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DJ

  • [현지훈련] 안전교육, 활동교육, 활동기관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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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전교육

    안전교육은 주로 코이카 자체에서 진행된 게 많았다. 소장님, 관리주임님, 사무소 현지직원분, 대사관 관계자분께서 진행하였다. 우즈벡이 여타 개발도상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치안이 안전하긴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조심해야 할 것도 상당히 많다. 거리에 경찰인력들이 많고, 우즈벡 사람들도 신고정신이 아주 투철하다고 하니 우리 자신이 법률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게 되면 바로 추방될 수 있다는 것. 우즈벡은 여타국과 달리 선교활동이 공식적으로 금지돼있다. 그렇기 때문에 선교는 무조건 금지 대상이며, 종교활동도 조심해야 한다. 그렇다고 교회, 성당도 못다니고 그런 것은 아니고, 식당같은 공공장소 등지에서 종교모임을 자주 갖거나 그래도 의심을 살 수 있다는 것 정도만 알아두면 좋다. 개인적으로 우즈벡에서 교회/성당을 다니는 것은 별 무리가 없다. 한인이 운영하는 교회/성당도 있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교민 및 단원들도 열심히 종교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안전과 건강문제에서 조심해야 할 것이 또 있는데 바로 “차조심” 이다. 신호등과 횡단보도가 있긴 있지만 시내 중심부가 아니면 지키지 않는 사례도 많고, 거의 차들이 차선이 없는 것처럼(차선이 없기도 하다) 질주를 하기 때문에 상당히 위험하다. 그리고 우즈벡 사람들의 특성인지는 몰라도 운전을 정말 재빠르게 하기도 하고, 사람이 앞을 지나가도 경적을 울릴뿐 서서 기다려주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차는 정말 조심조심 해야한다.

    * 활동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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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동교육은 분야 별 선배단원의 교육, 현장사업 교육 그리고 협력활동 교육 등이 있다. 선배단원들이 와서 해당 분야 및 활동을 어떻게 해왔다며 소개를 해주고 문답을 받는 형식으로 진행하곤 했다. 개인적으로 인상깊었던 것은 협력활동 교육. 페르가나-안디잔 등의 동부지역에서 학생들을 모아서 1박 2일 한국어 캠프를 여는 대규모 행사였다. 단원들끼리 힘을 합쳐서 그런 대규모 행사를 기획했다는 것도 놀라웠고 어느덧 연례행사로 자리잡았다는 이야기가 더 놀라웠다. 사실 이곳이 한국이었다면 그리 어렵지 않았을 테지만, 기반시설도 부족하고 자료 및 인력 모으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하면서 새삼 부럽기도 했다. 우와- 나도 저런 행사에 스탭으로 한 번 참여해봤으면 좋겠다, 하면서. (결론적으로 2회 행사때 영상 촬영일을 맡았다)

    컴퓨터 선배 단원의 교육 그리고 현장사업에 관련된 교육도 선례 및 실례들을 직접 보고 들을 수가 있어서 굉장한 귀감이 됐다.
    * 활동기관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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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동기관 방문이란 선배단원이 활동하고 있는 기관에 방문에 시설 및 현황을 확인하기도 하고 기회가 된다면 수업에도 참해보기도 하는 그런 시간이다. 우리 컴퓨터 단원은 경제대학교와 언어대학교 기관을 방문했다. 모두 현장사업이 매우 잘 돼 있는 기관들이어서 시설에 있어서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아쉽게도 수업을 참관하지는 못했지만 현 기관 사정에 대해서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한국어 단원들의 경우엔 수업을 참관하기도 했다고 했는데 참관한 수업들이 매우 인상적(?)이어서 활동에 불타는 투혼(?)을 얻어왔다고들 하는 후문이…

  • [현지훈련] 김병화 농장, 세종한글학교, 한국교육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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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병화 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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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장이다… 농장이라니깐… 어떤 농장일까, 포도농장? 왠지 포도농장이랑 잘 어울릴 것 같았다. 포도를 재배하다가 대성공을 해서, 창고 한 가득 오크통도 두고, 그걸로 와인도 만들고 와인 라벨에는 “김병화” 라는 글씨도 보기좋게 박아주고, 그러다 보니 명성이 날이 갈수록 늘어서 이렇게 우즈벡 오는 한국 사람들이 찾는 곳이 된 것은 아닐까. 그런데 그 ‘김병화’ 라는 사람은 지금 살아있는 것일까? 살아있어도 지금은 너무 높은 사람이 돼서 못 만나는 것은 아닐까. 뭐 이런 저런 잡생각이 스쳐가는 가운데 스타렉스는 점점 시골로 들어갔다.

    농장 사이로 난 오솔길을 걸으면서 수확물 등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것이란 기대와는 반대로 결론적으로 말하면 “김병화 박물관”을 한 바퀴 돌았을 뿐이었다. 박물관 관리인은 박물관을 평소에는 잠궈 두다가 예약을 하면 박물관 내부를 보여주고 설명을 해 주는 형태로 운영을 하는 듯했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 주변에는 집 몇채만 있는 시골이었다. 고려인 아주머니께서 직접 설명을 해 주셨는데, 특유의 고려인 억양과 단어가 있긴 했지만 매우 유창하신 편이어서 이해하는 데는 별 무리가 없었다. 설명으로 들었던 김병화 씨란 그러니까 소련 시대에 이 곳에서 농장경영을 너무 잘 하셔가지고 무공 훈장을 몇 번이나 받았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딴 농장으로 부를 수 있는 것이었고, 그 후로 몇 대나 더 이어서 농장경영을 잘 했던 농장주들이 이어져 왔다고 한다.
    그런데 몇 년도에 무엇무엇이 있고 등에 관해서는 그리 큰 집중이 안돼었던 게 사실. 너무 기대가 컸던 것도 있었나보다. 나는 농장을 보고 싶었는데, 말이다. 그래도 좋았던 것은 농장 근처의 풍경들이었다. 완전 시골 풍경이었는데 도로를 거니는 당나귀와 염소가 유독 많았고 아이들이 한가롭게 자기들끼리 놀고 있었다. 몇 마디 말이라도 걸라치면 눈을 똥글똥글하게 뜨고 배시시 웃으면서 즐거워하고, 카메라라도 늘이댈라 치면 또 난리법석이다. 자기를 찍어 달라고, 자기를 찍어 달라고들 말이다. (사실, 이것도 우즈벡에서 카메라 좋아하는 사람들의 서막에 불과하다할까. 정말 사진찍는 걸 좋아하는 우즈벡 사람들!)
    이런 시골에 “김병화 박물관” 이란 한글로 된 박물관이 있다는 것도 나름 신기하기도 했고, 주변 아이들과 즐겁게 사진도 찍어오고 한 산뜻한 산책같은 시간이었다.

    * 세종한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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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즈벡 타쉬켄트에는 각 대학교 한국어 학과나 코이카 단원들이 주최하는 방과 후 수업 외에도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기관들이 2개나 있다. 그만큼 우즈벡에 한국어 수요가 많다는 이야기. 그 중 하나는 세종한글학교로 지금 교장님께서 지금까지 꾸준히 한국어 교육을 해오시는 곳이고, 하나는 한국의 교육과학기술부의 자금 지원으로 운영되고 있는 한국교육원이다. 우리도 유관기관 방문 일정으로 하여 두 기관을 모두 방문해 볼 수 있었다.

    먼저 가나다 순으로 해서 세종한글학교.
    세종한글학교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다. 가스삐탈리 시장의 한국마가진 거리에서 세차장처럼 생긴 곳이 한 곳 있는데, 그 곳에서 조금 들어가 “오아시스” 식당을 지나면 바로 있던 것.
    대문을 열면 먼저 너른 마당이 먼저 반겼다. 나지막하면서도 깨끗한 건물들이 잘 가꾸어진 모습으로 있었다. 3-4개의 교실을 구경할 수 있었는데 교구 자재도 모두 깨끗하고, 벽면에는 아기자기 하게 한국 지도나 한국 사진 등이 붙어있는 왠지 모를 아늑한 느낌. 세종한글학교를 세우기부터 지금에까지 이르는 교장 선생님의 여러 일화를 들으니 느낌이 또 사뭇 달랐다. 아무것도 없는 빈 터부터 시작해서 현재 증축에 이르기까지 학교에 대해, 그리고 교육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가지신 것 같았다. 일면 한국어 단원들의 얼굴에 약간의 결의(?)가 스쳐 지나간 것도? 아,,, 아닌가? 나 한국어 단원 아니라고 막 지껄임? ㅋㅋㅋ

    *한국교육원

     한국교육원은 교과부의 지원을 받는 곳이어서 그런지 규모부터가 달랐다. 널따란 정문, 그리고 대략 4-5층 되는 건물. 우즈벡의 학교들이 다들 그리 크지 않은 것을 고려하면 조금 과장해서 거의 일반 고등학교 정도의 크기를 지녔다. 시설도 좋은 편이어서 한국어 교실은 물론 도서관, 박물관, 강당까지 갖추고 있었다. 한국교육원은 코이카 한국어 단원이 파견되는 곳이기도 했다. 거기서 여러 행정처리 및 한국어 수업을 담당한다고 들었다. 한국교육원은 시설도 시설이지만, 우즈벡 학생들에게 있어서 제일 장점은 한국어 수업 수강료가 무료라는 것.

    사실, 우리는 현지합숙훈련 일정 중에 견학만 간 것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운영이나 그 내부 사정은 모를 수밖에 없다. 위의 일정들은 우즈베키스탄 타쉬켄트에 이런 유관기관들이 있으니 이번 기회에 서로 얼굴을 트고 향 후 활동하는 데 있어서 관심이 있으면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도 있는 그런 기회제공의 차원이랄까. 사실, 우즈벡에는 유학생 및 사업가가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은 편이어서, 지나가다 한국 사람을 만나도 그냥 본 둥, 마는 둥 할 수밖에 없다. 거기에 사실 고려인들도 꽤 있어서 정말 한국 사람인지 구별하기 쉬운 것도 아니고. 암튼 일부로 찾아가기는 힘든 곳인데, 현지합숙훈련 일정 중에 있어서 인사 한 번은 잘 한 것 같았다.

  • [현지합숙] 소풍, 볼링장, 우즈벡 전통 민속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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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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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 전 기수까지는 침간산을 많이들 갔다고 했는데 우리 기수는 특별히(?) 훔손산이라는 곳으로 향했다. 이제 날씨도 서서히 풀려갈 즈음이어서 그랬는지 계곡과 산이 어우러진 곳이라 했다. 나름 소풍이라고 다들 들 뜬 마음에 차에 탔다. 선배단원들이 우리를 위해서 도시락도 싸 오셨더라. 감개무량한 마음으로 차 안에서 다 먹어 주시고, 출발!
    완전히 도시 외곽이었다. 관리주임님 말로는 저 산 한 두 개만 넘어가면 카자흐스탄이란다. 그래도 기대에 못 미쳤던 것은 산들이 전부 민둥산이었다. 모조리 붉은색 흙 투성이에 정말 간간이 말라버린 나무들이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식사장소 옆에는 시냇물도 흐르고 나름 배산임수(?) 비스무레한 곳에 자리를 폈다. 삼겹살을 구워먹고, 컵라면도 끓여먹고 베드민턴도 좀 치고 무리들을 지어 이곳 저곳으로 산책을 다니기도 했다.
    어떻게 이렇게 민둥산일까 하면서 산 귀퉁이 여기저기를 다녀보기도 하고, 길 거리에 풀어져 있는 당나귀들이랑 사진도 찍고, 계곡에 다가가서 시원한 물소리 들어보기도 했다. 관광지 같은 분위기는 없고, 그냥 한적한 시골이었다. 그래서 좋았다면 좋았지만, 조금 더 그럴듯한 경치가 있었으면 좋으련만 하고 아쉬움이 남지 않는 건 아니었다.

    * 볼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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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ulduz Bowling

    우즈벡 타쉬켄트는 볼링장이 2개 정도 있다. 그리고 안디잔, 페르가나, 카르쉬 등등 각 도시별로 꼭 하나씩은 있는 걸로 보아 볼링이 그리 생소한 스포츠는 아닌 것 같다. 국내합숙훈련 일정 중에 볼링이 있긴 있었지만, 호기심을 못 참고 우리끼리 한 번 갔다온 적도 있었고 몇몇이 볼링대회에 출전한 적도 있었다. 아무튼 볼링. 그런데 유독 타쉬켄트에 있는 볼링장은 우리나라 볼링장과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마치 클럽 같은 분위기랄까. 조명을 시커멓게 해두고 레이저 광선을 쏴대고, 클럽 음악 같은 것을 시끄럽게 틀고, 사람들은 콜라 혹은 맥주와 함께 볼링을 즐긴다. 그리고 때로는 볼링장에 무희들이 나와서 춤을 추기도 하고, 약간의 퍼포먼스 공연을 하기도 한다.
    우즈벡의 볼링은 마치 스포츠이기보다 그냥 ‘레저’ 혹은 ‘놀이’에 가깝다는 인상이었다. 왜냐면 사람들이 볼을 너무 대충 굴린다. 우리나라 볼링장에서 꼭 한명씩은 있지 않는가. 손 교정기 같은 것을 끼우고 훅볼, 스핀볼을 마구 날리시면서 200에서 300점 사이 점수대를 내시는 분들. 우즈벡 볼링장에서 그런 분은 찾아보기가 힘들 것 같다. 우선 조명이 너무 어둡고 산만해서 핀과 바닥 안내선이 잘 보이지 않을때도 더러 있다.
    암튼 그 볼링장도 공동체 활동으로 잡혀 있었고 우리들도 다른 라인도 점수대가 좋지 않기 때문에 한국과는 달리(?) 자신감 넘치게 볼을 굴려 댔다지?

    * 우즈벡 전통 민속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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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몇 지방의 역동적인 춤을 제외하고 우즈벡 전통춤을 묘사하자면 섬세하고 양식적인 손 동작이 특징이다. 우리의 합숙 초기 3.8 여성의 날이라 하여 콘서트 공연장을 찾은 적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흥이 나서 일어서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어르신들이 흥이 나면 얼쑤, 얼쑤 어깨춤을 추거나 자동차 핸들을 돌려주시는 것과는 달리 여기 춤은 손목을 휘휘 돌리면서 앞뒤로 왔다갔다 하시는 것이다. 그 모습이 어찌보면 매우 격식있게 추는 것도 같고, 또 어찌보면 귀여워 보인다. 특히 손을 휘휘- 두르면서 짓는 해맑은 표정. 그것 때문에.
    아무튼 그 민속춤을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나는 개인적으로 그날 몸이 너무 안 좋아서(전날 과…욱!) 힘들긴 힘들었다. 스텝부터해서 그 섬세한 손동작 그리고 역동적인 안디잔 춤까지 정말 맛만 봤다고나 할까. 그런데 따라하려니깐 정말 생각보다 어려웠다. 그냥 휘휘 돌리는 줄만 알았던 손목은 나름 규칙이, 양식이 있는 것이었고 모든 모션들에 순서가 정해져 있었다. 배우다보니, 아니 춤을 대충 흥에 겨운대로 추면 되지 뭘 이렇게나 외울게 많아 하면서 조금 회의가 들 정도랄까?
    생각보다 너무 짧은 시간이 배정돼 있었고 배워와 할 것은 너무나도 많아서 기억력 나쁜 내 머릿속에 남은 건 별로 없다는 게 아쉽지만 시간이 조금 넉넉하였고, 그날 내 체력만 좀 좋았더라면 더욱 남은 게 많았을 만한 시간이었다.

  • [현지합숙] 아리랑요양원

    승합차는 타쉬켄트를 벗어난 지 30분 정도가 지나서야 마을길로 들어섰다. 마을입구 부근에는 당나귀들이 무심하게 풀을 뜯고 있고, 집 앞에 나온 몇몇 아이들은 우리 일행이 탄 차를 빤히 쳐다봤다. 번잡한 타쉬켄트와 달리 무척이나 아담한 마을이었다. 우리 몇몇은 우르겐치나 안디잔 같은 소도시의 도심이 이럴거라며 농을 건네기도 하고, 몇몇은 이런 아늑한 분위기만 됐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다들 합숙훈련 때문에 타쉬켄트에만 있다 보니 오랜만에 느껴보는 한산함이었다. 울퉁불퉁한 길을 꺾어 돌아서니 한글로 된 현판이 떡 하니 걸려 있는 현대식 건물이 나타났다. ‘아리랑 요양원’ 이런 시골에 갑자기 한글로 된 현판이 걸려 있는 게 조금 이질적이기도 했지만, 머리만 아픈 끼릴문자가 아닌 한글로 된 현판이라서 반갑기 그지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기다렸다는 듯 박수부터 치며 환영해주셨다. 정말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와 똑같아 보였지만 입에서 먼저 나오는 말씀은 러시아어. 그리고 드문드문 북한말과 흡사한 한국어가 나왔다. 신기하기부터 했다. 갑자기 ‘우리 할머니’가 그 어렵다던 러시아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내레 ~~하오’ 라고 하시니 그렇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여기 우즈벡에 오시게 됐느냐고 묻자 원래 블라디보스토크에 살았었다면서 이야기를 꺼내셨다.

    고려인 1세대. 연해주에 있다가 러시아에 의해 강제이주 당했다고만 들었는데, 왜 그렇게 한건지, 어떻게 한 지는 모르고 있었다. 할머니 말씀에 의하면 러일전쟁 당시 연해주에 있던 한국인들이 일본군에 가담할까봐 열차에 무작정 태워 보냈다고 한다. 그래서 그때 죽은 사람이 반, 산 사람이 반이라고 하셨다. 당시에 대해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 기억이 할머니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겨졌을지 몰라 입을 다물었다. 할머니는 내게 어깨 마사지를 부탁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도 우리 고려인들이 부지런해. 우리 손으로 땅 일구고 다 해서 먹고 살았오. 우즈벡 사람들도 선량해서 우리 고려 사람들 다 받아줬지오. 그리고 꽉꽉! 꽉꽉! 주물루소!” 호탕하신 할머니! 할머니와 한국 동요 등을 함께 부르고 나니 오전 시간이 금새 지나갔다.
    점심식사는 우리가 직접 준비한 것들이었다. 감자수제비, 호박전, 장조림 등 나름 할머니, 할아버지 분들이 드시기 편한 걸로 했는데 반응이 생각보다 좋았다. 다들 잘 먹었다며 거푸 인사를 하셨다. 사실 전 날 60인분의 음식준비를 미리 하느라 다들 새벽 늦게 자고, 손도 다치고 고생을 좀 했었는데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점심식사 후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노래와 춤 위주로 간단하게 레크리에이션을 진행했다. 생소한 노래를 불러드릴 때는 조금 서먹서먹 하신 것 같더니 갖은 노래와 춤을 다 동원하다보니 게임을 진행하지 않아도 할머니, 할어버지들이 알아서 나오셔서 팔다리를 흔드시곤 하셨다. 어느 곳이나 할머니 할아버지는 다 똑같은 것 같다. 뭔들 해도 귀엽게 봐주시고, 호탕하게 웃고 즐기시는 모습을 보니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또 고려인이든, 한국인이든, 우즈벡인이든 다들 함께하고자만 한다면 서로 소통하고, 함께 어울릴 수 있을 것이란 약간의 자신감도 생겼다. 오늘 처음 만난 할머니, 할아버지지만 서로 어울리려고 노력하니 금새 웃고 춤추게 되지 않는가. 사실 우즈벡과 우즈벡 사람들에 관한 여러 소문을 들어 오면서 과연 우즈벡 현지 사람들을 어떻게 지내야 좋을것인가 하는 고민이 있었다. 되레 안 좋은 일이라도 겪을까봐 걱정하면서 오히려 자신감만 잃기도 했다. 물론 안전에는 유의해야 하지만 걱정이 앞서면 내 진심이 전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잠시 잊었던 것 같다.

    신나게 웃고 즐기는 시간을 보내고 나자 어느덧 가야 할 시간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우리 볼에 뽀뽀를 해주시면서 “자주 자주 놀러오라우” 하고 호탕하게 웃으셨다. 그 호탕한 웃음 굳어지지 않게 앞으로 열심히 해야겠다. 그리고 기회가 닿는 데로 집에 전화도 드려야겠다.

  • [현지훈련] 현지어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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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기수 10명 중 러시아어를 배우는 단원은 2명이었고, 나머지 8명은 우즈벡어를 배웠다. 언어 배정은 보통 도시와 배정 기관의 특성에 따라 정해진다. 예로 타쉬켄트에 있는 니자미 사범대의 경우에는 고려인 학생이 많은 편이기 때문에 러시아어를 익혀야 하며, 거의 대부분의 지방이 우즈벡어를 쓰긴 하지만 페르가나의 일부 학교의 경우엔 러시아어로 교육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러시아어를 익혀야만 한다. 그리고 일부 지방의 경우에도 우즈벡어를 쓴다고는 쓰는데 지역 사투리가 너무 강하여 차라리 러시아어를 배우는 게 낫다고 하는 지역도 있다. 내 경우에는 한국에 있을 때 선임단원 선생님께서 어떤 언어를 배울지 의사를 물어보기도 했다. 이유는 이 전까지는 러시아어를 학습하였지만, 학생들이 주로 쓰는 생활 언어가 우즈벡어이기 때문에 변경을 고려하는 상황이었기 때문. 당시 고민이 많이 들긴 했었는데 선임 단원 분과 관리요원의 추천의견에 따라 우즈벡어로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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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즈벡어 수업중 연출사진

    현지합숙훈련 2달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현지어 교육. 우리 기수의 경우엔 세계경제외교대의 우즈벡어 및 러시아어 선생님과 학습했으며 오전에 3시간, 오후에 1시간 반해서 하루 4시간 반씩 진행했다 우즈벡어를 배우는 단원이 총 8명이라 두 반으로 분반했으며, 한 반에 두 명의 선생님이 담당했다. 보통 두 선생님이 수업을 번갈아 가면서 들어오곤 했으며, 작은 교실에서 선생님과 얼굴을 직접 맞대고 수업을 진행했다.

    우즈벡어는 러시아어처럼 문법이 복잡하지 않아, 강의식 수업을 들어야만 하는 경우가 별로 없었고, 새로운 문법/표현을 배우고 바로 말해보는 형식으로 진행되곤 했다. 우즈벡어가 한국어와 어순이 같고, 어휘량이 그리 많은 편이 아니라 조금 시간이 지나자 시장을 보거나, 택시를 잡거나 할 정도의 문장은 금새 구사할 수 있었다. 선생님 두 분은 약간의 영어를 구사할 수 있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오직 우즈벡어로만 수업을 진행했다.

    하스티몸 소풍 갔을 때
    하스티몸 소풍 갔을 때

    선생님 두 분이 모두 쾌활하신 분이라 매일매일 많은 시간 수업을 들어도 그리 지루하거나 힘들지 않았다. 우즈벡 전통음식 및 차를 매번 준비해주셔서 항시 포만감과 함께(?) 수업을 들을 수 있었으며, 종종 소풍을 함께 가기도 했다. 세계경제외교대에서 트람바이를 타고 바로 갈 수 있는 TTZ 시장에 가보기도 했고, 하스티몸이라 하는 이슬람 양식의 사원 비슷한 곳에 가보기도 했다.

    8주 과정이 모두 끝나고 바로 우즈벡어를 능숙능란하게 하게 된 것은 아니지만 생활에 꼭 필요한 어휘는 어느 정도 습득할 수 있었으며 이 후의 현지어 공부는 독학으로 진행해도 될 수준은 달성한 것 같다. 항시 우리에게 “Shation (악마)” 라고 하시던 두 멋진 선생님과의 마지막 수업 시간에는 작고 귀여운 선물도 준비했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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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지훈련] 타슈켄트 시내를 훑어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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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앞에 스타렉스와 관리주임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들 뜬 우리 일행은 스타렉스에 타자마자 서로를 그리고 창 밖 풍경을 찍어주곤 했다. 어제는 도착 직 후라 정신이 없었는데 오늘은 다들 타슈켄트의 모든 것을 보고, 기록해주겠다는 듯 카메라를 두 손안에 꼭 쥐고들 있었다.
    첫 일정은 그랜드 미르 호텔의 환전소. 당장 오늘 내일부터 장을 보고, 생활을 해내려면 현지 화폐 “숨” 이 필요했기 때문. 공식환율은 약 1,400숨. 우즈벡은 공식환율과 시장환율의 차이가 꽤 있어 이 때 시장환율은 아마도 2,200숨 정도 되지 않으려나 싶다. 온 지 하루밖에 안 된 우리가 위험(?)을 무릅쓰고 시장환전을 할 수도 없으니 다들 100달러, 200달러씩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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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전소가 위치한 그랜드 미르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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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지화폐 숨으로 환전한 모습

    우즈벡의 제일 높은 화폐단위가 1,000숨(우리돈으로 약 500원)짜리니 공식환율 1,400숨으로 하더라도 뭉칫돈이었다. 다들 한 장짜리 100달러를 내밀었을 뿐인데 뭉치가 돼서 돌아오니 뭔가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잠깐 위치를 확인할 겸 코이카 사무소와 유숙소를 들리고는 우리의 첫 현지식을 경험하는 기념비적 식당 “나비 하우스”에 갔다. 꽤 넓은 공간과 좌석을 갖고 있었는데도 사람들이 붐비는 것을 보니 꽤 유명한 장소인가보다, 했다.

    말로만 듣던 “리뾰쉬까”, “샤슬릭”, “솜사”, “라그몬” 등이 코스처럼 연달아 나왔다. 먹어본 것들 대부분이 다들 입맛에 맞고 괜찮았다. 그런데 다들 그리 많이는 못 먹었는데 이유인 즉슨 음식마다 기름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하하 그런데 이건 우즈벡 음식의 서막에 불과하다고나 할까. 우즈벡 음식 중 기름지지 않은 것은 찾기 힘들 정도다)

    식사 후에는 가스삐탈리 시장으로 향했다. 몇몇 우즈벡 영상에서 보았던 것처럼 대형 스타디움처럼 생긴 지붕 아래 각종 가판이 자리하고 있었다. 야외에 있는 것은 대부분 채소류였는데 아직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채소보다는 옷걸이, 바디샤워 등등의 생필품이었기 때문에 스타디움(?) 가장자리에 위치 한 상점에 가서 옷걸이 등을 간단하게 구입했다. 물론 아직 말이 하나도 안 통하는 우리들이었기 때문에 현지합숙훈련 코디를 맡은 오이벡군이 도와주어서 가능했던 일이었다.
    시장을 나서자 익숙한 한글로 된 간판들이 늘어서 있는 게 보였다. 일명 ‘한국마가진 거리’ 랄까. 들어가보니 라면, 고추장, 된장, 커피, 슬리퍼 등등의 물품들이 가지런히 정열되어 있었다. 온 지 얼마 안 되서 한국음식이나 물품 등이 그리운 지는 모르겠고, 있을 것은 다 있구나 기억만 해두고 지나쳤다.

    그리고 줌 백화점. 각종 물품이 종류별도 다 있었는데 오이벡군 말에 의하면 가격이 시장에 비해 비싸서 자신을 비롯한 현지 친구들은 잘 이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냥 현지에 어떤 제품들이 있는지 훑는 정도로 지나치는데 인상적인 것은 한국처럼 백화점이어서 고급 물품만 진열된 게 아니라, 플라스틱 세수대야 같은 것들도 굉장히 많았다는 것. 플라스틱 세수대야 옆에 고급 메이커 향수가 진열되어 있는 게 좀 이질적이다, 라고 생각되긴 했지만 어찌보면 필요 할만한 물품들이 차별없이(?) 놓여 있어 실용적이기도 한 것 같다.

    백화점 앞 나보이 극장에서 사진을 몇 장 찍고 조금 걸으니 바로 브로드웨이 거리가 나타났다. 듣던대로 리바이스, 베네통, 망고 등등의 의류브랜드가 있었고, 한국에서 보세의류를 수입해 온다는 옷 가게도 있었다. 벌써 해가 좀 떨어져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었고, 기온도 뚝 떨어져 있었다. 시간대가 조금 늦어서 그렇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브로드웨이 거리는 이름에 별로 맞지 않게 거리가 너무 한산했다. 각 옷가게에도 손님이 그리 많지 않아 보였다. 우리 일행도 춥기도 하고, 오늘 하루 너무 많은 곳을 다니기도 해서 옷가게마다 들어가지는 않고 산책하듯 지나쳐서 아무르 티무르 광장으로 향했다.

    솜사
    솜사
    샤슬릭
    샤슬릭

    조금 신기했던 것은 숨 백화점, 브로드웨이 거리, 아무르티무르 광장까지 전부 걸어서 10분 내외 거리에 있다는 것이었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걸 보니, 여기가 우즈벡 및 타쉬켄트의 제일 중심가인가 보다, 했다. 아무르 티무르 광장은 아무르 티무르 동상을 기준으로 둥그런 로터리를 형성하고 있었다. 한 쪽에는 조금 기이하다 싶은 “우즈베키스탄 호텔” 이 있었고 각종 양식의 건물들이 옹기종기 둘러싸고 있는 형태였다. 우리나라로 치면 종로의 이순신 동상 정도의 위치를 점유하고 있나 보다 하고는, 역시나 단체사진을 몇 장 찍었다.

    각 장소에 대한 감상들을 다 쓰기에는 너무 많은 곳을 둘러봤던 하루였고, 각 장소에서 머물렀던 시간도 길지 않았다. 그야말로 뭐가 어디에 있고, 어디에 있는지 알기 위해 훑어보는 하루라고나 할까. 그냥 전체적인 인상이라 하면, 길이든 건물이든 시장 돔이든 간에 다들 건물들이 좀 크고 웅장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그 건물들이 다들 꽉꽉 들어차있지가 않고 널럴하게 배치되어 있어서 그런 느낌이 더욱 강했던 것 같다.

  • [2011.11.6.] 엉망이야.mp3

    새 버젼 나왔다고 했잖아~ 정식버젼이라 안심시켰잖아~

    그런데

    홈페이지 엉망이야~ 예~~

    홈페이지는 그래도 양반이야~ 예~~

    블로그는 글이 보이지도 않아~ 예~~

    나같은 얼라가 한 둘이 어니라 하네~ 예~~

    다들 난리야~~ 예~~

    이제~ 난 ~ 몰라~~ 예~~

    세상이 날 몰라 ~~ 예~~

    생활습관도 엉망이야~ 예~

    오늘은 오후 2시에야 일어났네, 예~

    그렇다고 잉여는 아니야, 예~

    이것저것 잡일들이 있긴 하네, 에~~

    이젠 시간이 없어, 예~~

    내겐 시간이 없어, 예~~
    벌써 겨울이야~

    벌써 일년이야~

    I believe in you ~ I believe in your mind

    벌써 일년이 지나지만

    엉망이야 ~

    예예~ 예~ 우워우우워어어워 ~~~~~

  • [2011.10.31.] 현지평가회의 끄읏

    20111031-2

    일단락이 지어졌다고 할까.

    며칠동안 내 여가시간을 갉아먹었던 영상편집이 드디어 완료되어, 해방을 맞이하였고

    현지평가회의도 끝났고, 각지에서 올라웠던 동기들도 다들 각지로 돌아갔다.

    영상편집은 출력문제가 좀 있더니만 결국 코덱 설정을 바꿔서 대강 해결했다.

    장장 한달간의 띄엄띄엄 편집이 끝난 셈인데

    그래도 기획단 사람들이 영상을 보고 너무 좋다고, 하니….

    그런, 흐뭇함 때문에 그래도 사서 고생을 할 만한 것 같다.

    현지평가회의는 코이카 우즈벡 전체 단원이 모여서

    각 기관 발표를 좀 하고, 토의 주제 가지고 토의도 좀 하고

    밤에는 음주가무도 해주고 하는  1박 2일일정.

    나름 컴퓨터 단원이라고

    발표자료에 포토샵을 좀 발라주고

    조그마한 영상도 좀 찍어보고 하느라

    며칠 사이 조금 급박하기도 했는데

    그래도 나름 성공적으로 임무수행을 한 것 같다.

    그건, 뭐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고

    오랜만에 다들 모여서 함께 술도 먹고, 이야기꽃도 피워서 좋았다.

    현지평가회의 전후로 해서 너무 연일로 달리는 바람에

    몸에 피로가 좀 누적된 것 같아,,,, 찌뿌등 하긴 하지만.

    일년에 한 번 모이는 건데

    이럴 때 달려줘야짓.

    흐린 가을날씨가 무색할만큼

    꿈처럼…. 며칠이 훅- 지나버렸다.

    내일은 월요일.

    수업이다!

    이제 준비해야지.

    읔- 월요일 ㅋ

  • [2011.10.16.] 편집중

    동부캠프가 끝났고, 나에겐 편집할 영상이 쌓였다.

    촬영 영상은 약 100기가.

    D-1 일 영상이 사라진 것이 못내 유감이지만 뭐 소스가 부족하지는 않으니깐.

    암튼 꾸역꾸역 하는데…. 허리도 좀 아프고…

    계속 확인하고 편집하는 게… 쉽지만은 않군.

    언제나 편집하는 것은 골머리가 아프다.

    이번에는 영상이 너무 대규모여서도 그렇지만

    BGM 찾는 것도 쉽지만은 않은 일.

    인터넷이 빠르지도 않고, 종량제인터라… 인터넷에서 새로운 음악을 받기가 쉽지만은 않고

    있는 것 중에서 어떻게든 찾아서 해야하는데

    내 단골메뉴 Gontiti 도 쓸 만한 건 거의 써버렸고

    정말 눈 씻고 찾아해매이고 있다… ㅠ

    한국어 마을 축제라 한국어 가수 중에 찾아야 할 것 같은 제약사항도 좀 있네.

    언제나 편집은 심신을 피로하게 만들지만

    내 미약한 재주로나마

    다른 사람에게 약간의 추억거리라도 준 다면… 그게 보람인게지.

    우즈벡에 와서느 정말 영상을 많이도 찍고

    편집 , 배포도 많이 했는데

    다들 가족들과 떨어져 있어서… 내가 만든 영상으로나마 소식을 전달했다고 하니..

    조금 뿌듯하기도 했었다.

    이번에는 100여명에 가까운 학생들에게 배포될 거라고 하니

    배포 그 순간의 흐뭇함을 위해… 또 꾸역꾸역 해보자구!

    그런데, 문제가 좀 있다면!

    내 GH1이 바로 어제, 전사하셨다 ㅠㅠㅠ

    이 GH1 이 내 두번째 GH1 인데…. 저번과 같은 증상으로 전사했다는 게 유감.

    그래서,,, 저번에도 그랬듯이… 원인도 모르겠고, 대처법도 모르겠고,, 그야말로 그냥 … 패닉상태랄까 ㅠㅠㅠ

    그리고 여기 DJinside 도 베타버젼으로 업데이트 했더니

    방명록 새글보기와 로그인에서 오류가 발생하고 있다. 인터넷도 원활하지 않아 땜빵질도 어려워

    그냥 정식 안정화 버젼이 나올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 심각한 오류는 아닌 것 같아서.

    어쨌든.

    저번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이거 편집만 끝나면…. 편집만 끝나면….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

  • [2011.10.12.] 오랜만에 Informatika 학부 그리고 …

    순순히 진행된다 싶었더 현장사업은, 학교 공문이 자세하지 못하여서 다시 받아야 한다고 한다.

    Marguba 한테 맨날 신세만 지는 것 같다. 또 노력하겠다고 답변을 해주겠지. 그래도 그녀는 부탁한 것들을 시일내에 답변을 잘 준다.

    이번에는 금요일까지 노력해보겠다고 했다. 현장사업은 시간이 문제지 다른 문제는 별로 없다.

    기관 평가서를 받으로 오랜만에 Informatika 학부에 갔다.

    내 수업을 알아서 받아간 이 후부터는 별로 Informatika에 왕래할 일이 없었다.

    학부장에게 기관 평가서 이야기를 하자, 학부장은 동료 교사에게 시킨다. 그런 것은 좀 나 없는데서 시키고 그러면 안되나? 싶었지만 한 시간 있다가 준다는 말에 그래 얼른 아무렇게나 체크해서 줘라. 했다.

    한 시간 후에 다시 학부에 가니 웬 회의를 하고 있다.

    서류를 달라니깐 우선 좀 앉아봐라 하고선, 회의를 시작한다.

    잘 알아듣지도 못해서 회의에 참석하고 싶지 않았지만, 뭐 어쩔 수 없지.

    중간에 내 관련한 이야기를 한 것도 같기도 하고, 아닌 것도 같다.

    확실히 내 우즈벡어는 완전히 정체 혹은 퇴화하고 있다 ㅠ

    회의가 끝나자, Abduqodir가 갑자기 내 교실을 가보고 싶다고 한다.

    그래 뭐 보여주지 했는데… 갑자기 이 교실에서 금요일에 자신의 수업을 하면 안되냐고 한다. 이번에 학생들이 많이 들어와서 그렇다나.

    하지만,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안되는 일이다!

    수업공간이 부족하다는 건 엄연히 핑계일 것이다

    왜냐하면 원칙적으로 보자면 나 또한 Informatika 학부에서 수업을 진행해야 하는데, 따로 언어학부 강의동으로 빠져나왔으니 내가 진행하는 수업(2그룹 뿐이지만)만큼 공간이 남을 것이다.

    또 지금 이 교실은 Informatika 학부에선 어디에 있는 지도 몰랐을 정도로 공간에 대한 아무런 권한이 없는 곳이며, 학부 건물 또한 다르다. 언어학부 소속의 공간이기 때문에 마음대로 Informatika 학부에게 사용하라고 허락하기도 애매한 처지다. 공간이 부족하다면 Informatika 학부가 주관하는 공간에서 알아서 소화를 해야 하는 게 맞지 않겠는가.

    그리고 분명 처음에는 한 그룹만 쓰겠다고 하겠지만, 점점 더더 쓰려고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코이카 단원 전용 공간으로서 수업 공간이라는 게 무용지물이 되고, 사람이 바뀌면서 사용권한을 잃을 위험도 있다.

    그리고, 현장사업 이후에는 새 컴퓨터, 캠코더, 빔 프로젝터 등등 도난 위험이 있는 물품도 상당한데 공용 소유가 되버리면 관리가 어려워진다.

    우선은 해당 공간에 대한 사용권한은 내 고유의 권한이 아니기 때문에 코이카 관리자 및 언어학부 쪽과도 대화할 필요가 있다고 대답했다.

    우선은 알았다고 하며 가는데… 순순히 가지 않고 갑자기 다음 주부터 수업하는 파워포인트 관련한 수업자료 및 프레젠테이션을 보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그건 뭐하려고 보려고 하냐고 하니, 그냥 수업때 쓰는 자료가 있지 않겠느냐고 한번 봐야겠다고 한다.

    아오- 빡쳐!

    저번에도 모든 프로그램마다 프레젠티이션을 준비하라고 해서 무려 40장짜리 PT를 준비해갔는데,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Abduqodir 였다.  그게 일종의 시험이라고 이야기해서 우즈벡어로 대본까지 준비해갔었는데 말이다. 빔프로젝터까지 챙겨갔었는데 말이다!

    암튼, 이번에는 크게는 신경쓰지 않으려고 한다. 그에게 수업자료가 마음에 들던, 마음에 들지 않던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정말 좋지 않게 되는 경우… Abduqodir 가 학부장이니 다른 선생님들에게 내가 수업할 능력이 되자 않는다고 꼬질러서 정규수업을 주지 않는다 해도

    뭐, 정규수업에 크게 집착하지 않으려 한다. 우선 공간은 확보했고… 대부분의 코이카 컴퓨터 선생님들처럼 방과 후 수업을 알아서 진행해도 되는 거니깐.

    사실, 그게 더 보람있는 일인 것도 같으니깐.

    처음에는 여러모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나에겐 교활하게만 느껴지는 사람이다.

    암튼. 암튼.

    오랜만에 왕래한 Informatika 학부와의 문제는 여전했다.

    그래도 해당 일들이 끝나고 나선…. 나름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JICA 로 온 일본어 교사 카쉬나 씨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카쉬나씨는 한국말도 웬만큼 하고, 우즈벡어도 해서 더듬더듬 우즈벡어로 서로 대화했는데… 나름 새로웠다.

    시리아에 이어서 두번째 JICA로 왔다는 카쉬나씨.

    둥글둥글한 성격에 학생 및 다른 선생님들과의 교류도 많은가 보다.

    그런데 아이러니 한 것은

    카쉬나씨는 한국 드라마를 정말 좋아해서 이거이거 재밌게 봤다고 이야기를 하면

    나는 전부 다 모르는 것이고,  Umid 가 자신도 좋아한다고 한국말로 맞장구를 친다.

    내가 “이누드 잇신” 을 좋아한다고 이야기를 하자

    또 카쉬나씨는 정작 모르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헐헐 –

    암튼 일본 JICA 단원과 더듬더듬 우즈벡어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었다.

    다른 JICA 단원드도 한번 만나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