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우즈베키스탄 관련 정보를 찾아봤다.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에 의하면 “김태희가 밭을 갈고, 전지현이 풀을 맨다” 더라가 있었고, 국제결혼 관련 사이트가 제일 먼저 떴다. 그래도 여기저기 많이 찾아보니 조금 얻는 게 있었는데, 김태희*전지현 드립은 과장된 게 분명했고, 우즈베키스탄은 치안은 안전하다 라는 것이었다. 내가 지망국가를 선택할 때 가장 우선시 했던 게 치안이기도 했는데, 세네갈, 에콰도르 보다 더 안전한 것 같았다.
그리고 더 얻은 정보로는 ….
기후는 4계절은 있는데, 여름은 좀 덥다는 것. 더운 지방은 40-50도 까지 올라간다는데, 이건 좀 의외였다.러시아와 카자흐스탄을 바로 옆에 끼고 있어서 추운 나라일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운 나라였던 것이다. 이것은 나 뿐만이 아니라 흔히들 그렇게 생각하기도 하던데 카자흐스튼 밑에 있기도 하지만 아프가니스탄 바로 위에 있다는 점도 상기해야 할 것이다.
언어는 러시아어와 우즈벡어를 다 쓴다는 것. 그런데 수도에서는 러시아어 지방에서는 우즈벡어를 쓴다고 하고, 이것도 민족마다 다르다고들 했다. 이 부분은 좀 당황스러웠다. 도대체 나는 무슨 언어를 배워야 하는 가 싶었다. 러시아어는 어렵긴 어렵지만, 러시아에서도 통할 테니 러시아어를 해야 할 것인가. 아님 배우기 쉽다는 우즈벡어를 해야 하는 가. 러시아어, 우즈벡어 알파벳 하나 모르는 상태여서 뭐 섣불리 판단을 내릴 순 없었고, 파견지역이나 결정나면 그때 알아서 결정해야겠다 하고 훗날로 고민을 넘겼다.
생활 필수품 및 물가등은 공장을 한번 거칠법한 것은 전부 비싸고, 질이 낮다는 것. 그러나 야채, 과일 등의 식품류는 비범한 퀄리티와 엄청나게 싼 가격을 자랑한다고 한다. 특히 내게 있어서 걱정되는 건 옷가지류였다. 4계절이 뚜렷한 우즈벡이기에 4계절 옷을 다 챙겨야 하는데, 현지에서 괜찮은 옷 살 생각을 하지 말라고들 하니… 뭐 이거야 원. 바리바리 옷부터 챙길 생각을 해야 했다.
한국과의 교류가 상당히 많다는 것. KT 가 EVO 라는 현지 회사를 운영하기도 하고, 길거리에는 온통 옛 대우차가 다니며, 쉽게 삼성과 LG 간판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우즈벡 사람들에게 “주몽” 등의 한국 드라마가 인기가 있어서, 한국의 이미지 상당히 좋다고들 한다.
인터넷에서 구한 정보는 이 정도. 거의 선배단원들의 체험수기에서부터 나온 정보였다.
우즈벡을 관광차원에서 가는 사람은 많지 않고, 국제결혼을 해서 친정 방문하는 김에 한번씩 들르는 사람들이 꽤 있었던 것 같다.
2차 면접 합격자가 최종 합격자 정원보다 배는 많은 경우가 더러 있었더랬지만, 이번 62기 컴퓨터 분야는 최종 합격자 정원이 약 40명 정도 였는데, 2차 면접 합격자도 그 정도 수 였다. 그러니깐 좀 안전하다는 얘기. 면접 합격을 하자, 우선 내게 주어진 임무는 건강검진과 각종 증빙서류를 보내는 일이었다.
경력증명서, 최종학위증면서, 자격증 사본, 보호자 동의서 등의 증빙서류가 있었으며 딱히 준비하는 데 힘에 겨웠던 증빙서류는 없었다. 다만 제출기한이 발표 후 약 일주일 안에 보내는 것이어서 좀 빠듯한 감이 있었다.
건강검진의 검진기간이 빠듯했던 것도 마찬가지. 서울은 강서구 쪽에 있는 건강검진센터 같은 데서 받는 것이었는데 여기도 발표 후 약 4-5일 만에 받아야만 한다. 내 경우, 당시 좀 폐인생활을 하고 있던 터라 아예 밤을 새고 검진을 받으로 갔다.
아침 9시 경부터 시작한 검사는 약 1시간 반 정도 소요됐던 겄 같다. 검사는 특별한 것은 없는데 대기시간이 좀 길어서 오래걸렸다. 혈압을 잴 때 담당 선생님이 “혈압수치는 일반적으로 정상인데, 기관 규정에 의해 주의 혈압으로 표기될 수 있어요.” 라고 해서 약간 불안하긴 했으나, 내 뒤로도 몇 명이 같은 소리를 듣길래 그냥 그런가보다 했다. 참 다양한 검사를 하는데 재검 대상자도 아니어서 검사결과는 결국 내게 통보되진 않았다. 건강검진 결과가 조금 궁금하긴 했지만, 뭐 재검 대상자가 아니라는 데 위안을 삼는다.
건강검진 이 후부터 최종 합격자 발표일 까지는 참 길고 긴 시간이었다. 약 2주간의 기간이 사이에 놓여있는데, 아무런 연락도 공지도 없는 기간에 뭐 다른 것을 할 수도 없고, 막상 초조하기도 하고, 진짜 최종합격할 것을 대비해 이것저것 준비해야 할 것도 같고 말이다. 나는 1지망을 세네갈로 써서 냈기 때문에 당시 세네갈에 대해 거의 하루도 안 빼놓고 검색신공을 발휘했으나,이젠 다 무용한 짓이 되고 말았다. 기다리고, 기다려서 결국 발표 당일이 됐고, 보통 1시쯤 발표되곤 했으나 갑자기 발표시간이 저녁 6시로 늦춰져서 복창을 터트리더니 결국은 “합격” 이었다.
정말 기뻤다.
의외로 2지망으로 써서 냈던 우즈베키스탄이 파견국가로 지정돼있었지만, 나름 우즈베키스탄의 매력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내 생애 최초의 핸드폰이다. 수능 바로 다음날 산 것이었는데, 그래도 휘파람 소리 나는 40화음 멜로디 폰의 초창기 멤버이며 Looks Good Cyon의 초창기 멤버였던 것으로 기억. 그때 구입가격은 대략 42만이던가? 이 폰은 대략 1년정도 썼는데.. 처음 쓴 폰 치고 문자쓰는 법에도 금새 익숙해지고 그랬으나 단체문자 보내는 게 안되서 대략 안습이었다. 인터페이스는 심플했고, 화면도 깔끔했던 것으로 기억. 하지만 내구성은 그렇게 튼튼하지는 않았다. 떨어트리면 바로 밧데리와 본체가 분리되시는 안타까운 광경들을 연출하시다가 나중에는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했던 폰이다. 결국은 분실하였음.
* SKY IM- 3100 (SKT)
싸이언을 분실하고 SKT에서 임대폰으로 받은것이다. 요즘에는 어떤지 모르겠는데, 그 때에 임대폰은 그냥 취급소에서 남는 폰 중 아무거나 랜덤으로 줬다.
대게 누군가가 쓰던 것, 같은 것인데… 달 사용료도 없고, 1년이상 쓰면 그냥 내것이 되며, 임대폰으로 보상판매도 받을 수 있는 나름 실속있는 제도였다. 핸드폰을 분실하여 상심이 컸던 가난한 대학생에게 한 가닥 섬광처럼 내려 준 임대폰이었으니 이거나 마나 감지덕지였다. 최초의 카메라 폰이라는 영광의 수식어를 갖고 있던 이 폰은 그러나 써본 감으로 볼 때, 카메라는 좀 무리라고 본다. 사진이 도스시절의 게임처럼 나온다.
문자쓰는 것은 싸이언하고 흡사하고(싸이언과 조금 거꾸로라는 인상이었다)
전의 싸이언보다 스펙은 달리지만, 기능은 더 다양하고 내구성도 나름 튼튼했다.
하지만 1년 정도를 쓰고나니 앞의 페인트칠(?)이 벗겨저서 속 부품들이 보이기 시작했으며
꺼지기 일쑤여서 결국 다른 폰으로 바꾸게 된다.
그래도 임대폰으로 1년 채우고 보상판매까지 해준 고마운 폰이었다.
* Anycall SCH-E470 (SKT)
보상판매로 약 20만원 주고 삿던 것 갔다.
당시 이유는 모르겠으나 “벤츠폰” 이라고 불리던 폰이었다.
애니콜은 처음 쓰는 것이었는데
천지인 문자에는 금방 적응이 됐고
별 다른 불만은 없었으나
별 다른 장점도 없었다.
이전 스카이보다 기능이 더 별로 없다는 인상이었고
문자메세지 버그가 하나 있었는데, 왔을 때 바로 본 후에
다시 한번 확인을 눌러줘야 확인이 되는 번거로움 같은 것이 있었던 터다.
그래도 별 불만 없이 막 굴렸는데…
세상에…2005년에 구입해 내가 1년 쓰고, 부모님께 넘어갔는데
2011년 현재까지도 사용중이시다.
그러면… 어언 ~ 6년 동안이나 !
이 폰의 장점은…. 끈질긴 생명력?! 그건 인정해야겠다.
그리고 이 폰과 2010년에 나와 또 인연을 맺게 되는데
노예계약 때문에 이도저도 못할 떄 옥션에서 1만 4천원에 사서
약 7-8개월간 사용하게 된다.
노예계약 끝나고 나서는 또 다시 굿바이.
암튼 튼튼함 하는 훌륭하다.
* Anycall SCH-W290 (SKT)
전역 후에 새로 신규가입으로 공짜로 받은 폰이다.
최초로 슬라이드를 산 셈인데… 내가 이제까지 썼던 폰 중에서 제일 단기간 쓴 폰이 아닐까 싶다.
한 6개월 썼나?!
이유는… 새로 구한 산 꼭대기 자취방에서 3G가 잘 터지지 않는 바람에 그랬던 것.
나름 영상통화도 되고
폰카메라도 잘 되고 그랫던 폰인데…. 좀 아쉬웠다.
그런데.. 슬라이드라 그런지 막 왔다리 갔다리 하니깐
좀 불안한 모습도 보여줬던 그런 폰이었다.
* Motolola MS600 (SKT)
3G가 너무 안 터져서, 결국 2G 로 교체했는데
폰 판매원 말에 다르면 비무장지대에서도 터지는 폰이라고 큰소리 빵빵치고 2년 노예계약 했건만
내 생애 최악의 폰이었다.
전보다는 조금 나아졌지만 집에서는 여전히 잘 안터져서 밖에 나가서 전화를 받아야 했고
무지막지한 인터페이스로 오류문자를 날리게끔 했으며
엄청난 내구성으로 무려 5번의 a/s를 받게 했던 폰이다.
오류문자는 뭐냐 하면. 나는 문자메세지 메뉴에서 확인버튼을 연달아서 누르면서 문자를 확인하는 버릇이 있는데
얘는 확인버튼을 누르면 “연락바랍니다” 라고 답신 메시지를 발송해버리는 것이다.
거기다가 반응속도가 그리 빠른편이 아니어서, 확인버튼을 급하게 누를 수밖에 없게 되있기도 하다.
그리고 슬라이드 접합부 부분이 뭐가 잘못된 듯 싶다.
한 두달 쓰고 첫 고장이 나더니, 교체받고 나서
열흘만에 또 고장
일주일만에 또 고장
정말 이렇게 고장많은 폰은 처음이었는데
노예계약 때문에 어찌지도 못하고
결국 중고폰으로 눈을 돌리게 한 최악의 폰이 아닐 수 없다.
* Nokia XpressMusic 5800 (KT)
이른바 익뮤대란에 합류해서 한국 및 우즈벡에서 까지 잘 썼던 폰이다.
내가 지금껏 썼던 폰 중 가장 만족도가 높은 폰이자 (쩌는 가성비덕분에)
최초의 스마트 폰이다.
노예도 없는 공짜로 샀는데
8기가 메모리도 주는 바람에, mp3 를 두고 다니면서
익뮤로만 듣게 되버리기도 했다.
이것도 스마트폰 이야?
라는 질문을 수없이 받는 폰이기도 하지만
나름 구글맵도 되고 트윗, 페이스북, 구글리더 위키피디어 등등등
실생활에 필요한 기능은 인터넷뱅킹 빼고 웬만해선 된다.
공짜 스마트폰 치고는 굉장한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중.
이 폰을 쓰면서 kt 로 넘어왔는데
kt 서비스는 확실히 skt 보다는 못긴 못했다.
skt 에서 느끼지 못했던 불편함을 kt 에서는 이것저것 느끼게 되었달까.
그리고….
이 폰은 우즈벡에서까지 썼던 폰이다.
컨트리락을 30달러라는 거금을 주고 우회적으로 해제하고 잘잘 쓰다가…
결국은 분실했지… ㅠ
* iphone 3GS (MTS / Beeline)
우즈벡에 스마트폰을 쓸 계획은 별로 없었는데
익뮤로 일단 시작해보니, 외국이라서 더 유용하게 쓰였던 부분들이 많았다.
스카이프로 연락하기 등등.
그래서 지인을 통해 컨트리락 해제된 아이폰3 중고를 받아 우즈벡에서 약 1년동안 사용.
명불허전 아이폰인지라… 신세계를 보여주긴 했으나-
아이폰 3라 어플들 몇몇에서 빠릿빠릿하지 못한 면들을 보여주고
최대 난점은 역시 배터리였다 ㅠㅠ
그래도 역시 소문만큼 대단하구나, 하고 감탄을 아니할 수 없었다.
수도없이 떨어트렸는데, 멀쩡한 걸 보니 내구성도 상당했고 말이다.
하지만… 나의 가혹한 손놀림에 어느날 갑자기 무지개 다리를 건너셨다…..
* LG Optimus LTE2 (Beeline)
아이폰이 갑자기 사망하고 나서
임기를 마친 다른 단원의 폰을 예정없이 구매하게 된 것.
원래는 우즈벡에서 어떻게든 아이폰3 로 버티고 한국가서 새출발하려고 했는데…
여러모로 남은 임기동안 스마트폰이 있어야 이것저것 준비하기에 용이할 것 같아서
울며겨자먹기로 샀다.
안드로이드의 최적화가 제일 걱정이었는데, 예전과 달리 … 안드로이드도 제법 안정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인터페이스도 상당히 편리해졌고…
제일 만족스러웠던 점은 음악, 동영상 등등의 것들을 아이튠즈 같은 별도의 프로그램 없이, 그리고 변환하지 않고 넣을 수 있다는 점.
양재역까지는 꽤 먼줄 알았지만 3호선은 그날따라 빨랐다. 내 면저시각은 10시 15분이었는 이 속도로 간다면 9시 조금 넘어서 도착할 것 같았다. 나는 서둘리 예상문제들을 훑어봤다.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영어 자기소개를 시키면 어떡하지 하는 것과 그래도 내 전공학과가 독어독문학과니 독일어를 시키면 뭐라하지 하는 걱정과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영어는 다들 잘 할테니 그냥 따로 준비를 해오지 못한다고 괴기면 될 텐데. 독일어는 어차피 잘 알아듣지 못할테니 막 이것저것 씨부려볼까? 근데 뭐라고 씨부리지? 쥐어 짜보니
Mein Name ist ***.
Ich Komme aus ***.
Ich Studiere Deutchesprache und Literature in *** Universitaet.
라는 세 문장만 생각났다. 그리고 Auf Widersehen ! 이란 마지막 인사. 아, 4년동안 대학 등록금을 삼성에 기부만 했구나! 저 앞의 문장은 사실 고등학교때 배운 게 아니던가. 하는 여러모로 잡생각들과 함께 양재동에 도착했다.
버스가 생각보다 일찍오지 않아 시간이 조금 지체됐으나 아직 여유는 있었다. 코이카 훈련센터에 도착하니 9시 30분 정도.
좀 놀랜 것은 드문드문 있는 화살표를 따라 들어갔긴 들어갔는데 1층에 들어가니 무슨 박람회처럼 생긴 아프리카 문화 체험 전시 같은 것만 있고 아무도 사람이 었었던 것이다. 면접자 안내사항에 보니 5층 대강당으로 오라는 했는데, 건물을 아무래도 잘못 들어갔나 싶었다. 어쨌든 그냥 엘르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올라가보니 거기서부터 면접 진행요원(?)들이 있었다. 대강당에 들어가보니 이미 지원자들이 대강당의 2/3는 매우고 있었고, 각기 뭔가를 열심히 풀고 있었다. 인적성검사였다. 나도 인적성검사 시험지와 OMR 카드를 받으면서 지원자들을 쓰윽 훑어봤다. 20대 중반 이후부터는 대게 정장을 그 이전은 대게 새미정장을 입고 있었다. 면접때 은근히 신경쓰이는 게 옷차림이나 헤어스타일 같은 것이었다. 특히 학교면접도, 입사면접도 아닌 봉사면접이라서 뭘 입고가야하나 고민이었다. 그냥 NGO 봉사단체였다면 깔끔하게만 입고가면 될 것 같은데, 코이카는 그래도 외교통상부 산하기관인지라 뭔가 관 주도의 보수적인 분위기가 아닐까? 하는 의상 선택에 관한 여러 잡생각들. 그래서 결국 그날 내가 선택한 것은, 청파지, 셔츠, 자켓. 정장이 마땅한 게 없었던 탓이었다. 그래도 쓰윽 훑어보니 그다지 잘못된 선택은 아닌 듯 싶었다. 나와 비슷한 컨셉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인적성검사지를 받아들고 자리를 찾아 앉았다가 면접 준비를 해볼까, 아님 인적성 검사를 풀까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인적성검사를 풀기로 했다. 따로 준비해봤자가 아닐까 라는 생각과 귀찮음 때문에. 면접은 모두들 각자 자리에서 인적성검사지를 풀다가 부르면 3명씩 나가서 보고 오는 것이었다. 대충 30문제 정도 인적성검사를 풀었을 때, 나를 포함해 3명을 불렀다. 가면 목소리 크게 내야지 라고 되내이면서 면접실 쪽으로 갔다. 왜냐면 가끔 난 사람들이 다 들릴 정도의 목소리겠지 하고 내면, 사람들이 도무지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할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알았던 것은 군대에 있을 때였는데, 무슨 군 생활 감상기 같은 발표대회가 하나에 나간 적이 있었다. 나는 전경이라서 부대에서 하는 뭐 그런 형태가 아니라 경찰서장과 간부 경찰들 글리고 전의경 대원들이 모여서 하는 그런 행사였다. 그때 마이크를 쓰고 말하는 거라 대충 이 정도 목소리면 낭랑하게 울려퍼지겠지 하고 감상문을 읽었는데, 끝나고 나니깐 다들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하나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아, 충격! 경찰서장이 끝났을 때 요즘 젊은이들은 사기충전이 제대로 안된 것 같다는 얘기가 괜히 나온게 아니었구나를 깨달았던 나름 치욕(?)의 순간이었다. 근데 그런 적이 예전 학회 발표회 때에도 한번 있었다. 나는 분명 이 정도면 꽤 큰 목소리다, 라고 말하는데, 안 들렸다는 것이다. 아마 목소리도 목소리겠지만 발음이 좋지 않은 탓도 크리라. 아 비염.
어쨌든, 이번엔 목소리를 크게 내보자 하면서 면접실 앞에 앉았는데 좀 긴장됐는지 심장의 펌프질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겨우 이런 면접에 이래선 안돼지 하면서 진정을 시키려는 와중에 나를 불러냈다. 들어가 앉자마자 자기소개 한번 해보세요 라는 요청. 앉자마자 시키는 자기소개에 당황하면서, 뭘 말하지 하는 순간 입은 이미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봉사정신이 투철한 의지의 청년으로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이름도 말하지 못하고 ‘정말’ 횡설수설을 했다. 심사관들은 새로 들어 온 지원자의 자기소개서를 훑어보느라 그리 집중하지 않은 게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바로 맨 왼쪽에 있던 30대 중반의 남자가 직무적성을 보겠으니 책상위에 놓인 항목 중 두가지를 택하라고 했다. 1) 오피스 프로그램 2) 개발 프로그램 3) 하드웨어, PC 4)웹 프로그래밍 같다. 오피스 프로그램 외의 2,3,4 는 모두 내게 생소한 것이었지만 그래도 ‘객체지향’ 이란 걸 알아뒀으니 1과 4를 택했다.
엑셀의 피벗 테이블에 대해 말하시오
엑셀의 Count IF 함수에 대해 말하시오
엑셀의 시나리오 기능에 대해 말하시오
서버언어와 클라이언트 언어에 대해 설명하시오
상태표시줄에 메시지를 표시하는 윈도우 프로그래밍 명령어는 ?
플로피 디스크의 섹터구성에 대해 말하시오
윈도우 가상 메모리를 말하시오.
오피스 문제는 거의 아는 거였으나 말로 설명을 하자니 난감해서 약간 횡설수설했고, 웹프로그맹과 일반 컴퓨터 분야 문제는 거의 모르는 것이었으나 대충 이게 아닐까 하는 식의 추측을 남발했다.
낙담할 틈도 없이 바로 “인성면접”을 보기 시작했다.
전공분야가 아닌데 컴퓨터 분야를 지원한 이유는?
현지에 가게되면 정말 생각했던것보다 힘들텐데 봉사단에는 왜 지원하는가?
2년이란 시간동안 한국을 떠나게 되 있을텐데 향 후 진로계획은?
자기목표가 뚜렷한 편이고, 준비할 것도 많을텐데 2년의 기간이 걸림돌이 되진 않겠는가?
직무적성 면접관은 직무 관련 대답할 때 ‘어 저 대답이 아닌 것 같은데’ 하는 시크한 태도를 보여줘서 좀 의욕을 상실했었지만,인성면접할 땐 그냥 대화하듯이 얘기해서 왠지 느낌이 좋았다. 그리고 내 주특기인 생글생글 웃으면서 말하기로 일관했던 게 왠지 인성면접관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줬을 거라는 나만의 자기 위안이랄까.
돌이켜보면… 내 지망국가였던 ‘세네갈, 우즈베키스탄, 에콰도르’를 좀 고려했던 것 같다. 세네갈을 지원했다라… 그 쪽은 예상보다 많이 힘들텐데 라는 말을 했을 때, 지원국가를 선택할 때 정보가 없어서 고민을 많이 했지만 기왕이면 더 새로운 곳, 더 많은 것을 겪을 수 있는 곳을 택했다고 했을 때 인성면접관이 제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던 것 같아서?!
어쨌든 객관적인 결과를 놓고 볼 때 직무적성면접은 망쳤고, 인성면접은 만족스러웠다. 이제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하면서 면접실을 나왔고, 남은 인적성 검사를 풀었다. 인적성 검사는 그냥 예, 아니오로 대답하는 건데 성격과 위험성 정도를 보는 것 같다. 기억나는 문제는
나는 새로운 곳에 갔을 때 잘 어울린다.
나는 가끔 귀신을 본다.
우리 가족들은 나만 없으면 더행복할 것이다.
는 등의 문제들이 약간씩 중복되면서 100문제이다. 근데 정말 푸는 게 지겨웠다. 사교적으로 결과가 나와야 코이카가 만족할텐데, 라는 유혹을 떨쳐내긴 어려웠고 그렇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다는 심리적 갈등도 있는데다가, 나왔던 문제가 똑같이 나오면 동일하게 답을 해야만 되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판정오류 로 인해 실격 처리가 될 수도 있다고 했으니.
그렇게 면접, 인적성검사까지 다 치루고 나오니 11시가 넘어있었다. 돌아올 땐 버스를 탔는데, 버스를 타는 내내 직무적성검사 예상답안을 만들어 볼 걸 이란 후회가 감돌았다. 그래도 끝내놓고 나니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되겠구나 하면서 마음이 후련해졌다. 객관적인 상황은 좋지 않았지만, 뭔가 느낌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