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일상

  • [2008.8.7.] 2년 전에

    다른 계절은 모르겠지만, 여름은, 여름만은
    그 만의 냄새가 있다고 생각한다.

    풀벌레들 때문인지
    더위 앞에서 진액을 흘리는 나무들 때문인지

    그 특유의 식물성 냄새

    그것이 처음 맡아져 올 때
    이젠 반팔을 입어도 되겠구나 하고
    그것이 절정에 달하였을 때
    한껏 기승을 부리던 모기는 그 기세를 조금 굽힌다.

    실뭉치처럼 엉키고 있던 그의 생각들이
    나무계단을 오르는 도중에
    그 도중에
    어느 한 줄기 가닥만 빼꼼 나와 하늘거렸다.

    그것이 오늘의 냄새는
    그때의 여름냄새를 정말 닮았어!

    라고 외치는 듯했다.

    그것은 딱 2년전 쯤이었다.
    중복과 말복 사이의 제주도.

    그는 3박 4일의 외박을 제주도에서 보내기로 했었다.
    제주도에서 별다른 관광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다지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고
    우선은 홀로 있는 자유로운 시간을 가지고 싶었고
    무엇보다도 그는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대산대학문학상과 중앙 신인 문학상이던가..

    시 부분 응모는 이미 몇개 추려놓았던 상태였는데
    단편소설 부분이 문제였었다.

    도저히 마무리가 되지 않고 답보 상태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래 3일동안 누구 눈치 안보고 한번 써보자. 그러면 뭔가 되겠지.

    라고 하며, 핸드PC 하나만 가방에 넣어 가지고 떠돌아 다녔다.

    그 무더움이 거의 그를 탈진하게끔 만들었지만

    그는 그래도 그때 “남겨진 사람들” 과 “섬 위에서” 라는 단편소설을 마무리 지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말 유치하기 짝이 없는 문장들의 조합에 불과하였지만

    그에게 있어서 생애 처음으로 쓴 소설이란 글이었다.

    그것이 2년 전이었고

    그 기억들을 끄집어 추억하는

    현재의 그는

    그때의 여름에 마음은 참 충만했었더라고 생각해본다

  • [2008.8.5.] 일주일 아르바이트를 끝내며

    회전문을 통과하는 순간

    5초에 한번 꼴로 고개숙여 인사하는 경비 아저씨의 감정은 어떤 것일까

    엘르베이터를 타는 순간

    ‘똑바로’ 서 있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사무실로 들어서는 순간

    퀘퀘한 냄새와 함께 마우스 클릭하는 소리와 한숨 소리

    모든 것이 ‘창백하고’ ‘늙어가게 하고’ ‘권태로운’ 이 버티기를

    사람들은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들을 남기고 그의 일은 오늘 끝났다.

    사실상 뭔가 특별한 것을 예상하던 그에게서

    그들이 준 경험들은

    학교 사업을 진행하면서 겪을 수 있는 것들을

    좀 더 전문화하고, 과격화하고, 어쩔 수 없게 만드는 것에 다름 아니었는데

    그래도

    예상하고, 상상하고, 건너듣는 것이

    직접 겪어보는 것을 뛰어넘을 순 없으리라

    그리 특별한 것은 아니었어도

    그는 그 자신이 인생에 있어서 겪을 수 없는-상관있는 분야가 아니니깐- 것을 해보았다는 것에

    의미를 둔다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그 다양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현대 샐러리맨들의 공통점은

    옆 건물 옥상에 심겨져버린 아슬아슬 거리고 있는 소나무들 처럼 위태해 보인다는 것과

    그 자신의 위태함을 자신도 알고, 타인도 알지만

    언제나 ‘멋진 일탈의 모범 사례’ 들을 판타지로 장식하며

    만나는 손아래 사람에게 교양하려 한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 이렇지만, 너는 다르게 해봐”

    라고 속삭이는 그대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쿵푸팬더> 가 약간의 도움이라도 될까?

    그는 ‘재미있고, 멋진’ <쿵푸팬더> 가

    그들에게 미칠 영향력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그만큼 그들은 지쳐있는 것만 같다.
    그리고 그들에게 현실은 너무 끔찍하다.

    그에게도 현실은 끔찍한 모습을 조금씩 드러내고 있지만
    그는 모든 것을 끔찍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재주가 있었다.

    아주 어이없게도…

  • [2008.8.1.] J를 생각하다

    그는 쉴틈없이 일하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고
    더 절실한 이유는 필요로 하는 것이 너무도 많았다.

    캠코더, 노트북 부터 해서 일상 생활용품까지…

    그가 일한 곳들은 예전에 비해 비교적 다채로웠다.
    LG전자에서 SK텔레콤(물론 본사 쪽은 아니지만)

    어찌보면 대기업 릴레이겠지만, 그저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우선 그것은 그 어떤 것도 아닌 단순 아르바이트 였던 것이며

    그것도 정말 초단기 아르바이트 였으며

    무엇보다도 그를 의기소침하게 만든 것은

    그가 만들 수 있는 ‘인적 재산’ 이라는 것이 그에게 별로 소용이 없을 것 같아서 였고
    짧게 나마 배우게 되는 관련분야의 이야기들이 정말 이공계 ‘현장 이야기’ 라는 것이었다.

    그는 어찌되었든 문과대생이었다.

    설거지 할 때는 설거지 생각만 하여라 라는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하지만,

    물론 그는 지금 설거지 생각만 하고 있긴 한데

    그저 J가 떠올랐다.

    독학과 희곡 비평 수업에서
    본 늙다리까지 졸업않고 남아있는 학생이 바로 J었다.

    소규모 과인 만큼 강사/교수와 친분이 두터운 학생들의 분위기라
    수업방식이 비교적 자유롭게 그러면서도 발표수업으로 진행이 되는 데
    비평 토론 수업이니 만큼 발표조와 토론조의 논점에 따라
    수업이 몰려가는 그런 분위기였다.

    그런데 독문과 학생들의 마인드는 얼마나 경영학 혹은 경제학적 마인드인지
    발표조이든, 토론조이든
    모든 것을 계량화시키고, 도표화시키고, 비쥬얼화시키기에 바빴다.
    토론 주제는 그것이 맞느냐, 틀리냐에 대한 사실 확인 여부에 불과하였는데 그것은 하나도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 속에서 그나마 전체 줄기를 잡아 주었던 것은
    항시 J였던 것이다.

    J는 작품의 화두는 물론
    강사/교수가 의도하고 있는 커리큘럼을 아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J는 체계적이고 논리적이면서 또한 독창적이었기 때문에
    강사/교수는 물론 학생들을 모두 만족시키는 학우였다.

    그렇게 항시 수업을 주도하고, 새로운 비평적 관점을 꺼내주었던 J는
    중간고사가 끝나면서부터 정장을 입고 오기 시작했다.

    거의 매일같이 입사지원서를 냈던 곳에 면접을 보고 오는 길이었던 것이다.
    미리 작품을 읽지 못했던 J는
    그 이후. 손을 들지 못하였으며
    기말고사조차 10분만에 나가버리고 말았다.

    J가 어색하게 웃으면서 강사/교수에게 시험지를 제출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그때는 시험보던 모든 학생들이 그를 쳐다보고 있었던 것 같았다.

    J는, 답안을 쓸려면 쓸 수 있었던 것이었다.
    비평문제였기 때문에, 얼마든지 핀트가 조금 어긋나더라도 어느 정도 점수를 맞을 수 있는 글을
    그는 제출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J는 10분만에 교실을 나섰다.

    그는 J가 떠올랐던 것이다.

    언제나 밝은 얼굴로 토론 수업을 진행하던 문과대생 J는
    마지막 시간에 미안한 얼굴을 보이면서 교실을 제일 일찍 떠났던 것이다.

  • [2008.7.20.] 떠올리다

    비가 너무 거세게 내려서 잠을 잘 못 이룬 밤이 지나고
    일요일이었다.

    조금 일찍 일어나서 유난히도 하루가 길었던 토요일을 생각하며
    아침에 기운을 차리려고 했으나 도통 몸이 말을 듣질 않았다.
    일어나보니 11시경.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거의 퍼부어대는 식으로 쏟아지는 비 때문에
    집밖으로 한걸음도 나가지 못했다.

    온통 눅눅함 뿐인 집 안에서
    그는 맴돌거나, 컴퓨터를 보고 있거나 그랬는데

    그래도 그 퍼붓는 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답답한 기분은 없었다.

    그래 차라리 훌쩍거리지 말고 쏟아져버려라

    하고는 망연자실했던 하루였다.

    언젠가 그가 홀로 지낼 때
    밤을 홀로 지새우게 되었을 때

    헤드라이트를 켜고 날쌔게 다가오는 굉음의 차를 보면서

    ‘저것이 내 옆구리를 시원스레 받아주었으면’

    하고 생각했던 것이 떠올랐다.

  • [2008.8.19.] 바람부는 날

    집을 나서는 데 부는 바람은
    꽤나 가을바람이었다.

    하늘에서 부는 것 같은 바람

    여름의 바람은
    대지에서부터 열기를 품고 지글거리며 사람을 밀쳐내버린다 치면

    가을의 바람은
    하늘에서부터 횡 하고 스쳐 지나가 버리지

    머리칼이 붕 뜨는 잠깐의 시간동안만
    하지만 강하게
    그것을 느낄 수 있지
    그래서 가을이 더욱 외롭게 느껴질지 몰라…

    그는 꼭 어디라도 가야할 것 같은 사정이었다.
    그렇지 않고 있는 동안은
    계속 마치 몸이 가려운 것 같은 지경이 될 것 같았다
    아무것도 집중하지 못하고

    그의 방을 영영 맴돌게 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무작정 서울을 걸었다.

    동대문과 종로를 번갈아 지나는 꽤 오랜시간 동안

    그 자신과, 그 자신의 현재와, 그 자신의 계획과, 예상할 수 있는 미래 같은 것도 어김없이

    그를 찾아왔지만

    그 일상적 문제들보다

    그에게 더 흥미로왔던 것은

    마주치는 행인들의 ‘그 어떤 것’ 들이었다.

    서로의 시선을 의식하며

    어김없이 무표정으로 찔러대는 그들.

    서로 피를 흘리면서 속울음을 삼키고 있을 지 모를 그들.

    언제

    “난 피를 흘리고 있는 처참한 짐승이야!” 라고 외칠 수 있을까

    그는 딱 스무살 때 밤바다 앞에서

    “평범하게 사느니 차라리 죽어버리고 말겠어!”

    라고 외친 적이 있건 만…

    그 외침이 많이는 아니더라도 조금 틀어져버린…

    스물다섯.

    어느 바람 부는 날의

    그,의,하,루

  • [2008.7.19.] 하루종일 아무것도 없었다면

    그는 오늘 거의 밤을 지새웠을지도 모른다.
    이 밤이 끝나, 내일인 일요일이 되기전에 무엇이라도 해야한다는 의무감때문에
    그럴 것이었다.

    그리고 영화 한 편정도 더 봤을 수도 있고
    음악파일을 여기저기서 긁어모으는 짓을 하면서
    한숨쉬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저녁시간때부터 비는 그쳐있었고
    그는 공원에 쓰레기를 버리로 간다는 핑계로
    외출하였다.

    서울 하늘, 금새 터져버릴 것 같은 구름이 바람따라 빠르게 이동하였고
    전에 보던 것과는 달리 서울 하늘은
    깨끗했다.

    그 이색적인 광경에 그는 오랜만에
    서울구경을 새롭게 했다.

    빌딩들, 아파트, 동대문 쪽까지…

    ‘학교를 졸업하고, 집 계약기간도 끝나면 난 저 서울공간 중 어디에 살게 될까?’

    미래에 대한 그 암울한 질문이 닥치면, 그는 현실은 내팽개치고 이것 저것 상상과 소망들로 채워버리는 버릇이 있었다. 오늘도 끊임없이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들만 상상하고는 말아버렸다.

    이를테면 뭐 아무래도 학교 근처에 집을 잡았으면 좋겠어, 주변에 큰 마트도 하나 있고, 또 뒷산도 하나 있고, 공원도 하나 있고, 무엇보다도 하루종일 전원 콘센트를 자유롭게 쓰면서 앉아있을 수 있는 까페든, 주민센터든 그런 것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집은 햇볕이 잘 드는 집으로 지금 있는 가구들을 버리지 않을만한 크기였으면 좋겠어, 월세 아닌 전세로…

    라는 소망들을 떠올리고 그것이 곧 바로 현실이 될 것처럼, 바로 지금에서부터 현실인것처럼 생각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게 단순하게 enjoy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게 그의 인생의 대부분이 아니었을까.

    *

    공원에는 사람들이 그래도 꽤 몰려있었다.

    토요일이여서 그랬을 것이다. 이제껏 그렇게 비가 퍼부어댔는데, 아이들은 잠자리채까지 들고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어느새 잠자리가. 이태까지 보지 못했던 잠자리들이 공원 여기저기에 있었다. 몰려달리는 잠자리 그리고 몇몇 동네주민들과 연인들.

    그는 이미 운동을 끝낸 터, 천천히 박수를 치면서, 누구 눈초리도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 총총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잠깐, 그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박수치게끔 시키는 일이었다. 학창시절이나 군대에 있을 때 몇분에 박수 몇회 치라고 하는 게 얼마나 싫었던지. 그것이 건강에 좋던 말건. 정말 얼굴까지 빨개지면서 열나게 박수를 쳐야한다는 행위는 고개숙여 인사를 시키는 것보다 더 굴욕적인 일이었다.

    그런데 그럴 때 말고는 운동삼아 박수를 쳐본적이 없었는데 지금은 치고 있었던 것이다.

    마을버스가 회전하는 곳에 볼록거울이 하나 있었다.
    그는 집에 있는 거울에서보다 더 건강하게 보이는 자신의 상을 보면서 씨익- 웃으면서 지나갔다.

  • [2008.7.17.] 빈곤한 하루

    무엇인가 먹고 가야하는 상황이었다.
    다른 그 어떤 선택도 없었다.
    무엇인가라도 사먹을 돈이 없었다.

    그는 이제 약 3일째 동전으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나마 생길때마다 나중을 위해 둬야지 하고 모아두었던 것들을 500원짜리만 겨우 챙겨가지곤 그걸 교통비로 쓰고 있었다.

    어제는 단기알바를 간답시고 교통비로만 4천원 가량이 깨졌다.
    그리고 오늘 최소 2천원 깨진다 치면, 이제 동전조차 얼마 남지 않았다.

    그는 라면을 끓였다.
    말라비틀어진 청량고추와 마늘을 넣은 라면을 쳐다보고 있으려니 벌써 징그러워졌다.

    이걸로는 안될 것 같아

    냉동실에 있던 만두를 몇개 넣었다. 그래도 이렇게 하면 라면치고 고기도 조금 먹는 셈일거다.
    뭐, 배고푸지만 않는다면야…

    기어이 쑤셔넣고 냄비는 그냥 개수대에 던져버렸다.
    살기위해서 먹는 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징그러운 면발들이었다.

    어쨌든 시험은 보러 가야한다.
    너무 추운 전철을 타고 경기상고로 갔다.
    삼청공원 근처이고 그래서 카메라 렌즈에 곰팡이라도 슬기 전에 몇방 찍어볼까 할려다가 말았다.

    백원짜리 까지 모두 긁어모아보면 필름 살 돈은 대략 나오겠으나, 혹시 내일 입금이 안 될경우 다른 알바자리가 구해져도 교통비가 없어서 외출을 못나갈 형편인 것이다.

    그럴 여유는 없다
    입금이 언제 될 지도 모르는 일인데

    그저 MP3로만 귀를 채우면서 왔다갔다 외출을 마친 그는
    또 컴퓨터를 켜보았으나 알바몬이든, 경력개발센터든, 알바천국이든 거의 가능한 단기알바는 다 봐둔 상태였다. 새로고침을 몇번 하면서 넋을 놓고 있는데…

    컴퓨터 뒤에 있는 벽지에 살고있는 곰팡이에 눈이 갔다.
    혹시 몰라 하고, 얼마전에 청소를 한바탕 치뤘던 책장을 보니, 살며시 눈에 안보이는 곳이 그야말로 초록빛으로 뒤덮여 있었다.

    밖의 비도 거의 그칠 기새였고…

    그는 오랜만에 또 한바탕 청소를 헀다.

    거의 쉴틈을 안주고 몸을 굴려서, 닦고 또 닦고, 또 닦고…

    “교도소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 방에 먼지 하나, 머리카락 하나 안남기고 깨끗하게 둔다고 한다.
    그저, 다른 별로 해야 할 일이 없기 때문에, 히스테리 때문에…”

    그의 빈곤한 하루가 그렇게 지나갔다.

  • [2008.7.17.] 일어나선 안되는 일이 일어났고

    그에게 D는 합리적인 사람이라는 인상을 남기고 있는 인물이었다.

    깊지는 않지만 다양한 분야에 대해 알고 있는 바 많았고
    또 그와 마찬가지로 그 정도를 알수는 없지만
    많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
    대인관계 잘한다는 평을 들을정도로 속물-사회인 의 얼굴은 아니었고
    순하고 착했던 것이다.

    그는 떠올려본다.
    D에게 무엇이 잘못되었던 것일까?

    그와 주고받았던 시집노트가 제일먼저 떠올랐다.
    떠오르는 시구절은 없었지만
    그의 어휘와 어휘속에 담겨진 그의 생각들.

    그때 그는 D가 충분히 발전할 수 있는 비판적 시각을 품고 있었지만
    그것들을 발전시키고 있지 않다는 것에대해 아쉽게 생각하고 있었다.

    화제거리를 유도할 정도의 비판적 시각.
    가끔씩 화려한 로망스를 떠올릴 정도의 감성적 시각.
    거기에 덧붙여진 친절함이 D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오히려 D의 그런 것들이 너무도 부러웠고, 가끔씩 질시하는 마음을 가지기도 하였다.

    D는 행복하게 살 수 있을것만 같았다.

    속은 비었지만, 겉은 딱딱하다는 평은 온전히 그의 시각에 의존한 것에 다름아니었다.
    D는 단지 D일 뿐이었던 것.

    그것은 문제되지 않는다.

    그런데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났고

    D의 환경이 D를 가해자로 만들었고
    전국구 뉴스와 인터넷 포탈의 메인을 장식하게 만들었다.

    ‘반신마비를 할 정도로 폭행을 가한 자’

    그는 D를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단지, D에게 일어나선 안되는 일이 일어났고

    그는 함께 지냈던 D를 떠올려보고 마는 것이다.

  • [2008.7.14.] 잠시 입이 멈추었다.

    Miss Jeong 을 찾겠다는, 그쪽 의사는 알겠으나, 이해는 하겠으나, 그런데…

    그의 뇌가 한바퀴 회전을 하는 게 느껴졌다.

    무슨 단어든지 찾아내야돼. 되도록 텀을 길게 두면 안돼.

    “Hmm, Miss Jeong is out of office.”

    그래도 꽤 유창한 듯한 억양으로 겨우 토해낸 말.
    단번에 포기할 것이지 그 쪽은 Miss Jeong이 언제오냐고, 언제부터 통화가능할거냐고 묻는다.

    “I don’t know that”

    그리고 그 쪽에서 또 뭐라뭐라 하는데
    그는 침묵.

    수화기를 대고있던 입가는 어색한 미소로 굳어버렸다.
    알겠다. 나중에 전화하겠다고 말하는 상대. 그리고 전화는 끊어졌다.

    젠장

  • [2008.7.10.] 잠시

    통근버스에서 정신없이 뛰쳐나와 1층의 테이블에 앉았다.
    항시 남는 30-40분을 그는 책을 읽거나, 졸거나, 흐리멍텅하게 버타다가 사무실로 향했는데
    가끔씩 책 몇 페이지를 넘기면 홀로 뿌듯해하기도 한 아침의 짜투리 시간이었다.

    잠이 아직 덜 깨었는지
    정신을 못차리고 멍하니 앉아있다가
    어제 잠시 외출한답시고 가방에 넣어두었던 MP3를 보게되었다.

    괜히 귀찮게 되었다.
    보안상의 문제로 MP3는 반입금지였던 것이다.
    보안, 보안 그러지만 얼마든지 FTP 프로그램으로 자료유출을 할 수 있음에도… 이런 귀찮은 절차라니.

    그는 먼저 짜증이 돋았지만, 뭐 오늘 하루 퇴근 길엔 음악을 들으며 갈 수 있겠군 하며 이어폰을 꽂았다.

    거리를 걸으면서
    차에 타고 있으면서도 아닌

    가만히, 그저 가만히 앉아 음악에만 집중해보았다.

    콘서트 예매를 이미 해둔 터라, 예습삼아 이상은, 한영애 그리고 말로의 음악만을 넣어두었는데…

    이상은과 한영애의 음악은
    집중해서 들을 음악으로의

    탁월한 선택이었다.

    아침의 짜투리 시간동안
    그는 잠시 벅차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