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엔 얼음이 내렸다
자동차는 언덕을 앞에두고 멈춰버렸다
사람들은 왠지 차분해보인다
일상에 내린 큰 눈
서로 공감할 수 있는 무언가가 생긴 듯하다
PS:
뉴스는 요란법석이지만, 이 정도 눈.
부안만 해도 매년 온다.
한강엔 얼음이 내렸다
자동차는 언덕을 앞에두고 멈춰버렸다
사람들은 왠지 차분해보인다
일상에 내린 큰 눈
서로 공감할 수 있는 무언가가 생긴 듯하다
PS:
뉴스는 요란법석이지만, 이 정도 눈.
부안만 해도 매년 온다.
현민이 홈페이지를 실험삼아
(제로보드) XE를 공부하고 있는데
아직 XE가 몇몇 개발자들이 발전시키고 있는 단계라 어려운 점이 많다..
입맛에 맞춘 풍성한 사이트를 구성하기 위한 다양한 팁이나 강좌등을 찾아볼 수가 없다…ㅠ
XE를 네이버의 nhn에서 접수한지라
설치법 등등의 것은 제법 만들어놨는데…
그것을 내 맘대로 바꾸면서 쓰는 법은…. 친절하게 설명된 곳이… 그리 많지 않다.
우선, 모듈이니, 애드온이니 등등의 구현 원리가 파악되질 않으니
뭐 하나 시도도 못해보고 있다…
좀 찾아보다가, 꺼버리고
좀 찾아보다가, 꺼버리기 일쑤
현민이 홈피 이미 싹 지워버렸는데..
다시 제로보드4 로 해놓고 그럴 듯하게 이미지로 떡칠해버릴까… 하는 유혹이 손짓한다…
생각보다 좀 시간이 걸릴 것 같다~
현민이 홈피 성공하고, 좀 그럴 듯하면
이 DJinside 도 XE로 갈아탈까 생각중이었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 지를 모르겠다…
흠흠..
뭐 어떻게든 되겠지.
현민아 좀만 기다리렴 ㅋㅋ
영상은 왜 이렇게 배울 게 많은 지… 정말 끝도 없다.
시나리오 쓸 줄 알아야니 글도 웬만큼 쓸 줄 알아야 하고
콘티를 그려야 하니, 어느정도 원근법을 구사하는 그림도 그릴 줄 알아야 하지
촬영 기재자는
수많은 구라 광고 카피들 속을 헤치고, 적절한 캠코더를 골라야 하고
적절한 조명 장비, 사운드 장비 등등..
촬영 할 땐
빛도 알아야 하고, 연기 지도도 어느 정도 할 줄 알아야 하고, 사운드도 어느 정도..
또 촬영이 끝나면
영상편집 해야하는데…
이것 또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태잎리스 HD 편집을 위해서
이것저것 알아야 할 게 정말 많다.
Progressive니, YUV니, NTSC니, Pixel Aspect Ratio니…… 등등등등을 제대로 알기 위해선
TV 개발의 역사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ㅠ
물론 난 대충 감만 잡고 있을 뿐… 아직 정확히 이해는 못했다…ㅠ
그리고…. 그 다음 과정은 배급 배포를 위한 출력과 인코딩.
지금 내가 제일 헤매고 있는 부분인데
난 그냥 다음 팟 인코더나, 곰 인코더 같은 것으로 사이즈만 맞추면 땡인 줄 알았더니만
여기 또한 태평양 같이 드넓은 세계였다.
이번엔 프리미어에서 라가리스 코덱으로 출력하고
윈도우 미디어 인코더에서 인코딩을 하는데
난데 없이 폰트가 에러가 발생을 해… 또 반나절을 헤맸다.
그런데 원인은… 매우 심플하게도
편집시 블랙비디오를 깔아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조금 허무해졌지만… 그래도 제대로 된 영상물을 봤을 때 느꼈던 그 기쁨이란… 흑
암튼,,, 영상은 정말 배워야 할 게 천지다.
이번에 <어두워지다> 1차 편집이 완료됐으니
조금씩 더 보정 보고
그 다음엔 그 전작들을 더 손 볼 예정이다.
가편집만 하고 내팽겨뒀던 <무신론자의 상상력> 과 <오프모임> 같은 것을 연습삼아
조금 더…
얼마나 더 손볼 지, 얼마나 걸릴지는 알수 없지만…
이십대 중반부터 삼십대 초반까지는 힘들다고 누군가 말했었다.
그렇게 쑤욱 지나고 나면
이젠 “그러려니” 해진다고 했다.
할 일도 없고, 시간이 적당히 남았을 때. 약 1년에 한번 정도는 중고등학교 동창들의 싸이홈피 스토킹을 해보는 듯하다.
연락하는 친구들 말고, 연락할 일도 없고 다시 볼 것 같지도 않은 동창들.
서로 스쳐지나도 아는 척도 잘 못하고 지나갈 법한 그런 친구들일수록 더 재미있는 법이다.
학교 이름으로 들어가서는 이름 목록을 쓱 훑어본다.
뇌리 여기저기서 쏟아내는 단면, 단면들.
누구는 사소한 다툼 하나만 떡 하니 떠오르고, 누구는 우수꽝스러운 말투만 떠오르고, 누구는 코 파는 장면만 떠오르기도 한다. 도대체 이 친구와 내가 무슨 관계였는지 서로 말은 나눠본 사이였던지 조차 희미하다.
관계없다. 그래도 상관없이 재미있으니깐.
보다보면, 참 세월무상이란 생각이 절로 든다.
육중한 몸을 자랑하던 친구는 벌써 애 아빠가 돼서 아이 사진을 올려놓고 있고, 훈남으로 급반전한 찌질이가 싸이를 온통 ‘Love is’로 장식하며 잔뜩 허세를 부릴 땐 키득키득 웃음을 참으며 이 놈이 얼마나 찌질이었는데 속엣말을 해보기도 한다. 차 한 대 뽑아 달려주시는 부자 친구를 보면 역시 ‘있는 놈은 끝까지 있고, 없는 놈은 끝까지 없는 것인가’ 하고 잠시 감회(?)에 젖어보기도.
이렇게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다 보면, 어느 순간 누가 나처럼 내 홈피를 들어가 본 적도 있을까 하고 궁금해지기도.
내 동창들의 기억속에 나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지기도.
그리고 내 학창시절을 반추해본다.
분명 학교킹카보다 찌질이에 좀 더 기울어져 있을 내 동창들의 기억들일텐데,
관계없다.
그러면 내 동창들이 와서 이 놈 기대만큼 여전하구만 혹은 그래도 나이드니깐 조금은 더 낫네 할 것 아닌가. 기대감은 안 줬을 테니.
얼마 전 머리를 짧게 깎았는데 가늘게 나 있는 이마 주름을 감추기가 힘들구나 했다. 시간은 훠얼훠얼 흘러가고, 모두들 흘러가듯 살아간다. 각기 다른 물살에 휩쓸려가며.
부안에서 지갑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주민증, 운전면허증이고 다 잃어버리고
은행카드까지 분실… 은행을 가봐도 신분증 가져오라고 해서
이번 기회에 사진도 새로 찍고 주민증, 운전면허증도 다시 만들기로 작심!
주민증이고 운전면허증이고 전경 시절에 만드는 바람에 좀 쪽팔렸던 게 사실이어서 ㅠ
헌데, 퇴근하고 이것저것 놀다가 사진찍으로 나가보니
사진관은 모조리 문을 닫고…
그나마 지하철 즉석사진을 찍고 왔는데, 이거 뭐 완전 폰카보다도 못한 결과물을 내놓는 것이었다.
그래서, 집에서 어떻게든 해봐야겠다고 작심하고
내가 갖고 있는 캠코더 촬영…. 을 하려는데…
위 형광등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조명 때문에 그늘이 너무 심하게 지는 게 아닌가.
그런데 다행히도, 저번 촬영에 쓰던 흰 우드락 반사판이 하나 있어서
그걸 밑에 대서 반사시키고, 전신거울도 옆에 놓고 반사시키고 그래서
그나마 음영 없애고
캠코더로 영상 찍고
프리미어로 영상 출력하고
출력한 것 곰플레이어에서 캡쳐떠서 이미지 파일로 만들고
포토샵에서 암부 노이즈 보정하고
눈 주위 음영 하얗게 만들고
증명사진 사이즈로 만들어서
찍스에 인화를 맡겼다!
헥헥헥!
위의 결과물이 저것…
(DSLR만 하나 있었어도 ㅠㅠㅠ)
나의 무기 포토샵이 있으니 이젠 사진관 갈 일이 없어졌다~
저 중에 전경시절에 찍은 사진은… 왼쪽에 머리털이 너무 없어서 머리털도 직접 만들어서 썼고,
(사진은 있는데 보정한 파일이 없어서 흠흠)
두 번째 처럼 옷도 입히고
세 번째 처럼 캠코더 구린 화질로 찍어놓고 보정으로 해결하고 ㅋㅋ
(사실 잡티 보정도 조금 했다 ㅋ)
뒤 집 특유의 벽지는 귀찮아서 없애진 않았지만…
그것마저 없애면 여권 사진으로 써도 될 듯 ㅋㅋㅋ
괜히 지하철에서 찍어서 8천원만 날렸다.
찍스에 맞기면 100원에 8장을 얻을 수 있건만~
너무 감격스러워서 증명사진 계보까지 남겨본다.
캠코더로 찍은 증명사진이란 웃긴 꼬락서니가 됬지만…
이번 게 제일 낮구만!
. . .. . . .. . . .. . .
12월은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들썩여서 싫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좋아하는데
정작 크리스마스가 오면
설레임 따윈 종착지도 없이 흩어져 버린다.
전에는 생일이 있는 달도 그랬는데
이젠 생일같은 것은,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다.
언젠가 12월도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겠지
*
예술가가 늪에 빠지려는 사람을 구출해내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어떤 이는 작품을 통해 늪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아름다운 장면과 화해를 다룰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또 어떤 예술가는 늪에 빠지려는 사람을 더욱 깊숙이 밀어버리고, 허우적대다가 죽음으로 기어들어가는 약자의 죽음을 있는 그대로 보고할 수도 있다. 출처와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어떤 비평가는 짧은 일설에서 에밀 졸라는 후자와 같은 경우라고 이야기했던 것 같다. 아니면, 에밀 졸라는 늪에 빠지려는 사람에게 다가가 같이 늪에 빠져버리는 작가라고 이야기했던 것도 같다.
*
극은 시작하자마자, 라캥 부인의 집으로 들어가 버린다. 어떤 방문이나, 대화를 위해 준비하는 상황, 관객을 위해 준비된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흠칫 놀랄 수밖에 없다. 라캥 부인과 카미유의 힘겨운 몸짓은 이 조명불이 밝혀지기 이전부터, 어쩌면 카미유가 태어난 그 날부터 시작되었던 것만 같았다. 견디기 힘든 일상 그래도 살아야 하는 지긋지긋함으로 관객을 밀어버리는 제 1막 1장의 펼쳐짐이었다.
극은 이후로도 영화의 몽타주 기법 같은 형식적 특이성을 발휘하고 있다. 각 장은 약 15분을 넘기지 못한다. 약 10분 주기로 암전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장소가 바뀌지 않아도, 이 리드미컬한 암전은 가동을 멈추지 않는다. 이 끊임없는 암전은 의도적으로 극에 몰입을 방해하는 것 같다. 배우 네명. 라캥 부인, 테레즈, 카미유 그리고 로랑에 이입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지고, 그들이 느끼는 슬픔, 욕망에 동감을 할 수가 없다. 이제 관객들은 그들을 관찰할 수밖에 없다. 인간 실험실이 된 무대에서 욕정을 나누고, 욕정에 의해 살인을 하고, 자기 자신을 파멸시키는 인간이란 동물을 관객이 관찰한다.
세 번째, 네 번째 암전까지는 이 암전을 받아들여야하나 당황스러웠지만, 이 후 오히려 암전의 시간이 극을 곰씹는 시간이 되었다. 극의 등장인물들이 펼쳐내는 욕망의 벌려짐은 바라보고 있기에 불편하기까지 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삶의 어느 공간에선 저런 풍경들이 있을 것이다 라는 자연스러운 상기는 진실되기에 마주치기 더 힘들지 모른다. 암전의 시간들은 방금 본 풍경을 정리하고, 곰씹는 준비시간이다. 그리고 암전 이 후 어김없이 찾아 올 더 잔혹한 풍경을 위한 준비시간도 된다.
*
각 풍경에서 배우들은 매우 딱딱한 대사를 한다. 특히 테레즈 라캥은 서로를 바라보며 하지 않고, 거의 허공만을 응시하면서 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랑과 죽임 그리고 파멸에 이르는 극단적인 상황에 처하면서 그녀는 어떤 동정심도, 어떤 이입도 거절하는 듯한 연기를 펼쳐낸다. 나머지 배역들도 테레즈 라캥보단 덜하지만 마찬가지 효과를 자아낸다. 이런 연기톤은 각 배역을 쉽게 적으로도 만들지 못하고, 내 편으로도 만들지도 못한다. 각 인물들이 관객의 파토스 내에서 설 자리는 없다. 동시에 소화를 거절하는 이 ‘이물질들’ 때문에 관객들도 편안히 앉을 자리가 없다. 서서히 늪에 가라앉는 듯한 느낌이다. 차라리 끝나기를, 죽음을, 극의 종결만을 바라는 수밖에 없는 듯하다.
하지만 극의 종결은 새로운 극의 시작이 될 것이다. 에밀 졸라의 <테레즈 라캥>에서 라캥 부인, 테레즈, 카미유 그리고 로랑은 이제 극을 보았던 인물, 단 한명의 주인공, 나 자신으로 응축된다. 늪에 빠져 죽었던 한 인간이, 인생이란 광활한 늪 속에 천천히 가라앉고 있다는 것을 이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테레즈 라캥>의 연극을 보면서 제일 아쉬웠던 점은 원작은 읽지 못하고, 최근에 본 영화 <박쥐>만을 접하고 보러 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연극 <테레즈 라캥>이 얼마나 원작에 충실했는지, 아니면 얼마나 <박쥐>의 영향을 받았던지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연극 <테레즈 라캥>이 좀 미흡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은 아무래도 결말 부분이었다. 죄책감에 시달리며 카미유의 환영을 보는 로랑과 테레즈 그리고 자살에 이르게 되는 로랑과 테레즈가 거의 약 2,3 장 정도로 축약해서 처리돼 있었던 것이다. 그 부분은 어찌보면 매우 갑작스러운 반전일진데, 이미 내용을 다 아는 관객들에게 보여주듯 예정된 수순처럼 처리해 버렸다. 시간의 제약이 있었다면 어느 정도 카미유를 죽이기까지의 시간을 줄이고, 후반부에 더 핵심적인 임팩트를 주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김선우씨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시인입니다. 제 ‘인생의 한 구절’이랍시고 외우고 다니는 “아무도 사랑하지 못해 아프기보다, 열렬히 사랑하다 버림받게 되기를” 이라는 구절이 바로 김선우 시인의 <목포항>이란 시에서 왔죠.
김선우 시인의 시집은 몇 권 읽었지만, 그녀가 쓴 산문, 소설 등은 읽지를 못했어요.
<캔들 플라워>가 제가 읽은 그녀의 첫 산문인 것 같네요.
기억이 맞다면요.
<캔들 플라워>는 문화웹진 나비라는 곳에 연재된 소설이구요.
바로 며칠전에 마지막회가 나왔습니다.
저는 새로 옮긴 곳에 업무가 그리 많지않아
시간 때울 겸(ㅈㅅ)
봤어요.
소설의 1,2 회를 보고 조금 뜨아함과 약간의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어요.
소설 제목 ‘캔들 플라워’가 좀 스위트한 감이 있었는데
열자마자 말도 안되는 상황들이 큐트하고,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나열되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거든요.
빨간머리 아이는 캐나다의 레인보우라는 마을에 살고
그 아이의 보호자(?)는 레즈비언 커플이고
계속해서 파티를 외쳐대는 그런 상황에
주인공 아이는 무슨 초능력 비스무레 한 것까지 지니고 있었거든요.
(초능력까지는 아니죠. 언어습득능력이 빠르고 동물과도 어느 정도 교감할 수 있는?!)
아니 도대체 이게 뭔 일인가 싶었습니다.
내가 제일 좋아하던 시인에게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더랬죠.
근데…
그 스위트하기만 한 가상의 상황이 갑자기 돌변합니다.
갑자기 르포 소설이 된 듯
지난 6월 촛불 정국의 이야기가 툭! 튀어 나옵니다.
에이, 에피소드 이야기 하나로 나온 거겠지… 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전 그때야 알았죠.
아 제목 ‘캔들 플라워’는 ‘촛불 꽃’ 이구나!
라구요. ㅋ
결코 영어사전을 뒤지거나 그러진 않았습니다 ㅋㅋ
암튼, 소설은 지난 여름에 관한 이야기에요.
지난 여름을 아주 이상한 아이의 눈으로 바라보는 거에요.
우리가 삶을 살아가다보면, 체제 내의 규칙들에 너무 익숙해져 마치 당연한 듯, 그랬으니가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그것이 외국인의 눈에 보기에는 왜 그런 라이프 스타일과 규칙들이 통용되는 거지? 라고 물을을 묻는 경우.
그런 식으로
레인보우 세상의 순수하기 이를 데 없는 주인공이
촛불정국에 참여하고, 이것저것 바라보고, 느끼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아마 지난 여름에 촛불정국에 참여했던, 참여하지 않았던
그 정국에 한국에 있었던 사람이라면
보는 내내 오버랩되는 내내 지난 여름을 돌아보게 될 겁니다.
그리고 중앙 보도만 믿어왔던 사람들은 또한 그 현장에 있었던 새로운 이야기를 접하게 될 거에요.
지난 여름의 이야기들이, 현장에서만 볼 수 있었던 이야기들이
그야말로 또박또박 쓰여져 있거든요.
이 작품은
지난 6월 거리에 있었던 사람들과, 거리에 있진 못했지만 함께 하고자 마음 먹었던 사람들에게 바치는 작가의 헌사와 같은 성격이 강합니다.
그래서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갈 때면
주인공은 통! 하고 빠져버리기도 하고
어느 때에는 조금 말도 안되기 돌아가는 부분도 적지 않지요.
조금 만화적이고, 유치한 상황도 있는 편이구요.
그래도 저는 이 헌사를 기쁘게 받아들이겠습니다.
지난 6월이 겨우 작년밖에 안되었었나
라고 까마득해지고, 무덤덤해졌다가
이 헌사를 보고 선
다시 되돌아보고
누군가 이런 얘기를 해주길 기다려왔었구나
했거든요.
어쩌면 작가가 약간은 만화적인 상황처럼 글을 쓴 것은
지난 6월 정국을 이끌었던 세대개 초중고등학생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주인공들인 그들에게 바치는 어른의 고개숙인 헌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지난 여름의 기억을 갖고 있는 그대다련
시인 김선우의 이 헌사를 한번 받아보시면 어떨까요?
PS: <캔들 플라워>는 다음의 ‘문학속세상’이나 문화웹진 나비 사이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나비 사이트는 “http://nabeeya.ye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