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라고 꽃이 피네..
아직 활짝 피지 않앗잖아.. 라고 자꾸만 기다리게 되네.
꽃 같은 거 딱히 즐기지 않는 성격인데
요즘은 “감상” 도 할 줄 알게 되고… 조금…. 센티해진건가….
개나리야, 목련아, 벚꽃아
내가 언어화하지 않아도
기분 좋은 것들아
잊혀져도 좋을만큼
지금 이 순간 아늑한 기쁨들아…
봄이라고 꽃이 피네..
아직 활짝 피지 않앗잖아.. 라고 자꾸만 기다리게 되네.
꽃 같은 거 딱히 즐기지 않는 성격인데
요즘은 “감상” 도 할 줄 알게 되고… 조금…. 센티해진건가….
개나리야, 목련아, 벚꽃아
내가 언어화하지 않아도
기분 좋은 것들아
잊혀져도 좋을만큼
지금 이 순간 아늑한 기쁨들아…
오늘도 한 수업 졸았네…
예상했던 수업이었어… 젠장
‘선택과 집중’ 을 어디에 어떻게 해야 될지 조금 어렵네…
난 조금 소심하고, 욕심도 조금은 있는 편이었나봐
독문과니까 독일어도 ‘어느 정도’ 는 하면 좋을 것 같고
사람들 다 한다니까 영어도 ‘어느 정도’ 는 하면 좋을 것 같고
문학도 흥미를 두고 열심히 공부하고 싶고
영상은 기필코 열심히 하고 싶고
동아리 활동도 ‘잘’ 하고 싶고
사람들과 관계도 섭섭치 않게 지내고 싶고
그럴려고 하다 보니깐
잘 되지도 않으면서 너무 피곤하다 ㅠ
그래도 최소한의 기준은 지키고 있느니,,, 벌써 4월인 지금.
난! 아직까지 완출! 이라는 거.
ㅋㅋ 젠장이다. 복학생에게 그 정도는 기본 아닌가? 쩝
지치진 않는데, 너무 불안하다..조금 피곤하고…
그래도 몇 가지 행운인것은 우연찮게 신청한 CT 특강이 너무 괜찮을 것 같다는 거.
그리고 음…
오늘도(?) 동아리 새내기 한명이 발을 내밀었다는 것?
진짜 좋다는 생각은 아니고, 뭐 좀 그나마 다행이다 싶네 ㅋㅋ
어찌되었든 간에
지금 난 정리되지 않은 상태라는 것.
일이 몰려온다! 좀 피곤한데…
너무 할 게, 갑자기 몰렸다. 다음주까지만 지나면 괜찮을 것 같은데 말이다.
그런데… 괜찮을까…?
다음주가 지나도 말이다…. 쩝,,,
오늘도 피곤해서 길게 쓰지는 못하는데..
요즘 일상, 처음 서울 때에 너무 한가하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엔 조금 시간이 부족하단 생각이 자꾸 드는군.
하고 싶은 게 너무 많고
마음에 걸리는 것도 너무 많고
해야 할 것 같은 것도 꽤 있네…
빡세, 빡세다… 복학생!
이것저것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데, 아직은 좀 뿌듯한듯.
이것도 다 부질없는건데
완전 호일파마는 아니고 반호일이지만..
나름의 이미지 변신에 현재 만족하고 있다…
집에 오고나서 허기진 배를 채우고선,
사진 보정 때문에 시간 다 말아먹었지만,,,
아직까진 괜찮을꺼야.
내일 수업도 알아서 휴강해주는데 뭘.
그나저나 독어수업 2개만 들어서 정말 다행..
이렇게도 빡쎄다니 말이야…
…. 별로 써야 할 말은 없고,
그냥 오늘 머리 바꿔서, 기분이 왠지 들떴어 ㅋ
새로운 내가 되는 느낌?
그래도 숙제는 하고 자야지?
방황. 방황.
나는 인터넷의 유목민.
그래도 오늘 집청소도 하고, 운동도 하고
보건소에서 검사도 받고
음… 또 스크립트도 아주 쪼끔 하고… 막 그랬다.
이제 당장 지금이! 3월이다
바로 복학생이 되는 것.
수업을 듣는다는 것.
다시 동아리방에 앉아있게 된다는 것.
막상 내일같지가 않는
너무 오랜만에 일이다….
근데 기분은 왜이리 처참하지?
내가 계속 미루고 있는
‘그 일’ 때문인가?
또 자학하긴, 쳇
다시 스크립트 중이다.
그 유명하고 유명하고 유명한…
김윤식씨가 걸렸는데
한국 문학의 지층 탐색 해놓고, 지층이 너무 물렁물렁하다.
문학 이야기는 거의 전무하고… 일본 이야기 하고 여러 신변잡기적인 이야기 같은 것이 쭉 이어지고 있다… 별로 유머러스 하지도 않은데 학생들은 왜이리도 잘 웃을까. 나는 도대체 저 양반이 이렇게 밑도끝도 없이 이야기 해서 언제 본론으로 들어갈까 이 생각밖에 안드는데 말이야.
이제 진행률 60프로 정도 되는 것 같다.
다행히도 시간이 연장되긴 하였는데, 그래도 부지런히 해야한다.
내게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은 것.
입문코스3 도 아직 다 못들었는데….
아 우선 너무 피곤하다. 눈이 흐리멍텅 해.
우선 내일 일찍 일어날 것을 목표로!
여행은
‘삶의 목적’을 생각할 겨를이 없어서 좋은 것이 아닐까?
생존과 내 인생에 관련한 복잡 다나한 물음
그 해답없는 영원한 물음을
생각할 겨를 없이…
내 감정을 오롯이 추적하면 된다는 것.
한 인간에까지 다다를 필요없이
한마리 짐승이 다른 짐승들과
지금 내가 무엇을 겪고 있지?
지금 내가 어떤 느낌을 갖고 있지?
지금 내가 어떤 생각을 할려고 했던가
…
그렇게 즉각적인 나에게만 충실하게 되는 시간을 만들어 주어서
그렇게 인생의 여백을 생성해주어서
즐겁지 않아도 즐거운 것이 아닐까.
그저 편한 사람들과 함께 간다면 말이야.
홀로 하는 여행은 또 다른 느낌이겠고…
어찌되었든… 피곤하고 피곤하였지만
내 삶의 작은 여백.
소중했던 시간들.
판타지를 상상해본다.
미래라고 부를 수 없는 시간적 텀 안에서, 지금 바로 내 앞에 일어날 수 있을 위험한 판타지. 그것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지극히 나와 연관되어 있고 또한 지극히 위험할 수 있다. 내 눈 앞에서 나와 연관된 현실이기 때문에 그것은 공포일수도 있다.
그것은 ‘나’라 하는 주체가 대중속으로 편입되는 순간에…
‘내’가 어떤 예외적인 생물체가 아닌, 습관적으로 ‘우리는’ 이라고 부를 존재가 되어 있는 동안에…
나의 확장형이 바로 내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아니라고 여기고 있는 동안에…
나의 생존을 오직 죽음에 대한 공포로부터 원동하고 있는 동안에…
일어날 수 있는 판타지.
작품은 그러한 판타지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대중들의 삶은 직접 제시되는 일이 없지만, 에비의 삶을 통해서 그것을 어느 정도는 암시한다.
오직 제공되는 언론과 교통에 의해서만 움직이게 되는 대중들의 암흑상.
언론과 교통의 마비는 대중들의 모든 움직임을 통제할 수도 있다. 아주 간단하게도 말이다. 거기에 질병이라는 거대한 ‘위생권력’ 은 대중들을 사육되는 일종의 동물로 만들어 버릴수도… 말이다.
작품의 판타지는 조지오웰의 <1984>부터 끊임없이 제시되어 오던 통제사회와
인류 온 역사에 주기적으로 나타나오던 독재사회의 혼합판이다.
빅프라더의 존재는 대법관이로 나타나고,
밀고자들과 군대가 그 대법관을 지탱해주어 형성하고 있는 독재사회.
아주… 여러 가지가 떠오른다. 로마의 시저, 히틀러, 빅브라더… 등등등…
그런데 왜 하필, 지금의 현대 영국을 배경으로 그런 융합을 만들어 냈을까.
영국 국기에 미국국기를 박아놓고… 영국이 수많은 근대 제 3세계국들에게 한 것처럼 말이다. 그것은 왠지 영화를 보고 있는 당신의 현재와 관련이 깊은 것만 같다.
전쟁이 끝났다고 여겨지는 인류 지구촌의 세기는 이미 전쟁으로 얼룩져있고, 이념논쟁 혹은 전쟁이 끝나버린 지구 위에서 인류라는 존재는 혁명을 일으킬 줄을 모른다. 연일 계속되는 반전시위에도 영국은 결국 미국의 푸들이 되어 버렸다는… 인간보다 이윤을 선택하였다는 것에 대한 일말의 풍자가 아니었을까.
그런데 작품이 깔아두는 배경과 여러 상황적 탄생이유 혹은 주제를 다시 곱씹어본들…
일관되게 엉터리 연출, 짜깁기 한듯한 시나리오, 기본적 개연성의 부족.
주제의 결말까지의 방식은 다분히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전혀 개연성이 없는 진행이 우선 눈에 띠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마는데…
처음, 어느 시대일줄을 모를 시대에 누군가 죽는 이야기와 현대의 이야기와 맺는 인과적 이유가 부족하며, 거리에서 만나는 V와 에비와의 만남이 너무나도 상투적이어서 어이가 없으며, 에비를 도와주는 방송국 동료가 어이없게 자초하는 자신의 위험이란 그저 이해가 안되며, 매번 V를 쫓기보다 음모를 파헤쳐주는 관찰자 역할을 하던 경찰이 어떤 이유도 없이 그 지하철을 발견해서 때에 맞춰 찾아오는 것 하며, 먼저 오는 V와 뒤에 와주는 경찰이라는 기가막힌 타이밍이라는 것, 방탄조끼 하나 입었다고 추풍낙엽처럼 적들을 쓰러트리고 다시 에비에게 까지 찾아가 그녀 품안에서 유언까지 남기고 죽는 것 하며… 이로 셀수도 없이 끔찍한 빈약한 개연성들.
또한 전체적으로 굉장히 많은 것을 함유하고 있는 시대적 배경임에도 불구하고 그 설명이 오줌 찔찔 흘리듯 제공하고 있어서… 그것은 조금씩 실마리를 푸는 듯한 느낌이기보다 그때그때 머릿속에서 짜낸듯한 인상이며…
그 소재차제도 이로 말할 수 없이 진부다하다는 것이다.
빅 브라더의 존재, 언론 통제의 사회, 정부권력의 어떤 실험실에서의 실험.
같은 것들… 다 어디서 본 듯한 것들이 이로 말할 수 없이 얼기설기 엉성하게만 엮어 있어서 진부함들이 지저분하게 얽혀있다.
또한 연기자들의 연기력은 어떠한가. 상투적 대사와 인과성 없는 연기력을 선보이고 있다.
경찰은 총을 쥐고 있는 모습조차 어색하게 서 있으며… 의미심장함과 각성함의 모습들이 모두 어설프게만 처리되고 있다.
마치 TV 방영 드라마를 영화로 뭉뚱그려 놓은 듯한 전개를 지나면… 브이 포 벤데타는 예정된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대중들에게 자각을, 주체성을 선물로 주기 위하여 브이의 마스크를 씌워주는데… 그래서 우리 자신이 모두 영웅이 되는 것은 아니다.
브이라는 개별자가 그리고 에비라는 개별자는 우리 자신의 다른 모습이라 여기기에는… 그 각성의 과정 또는 그 자각의 과정이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던 것이다.
특별한 희생과 위장된 고통으로 자각함이라 함은…. 너무 대중적 호응도가 떨어지는 일이 아닌가.
조금 더 일상적인 사람들의 삶에 침투하는 고통이 좀 더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중간 부분에 나왔던 어떤 동성애자의 이야기가 더 진실성 깊게 느껴지듯이 말이다.
눈에 보이는 고통보다 일상적 삶을 압조여오는 고통들. 권력들, 폭력들 말이다.
그리하여 일정의 문제의식을 난잡하게 뒤섞어놓고 뻔하게 혹은 어이없이 폭죽을 터트려버리던 것 앞에서
관객들은 그저 관성적인 방식으로 박수를 치게 되고 만다.
레퍼토리. 해피엔딩 레퍼토리에 습관적인 박수. 그리고 끝.
그러면 영화의 주제는 소재가 되어지고… 영화는 끝.
활동보조를 하면서 느끼는 점인데, 갈 때마다 많이 듣는 소리가
“젊은 사람이 좋은 일 하네요”
하는 소리이다.
보통 그 이야기는 장애인 분 본인이나 혹은 장애인 분 본인과 그리 가깝게 지내지 않는 사람이 한다. 그럴때마다 수없이 부끄러워지는데, 그것은 나는 그저 시급 6,000원을 받고 일하는 알바생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다른 아르바이트와 비교할 때 시급이 약하지도 않으면서, 그렇게 힘들지도 않은 일을 하고 있는 나.
뭐가 좋은 일인가!
마치 대단히 선량한 사람이구나 하는 그 대접이 내게는 너무도 과분한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내가 만일 자원봉사자라 하더라도, 돈을 받지 않고 보조업무를 하더라도…
그것은 좋은 일 혹은 착함이라고 불리워져서는 안 될 것이라는 것을
어떤 사람을 통해서 조금은 알게 되었다. 아주 조금… 정말 미약하게나마…
나는 우리 사회에서 속히 중증 장애인이라 불리우는 사람을 아주 가까이에서 대한 경험은 없었다. 특히나 단둘이거나, 특히나 주기적으로 긴 시간동안 대한 일은 별로 없는데… 뭐 지금은 그리 긴 기간은 아니지만 서로에 대해서 적응이 되는 시간은 지나왔다.
그런데 내가 보조업무를 하면서 느껴지는 원초적인 감정은
인내함이다. 좋게 말하면 배려이고, 노골적으로 말하면 참는다 일 것이다.
느리고 알아듣기 힘든 말을 경청하기 위해서
식사를 보조하기 위해서
소변일을 보조하기 위해서
이동을 보조하기 위해서
나의 원초적 감정은 인내함 이었다.
그런데 보조를 하고 있던 장애인분의 친구분이 한 분 계시는데…
그 분에게는 아무것도 특별할 것은 없다.
단지, 그 분은 ‘어떤 배려’가 느껴지지 않는 친분이 있다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친하기 때문에 그 분에게서는 보조 업무가 아닌… ‘원래 그랬던것처럼’ 이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라고 묻기 전에
그냥 몸이 저절로 가는 것 같은 모양새?
가족관계 사이에서도, 뭔가 느껴지는 인내함의 덩어리가 느껴졌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나는 처음 그 분을 봤을 때,
무의식중에 착한 사람이구나 라고 생각해버리고 말았는데
그 분이 뭐 착하긴 착한데, 그렇게 천사는 아니다.
정의감에 불타는 사람도 아니고…
성실한 사람도 아니고…
뭐 그냥 평범지긋한 약간의 다혈질 정도?
가족중에 중증장애인이 계시다는 게 특별하다면 특별하다는 것…
생각이 드는 게
이 사회속에서 장애인으로 지칭받는 한 인간과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심성이 착하구나 하고 여기고, 좋은 일로만 여겨서는 근본적 변화를 꾀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좋게 여겨준다는… 그러한 단순 봉사정신에서 나오는 것은 좋지만, 그런 연유로 여러 사회봉사자들이 봉사를 하 있는지도 모르지만… 일상적 차원에서 장애인들은 ‘착한 사람들’하고만 어울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당연한 것이고… 그것이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 인권이 아닐까.
장애인과의 친분을 의식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이
아주 일상적인 친분활동을 비일상적 무대로 끌어내어서
하나의 벽이 되고 있는 것만 같다.
좀 전 이야기 했던 그 분은 전혀 착하지 않다.
그 분은 의식적인 것보다, 그저 친분으로… 자연스러워진 것이다.
활동을 보조하는 행위들을 하면서도 인내함이 필요치 않은 것은
아주 단순하게도, 익숙해졌기 때문이고, 친분이 있기 때문이다.
나도 맨 처음 대할 때보다는 조금은 자연스러워 짐이 사실이다.
그와 그녀도 당연히 사람인데 라는 생각.
그저 친분이 있는 건데 라는 것 앞에 봉사라는 딱지를 붙이기 전에
한번쯤 그들의 관계와 공간이 더 사회적으로 열려져야한다고 고민해봐야 되지 않을까.
장애인 교육시설을 따로 만들려고만 하기 전에 보통의 일반적 학교에서 시설을 보강할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봤어야 되고,
단기적인 휠체어 리프트 전부터 엘르베이터를 만들었으면 얼마나 좋았는가
우선 그와 그녀들을 사각지대에 몰아넣고,
봉사활동 하는 이들을 착하다 라고 불러주는 것으로 양심을 덜어내려 하지 말고,
그저 함께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서
서로 익숙해 진다면…
인내함은 뛰어 넘어지는 것이다.
장애라는 장벽은 허물어 질 것이다.
‘안경’ 이라는 보조도구를 아무렇지 않게 여기듯이
‘휠체어’ 라는 보조도구도 아무렇지 않게 여기게 되도록
장애는 사람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안에서 만들어 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