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DJ

  • [쉽게읽는 백범일지-도진순 역]

    삶의 의미를 자기 규정해야만 하는 혹독한 자유를 선포한 것이 근대이지만, 정령 거리로 쏟아져 나왔던 것은 자유로운 개인이 아닌 제국주의 또는 식민지의 국민들이었다. 그런 제국-식민지 시대 속, 제국주의 국민들의 내면을 섣불리 판단내릴 순 없겠지만, 식민지 국민 혹은 식민지 개인의 풍경에, 우린 매우 익숙할 것이다. 현재까지도 자욱을 이따금씩 드러내곤 하는, 다소 상투적이라고 생각해봤던 그것. 그런 상투성 속에, 우리 역사속의 김구가 갇혀있지는 않은가 생각해본다. ‘조국독립을 위해 이 한 몸’ 바쳤던 역사적 영웅이자 위인이란 사고의 틀 속에 ‘왜?’ 라는 이유가 빠져있는 것도 같다. 또한 한국사의 정점에 위치했던 김구가 방향했던 목표지점은 어디였던가. <백범일지>라는 자전적 기록의 면면들을 전형적 위인전이 아닌, 다중의 텍스트로 본다면, 죽어버린 위인 김구는 살아있는 개인 김구로 볼 수 있는 여지가 필자는 있다고 생각한다.

    가지를 잡고 나무에 오르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니지만,
    벼랑에 매달려 잡은 손마저 놓는다면 가히 대장부로다.

    위의 대장부가 바로 김구가 지향하는 삶이지만, 위의 모토에서 풍기는 대담한 결단력이 김구를 어디로 방향하게 하였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릴 적부터 동학접주로 활동하고, 의병에 참가하는 등 자부해도 될 만큼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김구에게 자주독립국가라는 이상(理想)은 근대적 사고체계에서 이뤄지기 보다는 오히려 봉건적인 사고체계안에 놓여있었다. 김구 인생의 커다란 전환기가 되는 스치다의 살해 계기는 ‘국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이 왜인을 죽였노라’ 였다. 사실상 스치다란 개인의 그 어떤 악행도 김구는 목격한 적이 없다. ‘여하튼 칼을 차고 숨어 다니는 왜인’ 이기 때문에 ‘국가와 민족에게 독버섯’으로 생각되었던 것이다. 또한 김구 자신이 의병을 떠나기 이전에 일제에 의한 일가와 개인의 수난 등. 직접적인 계기 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김구에게는 조선의 쇠락과 수모가 꼭 자신의 쇠락과 수모로 등치되었던 것이고, 자신을 조선의 대장부로 위치짓고 있었다.
    김구는 어떤 이론적 학습에 의해 결단하기 보다는 그의 인생과 맞닿아 있던 여러 가지 체험들로부터 자신의 가치체계를 정립해왔다고 할 수 있기에, 1870년대에 태어난 김구가 봉건적 사고체계 안에 놓여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무작정 봉건성이라는 딱지를 붙일 수만은 없는 것이, 김구는 아직 봉건적인 사회 속에서, 양반과 상놈의 구별없는 사회를 꿈꾸고 있었다. 동학에 입문하게 되었던 것도 신분차별 없는 새 세상이 그의 마음과 맞았기 때문이었다. 단문으로 요약하자면, 치하포 사건까지 김구는 조선의 계통을 이으면서, 신분차별 없는 독립된 공동체를 꿈꾸었다.
    김구의 사고의 전환기가 언제인지 정확히 추정할 수는 없지만, 위의 목표문장에서 조선의 계통을 이으면서는 괄호를 치게 된다. 김구에게 조선이란 외연이 없어진 연 후에도, 그가 공동체를 위한 ‘대인배’로의 길을 접지 않았던 것은 민족이란 외연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민족은 어떻게 서는가. 그것은 바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핵심적 활동을 했던 것처럼 근대적 국가 체제라는 형식으로 귀결이 되는 것인데, 김구는 오로지 외세에 의존하지 않는 우리 민족끼리라는 생각으로 근대적 국가 체제 앞에 괄호 쳐진 ‘서구 자본주의적’ 이란 엄청난 수식어를 놓쳐버리게 된다. 사회주의 운동 진영을 도외시 혹은 냉대하면서 중도 우경향을 취하는 것이다. 김구는 제국주의의 간섭에서 벗어난 한국의 실현이 모범이 되어, 전 세계 모든 국가가 그렇게 되도록 하자라는 사해 동포주의적 사고를 보이기도 하지만, 우선 우리 민족부터 라는 선후관계가 확실하였고, 그 실천적 방향은 이미 자리잡고 있는 자본주의적 근대성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상황은 이제 막 봉건에서 서구 근대성과 접점을 형성하기 시작한 한반도라는 공간적 배경. 그리고 그 속에 놓인 김구가 조금은 편향적인 활동 모습을 보이는 사회주의 운동진영을 대하면서 이미 예고되어 있었던 것이다.
    김구를 봉건성의 자장 안에 놓아보고, 좌우의 스펙트럼 안에 가두어 봄은, 결국은 한계적인 중도 우익적인 인물이었다는 단정을 내리기 위함이 아니다. 그것은 ‘민족의 지도자’ 라는 수식어가 종종 붙여지곤 하는 김구라는 인물을 조금 더 선명하게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다. 우경향을 취했다고 해서 그것이 어떤 흠집이 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좌경향이든, 우경향이든 그것이 흠집이 되는 것은 그런 정치성이 사사로운 이익과 결부되어 있거나, 누군가에게 폭력을 행사하였을 때라고 나는 생각한다. 헌데 김구는 기이할 정도로 자신의 직접적인 현실문제와 관련없는 대장부정신 하나로 인생을 살아온 것만 같다. 우선 <백범일지>에서 보이는 바에 따르면 말이다. 어떤 객관적 자료조사도 없는 상태에서, 추측으로 김구란 한 인물에 대해 평가를 내린다는 것은 엄청난 폭력이 될 것이다. 필자가 <백범일지>에서 본 김구의 풍경은, 그래서 여기까지다.

  • [고고70-최호] 다소 긴 뮤직비디오

    암울했던 70년대가 배경입니다.
    오히려 통금 시간을 악용(?) 하여 12시부터 4시(?)까지 가둬놓고 놀아버리는 소울 로큰롤(?) 밴드의 이야기이죠.

    긴장 요인은
    그들의 음악을 즐길 줄 모르는 대중들
    그리고 이어서 돈 맛을 알아버리고 관성화된 밴드 멤버들
    그리고 이어서 암울하기만 한 시국
    인데요.

    글쎄요.
    세 긴장 요인 모두 원만한 곡선을 그리면서 탁 풀어졌다는 느낌을 받기는 힘듭니다.
    그것은 영화 자체가 스토리는 과감히 삭제하고
    공연하는 비쥬얼 씬에 지나치게 집중하고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서먹서먹하기만 한 배우들에게
    제작자 혼자 도취되어 공연에 미쳐버려랴고 주문하는 광경이 눈 앞에 펼쳐지는 것만 같아요.
    그래서 어느 정도 비쥬얼 자체로는 성공을 거두었다 할 수도 있겠는데요.
    그 비쥬얼지 주는 감동은 기반하고 있는 스토리가 탄탄하지 않기 때문에 미미하기만 합니다.

    배우들의 캐릭터가 개성있고 매력있으면서도 동감을 전혀 얻지 못하는 것도
    빈약하고, 단절된 스토리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화에 바탕해서 그런지 또 한 편 많은 이야기가 쏟아집니다.
    공연씬들에 밀려버린 그 한쪽 귀투성이서 말이죠.
    그래서 비현실적이고, 어찌볼 땐 너무 과도하게 순진한 설정들이 나오기도 하구요.
    엉뚱한 에피소드들이 불쑥 불쑥 튀어나오는 바람에 황당할 적도 많습니다.

    그래서 그저 뮤직비디오 같았을 뿐이네요.

    그래도 조금 놀라웠던 것은
    의외로 신민아가 스토리 연기 이외의 면에서 훌륭한 퍼포먼스(?) 연기를 보여줬다는 것이었고
    조승우의 노래실력이 매우 뛰어났다는 것입니다.
    차승우는…. 음…

  • [2009.3.2.] MBC 노조의 <세계인에게 전하는 메시지> UCC

    솔직히 이명박 정권의 대응이 또

    어떻게 나올지 두렵다

    국민이

    자기 말을 하는 데 있어서

    국가정권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MBC 노조 파이팅! 투쟁!

  • [제주도] 제주도 사람들

    제주는 뜻하지 않게 나와 인연이 깊어진 곳이다.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을 갔던 곳이기도 하고
    대학교 1학년 때 대략 열흘동안 곳곳을 거치면서 제주도 한 바퀴를 돌기도 했다.
    그래도 그 때는 관광지는 많이 간다 해도
    스쳐 지나간다 하는 느낌밖에 없었지만…
    이 후, 조금 늦게 간 군대 2년을 제주도에서 지내게 되었기 때문에… 말이다.
    뭐 부대에 갇혀 있으면, 어디 있건 그게 뭐 다 그거랴 하겠지만…

    난 그냥 아무것도 없이 논산훈련소로 갔으나
    전경으로 빠졌을 뿐이고
    제주경찰서로 빠졌을 뿐이고
    제주경찰서에서 또 검문소로 빠졌을 뿐이었기 때문에(?) ㅋㅋㅋ

    군대 간 녀석 치고 상대적으로
    외부세계(?)와 표면적이 넓을 수 있었다.

    우선 검문소 근무가 교통 및 단속 그리고 관광안내 등의 업무이기 때문에
    민원인들을 상대로 해야 했으니… 다양한 사람들과 만날 수밖에 없었으며
    뭐 검문소 초소장 및 관활 파출소 직원들도 매일같이 볼 수밖에 없었고

    좁아터진 검문소(제주 경찰서 소속 초소 중 최악의 시설을 자랑했다)에서 먹고, 자고, 싸고(?)를 다 해야 하는 대략 6명의 대원들은
    시설부족으로 인해 밖으로 안 나갈래야 안 나갈수가 없게 되어 있었다.

    냉장고가 너무 작아서 매일 아침마다 근처 마트로 장을 봐와야만 했고
    조그만한 공터도 하나 없었기 때문에, 뜀박질이라도 하려면 멀리 갔다 와야 하고
    뭐 등등…

    그래서 나는 대담하게 정말 여기저기 나다녔다.
    뜀박질만 한다고 뻥치고, 관할구역 넘어서 있는 해수욕장 및 다른 섬(도로로 연결되어 있는)에도 들어가보고,
    도서관도 정기적으로 다니면서 책 빌려다 보고,
    시내에 있는 치과도 다니면서 밀려 있던 것들 모두 해치우고(?),
    주말에는 토익시험도 보고
    말년에는 운전면허 학원도 다니고
    오오~ 진정 많은 걸 했구나~ ㅋㅋ 등등등

    아, 군대얘기를 너무 많이 했다.
    암튼 제주.

    제주의 그 수 많은 관광지를 다 열거하면서 말할 순 없다.
    그저 다들 하는 얘기로 “우도”가 제일 좋다고 하는 것… 나도 동감한다 ㅋ
    그리고 뭐 한 바퀴 자전거나, 스쿠터로 돌면 괜찮다는 것… 나도 동감한다 ㅋ

    내가 제주에게 특히나 인상깊었던 것은
    그 이국적인 정취 속의
    섬 사람들이었다. 제주도민들.

    끝 억양을 희안하게 올리면서
    끝말을 완전히 축약해서 쓰는
    요상한(?) 사투리를 쓰시던 분 들은…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대체로 관광객들에게는 친절하지만
    와서 살려고 하는 타지 사람에게는 무척이나 배타적이다.
    거의 노골적으로 드러날 정도로 말이다.

    경찰조직에서 친다하면
    타지고향 사람이 제주 쪽으로 와서 산다 하면
    거의 십년 넘게 산다 하여도
    그 장벽을 극복하기가 매우 힘들다고 한다.
    뭐 성격이 엄청나게 활달한 훈남, 훈녀라면 극복 할 지도 모르겠지만…
    일반적으로… 말이다.
    어디 어디 곁다리 쳐서 들은 얘기이기보다도
    이건 내가 직접 보고, 들은 것도 많으니
    좀 믿어봐도 된다.

    “너 육지놈이지?”
    이게 거의 욕 처럼 쓰일 정도이니
    토종 제주도민인가, 제주도민이 아닌가는 무지무지 중요한 사안이다.

    소수의 ‘육지출신’을 배척하는 그러한 집단의 공격성은
    대단히 폭력적인 것이지만
    4.3항쟁 등을 비롯한 제주의 수난사를 돌이켜 보건대 그런 연유가 있구나 하고도 싶어진다.

    제주는 제일 변방이라는 지리적 여건 때문에
    외따로 존재하는 별개의 공간으로… 그 독립성을 어느 정도 존중받아야 함에 마땅한데
    국가적 횡포와 폭압은 ‘변방이기 때문에’ 가장 잔인하고도 노골적으로 나타나왔던 것이다.
    4.3 항쟁처럼 말이다….

    뭐 자세한 역사는 몰라서 모르겠지만…
    내가 제주도민들에게 어렴풋이 느낀 것은 그런 것이었다.

    무조건 해코지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고,
    우리끼리 떵떵거리고 살아보겠다는 것도 아니고.
    어떤 방어기제로 작동하고 있던 텃세.

    그런데.. 아직 상처가 다 아물 쯤이라고 하기엔 진상규명 문제 등의 과제가 남아있긴 하지만…

    조금씩 시도해봐야 될 때가 아닌가 한다.

    날카로운 발톱을 맞부딪혀 부러트리고자 하기 보다는
    서로 할퀴어진 상처를 쓰다음어 주는 일부터… 말이다.

    아…
    근데… 제주…
    묘하게 그립다..
    그 특유의 사투리.

    대단히 유순하게 들리기도
    대단히 고집있게 들리기도 한 그 묘한 사투리.

    언제 다시 한 번
    갈 일이 있겠지…

  • [연극 | 아름다운 인연] 직설적인 교훈, 산만한 에피소드

    좋은 공연 싸게보기’ 지원 사업 같은 것이 있던지…
    만원이라는 싼 가격에 하고 있는 연극이었다. 원래 연극을 볼 계획은 없다가,
    밥 먹고 나서 연극이나 볼까? 하고 찾게 된 ‘값 싸고 괜찮을 것 같은’ 연극.

    배우 김갑수씨가 제작도 한다고 하고, 포스터도 대학로 일대에서 많이 본 것 같고,
    시덥지 않게 막 웃길려고만 하는 연극은 싫었는데
    이건 뭔가 좀 메시지가 있는 것 같아서 선택했다.

    연극의 선택배경은 여기까지이고…

    연극의 관람후기는…

    “정신없다”

    그런데 메시지는 매우 단순하다.

    “성별감별 낙태하지 맙시다.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가요.”

    너무도 착하고(?) 도덕적인(?) 주제의식 때문에…

    이걸 막 욕하기가 좀 꺼려지는데

    그래도 느낀점은 솔직하게 말해야겟다.

    우선, 저 단순한 메시지를 계속 직설법으로만 반복한다.
    연극 자체에 이야기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많은 배우가 출연하는 것에서 예상되듯이
    그들은 모두가 뭉쳐 스토리를 끌고 가기 보다는
    캐릭터를 보여주고 마는데 그친다.

    그리고 연극의 중심 플롯과 관계없는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매우 산만하게 벌려놓고 있어서…
    한 면으로는 저 단순하고도 빈약한 주제의식에 재미를 붙인다는 장점도 있겠지만
    그게 그렇게 해결될 일이랴.
    주제의식을 어떻게 하면 더 감동적으로 전달할 것을 고민해야 될 것을,
    이 연극에서는 주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직설법으로 무한반복 하고
    이미 주제가 내뱉어져 끝나버리고 나자, 각종 캐릭터들이 코믹스러운 상황이거나 비쥬얼적인 상황, 그리고 별 상관없는 갈등을 일으키면서 산만하게 무대위를 들락날락거린다.
    각종 캐릭터와 장치, 조명효과, 춤사위 등등의 볼 거리는 덕분에 많아졌겠지만…

    “와 신기해~” 하다가

    “왜 저러고 있지?” 라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한 조금 같은 이야기인데
    중심갈등이라고 불릴 만한 ‘축’ 이 보이질 않아서
    극의 처음부터 끝까지 뭔가 끌고가는 힘이 부족하다.
    그래서 극이 결말에 치닫았을 때…
    극이 끝날 때 돼서 끝난 건 알겠는데, 뭔가 극을 본 느낌이 아니다 라는 시금털털함을 갖게 될 것이다.

    아, 그래도 조금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그래도 지루하진 않다는 것이다.
    굉장히 코믹적인 에피소드(이게 오히려 방해요소라고도 생각하지만)가 계속 이어져 있기 때문에… 웃음을 유발하는 지점도 많고, 뭔가 다양한 연출효과도 기대할 순 있다.

    다만… 가장 중요한 줄거리와 주제의식의 형상화 측면에 결정적으로 실패하고 있다는 것이 이 연극의 치명적인 결점이다.

  • [2009.2.24.] 나의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

    [1학년 담임 선생님] 뿌연 이미지
    초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은 젊으신 여자선생님이었고, 괜찮은 선생님이었다는 뿌연 이미지만 남아있다. 나는 선생님의 말에 꽤 굉장히 집중하여 들었던 것 같다.

    [2학년 담임 선생님] 권태롭고 뿌연 이미지
    초등학교 2학년 담임은 조금 나이가 드신 남자선생님이었는데, 그 분이 가르치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지 않았다. 선생님은 가끔 시덥지 않은 잡담같은 것으로 시간을 때웠는데… 그리 중요한 이야기도 아니었고, 그리 신선한 이야기도 아니었다. 지금 돌이켜보니, 권태로운 선생님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어떤 모습이었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이 나는 ‘어떤 순간’은 선생님이 구구단을 매일 대략 2명 정도 아이를 랜덤으로 시키곤 했던 것. 나는 그때 4단, 6단 등을 잘 못외어서 매일 심장을 벌렁벌렁~ 하게 만들었다.

    [3학년 담임 선생님] 몇 가지 좋지 않은 기억들
    초등학교 3학년 담임은 내게 굉장히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나는 성적은 잘 나오는 편인데 맨날 숙제도 수업시간에 몰래 하고, 이것저것 잡스런 장난도 치고 그런 아이었던 게 마음에 안 들었나보다. 크게 잘못한 것은 없었는데, 담임은 날 그리 좋아하질 않았다. 그녀가 보기엔 내가 너무 뺀질거려 보였나 보다. 나 말고, 1등을 자주 하던 아이는 나와 달리 공부도 잘 하는데, 착하기까지 한 뭐 그런 아이가 하나 있었는데… 담임은 그 아이를 유독 편애했었다는 기억이 난다. 그 1등짜리 모범생이 어느 날 청소시간에 운동장에서 뭔가를 주웠다고 담임에게 가져다주니, 담임은 그 모범생을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었다. 바로 며칠 후 나도 청소시간에 정말 우연히도 잃어버린 물건을 발견해서 담임에게 가져갔더니 그 담임은 그거 잃어버린 사람이 찾으러 오면 어떡하냐고 바로 제자리에 갔다 놓고 오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선행 어린이인가 하는 것을 아이들에게 추천하라 했는데, 좀 힘든 청소구역인 운동장 청소원들에게 가장 청소 열심히 하는 아이가 누구냐고 묻던 일이 있었다. 그때 아이들은 모두 나를 추천했는데, 그랬던 것이 나는 정말 쓰레기 줍는 것이 재밌어서 구석구석 뛰어다니면서 다른 애들보다 2-3배는 많은 쓰레기를 주워었왔던 것이다. 그런데 아이들의 의견이 내게로 몰렸음에도, 담임은 무시하고 다른 애에게 선행상인가를 줬던 기억도 난다. 아아~ 억울한 기억은 더 생생한가 보다… 그 순간, 순간들이 다 떠오르네. 또… 제일 마지막 시험 때, 담임과도 사이가 좋은 편도 아니고, 맨날 뺀질거리기만 해서 나는 성적이 팍 뒤떨어졌는데, 다른 아이들이 모두 나보다 성적이 좋게 나와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던 일이 있었다. 그때 그런 나를 보고 담임은 이게 다 자업자득이란 식의 훈계를 했다. 마지막까지 기억이 좋지 않았던 담임이다.

    [4학년 담임 선생님] 몇 가지 혼재된 기억들
    초등학교 4학년 담임부터는 얼굴이 기억난다. 50대 정도의 나이드신 분이었는데, 4학년때가 초등학교 과정 중 어려워지기 시작하고, 뒤떨어지는 아이들이 생긴다 말씀하시곤, 열심히 공부를 시켰던 분이다. 잘하는 아이는 확실히 칭찬하고, 과제도 빡쎄게 내주시는 동기부여에 능숙능란하신 분이었는데… 못하는 아이에게 못되게 구는 일은 없었지만, 몇몇 아이들을 편애하는 경향이 없지않아 있었다. 그리고 선생님이 주는 일명 ‘기합’은 물구나무 서기였는데… 그건 정말 초등학교 4학년짜리 아이들이 감당하기엔 좀 심한 것이었다. 모든 이가 쳐다보는 교탁 바로 옆에서 계속 떨어지는 다리를 들어올리기를 반복하다보면, 머리에 피가 쏠리는 것도 그것이지만 수치심 때문에라도 안 울고 돌아오는 아이가 없었다. 그래도 나는 담임이 시키는 데로 잘 따라하는 편이여서 이쁨을 받는 편이었다. 그 당시에는 공부를 열심히 시키는 선생님이라는 생각에 그냥 뭐 괜찮은 듯한 선생님이라고 느꼈었는데, 후에 돌이켜 생각하다보니 그리 좋은 선생님이라곤 여겨지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 생전 촌지같은 것은 챙겨보지도 않았던, 우리 어머니가 담임에게 촌지를 줬었다는 것도 조금 이상하고(어머니한테는 못 물어봤는데, 반에서 내가 ‘총무’를 맡고 한 영향이 있는 것 같다), 스승의 날 때 스타킹 세트를 주었는데… 그것을 바로 다음날 내게 되돌려 주더니 그냥 스타킹이 아닌 ‘고탄력 스타킹’으로 바꿔오라고 했던 것(돈을 더 주고 바꿔와야만 했다)도 뭔가 마음 상하는 일이었고… 마지막으로 학교 전체 문고집 같은 것을 만드는 데, 내가 써서 낸 시를 내게 말하지도 않고, 선생님이 제일 편애하던 반장의 이름으로 올렸던 기억이 남아 있어서 그렇다.

    [5학년 담임 선생님] 제게 좋은 기억을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가 내 초등학교 시절의 전성기가 아닐까 싶다ㅋ 그때 평생지기 친구들의 패밀리가 시작되었던 때이기도 하고… 담임선생님이 너무도 괜찮았던 것이다. 초등학교 5학년 담임선생님은 누구누구를 편애하지도 않았고, 공부도 잘 가르치시면서, 무엇보다 정말 아이들을 사랑하시는 듯했다. 또한 아이들을 대하는 데 있어서 벽을 두지 않았던 것 같다. 선생님은 가끔씩 옛날 자기 이야기도 해주고 그랬는데, 선생님의 아픈 기억들을 돌이킬 때는 울먹울먹하시던 것이 다 기억이 난다. 그때 우리반 아이들은 대체로 다들 사이도 좋고, 선생님 말도 잘 들었었던 듯하다. 나도 앞서 말했듯이 평생지기 친구들도 그때 다들 모인 것이었다. 담임 선생님이 정말 중요한 것!

    [6학년 담임 선생님] 죄송합니다만,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치명적입니다. 
    좋았던 초등학교 5학년을 뒤로하고 맞이한 초등학교 6학년. 그야말로 생애를 통틀어 최악이었다. 담임은 아주 사소한 것을 두고 열받아 하고, 아이들에게 걸핏하면 신경질을 내는 분이었다. 아이들에게 특별히 힘든 기합을 주거나, 마구 때린다거나 그러지는 않았는데… 정말 비상식적인 언행으로 교묘하게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시던 분이었다. 제일 기억이 남던 때는, 소풍때인가 다른 반 아이들은 자기 담임에게 먹을 것도 갖다 바치고 그랬건만, 너희들은 어떻게 음료수 캔 하나를 안 가져오냐고 대략 1시간 동안 폭발을 했던 적이 있었다. 모두를 눈 감도록 하고 “너희들은 똥벌레야. 똥벌레보다 못한 아이들이야. 화장실에 있는… ” 이라는 말을 계속 반복했던 적이 있었다. 어린 나에게도 이 선생님 이건 아닌데… 하는 마음이 들었던 그 ‘똥벌레 세뇌시키기’는 한 번으로 끝나진 않았다. 대략 두 번정도 더했던 듯하다. 나는 착실한 편은 아니었지만 성적이 괜찮았던 편이었기에 담임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주긴 했지만, 담임이 노골적으로 싫어하던 아이들은 그때 듣기로 거의 ‘봉기’ 수준 전까지 같던 것 같다. 매일 청소시간마다 모여서 계획을 짤 정도였으니깐. 그 외에 수많은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던 에피소드가 있었던 것 같은데… 확실히 기억나는 건 그리 없다.

    돌이켜 보건대

    어떤 분은 “교사” 라는 직업적인 마인드로 우릴 대하신 분도 있었고

    어떤 분은 자신의 권위/권력을 기분에 따라 막 대하시는 분도 있었고

    어떤 분은 정말 아이들을 사랑하시는 분도 있었다.

    분명한 것은 그 분들의 작은 한 마디, 한 상황, 한 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

    선생님이 지내고 있는 현재는

    제자들의 과거-현재-미래에 깊숙히 연관맺고 있다는

    단순하고도 중요한 메세지를 모두들 간직해주셨으면 한다.

    좋은 선생님

    어려우면서도, 또 뭐 달리 생각하면

    어려울 게 있으랴

    당신의 진심어린 마음이면 될 것 같기도 한데…

  • [2009.2.23.] 계절이 지나고 있다

    겨울이 지나가고 있다.

    6시가 다 되어서도 아직 깜깜하지 않은 바깥.

    짧은 2월은 이제 5일이나 남았을까…

    올해 3월도 아마 싱숭생숭 할 것이다.

    방황하는 청춘들 모두들…

    그래도 나는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가의 실마리가 조금씩 내 손안에 쥐어지는데

    잡아당기면

    끌려 올 까?

    라는 일말의 물음이 항시 따라다닌다.

    그래도 그리 초조하진 않아…

    질문을 던져본다는 그 설레임

    그 과정이

    곧 변화일테니깐…

    하고 생각하고 있으니깐.

    모두들, 인생…

    젊은이의 열정! 도전! 이라는 굉장한 외침 후에 추억거리로 간직하고 말기 보단

    지나는 이 짧고도 기나긴 도정을…

    살아가는 것이 삶이다 하고는

    살아주었으면 좋겠다.

    따듯해진다, 따듯해지는 것만 같다

    하다가 어느 순간 꽃 핀 봄이듯

    살아간다, 살아가는 것만 같다

    하다가 어느 순간…

    무엇이라도 손에 쥐고 있지 않겠는가

  • [2009.2.21.] 선배누님 결혼식장에서

    첫번째 사진도 재갑이다.

    결혼식장에서 축의금 받으면서 노트북 캠으로 한 컷! 인데… (재갑이는 완전 짤렸군)

    카메라 몽땅 들고 가선, 결혼식 장면장면만 찍고… 우리들은 사진은 못찍었다는 뒤늦은 아쉬움에 저 사진 하나라도 올려본다 ㅋㅋ

    (나머지 아래 사진 재갑은, 요즘 재갑의 컨셉에 너무 맞아서 추가! 그 놈 요즘 ‘재수’가 잘 따라주질 않는다 ㅎㅎ)

    나름 선배누님 결혼식이란 부담감이 커서

    바로 전날 머리도 자르고, “창고대방출” 가게에서 옷도 급구매 했다…ㅠ

    그래봤자 아래는 청바지를 입었지만…  뭐 그래도 이 정도면 깔끔하지 않은가… 클클

    뭔가 결혼식장에도 이제 좀 차려입고 가야하고

    축의금도 받고 그러니

    나이 먹은 느낌이었다…

    암튼 선배누님은 행복한 결혼생활 되시길!

  • [2009.2.20.] 허클베리핀의 저력

    언니네이발관 2집 <후일담>
    김두수 5집 <열흘나비>
    서울전자음악단 1집
    몽구스 2집 <Dancing Zoo>
    롤러코스터 1집 <내게로 와>
    허클베리핀 2집 <나를 닮은 사내>

    를 쉼없이 방황하다가

    결국은 허클베리핀이 저력을 부리는구나.

    그렇다고 다른 앨범들이 좋지 않았더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오버해서 말한다면…

    김두수는 아편처럼 나를 휘감고
    서울전자음악단은 잔잔하게 파동쳤고
    언니네이발관은 달짝지근하게 착착 감겼건만

    ….
    결국 맨날 허클베리핀 2집을 틀수밖에 없게 된 것은,

    이건, 순전히. 허클베리핀의 보컬 “이소영” 때문이다!!! ㅋㅋ

    지난번 홍대에서 허클베리핀 라이브공연을 보고, 바로 그네들이 운영하는 <Bar Sha> 까지 가서 매상올려주고 왔던 그날.

    난 그야말로 보컬 이소영에게 뻑가고 말았던 것..ㅋㅋ
    단순 미모에 반했다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그녀의 Aura 에 뻑갔다.
    (술 먹고 계산을 할 떄, 이소영이 해줬는데 그 굵은 목소리로 “만3천입니다” 라고 할 때… 얼마나 속에 있는 내장이 진동했는지 말이다. ㅋㅋ)

    나는 허클베리핀을 4집부터 거슬러 올라갔기에
    허클베리핀 2집이 조금 날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고
    보컬 이소영이 3,4집 때보다 조금은 불안스럽게 노래하고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3,4집보다 상대적으로)

    2집 앨범이 결코 후기작보다 못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3집 <올랭피오의 별> 이 감성적인 은유와 멜로디로 허클베리핀의 음악적 외연을 넓히고
    4집 <환상…나의 환멸>이 ‘허클베리핀은 역시’하는 완성도 높은 정공법을 보여주었다면

    2집은 그러한 똘똘함(?)과 정교함 대신 싱싱함이 있는듯하다.
    막 날뛰는 바람에 날카로워 지기도 하고, 도발적이기도 하고, 위태위태해 보이기도 하고..,
    뭔가 속 시원하기도 하고… ㅋㅋ

    뭐 그래서
    요즘은 허클베리핀 2집 <나를 닮은 사내> 다!

  •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김연수]

    은희경 책도 그리 많이 읽은 편은 아닌데
    은희경과 굉장히 비슷한 느낌을 자아내던 소설이었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말 줄임표의 뒷말은
    그것과 상관없이, 너의 의사와 상관없이
    너는 어떤 우연 속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우연은 역사의 질곡이라고 이름붙일 수도 있으며
    상식적인 기대상황을 뭉개버리는 권력체 및 사회의 폭력이라고 여길수도 있다.

    근대사회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개인을 독립시키고, 개인-주체를 확고히 하자하자 했지만
    사실은 독립되고, 확정된 것이기 보다는
    베제되고, 고립되었다는 상황인식이 보다 정확한 듯하다.
    베재되고, 고립된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우연적인 상황들은 우연히 아닌 연유로
    다가오고
    후에 돌이켜 보건대 그러한 역사의 질곡 속에서
    상처입은 수많은 개인들이
    얼마나 울부짓고 있던
    상황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이런 현실인식 속에서

    보다 근본적인 문제
    자신의 자기정의와
    자신의 상황정의로
    내가 누구인지
    내가 왜 외로워졌는지
    외롭게 만든 것이
    단순 감정의 문제를 넘어서서
    고립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라고 작품은 주문하고 있다.

    그런데 글쎄…
    한 편으로 로맨틱하게 들릴 수도 있는
    작품 속 현실감각 없는 수사(레토닉)가 역사적 사실과 맞물려 있어서 좀 장황한 면이 있고
    같은 이야기를 굉장히 늘여 뺀 이야기로 중언부언 하면서 책 한권을 잇고 있다는 면도 있고
    냉소적인 주인공 곁에서 서술자가 줄거리에 너무 도취되어 있는 면도 있다.

    수많은 상을 훈장처럼 쌓고있는 작가이지만
    조금 더… 조금 더…
    침착한 내공으로 줄거리를 엮을 필요가 있는 듯하다.

    그리고 주제의식에 목적어가 빠진듯한 공허함은 뭘까..
    이게 제일 치명적인 결점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