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DJ

  • [현장사업] 착수금을 수령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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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11일.착수금을 받은 날짜이다. 우선 전체 금액의 50% 정도가 조금 못되며, 제일 큰 것은 컴퓨터를 구입하는 것이었다. 우선 학교에서 해주기로 한 컴퓨터 책상, 책장, 의자 등이 아직 안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우선 컴퓨터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왜냐하면 이미 정규 컴퓨터 수업은 시작했고, 바로 다음주부터 포토샵을 들어가야만 했다. 지금까지는 원래 교실에 있던 예전 컴퓨터로 수업을 해왔는데 이 컴퓨터들로는 포토샵은 커녕 파워포인트 2003도 버벅거리기 일쑤였다. 가끔씩은 그냥 멈춰버리기까지 하니 그나마 10대가 다들 켜지고 있다는 데 감사하는 실정이었다. 어쨌든 약 4일간 천장 및 바닥공사가 끝나기만 하면 책상, 의자가 아직 헌 것이라고 해도 우선 들여놓아야 했다. 그래야 바로 다음주부터 포토샵 정규수업 진행에 문제가 없을 것이다.

    착수금 중에서 컴퓨터 구입비 이외의 것은 천장, 바닥 공사 비용이었다. 이것은 학교 공사 관계자에게 현장사업비를 지불해서 하게 된 것. 공사는 보통 기관에서 협조해주는 경우도 있는데 외교대 현장사업의 경우에는 그런 협조를 못 받아 아쉬움이 있었다. 그래도 학교 관계자가 싼 가격에 그리고 문제없이 일정대로 해주었다는 데 만족.

     ▲천장공사  ▲바닥공사

    보통 현장사업 할 때 가장 문제가 많이 발생하는 데가 교실 공사였다. 이렇게 해달라고 했는데, 저렇게 했다거나 공사를 하다보니 교실 골재가 약해서 뭐가 무너진다거나 등등. 헌데 외교대 컴퓨터 센터는 특별한 문제없이 수월하게 진행됐다. 그리고 4일만에 할 수 있다는 데 의구심을 품었었는데 그 일정도 지켜주었다.

    의외의 문제가 되었던 부분은 창문 버티칼이었다. 돌로 된 천장에 새로이 천장 골자재를 설치하니 천장이 전체적으로 낮아졌으며 그 때문에 원래 쓰던 버티칼을 그대로 설치하려니 길이가 길어 바닥에 쓸렸던 것.

    ▲ 바닥에 닿는 버티칼 ▲ 수선중인 아주머니들

    이걸 새로 사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고민을 했는데 결국 이것도 학교 관계자 분들이 해결해주었다. 10달러 정도 되는 돈을 받고 직접 수작업으로 자르고 붙여서 길이를 맞춰준 것.

    가구 및 구비해야 할 기자재들이 아직 산더미 같았지만 교실, 천장을 싹 바꾼 후에 컴퓨터를 새로 들이니…

    우와- 이제 제법, 뭔가 한 티가 나는구나! 싶었다.

    이제는, 적어도…  컴퓨터 사양 걱정은 안하고 정규수업은 진행할 수 있는 것!

  • [현장사업] 현장사업 계획서

    시작이 반이다!

    라는 말이 현장사업 만큼 잘 들어맞는 곳도 없는 것 같군요.

    정말로 시작만 해도 현장사업은 반은 한 것이나 마찬가지 인 것 같네요.

    단순히 사비를 내서 하는 게 아니라 코이카와 기관의 협력을 받아야하고

    사업지원을 꼭 코이카 현장사업을 통해서 해야 하는 가에 관한 사업 타당성도 있어야 하고

    사업규모는 어떻게 할지, 어디서 어떤 물품을 구입해야할 지에 관한

    내용 등등의 것이 모두 현장사업계획서에 담겨져 있어야 하니깐요.

    사실상 일단 본부 승인이 났다 한다면… 그 이후부터는

    계획서에 쓰여 있는대로 진행만 하면 현장사업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이곳이 한국이 아니고

    여러 소통의 문제에 부닥치면서 각종 변경사항들이 생기기도 하고 조율할 것들이 늘어가지만

    어쨌든, 현장사업 계획서는 현장사업의 반을 했다고 할 정도로… 중요한 것 같습니다.

    아무튼… 또 어디선가인가 현장사업을 고민하고 있는 단원이 있다면

    그리고… 코이카 현장사업의 현황에 관심을 갖고 계신 분이 있다면

    조금이나마 참고하시라고, 자료공유의 차원에서 제 현장사업 계획서를 여기에 업로딩 합니다.

    아래 링크된 주소를 클릭해서 다운받으시길!

  • [현장사업] 승인이 나기까지…

    예전이라 해도 이미 컴퓨터실로 가꾸어져 있는 공간에 현장사업을 하려니 일이 훨씬 수월해진 것 같다. 전기 배선공사가 이미 다 되어 있기 때문. 교실 구조를 조금 바꾸어볼까 생각해보았지만 교실공간이 비좁아서 그건 여의치가 않았다.

    대충 현장사업을 한다 치면… 우선 내 머릿속에 바꾸어야 할 것들로

    • 컴퓨터 구매
    • 책상과 의자 교체
    • 에어컨, 빔프로젝터, 캠코더 구매
    • 창문 가림막 설치

    등이 구상됐다. 현장사업을 진행하기 전이라해도 컴퓨터 정규수업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대규모 공사는 어렵다고 판단한 것. 그래서 교실 기반 공사는 최소로 해야겠다 싶었다. 암튼 구상은 이미 됐지만 우선 기다려야 했다. 여름방학이 되서 수업이 없는 절호의 기간이 생겼는데도 기다려야 했던 이유는…?

    바로 단원입국 6개월 이후부터 현장사업이 가능하다는 규정때문이었다. 사실 이 규정의 필요성에 어느 정도 공감은 하면서도, 완화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입국하고 6개월이 지나는 시점이 딱 여름방학이 끝나고 개강하는 시점이었던 것. 그 규정이 없었다면 여름방학동안에 현장사업을 해놓고, 새 학기 시작을 새 교실에서 할 수 있었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남지 않을 수 없었다. 개강한 후 수 학기중에 현장사업을 진행하려 하니, 수업일정이랑 충돌하지 않게 하려고 여러모로 신경을 써야 했다. 뭐 결론적으로 대규모 공사가 없긴 없었고, 수업이 특정 요일에 몰려 있던 바람에 일주일 정도만 문제생기고 그 외에는 큰 문제가 없긴 없었지만 말이다.

    암튼 입국 6개월을 조금 앞 둔 시점에 사무소 측에 현장사업에 관련된 간략한 기획서 같은 것을 들고 간 적 있었다. 구두로 이야기한 것 외에 서류 형태로 제출하고 이야기하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당시 결과는? 현장사업을 못할 수도 있다는 것.

    왜냐하면 어떤 선배단원에게 전자기기의 경우 한국에서 구입하는 게 낫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거의 모든 전자제품을 한국에서 구입하는 것으로 제출하였고, 첫 제출인지라 어느 정도 조율할 것을 예상하고 견적사항을 조금 높게 잡아둔 탓이었다.

    나름 절망하고 있었는데 며칠 후에 정식으로 현장사업 계획서를 작성해서 올려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업 타당성과 견적사항을 종합해서 보고 판단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말로만 듣던 현장사업 계획서를 작성하게 됐으며, 견적사항은 현지구입분을 늘리고 조금 낮추었다.

    현지합숙훈련때 현장사업 계획서 작성하는 게 정말 ‘미치도록 힘들었다’ 라는 선배단원의 이야기를 들은 바 있어 지레 겁을 먹고 있었는데 막상 작성해보니 여러가지 써 넣어야 할 것도 많고, 말을 이리저리 돌려서 써야 할 것도 많았지만 정말 ‘미치도록 힘든’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물론이지 ‘적절성, 효과성, 영향력, 효율성, 지속가능성’ 의 구분선이 쉽게 그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쓰려고 하니깐 써지긴 써졌다. ^^;;;

    오히려 계속 고민이 되었던 것은 어떤 제품을 어디서 구매하느냐 하는 예산항목들이었다. 우즈벡에서 어떤 전자제품을 파는지 미리 알아보기가 쉽지가 않았던 것. 그리고 코이카에서만 전부 구입하는 것도 아니고 학교측으로부터도 협조를 받아야 하는데 어떤 사항들을 학교측으로부터 제공받으면 좋을까.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하나 등등의 것들.

    최종 현장사업 계획서를 제출하는 데 있어서 가장 오랜시간이 걸렸던 것은 결국 학교측의 요청서를 받아내는 일이었다. 그 요청서에는 단순히 요청합니다! 의 내용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이런 이유로 요청하는데, 사업이 시행되면 학교측은 이런이런 물품을 언제까지 제공할 것이다 하는 일종의 약속도 집어넣야만 했다. 그래서 학교와 약속 문구를 정하는 과정에서 이거이거를 제공해주면 좋겠다 가능하겠느냐 라고 물어보면 나와 주로 소통하던 언어학부장은 우선 자신은 권한이 없으니 모르겠고 부총장과 이야기 해보고 일주일 정도 후에 답변을 주겠다고 한다. 그렇게 한 이주 정도가 흘렀던 것 같다. 그리고 그래 문구를 정했다 싶으면 또 서류 승인 과정이 복잡해서 또 이주 정도가 흘렀다.

    그래서 학기 시작과 함께 현장사업 승인서를 받아내려고 했건만, 예정보다 한달 반 정도가 더 늦어지고 말았다.

    그래도, 아무튼 승인이 나긴 났다!

  • [현장사업] 어디에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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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소속학부는 인포르마티카 학부로 B 빌딩 3층에 주로 위치해있었다. 컴퓨터실이 4실 정도. 그리고 회의실 같은 곳이 한 곳 있었다. 이중에 교실 한 곳의 협조를 얻어 하는 방안도 생각 안해 본 것은 아니지만, 학기 중에 현장사업을 진행하게되면 현지 선생님들이 진행하는 수업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리고 따로 추가공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현장사업을 한 공간은 코이카 컴퓨터 선생님의 전용교실로 쓸 수 없다는 문제가 생긴다.

    어차피 학교에 지원사업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좋은 컴퓨터를 현지 선생님과 공유해서 쓰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은가? 라는 질문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꽤 있는 것 같다. 다른 기관의 현장사업 경험담을 들어보면 관리문제가 매우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코이카 봉사단원이 2년 주기로 바뀌다 보니, 직접 현장사업을 진행한 단원이 아닌 후임 단원의 경우 교실 및 기자재의 보유현황을 잘 모르게된다. 그러면 그 사이사이에 학교측에서 기자재 일부를 가져가서 마음대로 써버리거나, 교실 자체를 공유한답시고 아예 뺏어버린다거나 그런 일들이 있는 것. 기자재나 교실을 뺏어버리고 또 새 기자재를 구입하거나 새 교실을 가꾸어 달라고 요구하는 기관도 있다고 한다.

    어떻게 협의가 잘 된다치면 내가 정규수업을 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문제가 될 수 있는 것. 그리고 내게는 전용사무공간의 필요성도 절실했다. 컴퓨터 교사들이 주로 수업이 없을 때 대기하는 회의실 형태로 돼있는 곳은 있었지만 그야말로 회의실 형태인지라 거기서 따로 수업준비를 한다거나 학생들과 만남의 장소로 활용한다거나 그러기엔 부적합했다. 정규수업 뿐이 아닌 방과후수업 시간표를 자유롭게 짜고, 전용 사무공간을 마련하고 전용 프로그램 등을 설치하고 그러려면 인포르마티카 학부에서 독립한 교실을 필요로 했다.

    그러면 그런 공간이 어디 있느냐? 있었다!

    그건 B 빌딩과 마주하고 있는 G 빌딩 3층. 바로 언어학부 강의동의 한국어 교실이 있는 층이었다. 본래 G 빌딩은 층마다 계단 바로 맞은편에 빈터를 크게 마련해두고 있었는데 3층은 그 빈터를 가로막아 컴퓨터실을 가꾸어 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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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빌딩 계단 맞은편 컴퓨터실

    교실공간은 깨끗한데, 컴퓨터가 너무 노후된 바람에 아무도 안 쓰는 컴퓨터들이었다. 컴퓨터마다 코이카 스티커가 붙어있는 것으로 보아 이것도 오래전에 현장사업으로 마련한 것들이 분명했다만, 이렇게 방치되어 있다니!

    나중에 알아보니 이 곳 컴퓨터실은 2003년 쯤에는 코이카 컴퓨터 단원에 의해 수업공간으로 활용되었던 곳이었다. 수업 기록도 남아있고, 교실 출입일지 등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어쩄든 기껏 현장사업으로 마련했던 공간이니, 업그레이딩 리모델링만 조금 하면 수월할 듯 싶었다.

  • [현장사업] 현장사업이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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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이카 국내합숙 중에 ‘현장사업’ 이이라는 걸 교육받았다. 자세히 기억은 안나지만 우수사례로 남미 쪽에 도자기를 굽는 도자기 가마단지 같은 것을 새로 만들어서 그 곳의 지역경제를 활성화 시켰다는 내용과 체육관 같은 것을 지었다는 것 등등의 교육을 들었다. 정말 저런 우수 사례는 전 세계에 걸쳐 열손가락도 채 안되겠지 하고 추측하면서도 나도 파견이 되면 현장사업이라는 것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런 엄청난 규모는 아니더라도 이왕 파견 나간 것 내가 활동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는 가능성들을 활용하는 게 낫지 않겠니? 하는 막연한 소망.

    우즈벡에 오고 나의 활동기관이기도 한 세계경제외교대에서 현지합숙훈련을 받게 되었다. 아직 정식 파견이 되기 전이기 떄문에 파견되면 도대체 무슨 활동을 하나 궁금증이 쌓이기 마련. 여러 갈래에서 들려오는 각종 우즈벡 컴퓨터 단원들의 활동 및 기관 정보등을 수집하면서 파견되면 현장사업도 한번 진행해 보고 싶다 라는 말을 꺼내기도 했다. 그런데 세계경제외교대는 시설이 그리 낙후되지도 않았고, 코이카 쪽에서 수년전에 도서관 건물을 지어주는 등 자금 투자가 대규모로 된 바 있기 때문에 어려울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 그런건가… 그러면 못하는 건가 보다… 했다. 그런데 또 얼마 지나고 사무소 쯕 의견을 물을 기회가 있어 관련 내용을 살짝 물어보니

    “그것과는 상관없고… 필요하다면, 현장사업을 해야하죠.”

    라는 답변을 들었다. 지금 돌이켜 보니 우즈벡 생활 정보 및 단원 생활 정보 등등은 입담으로 돌면서 그게 맞는 건가 보다- 하는 식으로 도는 것들이 많다 보니 확실한 근거 없이도 아마 그럴 거다 가 그거다 라는 식으로 굳어지는 경우들이 꽤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깐 선배단원들이 이야기 해준 것이라고 해서 100% 믿을 필요는 없는 것. 어쨌든 필요하다면 현장사업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다시 부활한 것이다.

    내가 우즈벡 입국 초반부터 현장사업에 나름 열을 올렸던 것은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현장사업 자체를 하고 싶었던 막연한 소망도 있었지만 남들에게 하지 말하지 않은 더 큰 이유가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컴퓨터 수업도 컴퓨터 수업이지만 그 외 별도로 내 취미/특기 이기도 한 영상만들기 워크샵을 학생들과 함께 진행해보고 싶었던 것. 그런데 그건 파견 국가의 지원 인프라가 열악하거나 파견 기관의 학생들이 어느 정도 수준을 갖추지 못하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내 파견기관인 우즈베키스탄의 세계경제외교대면 가능할 것 같았다. 그러면 이제 그 사용환경을 만들어 주는 일이 필요했는데, 그것을 코이카 현장사업과 함께 하면 좋겠다 싶었던 것.

    그리고 OJT 기간이 다가왔다. OJT 는 현지합숙훈련 중에 파견기관에 직접 가서 파견되기 전에 미리 조율 등을 하고 기회가 되면 시범수업도 진행해보는 기간이다. 내 OJT 기간에는 선배단원의 수업이 종료시점에 있던 지라 시범 수업은 없었고 기관 사람과 시설 등을 점검하는 기간이었다. 세계경제외교대는 정규수업의 커리큘럼이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에 코이카 단원이라 하더라도 그 커리큘럼에 맞춰서 수업을 진행해야 했다. 전 선배단원은 C++ 프로그래밍 수업 위주로 진행을 해 왔었는데, 나로서 C++ 프로그래밍 수업은 무리였다. 이유는 내가 C++ 는 하나도 모르기 때문. 그래서 조율해본 결과 1학년 수업 위주로 맡기로 했다. 그래서 한 학기에 MS Word, Excel, PowerPoint, Adobe Photoshop 을 다루고 다음 학기에는 HTML을 위주로 다루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까지 선배단원이 하던데로 3-4 컴퓨터실을 현지 컴퓨터 선생님과 함께 쓰기는 문제가 많았다. 함께 쓰는 컴퓨터실이기 때문에 컴퓨터가 윈도우부터 해서 프로그램까지 전부 러시아어로 설치되어 있었다. 더욱이 엑셀은 함수마저 러시아어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각 교실에 빔 프로젝터를 띄울만한 마땅한 기기는 커녕 교사용 컴퓨터조차 없었다. 다른 현지 컴퓨터 선생님의 수업하는 모습을 보니 학생들은 컴퓨터를 쓰고 교사는 행동지시를 모두 말로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나로서는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은 모든 행동지시를 말로 하기 위한 현지어 실력이 되지 않을 뿐더러, 러시아어가 아닌 우즈벡어를 배운지라 사용환경을 말로 지시하기가 더욱 어려웠다. C++같은 경우는 그래도 프로그래밍 ‘언어’ 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칠판수업으로 가능하다 쳐도 파워포인트나 포토샵을 교사용 컴퓨터와 시각 보조자료 없이 어떻게 진행한다는 걸까. 막막해졌다. 더욱이 이게 듣고 싶은 학생만 듣는 방과 후 수업도 아니고, 엄연히 성적처리까지 해야하는 정규수업인데다가 나랑 같은 커리큘럼의 수업을 현지 컴퓨터 선생님도 동시에 진행하게 되는 것이었다. 내가 양질의 수업을 제공하지 못하면 나한테 수업 듣는 학생들만 운 나쁘게 되는 것 아닌가. 도움을 주겠다고 갔는데 오히려 민폐만 끼치는 경우가 아닌가 싶었다.

    이와같이 영상제작 같은 별도 프로젝트는 커녕 정규수업의 진행 환경에 문제가 있었던 것. 이거이거- 정말 현장사업을 해야겠구나, 그것도 정규수업을 제대로 진행하려면 매우 신속하게 진행해야겠구나 싶었다.

  • [현장사업] 들어가기 앞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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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경제외교대 컴퓨터센터 현장사업은 2011년 10월부터 2012년 1월까지 약 4개월간 진행되었습니다. 비록 낙후된 시설로 인해 이용자가 없었더 하더라도 본래 컴퓨터실로 만들어 진 공간을 개조-보수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리 큰 규모의 현장사업은 아니었습니다.

    지금이 2012년 7월이니 벌써 반년이나 지난 일이 되어버렸네요. 현장사업을 진행하면서 현장사업 일지를 써두었기 때문에, 여기 블로그에 그 글들을 바탕으로 현장사업 시작부터 끝까지 일련의 과정들을 올려보려고 합니다.

    다른 글들과 마찬가지로 누군가에게 약간의 도움이라도, 제게는 또 일련의 추억의 흔적들로 남겨두기 위해서입니다.

  • [노래교실] 카니발-그땐 그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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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섯번째 노래수업을 가기 전에, 마음 속으로 짐짓 오늘을 우선 이번 수업의 마무리로 지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학사 일정상에도 그러는 게 적당할 듯 싶었다. 곧 짧지만 겨울방학이었고, 겨울방학이 끝나고 나면 약 보름 정도의 학사일정이 남긴 하지만, 그땐 현장사업 개관식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개관식이 끝나고 나서 새학기가 시작할 테니, 우선 이번이 영영 마지막이 될 지, 시즌 1의 마지막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끝맺음을 맺자고 생각한 것.

    카니발의 “그땐 그랬지” 란 노래를 준비해가지고 갔다. 3명의 학생이 왔다. 다음에 학생을 모집한다면 내 시간에 맞추질 말고, 우선 학생들이 원하는 시간대를 먼저 조사한 다음에 시간을 정해야겠다 싶었다. 그래도 저번 수업에 안 왔던 학생도 한 명 왔으니 약간의 타박을 해주고, 수업을 시작.
    온 학생들이 한국어를 좀 하는 학생들이었기 때문에 “그땐 그랬지”는 가사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나눠보았다. 가사 일부분에 문화적 차이가 있구나 (훈련소 입소 전날 이런 내용 등에서) 했지만 대부분 이해한 듯 싶었다. 그러면 이제 노래를 불러보아야지!

    템포가 느린 노래는 아니었지만, 음정이 반복되기 때문에 음을 맞추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그땐 그랬지가 갖고 있는 특유의 한국어 가락이라 할 지, 약간의 발성법이라고 할 지 하는 것을 아무래도 외국인인 학생들이 흡사하게 따라하기는 조금 어려운 모양이다. 한국어를 잘 해서, 웬만큼 부를 수는 있지만 “그땐 그랬지” 가 갖고 있는 조금 구수한 매력을 단번에 살리기는 어려웠던 것 같다. 그래도 뭐 오손도손 나름 즐거운 마지막 수업,이 끝났다.

    끝난김에 거의 모든 수업에 나와주었던 한 학생에게 어떤 노래가 가장 좋았냐고 물어보았다. “냉면” 이 제일 좋았다고 한다. 흠, 역시 그랬군. 했다.

  • [2012.1.24.] 한 학기 수업이 한 학기 수업이 끝났어요.

    오늘 시험 결과 발표까지 해서

    한 학기의 모든 수업이 다 끝났다.

    하지만 모두 헤어지는 것은 아니다.

    1학기때 맡았던 두 그룹을 2학기때 또 맡기로 했기 때문.

    물론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짜여진 커리큘럼과 함께고.

    그리고 한 그룹을 추가로 맡아서

    원래 일주일에 두빠라의 수업이 있었는데, 네빠라로 늘게 될 예정이다.

    다음 학기에는 택시 타는 시간을 좀 줄이고, 지하철이나 버스를 조금 더 이용해볼까 생각중이다.

    일주일에 한번 가는 것도 아니니깐, 비용 절감을 위해서라도.

    어쨌든 오늘 시험 결과를 발표했고

    모든 학생들이 반발할 줄 알았는데 4점(5점 만점)맞은 학생까지는 큰 반발이 없었다.

    3점 맞은 학생 하나는 정말 날 졸졸 따라다니면서 “제발 제발” 연발하였지만 그럴 순 없다 !

    웬만하게 아깝게 된 사람이라면 그렇게 하겠지만

    제일 꼴찌였던 학생이 오히려 그러고 나서니, 정말 얄밉기 짝이 없었다.

    거기다가 원래는 성적이 거의 낙제에 가까웠던 학생인데 내가 추가점수로 출석점수를 줬기에 그나마 3점을 맞은 건데 말이다.

    다음학기 수업의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다른 학생들과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어쨌든 그 학생은 약 한시간을 날 졸졸 따라다니만 결국은 갔다.

    휴, 어떻게 하냐 어떻게 하냐 싶던 한 학기 수업이 이렇게 종료됐다.

    학교기관이라는 게, 어느정도 사이클로 순환하는 겅향이 있어

    다음 학기 정규수업도 특별한 일 없이 그냥 무난무난하게 이번 학기 처럼 진행이 될까 싶다.

    그런데 그렇다면 뭔가 목마르다.

    그렇다면, 새 학기에는 새로운 것들을 몇개 할 것같다.

    우선, 지금 생각은 그렇다.

  • [노래교실] 김동률-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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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학생이 정말 조금 왔다. 몇 명 왔냐 하면 단 2명이 왔다! 으아!

    아, 이 반을 장기적으로 운영하긴 힘들겠단 생각이 먼저 들었다. 사실 초기 멤버가 적었던 것도 사실. 그래도 처음부터 10명이 조금 넘게 왔다 치면 몇 명 빠지더라도 이렇게 반의 존립문제(?)를 고민하진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처음부터 모인 인원이 적었다. 홍보수단이나 모집기간이 조금 부족했던 것도 같았다. 아무튼 이런저런 생각이 들긴 들었지만, 우선 학생들이 그래도 2명! 왔지 않는가.

    그래서 우선 출발을 배워보는 시간을 갖았다. 2명이 있으니깐 노래 불러보기 전에 뜻풀이 하는 시간을 여유롭게 갖었다. 각 문장별 해석 및 번역을 해보기도 하고, 전체 노래의 의미가 무엇인 것 같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약간 의외였던 것은 각 한 문장, 한 문장은 이해한 학생이라도 전체 노래의 의미를 말해보라고 하니 잘 말하지 못했던 것. 딱히 고도의 은유가 있는 것이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이건 문학을 해석하는 스타일의 차이일까, 아니면 한국어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다층적인데 그 내부까지는 보지 못해서 그런걸까. 그건 내가 학생들과 한국어만을 통해 지속적으로 소통하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뭐라고 단언할 수는 없는 문제였다.

    어쩄든 이리저리 힌트도 주고 해서 노래의 뜻풀이를 다 하고
    노래를 불러보는 시간을 갖었다. 출발은 노래가 그리 고음부도 없고, 음이 반복되는 구간이 있었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만은 않았다.

    근데 노래는 출발을 부르는데, 나는 이 수업의 마무리를 생각하게 되는 것은 어찌할 수 없었다.

  • [2012.1.24.] 보이나요?

    코이카 국내합숙에 들어간 때부터 지금까지 1년은 다 찼고

    출국일때로 따지면 이제 딱 한달 정도만 지나면 일년이 찬다.

    택시기사들이 언제 우즈벡에 왔냐고 하면

    요새는 9달이라고 하고 다녔는데

    이제는 1년 됐다고 해야할 때가 왔구나.

    암튼 여러모로 기념할만하고 생각해서

    코이카 국내합숙 중에 찍었던 사진을 올린다.

    지금은… 현지 미용사가 모히칸 컷으로 해준다면서

    이등병 머리를 만들어버리는 바람에… 조금 쑥쓰러워졌다할까.

    그래도 머리는 빨리 기르는 편이니깐. 하면서 위안을 삼고 있다.

    역시나 positive  !

    지금은 콜라도 많이 마셨고

    여러모로 잠도 안오는데

    달리 할 만한 것도 없고 그래서 여기를 열었다.

    주저리 주저리

    큰 영양가 있는 말도 안 쓰는게

    홈페이지는 잘도 유지한다 싶겠지만

    내게 있어

    이 곳은

    여기저기 부유할 수밖에 없는 사이버 네트워크 스페이스에서

    제일 안락한 곳.

    제일 편안한 곳.

    의 느낌이다.

    마치 내 집같은 느낌.

    온라인에 내 홈페이지를 연 것은 참 잘한 일인 것 같다.

    암튼, 오늘도 정처없이 부유하다가

    여기 ‘내 집’ 에 와서

    한번 키보드를 두들겨보았다.

    그래도 봐줄꺼죠?

    내 집이니깐 ~

    (빨리 보수공사를 해서 버그들을 잡아야할텐데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