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드디어 수업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수업계획서를 제출한 지 약 2주만이었으며, 이미 3번째 약속을 어긴 이 후였다. 그리고 소통에 있어서 약간의 오해가 있었던 것도 같다. 오해라기 보다는 수업 커리큘럼에 대해 내게 설명해주지 않았기 때문임이 사실 맞는 말 일것 같다.
나는 다음학기 만이 아닌 1년치 수업계획서를 다 내라는 뜻임을 알지 못했고, 학교에 수업 커리큘럼이 이렇게 확고하게 짜여져 있는지는 상상치도 못했다. 선임 선생님도 ‘컴퓨터’ 란 수업 안에서 아무거나 해도 되며, 수업수준도 그리 높지 않다는 식으로 내게 언급해두었기 때문이다.
커리큘럼 이야기를 듣다보니 이 학교에서 컴퓨터 수업 및 Informatika 학부가 어떤 위치에 있는 지 대강 알 것 같다. 이 학교의 전공은 모두 3개. 국제경제관계, 국제법, 국제관계. 모두 IT 하고는 직접적으로 관계맺고 있지 않다. IT 수업은 주로 1,2 학년을 위한 교양수업 정도로 시행되고 있는데 MS OFFICE 부터 C++ 까지 가르치고 있다. 그래도 학생들 수준도 상당히 높고, 현지교사들 수준도 상당해서 한 학기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수업 하나에서 프로그램을 약 3-4개 정도 가르친다. 예로 1학년을 위한 수업 하나에서 포토샵, 나모 웹에디터, 액세스 이렇게를 모두 소화한다. 포토샵 하나 가지고 한 학기를 우려먹을 수 있는 그런 경우가 아니며, 각 프로그램도 수업을 몇 시간 해야 하는 지 시간이 할당돼있다. 이렇게 짜여진 커리큘럼이 있기 때문에 새로운 주제의 수업은 학과장도 그렇고, 다른 선생님도 그렇고 그다지 필요하다고 느끼질 않는 것 같다.
내가 기 제출한 영상편집을 위한 수업계획서는 정규 수업 과정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결론이 나올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은 내게 여기 커리큘럼에 따른 수업들을 진행하길 원한다. 그런데 한 학년마다 IT 수업은 우즈벡어와 러시아어 두 그룹이 있는데, 나는 러시아어 그룹을 맡을 수가 없으니 모두 각기 다른 과정에 있는 그룹들을 맡아야먄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니 약 6개의 프로그램 정도를 한 학기에 가르쳐야 한다. 액세스, 플래시와 같이 내게는 조금 어려운 프로그램도 있는데다가 코이카에서 만든 전용교실에서 수업을 하기 어렵다는 답변도 들었다. 그렇다면 빔 프로젝터를 띄울 수도 없어서 모두 말로 설명해야만 한다.
수업을 아직 시작하지 않다보니 수업에 관한 근심걱정이 이렇게 끊이지가 않나보다. 그리고 좀 고민이 되는 것은 이 곳 외교대에서 컴퓨터 단원의 입지에 대해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외교대는 크기는 작더라도 국가 외교부 소속인지라 수업의 질 같은 경우는 전혀 외부의 지원을 받지 않아도 충분한 것 같다. 여기에 컴퓨터 단원이 있는 이유는 마치 코이카와 외교대의 긴밀한 관계임을 입증하기 위한 ‘이름’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면 컴퓨터 단원이 없더라도 학교기관이 입는 타격은 없으며, 학교 학생들에게도 더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놓치거나 하는 경우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코이카에서 파견 온 선생님에게 수업을 배우는 것이 학생들에게는 더 손해일 수도 있다. 왜냐면 언어가 부족하기 때문에 현지 선생님보다 더 자세하게 가르쳐 줄 수가 없으며, 피드백도 잘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기관 측 분위기도 여기 ‘공짜 사람’이 있기 때문에 수업을 몇개 맡겨본다는 개념으로 써먹는 것 같다.
계속 그런 생각이 들어서, 여기 현지 선생님들이 진행하지 않는 새로운 수업을 진행해야 나도 이 기관에서 현지 선생님들에게서 배울 수 없는 새로운 수업을 진행할 수 있고, 현지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되겠지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새 수업계획서도 제출해보고 그런건데. 뭐 그 수업이 정규든 아니든 그것은 크게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냥 방과후수업으로 어떻게든 진행해보고자 한 거니깐. 그리고 시간이 조금 더 여유가 된다면 한국어 수업도 좀 해보고 싶고 그랬는데. 정규수업의 조건이 이렇게 좋지 않으니 한국어 수업은 커녕 방과후 수업을 준비하기도 힘들게 생겼다. 우선 시작해봐야 알겠지만…
자꾸 남의 떡이 커보인다고나 할까. 내가 우즈벡보다 조금 더 컴퓨터 수업이 절실한 곳으로 갔더라면 어떨까. 내가 한국어 단원이었더라면 어떨까. 하는 가정을 해보기도 한다. 한국어 단원은 어딜 가든지 현지 선생님 그 누구보다도 전문성이 있기도 하고, 나름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소통하는 보람이 있는 것 같다. 사실 컴퓨터는 한국인에게 배우나, 일본인에게 배우나, 현지 선생님에게 배우나 내용이나 감흥이나 그게 그거지 않은가. 그리고 언어는 마냥 수다를 떨더라도 그게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학생들과 쉽게 친밀해질 수 있고, 언어는 배워도 배워도 쉽게 끝을 낼 수 없기 때문에 꾸준한 학습/관계가 가능한데 컴퓨터는 그런 게 없다.
오늘 머리도 복잡하고 해서, 속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털어보고자 마구 갈겨썼는데, 회의한다거나 후회한다거나 깊은 절망에 빠져있다거나 그런 것은 없다. 그냥 우선 닥친 문제를 앞으로 어떻게 해결할 수 있으려나 하고 한번 써 본 것일 뿐. 오늘 저녁에는 홈스테이집에를 오랜만에 방문했는데 애들이 멀리서부터 이름 부르면서 뛰어와 껴안아주고, 할아버지가 얼굴에 뽀뽀를 날리시는 바람에 근심어린 마음은 다 풀어졌다랄까.
나름 만족스럽지만, 몇 가지 고민들을 좀 생각해보려한 것.
앞으로 잘 되길.
이라고 기원해 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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