤다. 어떤 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거머쥐는 거지? 그리고 상 좀 탔다는데 웬만큼 웰메이드는 보장되었겠지 하는 마음가짐으로 보기 시작.   초반에 이란의 개혁성향의 지도자가 나타나 영미의 유전을 국유화해버리자, 미국이 작전을 펴 개혁성향의 이란 지도자를 암살하고 엉망진창의 독재자를 세웠다는…   미국의 과오가 먼저 전면에 드러난다. 뉴스화면 같은 것을 짧게짧게 하여 차분한 나래이터로…   그리고 이란에 새로운 혁명세력이 도래하기 시작했다는 게 이 영화의 역사적 배경. 이거 미국, 자기들 흠을 먼저 내놓기 시작했는데, 전개는 어떻게 하려나?   전체 스토리 줄기는 혁명 세력에 의해 미대사관 직원들이 납치 혹은 억류되고 그것을 구출하기 위해 특수작전을 편다는 내용. 특수작전이라 하면 – 역시 총질에 헬기에 탱크에 장난이 아니겠구나 하겠지만 실화에 바탕한지라 – 그런 것은 전혀없고 특수전문요원한명이 달랑 가서 억류된 6명을 비행기태워서 데려오는 게 다이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특별한 큰 사건들 없이도, 액션없이도   그 전개가 정말…. 스릴러라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 할 정도로 숨통을 죄어오게 한다. (특히 공항에서 덜덜덜~)   그 바탕에는 배우들 담백한 연기 그리고 갈등을 꾸준히 고조시키되, 과장하지 않는 정도로 절제를 하면서 유유히 흐르게 하는 멋진 솜씨가 있었던 것.   하지만 이 영화가 스릴러로서 너무 잘 만들었다고 좋은 영화라고는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사실 이렇게 솜씨좋게 만들어버리니 더 재수없는 영화가 됐달까.   왜냐하면 – 옛날 할리우드 영화가 극명한 선악의 대립으로 해서 나쁜놈들 와다다다 쓰러지는 것을 쾌감으로 선사했더라면 요새는 그 정도까지는 별로 없는데 – 더 솜씨좋게 – 걔네들이 완전한 악 덩어리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정당하지 않은 것은 아니야~ 라고 얘기해버리니깐 그런 것 같다.   처음에 영화 스스로 미국이 잘못한 것 있다 – 라고 담담하게 얘기했지만 그 이후 전개는 그 반성과 성찰해야하는 의무를 기묘하게 비틀어 버린다.   초반 인트로 이후부터는, 철저하게 이란 혁명세력에 의해 고통받는 미국 인질들 개인에 집중하는데 이것은 마치 미국 민중이건 이란 민중이건 다들 거대권력에 의해 고통받고 있는 것은 비슷하다 라는 식으로 치환시켜버린다. 그래서 이란 혁명세력이 왜 생겨날 수밖에 없는 지를 망각하게 만든다.   그런데 영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 마무리로 갈수록 이란 혁명세력을 악의 무리들로 둔갑해버리고 미국 정부를 선의 편으로 밀어제친다. 압권은 끝부분과 엔딩크레딧까지 박수를 쳐대는 모습.   그렇게까지 나아가버리니, 결국 고통받던 미국 인질들의 구출이… 마치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그래야 한다라고 여겨지는 게 아니라 이것이 바로 미국의 승리! 미국 정의의 승리! 라고 외치게 만든다.   결국 – 초반에 담담했던 나래이터는 일부 소재에 불과했던 것. “우리가 조금 실수한 적 있긴 있었지만, 그것은 너네가 잘못한것이고 우리가 세우는 정의는 굳건해!! 우리 말 좀 들어!!! ” 라고 강변하고 만다.   그리고 이것은 실화다! 라고하는 또 하나의 탈출구. 너무 요령있어 얄밉다~ 라고 여겨질 수밖에.   사실 정치적인 요소들을 제거한 진공상태에서는 꽤 멋진 스릴러지만 나는 그럴수가 없어서… 아직도냐? 하는 한숨과 너무 얄밉다는 눈빛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아카데미 작품상까지 받았다고 하니 – 참 재수없군. 이런 반응이 나온게지.

  • [광해-추창민] 기획성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없습니다.

    요새는 하도 천만관객을 잘도 넘보니 그 수식어가 압도하는 힘이 줄어들긴 했어도, 어쨌든 이만하면 웬만한 사람들은 다 본 영화. 흥행 초대박이라고 할 만하다. 너나할 것 없이 다 보고 난 한참 후에야 난 이 영화를 접했다. 어디보자~~! 음… 먼저 흥행 초대박이란 선입견이 내 자세를 조금 비뚤게 만들었음을 고백한다. 그래 네가 얼마나 잘만들어졌는지 보아주마 라는 자세라 할까. 그래도 난 영화에 잘 몰입하는 타입이라 영화를 아무리 분석해보려고 노력해도 좋은 영화, 재밌는 영화를 보다보면 약 10분 정도 지나버리면 분석이고 뭐고 영화에 완전히 빨려들어가는 타입이다. 그런데 결론적으로 광해는 그렇지 않았다.    광해의 스토리는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왕과 서민 바꾸기 게임이다. 상놈이 왕이 되어서는 나름대로 궁궐에서 좌충우돌 에피소드도 만들어보고, 그러다보다가 자신이 어떤 위치에 서있는지 자각하게 되고 나름대로 백성을 위한 왕노릇도 해보고 하지만 결국 자신은 대역이었다는 한계에 부딪쳐 내려오는 일련의 이야기들.    스토리 전개와 호흡은 사실 흠잡을 데 없이 매우 깔끔하다. 기승전결,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이 너무 깔끔해서 꼭 교과서를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기도 하다. 이제는 슬슬 위기로 빠져줘야하는데, 하면 정말 당연히도 그렇게되고, 결말은 아마 이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하면 또 당연한 시점에 당연히 그렇게 된다.    그리고 소재. 전반부 주요 소재는 상놈의 왕궁놀음이다. 이는 사실 너무도 익숙한 이야기이다. 광해와 비슷한 시기에 나왔던 “나는 왕이로소이다” 에서도 거의 동일하게 화장실 소재와 식사 그리고 중전과의 동침에 관련한 소재가 나오기도 했다. 그래도 광해 쪽이 “나는 왕이로소이다” 보다 나은 것은 광해는 기본적으로 코미디 장르가 아니기에 개그 욕심을 꽤나 절제해주었고 억지로 웃기려 드는 욕심은 별로 보이지 않았던 것.    개그보다는 “백성을 위한 진심정치” 로 줄곧 나아가고자 하고 막판에는 “한중관계에서 자주외교” 와 같은 메시지를 넣으려고 시도하기도 한다. 이건 매번 한국의 사극마다 나오는 주요 메시지인데 사실 좀 식상하기도 하고 별로 공감도 안 가는게 사실. 그 당시 존속하던 신분제를 인정하지 않는 것인양 만인평등주의의 주창이나, 사대주의를 지양하고 자주적 조선이라는 깃발은 사실 현대를 살아가는 한국인들의 소망에 불과한 것 아니던가. 그런 메시지와 문제의식에 진정성이 조금이라도 담겨있었더라면 주인공이 사대부들을 향해 눈물 그렁거리면서 쩌렁쩌렁 호령하고 장황한 BGM을 까는 식으로 단말마에 해결하려 들지 않았겠지.    암튼 이야기 전개는 매우 깔끔하였고, 배우들도 주연부터 조연들까지 이미 검증된 명연기자들로 꽉꽉 채워두었고, 촬영, 미술 등에도 흠을 찾기가 어려운 매우 깔끔한 영화였지만 – 소재는 조금 식상했고 메시지는 공감할 수가 없었다.    영화를 뭉뜽그려 인상으로서 보자면 영화 자체는 큰 흠이 없지만 또한 관객으로서 나를 이끄는 매력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던 영화라고 해야할까. 마치 검증된 배우, 검증된 소재, 검증된 메시지, 검증된 개그로 채워넣은 한류 기획 수출용 영화같았다는 게 내 최종 인상.

  • [신세계-박훈정] 주인공이 너무 약합니다!

    * 여기에는 스포일러가 꽤나 많이 있습니다.   이정재의 절제된 표정. 그리고 시멘트를 입 속으로 털털 털어버리는 잔혹함, 꽤 괜찮은 출발이다 싶었습니다. 기대가 되잖아요. 저 잔혹함 속에 잘 어울릴 것 같지 않는 이정재란 인물이 어떻게 뒹구는지 그리고 어떻게 변하는지요.   무간도와 비슷하다는 이야기는 미리 들었기 때문에 이정재가 경찰 스파이겠구나 하는 것을 미리 예상했기에 더 기대를 했던 것이겠지요.   그런데 극 중반으로 치닫아 감독이 쳐놓은 모든 전제와 설정들이 공개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이정재에게 몰입이 안됩니다. 이정재는 꽤 연기를 잘해주었어요. 꽤나 멋진 배우가 되었구나 탄성을 지를 정도로요. 제가 이정재에게 몰입하지 못한 이유는 어디까지나 시나리오와 연출력 탓이겠지요.   왜냐하면 주인공으로서 이정재가 극을 끌어가질 않아요. 이것은 분량을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주인공이면 스토리 전체를 보따리로 쥐어가지곤 쭉쭉 이고 가야 재미난 것이죠. 그 스토리의 한 복판에 관객들도 앉아있는 것이구요. 그런데 이정재는 극 처음부터 경찰 스파이 노릇 하는데에 너무도 짜증을 내고 있더라구요. 최민식만 만나면 성질을 버럭버럭 내고, 그래도 결국 중도포기는 안하겠다는 것으로 결론을 낸 것 같긴 한데 조직 내에서 이정재가 달리 하는 일이란 게 별로 없어요. 조직 몰래 정보도 좀 빼내고 추격도 좀 해주고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리고 비밀정보를 전달하는 경로를 찾으려고 이리뛰고 저리뛰고 해야되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이정재는 결국 조직내에서 서열 4위 정도 위치만 유지하고 있을 뿐이에요. 그 와중에 황정민이 공항출국 할 때 정보주는 정도? 사실 그 정도 정보는 감시인력 하나만 붙여도 되는 것 아닌가요? 마피아 같은 지하조직도 아닌 기업을 경영하는 좀 공개적인 조직이던데 말이지요.    이정재는 그저 최민식이 짜 놓은 작전 아래 놓인 한 마리 말일 뿐이에요. 사실 경찰도 조폭과 마찬가지라는 주제의식과 밀접하게 놓인 거라고 우겨댄다고 해도…. 할 말은 있습니다. 그것을 포인트로 삼으려고 했더라면 – 이정재가 처음부터 그렇게 짜증을 내면 안돼죠. 처음에는 경찰 일을 좀 돕고 하는데 보람을 좀 느끼다 보니까, 어느 순간 보니. 경찰 이것들은 악랄하기 짝이 없고 오히려 조직 내가 의리가 있더라 이런 식으로 변화를 줬어야죠. 하기싫은 일 어쩔수 없이 하는 것을 시작점으로 삼는 이정재는 쟤가 경찰이 맞긴 맞나 하는 의구심을 낳을 뿐이고, 별로 하는 일이 없이 그저 사람 몇몇 만나고 관찰만 하는 사람이라서 극을 끄는 힘이라곤 없는 꼭두각시 인물이 되고 맙니다.    영화가 꽤나 포인트를 주고 싶었던 부분은 최민식과 황정민의 대조적인 모습인 것 같아요. 최민식은 정의를 위해 일한다지만 하는 짓은 번번히 못되 처먹었고, 황정민은 깡패녀석이라지만 이정재와 거의 의형제와 같은 우정을 이뤄내잖아요. 그래서 결국 그 대조점을 바탕으로 막판에 이정재의 전향(!)을 이뤄낸 것이겠지요. 그런데 그렇다고 하기에 최민식의 사악한 면모는 어느정도 납득하겠으나 아무래도 황정민과 우정 부분이 너무 약해요. 왜냐하면 이정재와 황정민이 이뤄놓은 우정의 정도를 공감할만한 재료들이 부족한 것이지요. 이정재는 내적 갈등 때문인지 황정민을 만날때도 냉정한 모습을 거의 유지하거든요. 그래서 깐죽대는 황정민 모습만 보다보니… 이게 그냥 개그드립인지, 둘이 쌓아놓은 우정 때문에 황정민이 애정놀음을 하는 것인지 알 길이 좀 묘연하더라구요. 그래서 극 초반에 둘이 만나서 차 안에서 꽤 긴 시간동안 대화 나누는 부분이 전 의아하게 느껴졌었습니다. 시덥지 않는 황정민의 캐릭터 연기가 계속되는 부분을 왜 이렇게 긴 분량으로 처리했지? 했던 것이지요. 도중에 중국집 식당에서 황정민과 조직애들의 의리 부분이 꽤 전형적으로 강조되지 않았더라면 이정재의 전향(!)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을 거에요. 이 부분을 감독도 의식한 것일까요? 영화의 막판에 둘의 전사를 흐름에 안맞게 내놓아버리는데… 손발 좀 오그라들었습니다.   최민식의 그럴듯한 작전은 알겠으나, 이정재란 인물은 내적갈등을 꽤나 보여줘야 하는 주인공이었어요. 그런데 감정의 동요란 걸 거의 보여주지 않는 짜증일관에서 전향(!) 으로 나가버리니 그 반전의 묘미 정도도 좀 적었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전향(!) 이라도 안 했으면 정말 더 짜증나는 영화가 됐을거에요.   그 외에도 영화가 부족한 부분들이 꽤 많습니다.   우선 현실 개연성을 너무 떨어트려 놨어요. 스토리 반전을 위해서 경찰 스파이를 너무 많이 배치했던 것. 그리고 최민식의 시나리오가 생각보다 너무 무책임하고 악랄한 것이지요. 꼭 그래야만 한다라는 당위에 납득이 돼야하는데 그 몇 년짜리를 해놓고선, 조폭애들을 꼭두각시로 부려서 협력하려는 정도가 되버리니 납득하기 힘들죠. 그 조직이 정말 강성조직도 아닌 것 같고 쁘락치 험하게 다루는 것 외에는 꽤 준수한 기업 같던데 말이지요.   또 느와르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 그런 것 같은데 너무 클로즈업으로 인물 얼굴만 잔뜩 잡더군요. 그래서 배우들 피부는 실컷 볼수 있긴 하나… 공간감이 너무 없어요. 공간감을 살린 것은 절에서 장례식 할 때랑 그 낚시터 뿐이더군요. 공간감이 없어버리니 현실성과 더 동떨어진 허공 위에서 일어나는 것 같은 느낌이고, 영상을 보는 재미가 없어요. 그저 표정들만 잔뜩 나오니 너무 텁텁하고 답답한 느낌이 좀 듭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간도 짝퉁필이 난다는 느낌은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우선 경찰 스파이란 설정이 같기 때문인데요. 그 외에도 이정재가 바둑선생을 만나서 가끔식 소통한다거나 착실한 아내를 둔 것 등 영화의 내용 자체이기보다는 영화의 호흡이 꽤 비슷합니다. 특히 바둑선생 장면이 갑자기 뛰쳐나올 땐, 손발이 오글아 들었어요. 무간도에서 양조위가 안마의자 있는 곳으로 찾아가는 호흡이랑 너무 비슷해서요.   암튼- 한국와서 두 번째로 본 영화 신세계는 이러했습니다.

  • 2012 DJ’s Music

    2012년에 무엇을 들었지? 생각이 하도 안나서 음악폴더를 하나하나 읽어보고 나서야 겨우 추려냈다.추려내면서 느낀건데 점점 음악 듣는 나의 집요함이 조금 덜해진 것 같다.예전에는 정말 한 앨범에 꽂히면 다른 것은 아무것도 안 듣고 그 앨범만 죽자사자 들었다.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정말 그때 당시에는 그 앨범이 세계최고! 로 들리는 바람에, 좋아서 그렇게 하는 것이었다.그런데 이번 2012년에는 한 앨범을 죽자사자 듣는 기간도 좀 짧아지고, 다른 앨범들이랑 섞어서도 듣고살짝살짝 듣는 앨범들이 많아졌다. 그래서 어떤 앨범은 2012에 들었던 앨범목록에 넣기도 그렇고, 안넣기도 그렇고예전에는 뭔가 분절이 정확했었는데-사실 특정 기간에 한 앨범만 집요하게 파는 게 더 이상하긴 이상했지.매일매일 겪는 일이 다르고 기분이 다른데, 맨날 한 앨범만 죽창 파고 있으니깐 말이야. 2012 앨범들을 추려보니다른 해에 비해 외국음반들이 부쩍 늘었다.그것은 내가, 외국앨범들을 잘 찾아듣는 경향이 아니어서, 일부로 조금 노력한 면이 있다.여름쯤에 유러여행을 갔었는데 그 전후로 해서 부쩍 해외음악이 많은데…영어 가사로 된 음악이라도 좀 들으면 영어구사에 조금 도움이 될까… 한 나의 미약한 희망이 일조한 것이다. (비웃지마!!!!!!!!) 암튼…. 2012년 DJ의 귀를 즐겁게 했던 앨범들.물론, 2012년에 출시된 앨범들만 얘기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 주의 !(심지어 Radiohead의 OK Computer 까지 있으니 말 다한 것 ㅋㅋ )   * 김목인 – 음악가 자신의 노래 2011년 말에 출시되었지만 간발의 차이로 2012년 초에 나의 귀에 꽃을 피워주었다. 루시드폴과는 다른 또 다른 옹알이 앨범에… 처음에는 생소하기만 했다. 그리고 그 생소함을 넘어서니 “음… 그래도 음악에 몰입된다는 느낌이 별로 없는 것 같아. 하지만 은근히 매력이 있군- ” 하면서 심심할때마다 한번씩 앨범을 돌려듣고, 돌려듣고 했더니 결국 자그마한 꽃을 피워주었다. 담백한 멜로디와 옹알이 창법에 맺혀있는 고민의 흔적들. 음악가로서의 정체성, 현실이란 장벽 그리고 어떤 아련한 낭만성. 이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조화로울 수 있다는 게 조금 신기하기도 하다.     * 야광토끼 – Seoulight 미리 검정치마의 키보드를 담당했던 멤버였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알고 들어서 그런지… 헛- 이거 진짜 여자 검정치마인데? 라는 수식어를 뗄 수 없게 만드는 강한 매력?! 마력?! 물론- 찌질한 현실에 발 담근 장난꾸러기 검정치마와는 다르긴 다르다. 야광토끼는 다른 대상을 냉소하고 키득거리기보다는 소망해한다. 음…이제 막 독립한 20대 여성이 어떤 대상을 두고 자신만의 소망들을 솔직, 담백하게 이야기한다는 느낌 적 느낌이랄까 ㅋㅋㅋ 매우 다른 테마인데도… 검정치마와 비슷한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보컬 느낌이 비슷하고 백그라운드로 깔리는 키보드 쿵짝쿵짝이 비슷하기도 하지만 어디서 이렇게 재주꾼이 숨어있다가 나타나는 거야?! 하는 내 안의 메아리 때문인지도 ㅋ     * 이이언 – GUILT-FREE 내가 한시절 찬양해 마지 않던 Mot의 이이언이 솔로로 돌아왔다. 희안하게 Mot 도 그랬었는데 이이언의 앨범도 듣자마자 좋아졌다. 그의 가냘프게 찌르는 보컬의 매력도 매력이지만 노닥거리는 전자음들이 기묘한 매력으로 끌어당긴다. 그래도 Mot 일 때와는 느낌이 꽤 달라졌는데 Mot 일 때 주 테마가 개인의 감정이 나락으로 깊숙히 빨려들어가는 것을 다뤄줬다면 이이언의 이번 앨범은 개인안의 감정이 주 타켓이기 보다는 뭐랄까. 그 개인의 정체성 혹은 identity가 폐쇄되어 버리고 다른 타자들과 단절되는, 그런 한계성을 지적하는데 맞춰져 있는 것 같다. 아님 말구 ㅋ     * 정차식 – 황망한 사내 꽤 묵직하다. 그래서 정차식의 앨범을 정말 오랫동안 mp3 재생기 안에 두었지만 즐겨 듣는데까지는 정말 오래걸렸다. 앞의 앨범들의 멜로디가 제법 상쾌한 느낌이라 듣다보면 좋아지는 반면 정차식의 앨범은 제법 그게 안되더라. 그냥 그냥 – 좋은지 싫은 지 모르겠다가 어느날 시간이 남아, 긴 산책의 도중에 집중해서 팍- 들어봤더니 무거운 돌덩어리가 천천히 굴러들어오듯, 다가왔다.     * Antony & The Johnson – I am a bird now 정말 서정적이다. 깔끔하게 정공법을 구사하는 멜로디 안에 목소리 만으로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크게 움직일 수 있다니- 정말 기가막히군, 했고 오랫동안 찾아 들으면서 가슴이 우르르르- 떨리는 걸 자제해야 했던 그 앨범. 주요 테마나 주제는 해외앨범들은 가사 번역이 안되서 모르겠고 ㅋ   * Bjork – Post 뷔욕인지, 부욕인지 ㅋ 이름이 어려운 만큼, 난해한 앨범이라고 소문이 나있길래 뭐 얼마나 그렇길래- 하고 약간은 오기로 다가갔다. 정말 난해했다. 뭐 들으면 듣겠지만, 갑자기 소리들을 꽥! 질러대는데 도대체 무엇을 말하길래도 모르겠고, 즐겨지지도 않고 말이다. 하지만 듣다보니 어느새 기억속에 남아있었나 보다. 듣다가 에이 안되겠다, 하고 포기했다가 다른 앨범들과 즐거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데 마치 별미 비빔면을 한번 먹어야 되겠구만 하듯 뷔욕의 이 앨범을 찾게 되었고 그 이후로는 종종 그렇게 찾게 되었다. 듣다보니 꽤 매력있던 앨범.   * Eminem – The Marshal Matehrs LP 에미넴. 다들 좋아하지만 나는 잘 안되던 그. 그의 이름을 들었던 것은 고등학교 때였고 친구들이 나도 외국 노래, 힙합류는 안좋아하는데 에미넴은 좋더라구 해서 추천들을 해줬고, 들을려고 노력도 해봤지만 절대 안되서 역시 나는 힙합은 아니구나, 하면서 몇번을 돌아섰던 그 에미넴. 암튼, 결국 2012년이 되서야 안에 들어왔다. 에미넴의 매력은 뭐랄까. 대신 욕해주는 느낌. 정말 욕 하나는 잘 하고, 돌아이 구나- 라고 느끼게 되는 그런 앨범이 아닐 수 없다. (이 앨범을 들어보면 안다- 알송 재생기 가사 번역창을 띄워놓고 ㅋㅋ) 암튼 한번 귀에 꽂히자 꽤 오랫동안 들어댔고 가끔식 빡치는 일 생길때도 한번씩, 대신 욕하게 시키는 그 앨범.     * 휘루 – 민들레 코러스 3호선 버터플라이 앨범에도 있긴 있었지만 갑자기 “그녀에게” 노래에 꽂혀가지고 휘루 앨범을 꽤 들었다. 앨범이 기묘하게 시린매력을 지니고 있는 느낌적 느낌 ?!     * Radio Head 3 – OK Computer 라디오헤드는 내가 곡 몇개만 들어봤지 앨범 전체를 들어본 적이 없어서 이번에는 맘먹고 한번 이 앨범만 집중해서 파보았다. 명,불,허,전이랄까. 이 십년이 더 된 앨범이- 이렇게도 매혹적일수가!!! 정말 긴 말이 필요없이 너희들 최고구나! 최고란 말이 괜한 게 아니었구나! 라고 감탄할 수밖에 없는. (2012에는 내한까지 해서 내 배를 심히 아프게 했던 !! 내게도 라이브를 보여줘!!!)     * The White Stripes – Elephant 2000 년대를 주름잡았다던 화이트 스트라입스. 역시나 명불허전. 라디오헤드가 완전하다면, 화이트 스트라입스는 살짝 불완전한데 그 불완전한 틈을 이리저리 팔딱팔딱 뛰어서 강한 개성으로 매워버리는 느낌적 느낌 ㅋㅋㅋ     * 버스커 버스커  한국 대중가요 상반기를 삼켜버렸다는 버스커 버스커. 좋다던 대로, 들어봤더니 역시 내게도 좋았다. 슈스케를 내가 잘 안봐서- 슈스케 때는 어떻게 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이런 능력있는 애들이 슈스케에 나왔었다니, 놀라웠다. 참, 재주꾼.     * 생각의 여름 – 곶 이게 몇년만의 재회인가. 이름만으로 아련해지는 그대. 생각의 여름. 그런데 이번 앨범은 참 특이하게도 원트랙으로 해놓고 그 안에 약 30초 정도의 분절로 곡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다 덜어내고 남은 노래 라는 수식어가 괜히 나온게 아니구나, 싶었다. 사실, 이번 2집은 1집처럼 집중적으로 오래듣지는 않았다. 하지만, 들으면서…. 아… 이 앨범은 내가 계속 그리고 종종 찾게 될 그런 앨범이구나, 하고 생각했다지.     * 그림자궁전  9와 숫자들의 9가 예전에 활동했다던 그림자궁전 (아 현재도?!) 9와 숫자들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쉽게 빨려들지도 않고 그런데 무슨 ‘훅’ 이라도 있던지 듣다보면 아아- 계속 무한 루프 해줘- 하고 외치게 되는 강한 매력의 소유자. 그룹 이름처럼 정말 앨범도 묘하다.     * 무키무키만만수 – 2012 2012 화제의 그룹! 무키무키만만수, 나도 들었다. 독특하고, 재미있지만 한 앨범만 오래듣기는 조금 힘든 그런 앨범이었음.     * Adele – 19, 21 올해 이리저리 꽤나 화두에 올랐던 Adele. 주위에 은근 한국팬들도 많았던 그 Adele. 처음 들을때는 어쩔 수 없이 Amy Winehouse 를 상기시키고 Amy Winehouse보다 조금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또 그녀만의 글래머스러운 멋스러움이 있구나, 하고 듣게 되더라.     * 전기뱀장어 – 최고의 연애 원래 여름에 Ep 앨범을 들었고, 가을에 정규 앨범을 들었지. 사람들에게 들려줬을 때, 인디스럽다- 라고 이야기하더래지만 (뭐가 인디스러운건지 모르겠지만) 내가 듣기에는 오, 이건 정말 대중적인데?! 오 거기다가 꽤나 좋은데, 오 꽤, 꽤- 가벼운 마음으로 듣기 시작하다가, 조금씩 조금씩 깊게 밀어 넣으려고 하던 전기뱀장어. 처음에는 보컬의 한계가 있는 듯 싶다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것도 나름 매력인 것 같다.     * Maroon 5 – Overexposed 언제나 비주류를 지행하는 나. 모두들 싸이를 듣고 있을 때 나는 싸이의 바로 앞에서 수많은 한국인들을 애태우던 마룬 5를 택했다. 처음에는 호기심에- 싸이 앞에 있다던 개네들이 뭘까? 했었고 처음 들었을 때는 완전 거부반응. 뭐야, 완전 팝이네. 그런데 스트레스 좀 쌓이고 생각하는 거 싫을 때, 한번씩 쿵짝쿵짝에 기묘한 음역대의 보컬이 그리워서 찾았는데 언제부턴가 맨날 듣고 있더라. 빌보드 1위한 얘네게 진정한 메인스트림이라 할 수 있으니 내 취향이 언제나 대중적이지 못한 것은 아니지 않나? ㅋ     * Muse – The 2nd Law 스펙타클 웅장함의 대명사 뮤즈. 뮤즈는 원래 지산에서도 한번 영접하기도 했고 그래서 계속 지켜봐야지 해서… 새 앨범이 나오자 마자 찾아 들었다. 역시나 여전히 술취한 목소리에 웅장함. Madness는 조금 예외지만 ㅋ 암튼, 별 이견없이 좋았다.     * V.A – 블루스 더, BLUES 트위터에서 이 앨범 광고들을 많이 하셔가지고 궁금해서 받은 컴플리이션 앨범인데 다양한 목소리로, 담은 꽤나 이색적인 컬플레이션 앨범이었다. 원래 내가 블루스를 그리 많이 접하는 타입이 아닌데 이 앨범으로 이것저것 접하니 아… 블루스라는 게 이런건가 보다, 하고 감을 좀 잡게도 되고 색다린 보컬들을 만나게 되서 기뻤다.     * 3호선 버터플라이 – Dream Talk 허클베리핀과 3호선 버터플라이가 웬지 비교대상으로 생각하게 되는데 (나에게는) 언제나 내게 갑은 허클베리핀이었다. 왜냐면 허클베리핀은 2011년에 낸 앨범을 제외하고, 모든 앨범을 내가 매우 사랑해주었지만 3호선 버터플라이는 초기 앨범을 내가 잘 듣지 않았기 때문. 그리고 허클베리핀의 노래는내가 이입되어서 공감을 할 수 있는데 3호선 버터플라이는 그런 이입의 여지가 별로 없는 분위기였다. 뭔가 몽롱하고 난해해서 말이지.   그런데 이번 앨범은 완전 마음에 쏙- 들었다. 이제야 3호선 버터플라이의 매력을 알겠다면서… 3호선 버터플라이가 이제 더 갑의 위치에 둬야겠는데- 라고 생각할 정도. 특히 이번 앨범에서 보컬 남상아의 매력이 도드라지는데- 마치 물 만난 돌고래처럼 쭉쭉- 뽑아주시는데 어디 견줘도 엄지손가락을 내밀 수 밖에 없을 듯. (역시 나에게는)     * 빅베이비드라이버 / 김목인 + 빅베이비드라이버 – 사려깊은 밤 먼저 들었던 것은 김목인과 함께했던 “사려깊은 밤” 이었다. 오오- 이거 꽤나 좋은데- 해서 정규앨범도 찾아들었는데 역시나 꽤나 좋았다. 그런데 요상하게 빅베이비드라이버는 곡 별로 개성은 조금 적은 것 같다. 앨범을 듣고 있으면 꼭 그냥 곡 한덩이를 듣고 있는 것만 같다. 이것은 장점이자 단점.     * 9와 숫자들 – 유예 2012년 마지막을 장식했던 영광의 앨범은 9와 숫자들 2집 “유예” 첫 곡을 틀자마자 짜르를르- 가슴을 짜앙- 하게 하는 이 느낌. 그래, 바로 이 겨울에 널 기다려왔던거야- 라면서…. 들었지. 1집같은 다채로움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더욱 깊어진 곡들도 꽤 있다. 그리고 1집에 수록되있던 “낮은침대” 를 리메이크(다시 만들었다고) 했는데 오오 – 이 노래가 이렇게 좋은 노래였어! 라면서 새삼 놀랐다. 1집에서 연날리기와 캠버스 부기를 제일 즐겨 들었던지라… 다만 아쉬운 것은, 곡이 조금만 더 많았더라면 ㅠ  

  • [더 리더-스티븐 달드리] 딜레마

    전체적으로 영화가 매우 깔끔한 느낌입니다. 그렇다고 다 덜어내고 남은 핵심만 모아 둔 것 같은 느낌은 아닙니다. 쉽게 빠질 수 있는 ‘감정의 도취’ 로 나가아지 않고 꽤 영리하게 영화의 줄기를 타고 흘러갑니다. 뭐 그런 것 있잖아요. 멜로의 상실에 있어서 둘이 다시 화합하는 부분에 있어서 과도한 행복의 씨앗들을 뿌려버리거나 홀로코스트 같은 시대적 아픔을 이야기하는 부분에 있어서 그 끔찍함에 대해서 어머 세상에 어쩜 저럴 수 있어 라는 식으로 관객의 동정을 바라는 묘사 같은 것이요. 물론 이것이 단순한 멜로도 아니고 홀로코스트가 메인 테마만은 아니기 때문이죠. 이 영화가 이렇게 절제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원작이 훌륭했고, 원작에서 던지는 주제의식을 철저하게 구현하고자 했던 것 같아요. 그 외의 부분은 아주 깔쌈하게 가지를 치는 것이죠.   원작의 주안점이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이건 독일인의 어떤 딜레마 같은 것입니다. 나치는 개인이기도 했지만 그것은 한 국가이기도 했어요. 그리고 그 국가는 독일인이 원했던 것이기도 했어요. 나치는 분명 선거를 통해 당선된 사람입니다. 어디 외부에서 총칼로 위협해서 세운 사람이 아니네요. 그 나치시절이 끝나고 난 후, 그 잔혹한 시절 유태인 학살의 주범을 어디까지 물을 수 있을까요. 그 경계는 어디까지 일까요.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들어가보면… 거기서 일했던 군인들은? 그런데 그 군인들 중 일부는 단순 문지기만 했다고 하면요? 그런데 그 수용소에서 단순히 밥만 지었던 군인이라고 하면요? 그런데 완전 쫄병이어서 어디 거부도 못하고 눈물을 머금으면서 독가스 발포 스위치를 눌러야만 했던 군인이라면요. 수용소 밖으로 나가서 그 독가스를 운송했던 운전수는요? 수용소로 유태인들을 이동시켰던 관리인은요?   여기서 한나는 그 관리인 중 한명이에요. 그녀는 직업과 업무에 충실할 뿐이에요. 마치 기계 부속품 같은 사람이었죠. 그런데 거기다가 일에 너무 충실한 나머지 화재가 나도 문 조차 안 열어줬다고 합니다. 끔찍한 사람이군요. 이건 분명 나치의 안 쪽으로 집어넣어야 합니다, 라고 할 법하죠. 법정의 사람들은 그 끔직한 ‘괴물’ 을 용서치 않으려 해요.   법정의 사람들이요? 그건 누구죠? 독일인들이에요,.   사실 그 경계지움 자체가 딜레마에요. 그 경계의 안쪽과 바깥을 설정하기도 힘들 뿐더러, 나치라는 괴물들을 만들어 내는 순간 그 바깥은 자동적으로 면죄부를 받게 되는 것이잖아요. “그들이 정말 악독한 괴물이다.”는 나 자신은 그렇지 않았다의 다른 표현일 것입니다. 그 괴물들만 없애면 그만인가요? 그러면 대다수의 독일인들은 면죄부를 받을테니깐요. 그렇게 할 수 있나요? 또 반대로 그런 식으로 면죄부를 받지 아니하고 나 자신도 죄인이라고 친다면… 나치, 그들을 받아들일 수 있나요? 그 비인간적인 학살들을 자신의 죄로 받아들일 수 있나요? 이게 바로 독일인의 딜레마인 것 같습니다.   한느는 사실 그 딜레마 속에서는 조금 빗겨간 인물같습니다. 그녀는 문자를 모릅니다. 그녀에게 문자 그 자체는 두려움의 대상이에요. 그녀는 마치 동물처럼 생존하는 인간이에요. 그냥 밥을 사먹을 수 있을만큼만 먹고 살아가는… 시민사회의 시민이기 보다는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면 동물-인간에 가깝죠. 문자만 없을 뿐이 아니라 가족도 친구도 그녀에겐 아무도 없는 것 같습니다. 어찌 말하면 독일이라는 사회안에 몸만 위치하여 있을 뿐, 사회라는 경계 바깥에 둥둥 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녀가 문자를 터득하지 못했던 것도 그녀 주위에 문자를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서 그랬겠지요. 그녀에게 문자와 사회라는 경계안의 세계는 막연한 두려움의 대상, 그녀의 삶이 개입될 수 없는 곳 처럼 느껴질 테지요. 그런데 그런 그녀의 빗겨감이 오히려 그녀를 나치의 범주 안에 흘러가게끔 하고 또 그것으로 인하여 법정에서 그녀가 거의 주동자인것처럼 매도(?)되고 맙니다. 결국 그녀는 거의 종신형을 사는데요, 사실 참회하는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그냥 누군가 정말 힘들었나보다, 하면 아- 그런가보다 이 정도인데요. 이것은, 그녀가 파렴치한 또는 사이코패스이기 때문이기 보다는 시민사회의 책임을 질 그런 자격을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그녀에게 사회 안에서의 선이든, 악이든 간에 그것은 그녀가 위치하지 못했던 사회라는 범위 안에서의 일이에요. 감히 진입할 수 없는 곳의 이야기는 그녀에게 충분한 판단능력과 정서적 공감을 일으키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녀는 여전히 동물-인간이에요.   여기에 대비되는 인물이 주인공 남자입니다. 그는 문자의 체계안에 놓여있을 뿐더러 법조인이기까지 합니다. 문자를 읽고, 생산하고 거기에다가 문자의 의거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역할까지 지니고 있네요. 그는 법정에 선 한나를 봅니다. 한나라는 개인이 고통당하고 있다는 것에는 괴로워하지만 다른 한편 그녀를 용서해선 안된다는 심리적 기제가 발동하는 것 같습니다. 왜냐구요,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아야만, 그녀가 정말 악독한 인물까지는 아니더라도 용서할 수 없는 죄인이라고 이야기해야만 그 자신도 나치시대에서 일종의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는 문자세계 속의 그리고 독일사회 속의 한 사람이자, 시민… 법조인이기 까지 하잖아요.   흥미로운 점은 남자와 한나와의 접속코드가 되는 책 읽기 태잎이 기제가 되어서 한나 스스로 문자세계로 진입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문자세계로의 진입은 한나 스스로에게는 양날의 칼입니다. 그것은 문자세계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그녀 자신의 트라우마 혹은 콤플렉스를 넘어서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문자세게-독일사회에서 그녀가 행했던 죄들을 그녀가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몇십년만에 만난, 주인공 남자가 한나를 보고 그 의무를 상기시키기 까지 하죠.   그리고 결국, 한나는 자살을 선택합니다. 그것은 문자세계 진입에의 굴복의 의미는 아니에요. 오히려 문자세계로 기어코 기어들어가서, 혹은 이미 기어들어가 버렸기 때문에 ‘그녀 자신의 의무- 참회’ 를 그녀 스스로 비극적으로 짊어지고 해결한 것이에요. 주인공 남자가 원했던 참회를 다소 극한 방법으로 해결해버렸군요, 그리고 그녀 개인적으로는 더 이상 동물로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데에 대한, 그래서 ‘문자세계 진입에의 굴복’과는 늬앙스가 조금 다른 문자세계에 진입해놓고 그녀의 삶이 문자세계를 거부해버린 것이라 할 수 있을 것 같군요. 물론 그 선택이 능동적이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요.   그녀는 참회의 유언장을 남깁니다. 주인공 남자가 이것을 야기하였긴 했지만 남자는 이 참회를 받을 자격이 없어요. 용서를 해줄 자격도 없지요. 그 자격은 희생당한 유태인에게 있을테지요. 그래서 남자는 유태인에게 갑니다. 그리고 유태인에게 한나의 특수성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데 그것으로는 전혀 먹혀들어가지가 않는군요. 유태인은 한나든 누구든 독일인 개개인에게서 폭력을 당한 게 아니잖아요. 유태인은 독일과 독일인 전체가 모두 폭력의 덩어리인 것이에요. 그 속에서 한나라는 특수성만 쏘옥 빼서, 그 개인의 사정이 이렇고 저랬으니까 그랬다, 하는 것이 이해될 수 있을 지 만무한것이지요. 하지만 그 유태인도 압니다. 그녀에게 다가온 폭력은 빈틈없는 괴물 덩어리, 악의 덩어리이지만 그 안에 인간이 있다는 것을요. 그녀 자신이 적극적으로 용서하고 이해할 수는 없지만요. 그녀 자신이 어쩌면 친구가 될 수도 있는 그런 인간, 이요. 그래서 그녀는 한나가 돈을 모아뒀던 자그마한 통은 받아두는 것이죠.    나치시대를 살았던 독일인들은 한나의 참회에 용서를 내릴 자격이 없습니다. 유태인은 용서를 거부했구요. 그렇다고 상관없는 외부인이 그래야 할까요. 남자는 자신의 딸에게 한나의 이야기를 꺼냅니다. 그녀의 딸에게 한나는 용서받을 수 있을까요? 여기서 남자의 딸이 아이러니 한 것은 상처받은 주인공 남자로 인해 양태된 또 하나의 희생양이었다는 것입니다. 남자는 한나의 환영에 휩싸여 그리고 한나라는 자신이 용서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한 독일인 때문에 그 자신의 가슴속에 있는 사랑과 나눔이라는 것을 걷어치워버리죠. 그 희생양이 아마 그의 아내와 그의 딸이 됐을 거에요. 그래서 떠돌게 된 그 남자의 딸. 그 남자의 딸이 한나를 용서해줄까요?     제 생각은… 아마도 용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네요.     PS : 케이트 윈슬렛은 정말 훌륭한 배우인 것 같습니다!

  • [도가니-황동혁] 나쁘지 않아요

    원작이 영화화하기 좋게 되어 있었는지라 크게 모자란 부분, 아쉬운 부분이 없다.   스토리는 원작을 거의 그대로 하는 편에서 주인공의 가정에 대한 이야기만 조금 ‘영화적’ 으로 바꾸었다. 원작에서는 아내가 있었는데, 영화에서는 아무래도 여주인공과의 러브스토리에 대한 빌미를 주고자 솔로로 했으며, 원작에서 주인공을 한창 이른바 운동권의 전사를 지닌 사람이었다면 여기선 그냥 그림 하다가 떠돌게 된 사람 정도로 했다. 뭐 나쁘지 않은 변화이다. 어차피 주인공에 관련된 이야기는 실제 사건보다는 조금 ‘공지영 스타일’ 이었다. ‘후일담’이라는 부담감에서도 벗아나고, 조금 더 일반적인 접근을 하게 하니깐.   영화는 구성도 무난한 구성을 취하고 필요할 때는 적절한 클리셰들을 써먹는다. 하지만 실화라는 백그라운드가 탄탄하게 받쳐주고 있기 때문에, 에이 너무 뻔하다 라는 느낌은 갖을 수 없다. 오히려 어머, 세상에. 하게 되지.   너무 비꼬는 투로 말하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사실 뭐 그럴 만한 이유는 없다. 사실 영화에서 취약한 점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무난무난하게 잘 만들어졌다. 실제 사건과 별개의 이야기로, 원작에서 느껴지던 것에서 조금 아쉬웠던 점은. 무진 이라는 안개에 휩쌓인 도시. 그 공간적 느낌이 영화에서 충분히 살아나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쉽다. 그 안개에 휩쌓인 잔인한 사건과 잔혹한 인간들의 네트워크들. 이것들이 뿜어내는 것이 있었다면 영화 전체가 아주 탄탄하다 못해… 꽤 지독하게 여겨질 수 있었을 텐데. 조금 쉽게 법정이라는 광장에 내몰린 느낌이다.   하지만 그게 큰 흠은 되지 않을 것 같다. 영화라는 때깔, 좋은 스토리라는 포장보다 이 영화는 실제 사건이 중요한 경우에 속하니깐. 아직까지도 싸우고 있는 이야기니깐.     PS : 그런데 포스터 참 맘에 안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