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감상

  •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홍상수] 스크린 밖으로 스르륵 나온 그들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갖고 있는 다양한 결들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먼저 영화 속에 등장하는 배우들의 연기에 반해버린다. 이것은 대단히 특이한 메쏘드 연기라고 생각한다. 보통 여타 영화의 경우, 그 연기자임을 잊어버리고 극 중 배역이 되어버린 배우를 바라보게 되는데 홍상수 감독 영화의 경우 배역의 이름은 곧잘 잊어버린다. 그보다도 배우의 본명 그대로 나는 그들을 걱정하고 있다. 어? 김민희씨 정재영씨가 실제로 서로 좋아하게 돼버린 것 같은데 어떡하지?! 하는 주책스러운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홍상수 감독이 구축해놓은 영화세계로 빨려 들어갔다.

     
    홍상수 감독은 그 특유의 예민한 감각으로 배우와 장소의 씨실, 날실을 뽑아내고 그것들로 그만의 영화세계를 직조해간다. 그 영화세계에는 이러면 어떨까? 라는 그만의 다양한 형식적 실험이 가미되어 있는데 그 상상과 실험으로 벌어져 있는 간극이 관객이 들어갈 수 있는 틈새이다. “지금은 맞고…” 에서는 그것이 같은 장소, 상황에 놓인 주인공의 태도의 변화였다. 그 변화는 이전을 떠올리게 하고 중첩되면서 대조하게도 하지만 헷갈리게도 한다. 마치 내가 실제와 영화의 경계를 헷갈렸던 것처럼. 내 개인적으로는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라는 도발적인 선언을 수행하고 있는 선두주자가 홍상수 감독이 아닌가 싶다.

     
    홍상수 감독의 여러 영화 중 이 영화를 꼽았던 것은 2부 결말에서 주인공들의 감정이 내게 오롯이 닿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맞고…” 1부를 보면서는 어?! 저 배우들이 진짜로 좋아하게 된 것 같은데?! 라고 걱정했다면, 2부를 보면서는 저 배우들이 지금 1부를 완전히 없다고 생각하는게 과연 진짤까? 그들은 2부의 초면인 상황을 그냥 그런 척하고 있는 건 아닐까? 라고 의심하고 있었다. 1부에서 일정의 감정이 쌓였고, 그것은 2부에서 완전히 초기화된 게 아니라 점점 더 높아지기 시작했으며, 눈 내리는 재회에서, 극장 대화에서 절정을 이뤘다. 애틋하고 애잔함이 그토록 강렬했던 것은 나도 모르게 그들을 영화 밖으로 꺼내버렸거나, 나를 둘러싼 세상이 이미 영화가 돼버렸기 때문인 것 같다.

  • [밍크코트-신아가,이상철] 응답을 기대하는 믿음에 관한 절망

    연명치료 중인 어머니의 존엄사를 기로에 두고 가족들이 서로 충돌한다.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는 가족들은 이게 오히려 어머니를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어머니의 존엄사를 가로막는 주인공은 자신이 계시를 받았고 어머니가 살아날 수 있을 거라며 극구 반대한다. 여기서 가족들의 지옥도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하루하루 형벌처럼 늘어나는 경제적 부담을 감당할 수 없는 가족들은 어머니를 ‘죽이기 위해’ 작전을 짜고, 주인공은 그걸 막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영화는 의식 없는 어머니를 신처럼 그린다. 어머니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어떻게 하면 되는지에 대해 대답을 주지 않는다. 가족들은 제 나름대로 그녀의 의사를 추측하고 처절하게 싸우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어머니가 지금 당장 깨어나거나, 죽어주시든… 이 병원을 벗어나지 못하면 그들 또한 지옥 이하의 수렁에 말려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결국 삶을 위해, 죽임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까지 내몰린다. 단지 치료기 전원을 내리는 게 아니라, 가족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어머니의 산 피를 뽑아내야만 한다. 서로를 헐뜯던 가족에게 내린 형벌처럼 잔인한 딜레마, 무엇을 선택해도 죄일 수밖에 없는 상황. 자연스레 생은 왜 이리도 잔인하며 이 와중에 나만 어떤 것이 옳다고 믿는 게 얼마나 무력한 일인가라는 의구심이 탄식처럼 나온다. 그리고 또 반대로, 아무것도 믿지 아니하고 이 잔인한 생을 견뎌낼 수 있겠는가에 대해서도 우린 떳떳할 수가 없다.

  • [더 랍스터-요르고스 란티모스] 전체의 부분을 거부하는 인간적인 몸부림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라는 당돌한 캐치프레이즈를 천연덕스럽게도 구현해 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설정에 속 시원한 감정을 느꼈는데, 그것은 예전에 “88만원 세대” 라는 책이 처음 나와 청년 빈곤을 지적해주었을 때 느꼈던 위안과 유사한 것이었다. 세대 담론이 갖고 있는 맹점에도 불구하고, 청년세대를 새롭게 명명하면서 청년이 대면하고 있는 진영이 선명한 윤곽으로 드러났듯, 더 랍스터의 세계는 사랑만이 결국 지상 최대의 가치, 라고 퉁치며 넘어가고 훈계하는 우리 사회를 기묘하고 매력적으로 비틀었다.

    아무리 ‘사랑’이라 하더라도 그 자체가 왜 필요한가를 묻지 아니하고, 맹목적이고 시스템에 의해 강제될 때 가치의 상실이 동반된다. 사랑이 생존의 조건이 된 환경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결핍을 위장하고, 살기 위해 다른 인간을 사냥한다. 그들은 경쟁에 실패해 다른 생물체로 태어나는 것을 두려워했지만, 사랑이란 먹잇감을 얻기 위한 몸부림들은 이미 야생의 동물들의 그것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사랑은 이제 아무것도 아닌 껍데기에 불과하게 되었다.

    영화의 주인공은 사랑 강제 시스템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치는데, 사랑을 억압하는 시스템에선 반대로 사랑을 한다. 역설적으로 금지된 것을 소망하는 인간이 가장 인간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데, 이걸 통해 사랑이 위대하기보다 인간의 불완전성을 지적해낼 수 있다. 홀로 존재할 순 없고, 전체의 부분이면서도 전체에 자기 동일시해서 살아갈 수 없는 동물. 어떻게든 온전한 체계에서 뒤틀려 빠져나올 수밖에 없는 불완전한 존재. 이 본연의 결핍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영화는 이미 대답한 듯싶다. 해결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여기서 발생하는 필연적인 몸부림은 슬프지만 또한 아름답지 않느냐고, 말이다.

  • [셰임-스티브 맥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여동생에게 성욕을 느끼는 주인공. 얼핏 매혹적인 여동생의 몸을 카메라가 훑을 것만 같은데 오히려 정반대다. 그 성욕과 치열하게 전투하고 있는 주인공은 여동생을 제대로 보질 못하고, 엉뚱한 곳으로 시선을 돌린다. 해소되지 못한 욕망은 여동생이 아니면 그 어디도 좋다는 듯 뉴욕의 거리를 헤매며, 병적인 성적 집착을 보인다. 방황은 우울해 보이고, 성적 집착은 음란하기보다 걱정스럽다. 주인공은 끊임없이 왜 나는 괴로울 수밖에 없는가, 라고 묻는 것 같은데- 뉴욕의 풍경들은 너만 그런 건 또 아니야. 라고 대답하는 듯하다. 구획된 도시의 다양한 사람들 또한 성욕에 매달려 신음하고 있다. 여기서 남자는 원래 짐승이야 하는 식의 히히덕거림은 발생하지 않고, 방랑하는 인간의 덧없음은 이토록 애처로운 것이구나 라는 ‘현자 타임’에 관객 스스로 기어들어갈 수밖에 없다.

    편집되지 않은 시선으로 영화는 거칠게 묻기보다, 다소 체험하게 했고 스스로 질문을 만들어 보게 한다. 그렇다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너무 근원적이어서 공허해보이기도 한 질문. 그리고 의외로 놀라운 부분은 그 질문에 미처 대답을 준비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수치스러워하는 주인공에 그 누구도 쉽사리 오만할 순 없으며, 영화가 던져준 묵직한 공에 나는 누구도 대신하지 못하는 대답을 준비해야만 한다. 나는 지금까지 그냥 막, 이 아닌 무엇으로 살고 있는가에 대한 스스로의 대답.

  • [소중한 날의 꿈-안재훈,한혜진] 달려라, 네가 즐겁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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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개봉한 애니메이션 “소중한 날의 꿈” 은 제작된 이래, 매년마다 생일을 치루듯 개봉을 한다고 한다. 생일상 대신 스크린에서 자신을 뽐 낼 기회를 얻는다는 것. 이 애니메이션의 제작기간이 장장 11년이라고 하니, 그 정도 받을 가치는 있지. 그리고 이번은 네번째 생일을 맞이하여 서울영상자료원에서 상영했고, 홍대 근처에서 스터디 모임을 마치고 그냥 집에 가기 보다 어디라도 들러서 집에 가면, 교통비를 더 효율적으로 쓰는거야, 라고 생각하는 한 한량청년의 눈앞에 까지 왔다.

    (*네번째 생일이니, 11년의 제작기간이니 하는 것은 영화 관람 후 GV때 들었던 것으로 관람전까지의 사전정보는 거의 전무하다 했다)

    * 애니메이션다운 것?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에서 자주 보이는 게 하나 있는데, 남자주인공이 우주탐험과 비행기를 동경한다는 것. 사실 이것은 다양한 그림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런 것 같다. 우주라는 상상력이 결합되면 우주의 모습을 보여주며 표현할 수 있는 게 많아지고, 비행기가 등장하면 땅 위의 공간이 하늘까지 확장되면서 입체감이 생기고, 파아란 하늘의 비행기 그 자체가 예쁘며, 내려다보는 풍경이라는 극부감을 시도할 수 있게 되니깐. 그리고 경비행기라는 것은, 얼마나 매혹적인가. 땅 위에 있을 때는 때가 낀 철판 덩어리에 불과한 것이 날을 수 있다니. 그것은 불가능한 꿈을 실현한다는 것, 그것 자체를 은유하는 것 같다.

    암튼 여기서도 우주를 동경하는 남자주인공이 엔지니어 쪽 일을 하는데, 그것 자체가 상투적이라고 느끼진 않았다. 다만, 클라이막스 부분… 주인공이 마라톤을 할 때- 환상인지 실제인지 모르겠지만 경비행기가 주인공의 머리 위를 휭- 날아갈때 사실, 미야자키 하야오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서는, 하일라이트 분위기를 내기 위한 총동원의 성격으로 쓰인 것 같긴 한데, 비행기 없이 주인공에 더 집중해줬어도 좋았을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뭔가, 비행기가 날아다닐때, 헛?! 하고 조금 깨게 되는 게 있어서. 뭐 이건 작은 선택의 문제이고, 극의 완성도를 가늠하는 결정적 부분에까진 미치지 않는다고 본다. 다만, 조금 더 다른 방식으로 갔으면, 더 굵은 떨림을 선사할 수 있었을텐데 – 라고 아쉬워지는 거지.

    * 내 꿈은 뭐지? 꿈을 가져야만 하나? 내가 이걸 꿈이라고 부를수 있는 걸까?

    사회와 어른들은 언제나 꿈을 갖고, 야망을 갖고 도전하라! 라는 것을 거의 캐치프레이즈 처럼 내걸고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지만, 사실상 우리의 청소년기는 꿈이란 것을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여유일랑은 없다. 우선 뭐든지 가능성을 넓히려면 공부, 공부부터 잘 해야하는 것 너도 알고 있지? 사실은 공부를 잘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너가 점수는 60점을 맞아도 되는데, 등수는 1등을 해야한다는 것. 그것이 중요한 삶의 시대. 그래서 가능한한 바늘구멍이 아닌 조금 더 커다란 구멍에 도전하기 위해 그나마 공부에라도 도전하는게 마음 편한 것.. 체육이든, 미술이든, 글쓰기든 모조리 바늘구멍이니깐. 바늘구멍보다 조금 큰 공부라는 양말구멍에 하는게 안전하다는 게지. 사실 예체능계가 힘들기도 힘든 거지만, 뭐 돈도 더 들고…

    우리가 갖고 있는 이 현길적인 고민을 주인공도 그대로 갖고 있다. 달리기를 좋아라 하지만, 특출난 실력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그녀는 패배하는 것보다 포기하는 것을 택했다. 지는 것을 유보했다고 볼 수도 있다. 여기서 극은 섣불리 그래도 너는 달리기를 해야지, 최선을 다하면 잘 될꺼야 라든가 달리기는 아니지만 소설을 좋아하는 제 새로운 재능을 찾았어요!! 하는 식으로 호들갑을 떨지 않았다. 꿈을 가져야만 하는 초조함과 위압감 그리고 특출나게 잘 하는 것 하나 별로 없는, 무엇에 열중할 수 없는 평범한 나에 대한 열등감 등을 현실적으로 잘 담아냈다. 현실에서 쉽게 볼수 있는 나와 우리들이기에 그런 찌질한 모습을 애니메이션으로 봐야 한다고?! 라고 할 수 있겠지만. 주인공의 모습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찌질하게 보이진 않는다. 그것은 주인공이 아마, 성장할꺼야. 그 결과가 어떤 것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고 담백하게 다가가려는 아이이니깐. 그래서 어떤 모습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성장한 주인공은 아마 고민의 나날들이 참, 내게 소중했던 시기였어 라고 회고하게 될꺼야. 라고 예상하게 된다. 우리 모두가 그렇듯이 말이다. 우리 모두는 사실 지금 현재, 어떤 결론에 이르진 못했지만, 지금 고민하고 있는 나와 학창시절에 고민했던 나는 다르다. 당시에 고민하고 있던 과거의 나가 있었기에, 지금 새로운 고민을 하는 현재의 나가 있고, 과거의 나를 추억할 수도 있다. 그리고 때론, 아-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라는 생각도 하게되지.

    * 뭔가를 열심히 한다는 것은 아름답다

    담백하고 좋은 말들과 여러 아름다운 장면이 있지만, 역시 내게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주인공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주인공이 마라톤을 하는 장면이다. 예전에 주인공에게 패배를 안겼던 친구와 나란히 뛰고 있는 모습인데, 헥헥 대는 숨소리, 줄줄 흐르는 땀. 힘들겠다…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뛴다. 뛰는구나… 역시나 무언가를 향해 나 자신을 내던져 열심히 하는 것은 아름답다… 라는 생각을 했다. 꼭 달리기를 계속 하지 않더라도, 어떤 성과를 이루기 위해 몇년을 노력하지 않더라도 – 지금 이 순간 열심히 뛰고, 다신 육상부에 나가지 않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 열심히 달리는 저 아이가 아름답다 라는 생각을 했다.

    *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나는 망상하기 좋아하는 영화지망생. 언젠가 엄청 유명한 감독이 되어서 나도 관객과의 대화를 한다면 이런 말을 하게 되는 순간이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행중에 매우 멋진 노래와 춤을 볼때도- 멋진 영화를 볼때도- 내 지인이 성공했다는 좋은 소식을 들을때도- 그 기쁜 순간들마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아, 내가 영화감독이 되어서 이 순간들을 맞이했더라면 느낌이 완전 달랐을 것 같은데- 하구요. 그런데 하다보니, 이렇게 영화감독이 됐네요. 그 좋았던 노래와 춤, 영화를 영화감독으로서 다시 한번 봐야겠어요. 하하하하아아아어어어어엉엉엉

    찌질감 충만이다. ㅡ.ㅡ

  • [차이나타운-한준희] 아쉬움이 많이 남는 영화

    chinatown

    영화를 보면서 배우가 연기를 잘 하는 것과, 배우에 이입할 수 있냐없냐는 다른 문제구나

    그리고 영화가 현 시대에 던지는 시사점이 유효한 것과, 좋은 작품인 것은 다른 문제구나 – 라는 생각을 했다.

    작품 속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이입이 잘 안되었다. 영화를 보면서, 왜 이입이 잘 안될까… 생각을 해보았는데-

    관계설정이 파편처럼 뜯겨나가 자기 생존을 위한다는 것으로 해놓았는데

    인물들에게 비겁함이 없다는 생각을 좀 했다.

    중간에 무슨 약 하는 애가 배신같은 것을 좀 하지만, 뭐랄까. 배신을 위한 배신처럼 느껴졌다.

    배신해야만 살 수 있는 그런 막다른 길에서 하는 배신이기 보다는, 극적 긴장감 조성을 위한 배신?! 배신 하지 않아도 별 무방한 상태에서 해버리는 배신 같은 거여서 그렇게 느겼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외 인물은 시궁창 같은 현실속에서 원래 해왔던 것이 모든 행동을 기능적으로 하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내가 좀 비관적인지는 몰라도

    법의 테두리 밖에 있는 사람들이기에 – 자신의 생존과 이익을 위해서 – 엄청난 불신과 자기 배신을 거듭해야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지만

    별로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조금 평면적인 캐릭터들이- 기능적으로 등장하면서- 그저 극의 마무리로 흘러흘러가다가 힘 없이 죽어가는 느낌.

    가족이 왜 이 모양 이 꼴이야?! 라는 문제의식에는 동감하지만

    캐릭터에 이입이 잘 되지 않기에- 문제의식이 조금 겉도는 느낌이다.

    그리고 왜 꼭 차이나타운 인지도 잘 모르겠다.

    거의 정전에 반열에 들어버린 동명 미국영화 차이나타운과 같이 두고 생각해도 잘 모르겠고-

    한국 내 차이나타운이 갖는 어떤- 특유의 공간감같은 것도 영화 안에서 잘 살려내지 못한 것 같다.

    가족의 문제를 얘기하기 위해 외부공간을 많이 배제하려 든 것 같긴 하지만 – 그 내부공간이 차이나타운 안에 있는 느낌도 잘 들질 않는다.

    그리고 김혜수씨는 한국 내에서 독보적인 여배우이지만-

    맨날 같은 버전의 연기를 뉘앙스만 조금씩 바꿔서 보여준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내가 예상했던 딱, 그 연기를 보여주고 마는 느낌.

    이건 극 중 캐릭터를 그렇게 설정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매너리즘에 빠진 게 아닐까… 라고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김고은씨는 정말 훌륭한 신인인듯- 칭찬 받을만한 연기를 보여준다.

    하지만 앞서 얘기했 듯, 연기가 훌륭한 것과 이입할 수 있냐 없냐는 별개의 문제.

    시사적인 문제의식과 좋은 연기자들로 많은 것들을 보여줄 수 있었지만

    제대로 챙긴게 별로 없는 영화라는 게 내 개인적인 평가.

    내가 보기에는 이 영화의 레퍼런스를 현실이 아닌

    다른 비슷한 영화들에서 찾는 나태함이 이 영화가 맹점을 지니게 될 수밖에 없었던 듯.

    그래서-  비려야 할 영화가 비리지가 않고- 무색무취무맛이다…

  • [내일을 위한 시간 – 다르덴 형제] 마리옹과 그녀의 동료들

    * 스포지수 : 엄청남

    우울증으로 병가를 내고 복직시기가 다가온 마리옹. 복직해야하는 회사에서는 현재의 근무인력으로도 회사가 충분히 돌아가가는데다가, 우울증 전력이 있는 마리옹이 제대로 일을 해낼 지 의심이 든다. 회사는 마리옹의 복직 문제를 사원들의 표결에 붙이는데 악마의 숨결을 불어넣는다. 마리옹의 복직 또는 내 월급의 보너스(정규직은 천유로) 중 택하라는 것.

    이로써 마리옹의 복직문제는 마리옹 대 사장의 대결을 빗겨나서, 마리옹 대 동료 사원들의 구도로 바뀌어가고, 마리옹은 주말동안 동료들을 찾아다니면서 월요일 표결 때 자신의 복직 쪽에 손을 들어달라고 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한 명, 한 명을 찾아갈 때마다 그 사람이 과연 수락할까? 라고 하는 일종의 서스펜스가 발생하는데 – 마리옹을 집요하게 쫓는 카메라를 자세히 보면 – 그 답을 미리 예측하기에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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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식으로 마리옹과 동료 사이가 수평적 구획 또는 위치가 분리되어 있으면 NO!

    미안, 마리옹. 하지만 천유로라는 돈을 포기할 수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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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이렇게 구획 없이 마리오에게 다가왔던 이는 YES!

    마리옹. 사실은 보너스에 투표해놓고 계속 마음에 걸리고 미안한 감정이 들었어. 내게 와줘서 고마워.

    (이때, 나는 감동의 눈물 쭈욱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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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면 어긴 어떨까. 마리옹과 동료 사이에 코너로 구획이 나뉘어져 있긴 한데- 같은 색깔의 벽돌 톤이라서 구획 나뉨이 그리 분명하지는 않다.

    우선은 NO, 하지만 나중에 마리옹에게 찾아와서 NO라고 대답하게끔 만들었던 남편과 헤어지고 왔다고 해서- 마리옹에게 가장 큰 용기를 주었던 동료가 된다.

    모든 동료들을 찾아가, 부탁을 하는 힘든 주말을 보낸 마리옹.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그녀는 NO 라고 할 수밖에 없는 동료들의 상황을 이해하게 되고

    YES라고 해주는 동료들의 진심에 감동하게 된다.

    처음에는 집 밖에도 못나갈 것 처럼 부들부들 떨던 그녀는 동료들과의 만남을 보내고 나서 –

    나은 듯, 안 나은 듯 아리송하던 우울증도 극복한 것 같다.

    다른 좋은 일자리를 알아보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 같다.

    처음과 끝, 사장과 대면하는 컷도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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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는 차 안에 있는 사장을 궁색하게 바라보던 그녀이지만

    나중에는 수평적인 테이블에 거의 대등한 위치에서 대화(협상에 가깝지만)하고 있다.

    처음에는- 사장에게 고용을 구걸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부끄러워 하던 마리옹은

    주말을 지내고, 사장에게 자신의 의지를 당당히 밝힐 수 있는 강인한 사람이 된 것이다.

    마리옹 파이팅!

  • [매드맥스:분노의 도로] 대단합니다

    MADMAX

    *스포지수 : 약함

    어딘가에서 이 영화의 감상평으로 잘 만든 영화, 재밌는 영화 같은 표현으로는 부족하고 마치 새로운 괴물이 나타난 것만 같은 거대한 경탄을 하게 된다는 얘기를 슬쩍 들었다.

    보통 기대가 크면 아니, 뭐, 얼마나 대단한 영화이시길래요? 라면서 거리감을 두게 되는데 –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 괴물같은 영화…. 맞네요… 헐! 이라고 하게 되는 영화라고 해야하나… 하하하

    시각적인 스펙타클이 압도하는 게 큰데 –

    그냥 돈 많이 들이고 그럼 되지?! 가 아니지~ 사실 마이클 베이 영화도 언제나 엄청난 제작비와 CG로 스펙타클을 주고자 부단히도 노력하지만 – 내겐 별로 스펙타클하게 느껴지지 않는 걸.

    어디선가 본 듯한 액션 스케일과 차량전복 빌딩 창문 부수기를 넘어서 – 뇌리에 박히는 강렬함을 주기 위해선, 그 스펙타클에 적절한 스토리텔링이 들어가 있어야 함은 당연할 것이다.

    그 점에서- 매드맥스 액션씬의 스토리텔링은 정말 짱인듯 하다. 액션씬에서 나오는 건 고작 자동차 10대 조금 넘나 하고, 영화적 배경은 화려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사막인데 –

    내가 매드맥스를 보면서 가장 많이 떠올렸던건 바로 반지의 제왕 전투씬들이었다.

    그 화려한 배경과 종족의 다양함과 엄청난 판타지들의 총합에 비견할 수 있다는 거, 대단하지 않은가.

    아마 – 그리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리얼리티 때문인 것 같다. 영화가 가능한한 최대로 cg 없이 찍으려고 했다고 하고, 그게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구현된 듯 싶다.

    반지의 제왕은 완전히 판타지니깐 스펙타클을 보면서도 – 뭔가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느낌이 강하고, 매트릭스도 어느 정도 비슷한 느낌인데 –

    매드맥스의 자동차들은 음? 어떻게 저렇게 하면 만들 수 있을 법한 자동차. 라는 생각이 들어버리고(실제로 영화에서 만들어버렸고) 각종 무기와 액션들이 초능력이 아닌, 인간 몸짓들의 사투니깐 그것이 주는 임팩트가 훨씬 강렬한 것 같다.

    그리고 흔히 볼수 없는, 미쳐버리고 있는 캐릭터들을 바쳐주고 있는 종말론적 세계관.

    영화를 보면서도- 계속 비릿하고 슬픈 감정이 드는데 –

    마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처럼… 사막 저 건너편에도 희망이라는 것이 없을 것 같은 끝없는 방랑… 그게 왠지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겹치기 때문이다.

    은유적으로 보면, 어찌보면 – 현재일지도 모르겠고…. 는 너무 비관적인가.

    어쨌든, 이렇게 비릿한 스펙타클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너무도 잘 만들었고…. 상남자 톰 하디 매력 터진다 ㅋㅋ

  • [국제시장] 감독의 투철한 서비스 정신?

    *스포지수 : 보통

    우파들의 영화라는 이슈와 함께 천만관객을 가뿐히 넘어주었던 바로 그 영화 “국제시장”. 이 영화에 대한 본격적인 영화 비평을 읽어본 적이 없지만, 영화 국제시장을 둘러 싼 말말말… 들의 기사 헤드라인이 하도 범람했던지라, 아무 선입견없이 투명한 마음가짐으로 보았다고 말하긴 힘들다. 그래- 솔직히 말하건데

    우파들의 영화라지… 그래, 얼마나 잘 만들었나 내가 함 봐주지

    라는 쫀쫀함이 깔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윤제균 감독이 크레딧으로 들어간 영화 중에 내가 좋게 본 영화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으니 어땠으랴.

    영화를 보면서, 음… 보수적 주제가 쫘악 깔려있긴 하지만. 단순히 진영논리로 우파들의 영화라고까지 얘기했던거에 비해 생각보다 정치성을 강요하는 영화까지는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애국보수 진영 쪽에서 주로 이야기 하는 나라사랑, 민족사랑, 자유주의 만만세!, 공산주의 싫은데?! 라고 이야기할 줄 알았던 거다. 그런 영화였다면 이 영화가 천만관객이 보러 오지 않았겠지. 그래도 그 정도는 아니었다. 결론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많긴 했지만.

    주인공이 한국사의 굵직굵직한 부분들을 기막힌 우연처럼 맞닥드린다는 부분에는 별 거부반응 없었다.

    그리고 영화 곳곳에 까메오처럼 한국사회의 유명인사들(정주영, 앙드레김, 남진)이 나와서 유머를 구사하는데도 그리 큰 거부반응은 없었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는 사실 이보다 더했으니깐.

    스토리보다 내가 정말 마음에 안들었던 부분은, 연출에 보이는 감정을 몰아붙이려는 욕심이었다.

    그 부분을 어떻게든 몰아가려고 리얼리티도 떨어트리고, 왜 관객한테 어?! 이거 끝내주지?! 어?! 엄청 슬프죠?! 라고 온 몸을 흔들 생각만 하느냔 말이다.

    제일 뜨악했던 부분은 독일에서 탄광이 무너지는 씬 같은 경우.

    차분히 드라마 구조로 잘 가던 영화에서 마치 재난 액션 영화에서나 볼 법한 유려하고 화려한 카메라 무빙에 컴퓨터 그래픽, 우좡촹촹 울리는 음악…

    볼 거리는 풍성하지만, 뭔가 영화 장르가 바뀐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광산 쪽에 대해서 더 얘기해보자면… 실화를 바탕으로 했는지 아닌 지는 잘 모르겠지만 –

    간호사인 김윤진이 병원에서 일하다말고  탄광 무너졌다는 소리 듣고 한숨에 뛰쳐나가고, 탄광 사측 사람들한테 지금 구조를 해야한다고 떼를 쓰는 모습에 공감이 잘 안되었다.

    중환자가 엄청나게 병원으로 몰려왔는데, 어디 있을지도 모를 썸남을 찾겠다고 부상자들은 다 내팽개치고 탄광앞까지 뛰쳐나가는 무책임한 간호사가 어디있으며…

    탄광 안에 메탄가스가 가득 차 있어서 구조하는 사람들도 위험에 처할수도 있는데, 왜 탄광으로 못내려가게 하냐고 한국인이 불쌍하지 않느냐고 호소하며 떼를 쓰는 모습도 고개를 갸우뚱 하게 하던 부분.

    이런 것들은 우선 개연성보다는- 이 부분에선 소재를 이렇게 적극 활용해서 감정을 극대화할 수 있는데, 왜 그 기회를 놓치겠느냐. 하는 조금은 뻔한 의도가 보이는 것만 같았다.

    가족지키는게 가장 중요하다는 주인공이 월남전에 참전하게 되는 것도 – 어거지스럽고 , 이산가족상봉 씬은 눈물을 짜게하려는 욕심이 보이고…

    내가 욕심, 과욕이라고 계속 했지만…

    어쩌면, 연출자는 이게 하나의 서비스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돈을 내고 극장까지 들어 온 관객에게, 이렇게 저렇게 잘 버무린 검정의 덩어리들을 골구로 내놓아야지 도리 아니겠습니까….  하는 것.

    근데 그런 얇은 스킬로 너저분하게 제공되는 서비스가 있고, 깊게 파고드는  서비스도 있지.

    그리고 깊게 파고드는 게 더 기억에 오래남는 영화들이 되었지.

    PS 1 : 가장 아쉬웠던 부분 중 하나는 김윤진 쪽에서도 뭔가 강한 이야기를 끄집어 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황정민의 부인으로만 제한되었다는 점.

  • [쎄시봉-김현식] 클리셰를 낭만이란 이름으로 포장한 나태함

    쎄시봉에 대한 추억이 전혀 없는데, 이 영화를 봐도 괜찮을까 라는 생각을 갖는다면 걱정가질 것이라곤 없다. 왜냐면 이 영화는 쎄시봉에 관한 영화가 아닌 것 같으니깐.

    나는 쎄시봉은 잘 모르지만 송창식은 잘 알고- 더러 좋아하기도 하는데.

    보면서- 아무리 그래도 저건 아니지… 란 탄식이 절로 나오는 영화였다.

    사극이나 역사물을 보면서는 저게 역사에 대한 고증이 잘 되었네, 안되었네 누구는 평가절하되었네. 문제있네. 하는 식의 접근법을 곧잘 시도하곤 하는 것 같은데-

    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종종 시대재현이라는 것을 은근슬쩍 뒤로 제쳐두고 그저 낭만이라는 물감으로 벅벅 덫칠해버리는 풍경을 발견할 수 있다.

    오히려 오래 지나지 않았기에  재현을 더 엄밀하게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 그런 태연함이 나오는 것은 왜일까.

    80년대는 대부분의 관람객들에 기억 속에 담겨 있는 것이니깐.  그 기억들을 마냥 예쁘게만 꺼내 주면 돼,  라는 식으로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

    그저 통금, 미니스커트 단속, 통기타, 미도파 백화점 같은 것들이 나와주면-

    아 저때 저거저거 있었는데. 그 기억 새삼 나고, 재미있네. 라는 정도로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80년대를 표현할 때 꼭 반복되는

    경찰들, 건물들, 통금단속, 통기타, 테이프 같은 것들이 몇개 쏙쏙 나와주고 그 주위를 맴돌고 있는 것들은 전혀 어느 시대의 것들도 아닌 영화의 클리셰 같은 전형들만 채워버리고 만다.

    공연장을 메운 빠순이 여고생들의 반응 클리셰, 해안가 옆에 앉아서 순박한 노래를 부르고 여자 꼬시려고 하는 상황 클리셰, 경찰과의 추격전, 비오는날 우산 같이 쓰기 같은 것들.

    그런 것들이 없던 것들은 아니지만, 그 상황들을 다루는 태도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그 뻔한 상황에서 주인공들이 예전에 봐왔던 연기만을 계속하고 있으니깐. 영화를 보는 재미도 없고, 그냥 아- 주인공의 관계설정이나 감정의 정도가 이 정도에 이르렀구나. 스토리 전개가 앞으로 이렇게 되겠구나 정도만 느껴게 된다.

    그렇게 쎄시봉이 아닌 것들의 러브스토리의 아련함으로 그냥 그냥 주요 얼개들을 채워놓고 –

    마지막을 당신의 추억 한켠에 있을, 아름다워서 지금은 슬플 것을 – 저희가 이렇게 잘 포장해서 드려요…

    라고 하면 감동할 줄 아는가!

    의도를 위한 스토리는 너무도 작위적이고,

    마지막 공항에서 씬은 도저히… 아니 저게 뭐 어쨌다구, 하는 탄식이 나오더라.

    차라리 써니 처럼 가던지?!!!!

    가수 쎄시봉이 이렇게 소모되다니, 안타깝기 그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