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가 “사회에서 쓸만한 녀석”으로 탈바꿈 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시기 중 하나가 군대라고 생각한다.
전 근대적 학교나, 불행한 가정에서도 특유의 폭력 또는 억압이 나타날 수 있겠지만 그것은 한국 남자라는 집단의 공통분모가 아닌, 특수한 경우니깐. 보통의 그런 경우는 개인의 심리 정서적 문제로 나타나지 않을까 싶다. 트라우마 같은.
그런데 군대라는 곳은
여긴 원래 이런 곳이야 그리고 이 같은 과정을 평범한 한국남자라면 다 겪는 거라고 그래버리니깐- 이 모듈에 맞춰- 내가 변해야해. 라고 생각하게 되는 게 좌절이자 절망이다.
군대에서 겪는 거라곤, 춥거나 덥거나 배고프거나 고립되거나 그런 것은 별로 중요치 않는 것 같다. 계급서열 속에 나를 위치지우는 것. 그것에서 오는 어떤 포기가 있다.
전에 겪었던 서열에는 어쨌든 노력해서 향상시킬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나이 서열 제외하고)만… 이제는 어떤 노력을 해도 넘을 수 없는 서열관계가 있고, 그 중에 내가 있다는 것. 어떻게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사다리가 있다니… 하고
그렇다면 그 사다리 위에서 내가 위치하고 있는 자리 위에서 내가 누릴 수 있는 것을 누리고, 바짝 엎드려야 할 것은 바짝 엎드려버리자. 라며 쓸만한 녀석이 된다…
암튼 권위주의적 서열은 시대가 흐르면 점점 더 나아지겠지- 싶었는데- 이게 웬일 요새 SNS에서 빵빵 터지는 대학가 폭력적 군대문화들… 사실 요새 정보공유가 더 잘 되서 그렇지… 옛날이 더하긴 더했겠지… 암튼… 쪼오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언제 뿌리 뽑는 그 날이 언제일까, 하고 한숨쉬게 되는 근래.
암튼, 그런 근래에 서열관계와 그들의 우수은 놀이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건 내가 평소 하고 싶었던 얘기가 있어서 길게 쓴 거고- 사실 작품 자체가 그리 훌륭하진 않다는 인상… 현상 포착은 잘 했지만, 갈등의 전면을 너무 직설적으로 드러낸 것 같아 아쉬웠고, 결말은 더욱이 좀 뜬금없었다…
은혜
철저히 어린 소녀, 은혜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들.
영상도, 연기도(목사 연기 빼고) 좋았다.
그런데… 그런데… 너무 봐왔던 풍경이라…. 새로움이 별로 없었다…
어떤 날
노인과 노래방도우미의 어떤 공통분모 그리고 교감.
근데 전해오는 게 별로 없다…
좁은 길
희망도 탈출구도 없는 청년세대의 이야기다.
이것도 많이 다룬 테마이건만 – 내가 아직은 청년세대여서 그런지
이 시대 중요한 화두여서 그런지 절절하게 흐른다.
공무원시험준비하면서 택시기사와 택배배달을 하는 두 사내의 이야기.
결말 부분이 조금 무리수가 있다, 싶기도 하지만 – 여러가지 기억에 현실적인 장면들로 하여금 가슴을 때리더라.
*전년도수상작3
만일의 세계
관계가 끝난다는 것.
둘이 함께 공유하고 있던 세계가 끝이나고 각자의 세계로 분리된다는 게 아닐까.
각자 다른 세계에 있는 둘은
같은 공간에 있어도,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을 해도-
함께 같은 것을 느낄 수 없고,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
어떻게든 날 바라보라고 몸부림이- 온전히 가엾은 몸부림으로 보일 뿐이다.
영화가 다루려고 하던 테마가 그런 것인 것 같은데- 음… 그 한가지 단선적인 테마로 극을 계속 끌어가다 보니깐 – 지루한 감이 있다. 그 테마에서 조금 더 치고 나가거나 다양한 변모를 보여줘야하는데 – 그 테마만 끌고 가다보니깐 동어반복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
비행소녀
연기도 훌륭하고 화면도 깔끔하고 그렇긴 한데-
음- 사실 공감이 안 가는 부분이 있다.
갑자기 따라오는 애는 챙겨주면서도 왜… 칼에 찔린 남자는 경찰 하나 불러주지 않는거지… 뭔가 성인남성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에 인 것 같긴 한데… 그게 잘 나타나질 않으니까… 왜?! 하게 된다.
그래서 공감의 부분을 찾지 못하고, 많이 보던 테마인데- 하고 겉돌게 된다.
달팽이
애니메이션이지만 꽤나 잔인한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이 생각날 정도로… 현실에 있는 비정한 것들을 그대로 건져올렸다.
왜 독립영화 감독들은 DVD를 주지 않는가
제목부터가 비범한 이 영화는 – 단연 근래에 보았던 단편영화 중 최고!!
( 근데 내가 근래에 단편영화를 본 적이 별로 없다..;;)
적재적소에서 웃음을 잘 건드려서 – 웃게 되는데… 슬퍼지는 이 기분은 뭐지?! 하하하하핫
가와이 순지… 메쏘드… 봉준호까지…. 이건 긴 설명이 필요없다- 그냥 한번 보면 됨!!!
감독이 직접 유투브에 풀버전을 올려두었으니, 보면 됨!
아귀
이건 스토리나, 어떤 의미부여보다 서스펜스를 즐기라고 만든 영화같다.
한정된 공간에서 극도의 몰입감을 위해 영상미나 컷의 호흡이나 이런 것은 참 쫄깃하게 잘 만들었다.
다들 그렇듯이 초등학교때- 가방이 가볍고 그러면 곧잘 뛰어다녔다. 마치 슈퍼마리오가 된 듯, 남의 집 수도관 뚜껑을 팡팡! 때리며 뛰어다니기도 하고 그랬는데 – 지금 그렇게 뛰라고 하면 뭐랄까 남들 시선보다 먼저 어디 다치기라도 할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으흑!
예전에 제주도에서 전경으로 있을 때, 가끔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오곤 했다. 휴식 시간에 간다고 해도, 빠른 시간 안에 다녀와야 하기 때문에 빠른 걸음으로 종종 다녀왔었는데 – 어느날 버스에서 딱 내리니깐, 도서관 앞 신호등이 파란불이 딱 켜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질주해서 – 파란불을 건넌 적이 있다. 한 100미터 조금 안됐던 것 같은데… 그런데 – 그 다음날 보니, 온 몸이 쑤셔서- 왜 그러지?! 뭐 한게 없는데, 라고 생각하며 돌이켜봤는데 횡단보도 건넌다고 100미터 잠깐 뛴 것 때문에- 몸이 쑤셨던 것. 헉 내가 얼마나 운동부족인가… 그것도 남들은 다들 몸 건강해진다는 군생활 중에 이 모양 이꼴이라니. 하면서 나중엔- 휴식시간에 여기저기 조깅을 많이도 했다. 필받을때는 거의 40분 넘게 계속 뛰어서 해수욕장까지 다녀오고 그랬으니- 그 시절이 내 건강의 리즈시절이었을 수도 있겠다. 그때가 스물넷에서 스물다섯 시절.
그리고 시간은 흘러흘러, 지금은 서른둘.
밤에 산책을 하면서- 계속 걸어다니기만 하는 것도 도움이 되겠지만… 제법 오랜만에 뛰어버리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했지만.
에이 가만히 걸어다녀도, 여기저기 걸려 헛발질 하는데 – 뛴다고 뛰었다가 – 팍! 꼬꾸라지면 어쩐담… 하면서 말았다…. (신고 있던 것도 쪼리였고- 그래서…)
실업급여 수급인정을 위한 방문일이어서 오랜만에 일찍 일어나서 공덕으로 향했다가, 저녁약속까지 시간이 넉넉하게 남았는데 – 오랜만에(?) 외출도 했겠다, 시나리오 쓰는 과제도 마감이 다가오는 지라, 집에 안들어가고 어디 까페같은 데서 과제나 해야겠다 싶었다. 공덕이면- DMC랑도 그리 멀지 않으니깐, 얘기만 많이 듣고 아직 한번도 못 가본 한국영상자료원에 가야지 싶었다. DMC에서 점심을 간단히 먹고, DMC를 조금 돌아다녀보는데- 뭔가 서울 아닌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서울 하면 좁은 도로에 복작복작하고, 대로를 조금만 돌면 비좁은 거리에 뭔가 다닥다닥 주택과 차들과 언덕들이 늘어서는 게 일상인데 (사실 서울 전체라기 보다는 강북쪽이라고 하는 게 더 맞을듯)- 여긴 경기도 신도시처럼 길도 널찍널찍하고, 차 없는 거리인건지, 차도 안다니고 건물이고 뭐고 모두 다 신축으로만 늘어섰다. 주변을 다니는 분들도 나이드신 분은 정말 드물고, 거의 3-40대에 집중되어 있는.
이 인공적인 첨단의 마을은 그래서 사람들이 두루두루 거리에 나와 얘기하고 있어도 거리가 시끄럽지 않고, 뭔가 텅~ 하니 조용하다. 마치 사람보다 마을 전체가 어떤 기운을 내뿜는 것 처럼. 그런데 그게 괴기스럽거나, 싫은 느낌으로 다가오진 않는다. (훗? 난 차가운 도시남자?!)
조금 결과론적 의미부여로, DMC 라는 곳이 단순히 기업체의 묶음이 아닌 미디어를 다루는 사람들의 일터여서 그렇지 않겠느냐는, 그리고 내가 꽤나 동경하는 그런 곳이어서 그렇게 느꼈나 싶다.
암튼, 지나다니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 영상자료원에서 시나리오을 쓰고, 웨스 앤더슨의 영화를 한편보고, 저녁에는 쿠아레라는 까페에서 다큐멘터리도 한편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