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앞에서 어린아이 둘이 키스하는
혹은 눈물젖은 두 남녀가 시선을 마주치며 키스하는
이런 예쁜 사랑에 대한 동경이었을까?
아니, 동경이기 보다는 내 내부의 금기같은 것들이 작용했을 것이다.
이제까지 “안된다” “나중에” “어느 정도까지만” 이라고 들어왔기 때문에
그리고 그걸 내가 별 의심없이 받아들여왔기 때문에…
그리 조명발을 살리지 못한 체
엉키는 살갗들이 등장하면
“하는구만!”
라는 말이 불쑥 튀어올라버린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라는 질문을 하기도 하고,
암튼 좀 당황한다. 해석과 보여짐 사이에서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는 것 같다.
근데, 이게 뭐 픽션도 아니고…
필름이라는 저장매체 속에
그냥 어딘가에서 하고 있는 것들을 기록한 것인데
왜 그렇게 부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했을까.
이제 와서 그런 생각이 든다.
이게 외설인가, 예술인가 뭐 그런 질문.
던지고 싶지도 않아졌다.
영화가 별 거 있는가.
그냥 표현수단 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숏버스의 표현은 좀 쎄다.
그러나 난 이 영화가 “외설적” 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솔직히 너무 잘 만들어놨고,
감독도 정말 영화를 만들면서 만족했을 것 같다.
모든 장벽을 깨고
말하고 싶은 것 그대로 말해봐서 속이 다 시원했을 것 같다.
연기자들의 연기도 뛰어나고, 거침이 없으니 뭐가 모자르랴.
OST 는 또한 여간 뛰어난 게 아닌데 뭐가 꿀리냐 말인가.
내 두서없는 감상이 너무 길었는데,
숏버스는 어떤 영화냐 하면,
그냥 사랑영화다.
사랑에 있어서 존재하는 여러 구분짓기들을 정말 총체적으로 쳐부수는 영화인 것 같다.
누가 레즈비언이었고, 누가 변태였고, 누가 게이였는지, 또 누구랑 누구랑 사랑했던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것.
사람이 갇혀있지 않게 되는 것.
사람이 사람과 즐거워하게 되는 것.
의 모습들을 그냥 “그대로” 보여준다.
쓰면서 느꼈는 데, “사랑” 이라는 명사가 우리 인간의 감정들을 충분히 소화해 내지는 못하는 것만 같다…
숏버스가 알려주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는 수많은 관계들과 수많은 감정의 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