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DJ

  • [2011.7.19.] 부하라 그리고 사막여행

    기차에 타는 순간, 이걸 어떡해야 하나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1평이 조금 넘는 비좁은 공간에 2층 침대가 두개 있었고 찜통이었다. 기차에 탑승한 시각은 8시. 그리고 우리의 도착 예정시간은 다음날 오전 10시 정도였다. 앞으로 약 14시간 정도 남아있었다. 에어콘은 누군가가 나온다고 한 것 같은데 전혀 틀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기차가 출발하면 조금 낫겠지 하는 생각으로 누워봤지만 그다지 나아지진 않았다. 12시 무렵까지 찜통이었다. 무엇보다도 다음 날 일정이 지장이 될까, 그게 신경도 쓰이고, 기차는 무슨 영문인지 자꾸 서기만 하고 마냥 잠 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약 4시 쯤 잠든 것 같았다.

    부하라에 내리는 순간 폭폭 찌는 더위가 기다리고 있겠지 하고 예상했지만, 생각만큼 덥지는 않았다. 모래바람이 꽤나 불어댄 것이 그나마 더위를 식혀주고 있는 듯했다. 간단히 점심을 먹으로 가는 길에 부하라의 유적지 사이사이를 돌아보게 되었는데, 느낌이 상당히 좋았다. 사마르칸트는 웅장하고 깨끗한 건물들이 위엄을 자랑하듯 서있다면, 부하라는 조금은 낡아서 세월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전통 양식의 건물들이 아기자기 하게 모여있었다. 또 사마르칸트와 다른 점은 사마르칸트는 도시 전체를 잘 꾸며놓은 공원처럼 깨끗하게 닦아놓고 사람들도 이 공원을 더럽히면 안된다는 듯 조심조심 하는 것만 같았는데 부하라는 원래 이런 양식대로 살아왔다는 듯 여유가 있었다. 내겐 개인적으로 부하라의 풍경이 훨씬 마음에 들었는데… 그건 건물양식 하나하나가 예뻐서 그렇다기 보다는 이런 풍경과 어울리는 사람들의 ‘생활’이 너무도 자연스러워 보였기 때문이다.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움. 그 자연스러움들이 한데 뭉쳐서 부하라라는 하나의 마을 그리고 도시를 형성하고 있었다. 부하라를 걸으면서야 비로소 아, 이 곳이 외국이구나 라고 새삼 느끼기도 했다.
    사실 수도 타쉬켄트는 별 다른 문화양식이 없는 단지 사람이 많고, 상점이 많은 도시라 달리 느낄만한게 많지 않았다. 안디잔은 그냥 작은 도시일 뿐이었고, 페르가나는 조금 고급스러운 작은 도시. 사마르칸트는 커다란 공원에 온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부하라는 달랐다. 다른 풍경과 그 풍경에 한껏 어우러져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전통적인 양식에 사는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조급함이 없고, 스치는 타지 출신 우리들을 힐끔힐끔 바라보면서 다들 나름의 자기 일들에 몰두하고 있었다. 이 곳에서 사는 사람들이 부럽다… 라는 생각을 하게 할 만큼.

    부하라에 여유있게 머물면서 지내면 좋으련만 다들 함께 모이자고 일정을 잡은 것이기 때문에 시간이 넉넉치가 않았다. 약 이틀을 머무르고 사막으로 향했다. 나보이에서 더 위 쪽으로 올라가야 하는 사막으로.

    우즈벡의 사막은 흔히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나오는 사막처럼 고운 모래, 선인장 그리고 전갈 혹은 하이에나가 있는 그런 곳을 상상하면 안된다. 그냥 메마른 땅이며 그 곳에는 총총이 말라 비틀어진 나무들이 질긴 생명력으로 자리잡고 있다. 동물은 달리 본 게 별로 없었다. 사막은 야영장이 있는 곳까지 약 5시간을 차로 끊임없이 달려야만 한다. 도로는 그래도 반포장 도로 정도 되는 게 있어서 그 다지 어려운 점은 없었다. 그냥 에어콘이 나오는 차 안에서 풍경들을 감상하다가 지치면 잠에 들면 그만이다.

    야영장은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식사도 생각보다는 잘 나왔고, 화장실도 있고, 전기도 나왔다. 샤워실도 있었는데 있는 지를 다들 모르고 있어서 사용하지는 못했다. 우리 일행은 야영장 근처에 있는 바다 같은 호수에 잠시 물놀이도 하고, 낙타를 타기도 했다. 낙타타기는 이동 할 거리가 있어서 타고 이동하는 건 아니고 그냥 약 20분 거리정도 되는 산책을 한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생리적인 현상인지 아닌 지는 잘 모르겠지만 낙타가 계속 울고 있어서 마음이 아프긴 했다. 묶여있는 낙타를 굳이 일으켜서 한 바퀴 돌고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 인간의 욕심이란… 이런 생각도 좀 들기도 하고, 코이카 와서 내가 참 호강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그래도 하고 싶은 마음, 뭐든 경험하고 싶은 욕심은 버리기가 참 힘든 듯. 밤에는 모닥풀을 피워주고 악사가 나와서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다. 그래도 무엇보다도 그 야영장이 좋았던 것은 드넓은 사막에 둘러쌓여 있다는 것, 그 것 자체였다. 시끄러운 그 무엇도 없고, 눈을 어지럽히는 것도 없다. 단지 끝없이 메마른 땅과 하늘이 있을 뿐이었다.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 내가 책임져야 할 것, 내가 고민해야 할 것 등등의 것들 전부를 잠시는 유예해도 될 것 같은 느낌. 이랄까.

    그렇게 부하라와 사막 그리고 사마르칸트를 거쳐서 수도 타쉬켄트로 돌아왔다.
    무엇보다도 이번 여행이 즐거웠던 것은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있어서가 아니었을까.

  • [2011.7.1.] 이제 7월이닷

    7월 1일 ! 진짜 여름의 중심에 다가간다고나 할까.

    내가 살고 있는 타쉬켄트는 생각했던 것보단 덥지 않다. 요즘은 선크림도 안 바르고 다닌다. 물론 그건 타쉬켄트만의 이야기 일 수 있다는 것.

    부하라나 카르쉬. 정도면 정말 타는 듯한 더위란 이런 거군,을 느낄 수 있다 하던데. 뭐 난 아직 못느껴봐서 모르겠다.

    지금까지의 타쉬켄트 여름은 한국여름보다 더 나은 듯. 햇빛이 눈부시긴 하지만 찜통같은 더위는 아니니깐.

    주변 지인들에게 언급하곤 했지만, 이 방학을 마음 편하게 보내진 못하는 것은

    역시 수업 걱정이 계속된다.

    우즈벡어는 계속 정체고,

    아직 액세스를 위한 시간은 갖지 못했고

    6월은 훌렁 지나가버렸다.

    7월 1일.

    산뜻하면서도 동시에 무서워지는 숫자군.

  • [2011.6.30.] 바라보고 있으면

    하늘 위에서 바라 본 우즈벡은 생각했던 것보다 이채로웠다. 아파서 제대로 보지도 못했지만, 불빛으로 범람하던 페르가나. 다음 번 너를 제대로 봐줄게, 하는 지키기 못할 약속을 하며 스쳐지나 간다. 여기가 나만간일까, 어딜까 할 때 쯤에 불빛들이 또 총총이 모여있다. 조금 더 지나니 불빛이 한산하다. 그래도 불빛이 끊어지는 곳은 별로 없었다. 드문드문이라도 가로등이 있어 작은 물줄기를 이루고 있었다. 타쉬켄트까지.

    시커먼 대륙에 총총이 박아놓은 빛의 구조물들. 어찌보면 잔인하고, 이기적이기도 하지만 예쁘다고 느끼는 것은 어찌할 수 없었다. 오로지 빛무리로 이뤄놓은 형상을 지켜보다보니 마치 이곳이 해안가인 것만 같았다. 총총 불을 밝힌 선박들과 작은 섬들 그리고 빛무리를 이루는 항구. 전에 제주도와 광주 사이를 왔다갔다 할 때 봤던 해안들은 참 예뻤지.

    비행기를 탈 때마다 조금은 설레고, 신나면서 동시에 애틋해진다. 매번 제주도의 ‘그 곳’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탈 때도 그랬다. 위 에서 내려다보다 보면 이까짓 세상 머리 위에서 보면 별 것도 없구만, 시끌벅적 사소한 것에 목숨 걸면서 살 것 있나 그런 생각도 해보고, 이렇게 비행기를 타고 어디 새로운 곳으로 가 봤으면 좋겠다 생각도 해보고, 이것저것 추억도 되새김질 해보고, 내가 살면서 가장 멀리 떠날 곳은 어딜까. 페루, 칠레, 아르헨티나 이런 곳 땅이나 밟아보고 죽으려나 이런 생각도 해보고… 스무번 넘게 탄 비행기인데도 이러고 있다. 한 50번 타다보면 질려서 그런 생각도 끊어질려나.

    암튼 이번 여행은 너무 아파서(장염인듯) 제대로 보지도 못했지만, 뭐 사람들을 만난데 의의를 둬야지.

    사실 여럿이서 함께 떠나는 여행은 같이 간 사람들끼리 노닥이는 재미라지.

    이것저것 새로움을 맛보려면 혼자 떠나야지.

  • [국내훈련] 그 이후…

    k13

    국내훈련이 끝나고 출국일까지 짧게는 2주 정도 길게는 한달 반 정도 대기하게 되는 것 같다. 우즈벡은 딱 한 달정도를 대기하도록 되어 있었다. 한 달 정도면 그 동안 못 만나 본 사람 만나보고, 출국 준비하고, 짤막한 여행이라도 다니고 그러기에 딱 적당한 것 같다. 너무 짧으면 말할 것도 없고, 너무 길면 할 일없이 늘어지니깐. 그리고 대부분의 국가가 한달 정도는 대기하는 것 같았다. 현지사정이나 비행기 사정등으로 인해 유독 짧게 대기하고 가는 국가도 있댔지만 62기에서 너무 빨리 간다 싶은 국가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

    훈련이 종료되자 마자 인터넷에 개설된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약속들이 잡히기 시작했다. 모두 양재동에서 훈련을 받았지만, 출신지는 전국구라 주로 지역별로 모임을 많이 갖았던 것 같다. 부산모임, 광주모임, 서울모임 등등. 그리고 파견 국가별로도 국별모임을 갖기도 했고, 연주회 준비를 했던 사람들끼리 연주회 모임을 갖기도 하고, 사적으로 여러 쌍쌍모임을 갖기도 하고… 100여명이나 되다보니 셀 수도 없는 모임의 꽃을 피워냈던 듯.

    나는 개인적으로 고향이 전북인데, 서울에 자취를 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아예 짐을 고향집으로 내려보내야만 했다. 게다가 출국준비도 해야되지, 고향집이랑 서울집이랑 왔다갔다 하면서 사람들도 조금 만나야지 하다보니 시간이 조금 빡빡하긴 했다. 그래서 모임에는 자주 참석하지 못하고, 서울에 있을 때 애들 조금 본 것이랑, 국별모임 참가한 것 밖엔 없었다.

    우즈벡 파견자는 모두 10명인데, 출신지는 부산, 대구, 광주, 대전, 군산, 성남, 서울 등 역시나 강원, 제주 뺀 전국구인지라 남한의 지리적 중심(?) 대전에서 국별모임을 갖았다.

    그 동안 자주 연락도 한 지라 오랜만에 만났어도 오랜만에 본 것 같지 않았더랬지. 또 소풍 온 것처럼 “대전오랜드” 라는 동물원 겸 놀이동산을 구경하고, 간단하게 식사를 하는 회동을 갖았다. 걸출하게 밤을 지샐 줄 알았는데, 다들 출국준비 겸 사람들 만나느라 정신이 없기도 하고, 지방에서 만난지라 왔다갔다 하는 게 부담이 돼서 말이다. 그리고 어차피 우즈벡에서 2년동안 서로 부대낄 것을 아는데, 뭐 하면서 각자 출국준비 정보를 공유하고 공항에서 만나길 약속했다.

    출국준비를 하는 것은 정말 하루하루가 지름신일 정도로 살 것도 많았는데 그와 관련된 것은 다른 포스트에서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우선 국내훈련일지는 이 것으로 마무리 짓는다 ! 블로그 포스트도 한국을 뜨겠구나!

    아래 동영상은 국내훈련 동안 찍있던 동영상을 편집해서 만든 것. 매번 카메라를 들이댈수는 없어서 주로 다이나믹한(?) 부분들을 위주로 찍어서 강의시간 등은 별로 없지만 특별활동 위주로 어떻게 진행되나 볼 수가 있을 것. 다만, 우즈벡 단원들 위주로 찍혔다는 것 감안해야 할 것 !

  • [국내훈련] 발단식

    발단식 날이 다가왔다. 국내훈련의 마지막 날이라 해단식이 아닌, 발단식. 이제부터 훈련생이 아닌 ‘코이카일반봉사단원’ 이라는 의미이리라. 내심 기다려왔던 훈련 종료일. 그렇지만 이제부터 갈 길이 진짜 삼천리 혹은 삼만리 (그 이상?) 일 100여명의 파견 예정자들이었다. 가장 멀리가는 국가는 어딜까? 파라과이 혹은 에콰도르 정도가 될 것이다. 가장 가깝게는 몽골이나 인도네시아 인데, 그래도 파견 후 1년 동안은 한국 땅을 밟기가 힘들 것이다. 특별한 사고나 이유가 없다면.

    이미 파견국가, 파견도시, 파견기관 그리고 출국일까지 안내를 받았기 때문에 파견될 곳과 일정에 관한 걱정은 별로 없는 것 같았다. 그것보다는 한 달동안 함께 지냈던 사람들과 갖는 마지막 공식일정이라는 생각에 아쉬움이 큰 것만 같다. 친밀했던 사람들과 기념 사진이라도 한 장 더 간직하고자 각자의 카메라가 그야말로 쉴 틈이 없었다. 나도 끊임없이 찍고, 끊임없이 찍혔던 것 같다.
    우리 발단식 때는 산악인 엄홍길씨가 오셨다. 다들 좀 있으면 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간다는 생각에 조금은 비장해하기도 했는데, 수직각도로 지구 끝에 갔다오셨다는 분이 오시는 바람에 잠깐 머쓱해지기도 했다지?! 여러 대표인사(?)들의 축사가 끝나고, 각기 수료증을 받고, 함께했던 교관들과 작별의 악수 혹은 포옹을 나눴다.

    그리고 기다렸던 만찬의 시간.
    연주회 모임팀은 그 동안 짬짬이 연습했던 공연을 멋지게 보여주었고, 우리는 뷔페식과 함께 하면서 서로 모자랐던 이야기 꽃을 피우기도, 서로의 연락처를 주고받고, 언제 어디서 만나자고 약속을 했다.

    이 소중한 인연의 끈을 놓지 말자며 약속하고 약속하던 작별의 시간.
    그렇게 발단식이 끝나고 다들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 [2011.6.22.] 요새 듣는 음악

    여기와서는 새 앨범을 잘 못듣고 들었던 앨범을 주로 듣게 되더라.

    특히나 “생각의 여름” 앨범을 꽤나 많이 들었고

    “가을방학” 앨범도 정말 많이 들은 듯.

    겨울 날씨때는 “나윤선” 노래도 많이 들었는데

    여름이 오니 듣기가 조금 힘겨워지기도..

    그래서 여기저기 방황하다가

    “옥상달빛” EP 앨범을 듣게되고

    지금은 “옥상달빛” 1집 앨범을 듣고 있다.

    “장기하와 얼굴들” 새앨범도 같이 듣고 있고…

    “허클베리핀” 5집은 조금 긴장이 될 정도로… 기대하고 있어서

    여유가 있을 때 집중 탐미(?)하려고 아껴두고 있는 중.

    여기 와서는

    잔잔한 노래를 더 찾게 되는 것 같다.

    우즈벡어 공부도 해야하는데

    이어폰을 끼면 어쩔 수 없이 음악을 틀 수밖에 없네.

    하아~

    조금 여유가 생기면 기타도 배워야 할 텐데.

  • [국내합숙] 다짐의 시간

    k11

    그 동안 지내왔던 훈련기간의 동영상이 먼저 상영됐다. 드디어 끝났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한달 동안 의식주를 함께하던 합숙생활이었다. 짧은 기간 다양한 직종의 다양한 사람들 그것도 세계 각 국으로 퍼져나갈 사람들과 함께 지냈던 시간. 하기 전에 걱정도 많이 하기도 했는데 돌이켜보면 다 같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려웠던 것은 하나도 없었고, 그래도 재밌었어. 라는 생각만 남았다. 좋은 추억이 되겠군.

    짧은 상영이 끝나고, 각자에게 편지봉투와 편지지 그리고 촛불이 배분됐다. 교관의 짧은 경험담을 듣고, 각자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설마 우려했던 촛불키고 눈물을 훌쩍꺼리는 고백의 시간 따위가 없어 참 다행이었다. 나도 펜을 들었다. 이 편지가 이미 파견되어 있는 1년 뒤의 나에게 가는 편지라니. 흠. 무엇을 쓸까 하다보니 갑자기 “우즈벡 어떤 곳에 파견될까, 우즈벡은 어떤 나라일까.” 라는 질문. 그리고 “내가 1년 뒤에도 과연 우즈벡에 있어서 이 편지를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뭘 써야 될지는 모르겠고, 머릿속만 복잡해졌다. 에잇 모르겠다. 손이 가는데로 써보자. 하고 1년 뒤의 나에게 생각나는 데로 긁적였다.

    만약 거기서 계획했던 데로 잘 활동하고 있지 못하다면 약간의 재촉을
    만약 거기서 의도치 못한 문제 때문에 힘들거나 외로워하고 있다면 약간의 격려를
    담아보았다.

    모두들 어떤 글을 담아냈을지 모르겠지만, 모두 자기 자신에게 건투를 비는 진지한 시간이 되었다.

  • [국내합숙] 전체일정 및 기타

    k10

    우리기수는 훈련 종료일 이 후 며칠 뒤 설날이 있었기 때문에 훈련일정이 평소보다 3-5일정 도 축소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조금 빡빡하기도 하고, 빠진 일정도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인터넷에서 코이카 훈련 일지 같은 것을 찾아봤을 때는 “요리교실” 같은 것도 있었고, “소방교육” 같은 것도 있었던 것 같은데 우리 기수는 해당 일정이 없었다. 교육 프로그램이 바뀐 건지, 아니면 짧은 일정 안에 소화하느라 축소된건지는 확실치 않다. 그리고 다른 블로그에서 컴퓨터 단원들에 한해서 전체 훈련 일정 종료 후 추가 컴퓨터 교육을 받는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었는데 우리의 경우엔 해당사항이 없었다. 훈련 장소도 매번 양재동에서 하는 것은 아닌 것만 같다. 우리 62기 바로 전 기수인 61기만 해도 양재동에서 하지 않고 성남인가에서 진행했다고 한다.

    전체일정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알면 좋을 것 같아서 아래와 같이 시간표 이미지를 첨부해본다. 글씨가 보이게끔 조금 크게 했는데, 사진으로 찍어서 그런지 조금 흐리긴 흐리다.;;

    k101

    후기를 쓰지 않은 일정 등으로는 소모임 활동 그리고 특별 일정으로 된 WFK FORUM 등이 있는 것 같다. 간소하게나마 후기를 써보면…

     * 소모임

    소모임은 자율적으로 개설해서 함께 배워보거나, 즐겨보거나(?) 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우리때는 기독교 소모임, 핫요가, 사진 소모임, 컴퓨터 소모임, 호신술 등이 개설됐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딱히 참여했던 소모임이 없었기 때문에 뭐라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다. 각기 소모임 구성원들의 성향(?)에 따라 각기다른 활동, 각기다른 분위기로 진행된 것 같다는 말 밖에는.

     * WFK FORUM

    WFK 포럼은 갑자기 바뀐 일정이었는데, 코이카 자체 훈련일정이기보다 코이카 혹은 World Freinds Korea에서 주관하는 외부일정에 우리가 참여하는 형태였다. 그럼 WFK는 무엇인가. 나도 확실하게 알고 있는 건지 자신은 없지만은 주절거려본다면, 코이카는 외교통상부 산하기관으로 해외원조 및 봉사단원을 파견하는 기관인데, 이렇게 원조 및 봉사단체를 파견하는 곳은 코이카 뿐이 아니다. 행정안전부도 IT 봉사단이라는 이름으로, 교육과학기술부도 대학생 봉사단으로 해외 봉사단을 보내고 있었다. 이렇게 산하기관마다 다른 이름으로 파견하다 보니 뭔가 한국 통합 브랜드의 필요성이 증대된 것 같고, 그렇게 해서 설립된 것이 WFK 이다. 외교통상부의 코이카이든, 교과부의 대학생 봉사단이든, IT 봉사단이든 모두 WFK 라는 이름으로 묶이게 되는 것이다. 그 WFK의 설립을 기념(?)하여 향 후 비전과 과제를 논의하는 자리가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문제는 WFK의 비전에 관한 문제는 차치하고, 우리 훈련생들은 WFK에 대한 사전정보가 없었다는 것이다. 갑자기 일정이 바뀌고, 해당 포럼에 대한 사전 설명도 없었던 지라 우리들 중 대부분은 행사장 자리 채우기로 동원된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갖을 수밖에 없었다. 코이카 및 코이카 일반봉사단원 또한 WFK의 일원이므로 당연히 그 곳에서 의사표시를 할 권리와 의무가 있겠지만, 우린 아직 파견되지도 않은 훈련생인지라, 할 수 있는 이야기도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해당 포럼장에서 여러 토론, 참여자들의 열띤 질의응답이 이러져서 WFK의 비전과 과제에 대한 여러 주워들은 이야기들은 있어서 그게 도움되긴 했다. 내가 조금이나마 느끼기기로는 ‘국가 브랜드 설립‘ 이라는 기치 아래 ’WFK’ 라는 브랜드를 설립하긴 했는데 통합된 향 후 비전 설립까지는 의견충돌이 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 지 비전 자체를 조금 큰 덩어리로 뭉뚱그려 놓았다는 느낌이었다. WFK가 향 후에는 그 이름에서 Korea를 지울 수 있도록 한국 내에만 머무르는 조직이 아닌, 봉사단체로 거듭나야 된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긴 한데…원조도 하나의 외교이기 때문에 ‘대한민국’ 이라는 국가 브랜드에 어느 정도 홍보해야 한다는 약간의 욕심도 밑에 깔려있던 것 같다. 코이카에 지원하는 사람들의 지원동기 및 활동계획이 각양각색인 것처럼, 실무진들도 추상적인 비전 (‘나눔’ 등과 같은) 에 대해서는 모두 같은 생각이지만 향 후 이걸 어떤 방향으로 물줄기를 틀고, 확장해야 하나에 대해서는 고민들을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WFK 포럼 주최측에서 의도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해외파견이 종료되고 돌아 온 단원들의 지원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이건 놀랍게도 실제로 파견이 끝나고 국내에 돌아온 단원들에 의해 문제제기가 됐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2년간의 정보격차로 인해 국내에 정착하기 힘들어하는 단원들이 너무 많으며, 이 문제에 대해서는 코이카 측에서 적극적인 태도로 동참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2년 갔다 끝이 아니라, 한번 다녀왔던 단원들도 국내든 해외든 계속적으로 활동의 끈을 놓지 않도록 하는 프로그램 마련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해서 실무진 및 우리 훈련생들의 의견도 엇갈리곤 했는데, 의견 하나는 위의 문제에 동감하며 코이카가 적극적으로 봉사 후 지원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봉사하러 갔다 온 것인데 지원을 요구할 수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나도 이 문제에 대해서 조금 고민이 되긴 하고, 어느 정도 생각하고 있는 바는 있지만 여기에 어울리는 것은 아닌 것 같아 다른 글에서 썰을 풀기로 하고… 우선 문제의 WFK 포럼에서 이런 논의 등이 있었다는 것으로 접어두자.

  • [2011.6.21.] 우편배송주소, 집주소, 전화번호

    * 우편배송주소

    7 Afosiab st. Tashkent Uzbekistan 700029 Korean Embassy (KOICA OFFICE)

    :: 주의사항  주소는 대사관 주소이므로 KOICA라고 반드시 표시를 해야하며, 송장뿐만 아니라 박스에도 주소를 써야만 사고를 방지할 수 있음. 박스를 보낼 경우에는 안을 볼 수 없도록 종이로 틈새를 매꾸고 테이프를 붙여야만 우편 배달 중 도난사고를 방지할 수 있음. 주로 한국-우즈벡 우편은 EMS 를 이용하면 됨.

    * 집주소

    Dukjoong Kim
    Ташкент, Мирабадский район, ул. Якка Чинор, дом № 3 , кв. 41

    :: 대사관을 거치지 않고 우편을 보낼 경우엔 우편사고가 꽤 있다고 하므로 주의해야 함. 현지에서 사용하는 러시아어로 된 주소인데 영어로는 어떻게 되는지 잘 모르겠음.

    * 전화번호

    + 99897 486 1326

    :: 스카이프로 실험했을 때는 됐는데, 전화가 될 지 안될지는 확실치 않음. 전에 폰은 영어로 보낼 경우 문자전송도 됐는데, 지금은 될지 안될지 확실치 않음.

  • [국내훈련] 야외활동

    k09

    야외활동으로 크게 무엇무엇이 있을까. 우선 우리 기수는 “사랑의 연탄나눔” 이 있었고, 원래는 계룡산행으로 예정되어 있던 게 폭설로 인해 갑자기 변경돼서 용인 민속촌 소풍이 있었다. 정말 추울 때 진행됐던 야외활동 들이라 기억에도 많이 남는 것 같다.

    * 사랑의 연탄나눔

    “사랑의 연탄나눔”은 연탄이 필요한 곳에 연탄을 나눠주는 자원단체 활동의 고유명사인 것 같습니다. 인터넷 속도가 원활하면 자료를 충분히 찾아서 글을 쓸텐데, 아쉽군요. 코이카 훈련생들은 훈련기간동안 “1달러 식사” 라는 하루를 갖게 되는 데, 해당 날은 한끼에 1달러 정도로 이뤄진 식사를 하게되고, 남은 식사비용으로 연탄을 구입해서 “사랑의 연탄나눔”에 함께하는 것입니다.

    저도 정말 어렸을 때는 집에서 연탄을 때웠던 기억이 있지만, 아직까지도 연탄을 때우는 집이 그리 많을까 싶었는데 우리가 갔던 “구룡마을”은 거의 대부분이 아직 연탄을 때고 있었습니다. 조금만 살피면 세상의 다른 면을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겉포장된 인테리어가 아닌, 진짜 사람사는 세상의 모습을요.

    구룡마을이 놀라웠던 것은, 서울 도곡동. 이른바 노른자위 땅 위에 그것도 타워팰리스가 후경으로 펼쳐진 풍경위에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마을은 생각보다 크기가 컸습니다. 골목골목 판자 및 광고판 같은 것들을 덧대서 집들이 이뤄져 있어서 세대수도 상당히 많았습니다. 골목골목 돌다 보면 미용실, 슈퍼, 철물점 같은 상점들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투어리스트 마냥 마을 곳곳을 쑤셔보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사진 등은 찍지 않았습니다. 행사 사진용으로 사진사가 찍은 것만 가지고 있을 뿐.

    암튼 하늘을 찌를 듯 우쭐하게 솟아있는 타위팰리스와 함께하는 구룡마을은 뭐랄까, 정말이지 그로테스크 했습니다. 번지르르한 서울의 이면이자, ‘괴물같은 도시로부터 쫓겨 올 수밖에 없는 우리 신세’라는 생각에 조금 우울해지기도 하는 그런 동네인 것 같습니다.

    훈련생이 100명이나 되니 조금만 나르다보면 끝날 줄 알았건만, 연탄은 생각보다 많고 무거웠고, 골목은 좁았고, 연탄을 쌓아야 할 창고도 비좁았습니다. 정말 땀 흘릴 정도로 다들 열심히 해서 거의 한 나절 해서 겨우 일을 마쳤습니다.

    스쳐 지나친 구룡마을 주민들에게 뭔가 우쭐대듯 구는 것도 아닌 것 같아서 함께 연탄을 나누는 훈련생들끼리 오순도순 담소를 나누면서, 그리고 더러는 검정을 얼굴에 묻히는 장난도 치면서 연탄나눔을 하고 왔습니다.
    * 용인민속촌

    원래 계획됐던 곳이 아니었고, 정말(!) 폭설로 인해 계룡산행이 하루 전에 취소되서 가게 된 곳이었다. 나도 처음 가보는 곳이었는데 여기도 눈이 많이 쌓여 있었는데 시간 여유가 많지만은 않아서 민속촌보다는 놀이동산 쪽에 더 시간을 쓴 것 같다. 시간여유가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조금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어쨌든 빡빡한 일정 속에 자리잡은 소풍(?) 일정이라 다들 아이같은 마음으로 눈썰매와 놀이기구도 타고, 술술~ 산책도 다니고, 사진도 많이 찍고 했다. 놀던 것을 동영상으로 많이 찍어둬서 동영상으로 편집하기도 했다지 ?! 아래가 해당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