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을 위한 기간은 약 3주 정도를 이 수업을 열을 때 3주 정도를 예상했다. 기간을 길게 편성한 이유는 완성본을 위해 촬영된 클립들을 편집하기 전, Adobe Premiere 기본 교육이 이뤄줘야 하기 때문. 이제까지, 단편영화 제작만을 위해 쭈욱 달려왔더라면 편집단계부터는 작품도 작품이지만 Adobe Premiere 라는 프로그램 작동법을 위한 수업들이 동시에 진행 될 것이었다. 그래서 매 수업마다 프로그램 관련 수업을 절반 정도는 진행하고, 나머지 절반의 시간동안에 촬영했던 것들을 점차 편집시켜 나가는 것이 내 목표였다. 이제껏 컴퓨터실에 모여서 컴퓨터는 켜보지도 못했던 학생들이 컴퓨터 앞에 서니 또 다른 올망졸망한 눈빛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촬영날 찍었던 영상물들을 확인해보고 싶은 간절함들ㅋ. 그 영상클립들을 온전한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려면 기본기부터 찬찬히 닦아나가야 하니, Premiere의 각각 기능들을 잘 알아둬야 하는 것. 자- 차근차근 해 보자구!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방과 후 수업 외에도 정규수업에도 Premiere 를 다루고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방과 후 수업의 학생들이 수업태도도 좋고, 더 열의도 있고 곧잘 프로그램을 다루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다. 이것은 정말 흥미가 있어 찾아 온 자발적 학생들임과 동시에, 그들에게는 확실한 동기부여가 있어서 그런가 보다. 어서 Adobe Premiere 를 배워서 직접 편집을 해보겠다는-.
(정규수업 학생들은 컴퓨터 수업을 교양수업 정도로 여기기 때문에 몇몇 학생들이 재미있는 기능 몇 개를 유독 좋아할 뿐, 전체 프로그램의 구동법에 크게 관심을 갖는 것 같지가 않다. 다만,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수업 내용을 차근차근 따라가겠다는 그런 분위기?!)
▲ Adobe Premiere 를 이용해 편집중인 학생들 Adobe Premiere는 CS5를 가지고 수업했는데 인터페이스가 유달리 복잡하게 생겨서 그렇지- 사실 정말 편집을 위해서 쓰는 기능들은 제한적이기 때문에 그리 큰 어려움이 없었다. 나도 괜시리 욕심내지 않아서, 잘 안쓰이는 합성이나 특수 보정 기능 등은 다루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제일 많이 쓰이는 기능들을 우선적으로 다뤘고 그 다음에 어떤 기능들을 알고 싶냐고 물어봐서 거기에 대해서 답변해주었다. 사실 영화작업에 잡스러운 화면전환 이펙트들이 깔리면 오히려 촌스러우니깐 말이다. 컷편집과 색보정 기능 그리고 타이틀 작업만 해도 훌륭한 단편영화가 탄생할 수 있으니깐. 특수기능들에 대한 이해는 학생들 개별로 조금씩 차이를 보이긴 했지만 전부들 핵심기능은 이해했고 스스로 컷편집, 색보정, 타이틀 작업을 할 정도의 수준에 금방 올라섰다. 이제 학생들의 자유시간을 늘려가면서, 자신만의 작품을 완성해보라고 하였다. 각자 편집된 영상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선별할 예정이었다. 사실, 애프터이펙트까지 다루는 유독 뛰어난 학생이 하나 있어서 그 학생의 것이 선택될 것이라는 것이긴 했지만 – .
토요일. 10시부터 시작하자고 했고 나는 1시간 일찍 학교로 향했다. 캠코더, 삼각대도 점검하고 시나리오랑 콘티도 한부씩 나눠주고 그러려면 조금 일찍가야겠다 싶었던 것. 그런데 건물 앞에 연출을 맡았던 학생이 서성이면서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사를 하고 어떻냐고 오늘 잘 될 것 같느냐고 물어보니, 씨익 웃으면서 그냥 가슴이 두근두근 뛰고 있다고 대답했다. 나도 씨익 웃었다. 그리고 한 켠에선 조금 부러워지기도 했다. 오늘 하루가 정말 정신없이 지나가겠지만, 어쨌든 오늘 내일이 지나면 네가 연출한 작품을 얻겠구나- 하고.
콘티작업을 워낙에 잘 해놨기 때문에 그것에 관해서는 달리 걱정할 게 없을 듯했다. 학교를 배경으로 찍게끔 되어있었고, 학교 어느 장소인지도 미리 계산하고 그린 콘티였다. 이제 문제는 기술적인 것들. 캠코더 설정과 모자란 실내 조명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그리고 삼각대 등등. 촬영을 맡기로 한 애가 먼저 와서 같이 이야기하면 좋았겠지만 아무래도 촬영시간이 부족할테니- 연출을 맡은 학생에게 캠코더 설정법을 알려주었다.
캠코더 자체가 현장사업을 할 때 이런 학생 참여형 멀티미디어 수업을 지향하고 구매한 것이기 때문에 달리 별 문제는 없을 듯 싶었지만, 또 문제가 없을 거라는 것은, 그 만큼 사용에 제한이 있을 거란 이야기이다. Progressive에 1920*1080 해상도 지원에 Auto Focus 등의 조작에는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수동 노출과 수동 포커스 조절을 원할하게 이뤄낼 수는 없던 것. 연출을 맡은 학생이 캠코더를 이리저리 만져보더니만 저심도와 매뉴얼 포커스에 관한 질문을 한다. 매뉴얼 포커싱은 가능하지만, 가정용 캠코더의 한계로 저심도는 어느 정도까지밖에 구현이 안 되었다. 그래도 수동조작이 일정정도 가능하다는 것이 만족을 하는 것 같았다.
캠코더, 삼각대 등이 문제없음을 확인하고, 시간이 되자 다른 스탭들과 배우역을 맡은 애들이 속속들이 모였다. 우선 어떤 씬부터 해야할지, 이것저것 모여서 토의들을 하다가 우선 나가자! 하면서 밖으로 나갔다. 첫 씬은 간단한 대화씬으로 했다.
▲ 촬영구도 토의
▲ 모니터링중
예상처럼, 첫씬 구도 잡는데만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콘티를 잘 그려놓긴 했지만 카메라 위치가 여기가 좋은지 조금 더 가까이가 좋은지, 줌을 더 당기는 것이 좋은지 또 배우의 움직임이 조금 어색하다던지- 등등의 것들로. 단순하게 롱샷으로 건물 앞까지 걸어가는 씬인데, 그것만 찍는데 거의 한시간 정도는 걸린 것 같았다. 아직 스탭 역할 분배도 문제였다. 카메라맨을 미리 정해줬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학생들이 자꾸 이게 더 좋을 거라면서 카메라맨을 자청하기도 했다. 나는 맡은 역할분배를 잘 지켜줄 것을 당부하고, 나머지는 옆에서 지켜봐주었다.
하지만 점점 자신의 역할들을 잡아가고, 그 안에서 합의들을 보기 시작했다. 첫 씬이 구도 잡는데만 거의 30분이 걸리고, 여러가지 재촬영, 재촬영 등으로 또 20분 가량 걸렸었는데- 다음씬부터는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배우역할을 맡은 학생들도 처음에는 너무 어색해 해서 자꾸만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고, 그랬었는데 점점 역할에 몰입해갔다.
▲ 도서관 내 촬영
▲ 컴퓨터센터 앞 촬영
주로 실외촬영을 먼저했는데, 나중에는 주변에 구경꾼 같은 학생들이 조금 걸리적거렸을 뿐 다, 별다른 무리가 없었다. 언제 소품이랑 배우 의상 컨셉이랑도 맞췄었는제 배우역할을 맡은 애들도 씬이 바뀌자 거기에 맞춰서 옷도 갈아입고 오고- 전체적으로 첫 촬영인 것 치고 매우 순조로웠다.
그리고 실내촬엉. 실내촬영의 문제점은 건물 안에 조명이 너무 부족해서 카메라를 대면 너무 어둡고 칙칙하게 나온다는 것. 그런데 이걸 예상이라도 했던지 어디서 탁상용 스탠드 조명을 대가면서 촬영을 감행했다.
딱히 내가 옆에서 도와줄 게 없을 정도로 순조롭게 잘 진행이 되어갔다. 예상했던 것처럼 1일차 촬영으로는 부족해서 다음날 일요일까지 촬영이 이어졌다. 일요일에는 갑자기 비가 오는 바람에 실외촬영에 무리가 좀 생겼었는데, 오히려 창가에서 비를 바라보는 씬을 넣음으로써 재주좋게 넘어갔다.
▲ 비가와서 우산을 받치고 촬영
▲ 여배우 분장
전체적으로- 생각했던 것보다는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다. 약간의 문제가 있더라면 연출, 촬영, 배우역할을 맡은 애들로 주요 역할들이 몰리는 바람에 그 외의 스탭들이 약간 붕 뜨는 문제. 특히 아쉬웠던 것은 연출이 조연출을 맡은 애와 지속적으로 소통해서 현장 통제 및 주요 일을 그 쪽에 전담했으면 했는데, 둘이 뭔가 사이가 좋지만은 않은 듯 해서 그게 잘 안됐고- 초반에 잘 따라가던 스크립터가 몇몇 테이크를 놓치는 바람에 씬, 컷, 테이크 넘버가 뒤엉켜버렸다는 것. 꽤나 아쉽게 생각됐던 부분이지만, 첫 촬영에 임하는 학생들 치고 훌륭했다. 정말로.
이렇게 저렇게 촬영이 모두 종료된 이 후에는, 학생들에게 소감을 묻는 간단한 인터뷰를 해보았는데 다들 힘들고 어려웠지만(이 말을 꼭 빼놓지 않았다 ㅋ) 처음 접해보는 것이었고, 그 과정이 꽤나 재미있었다고 했다. 함께 작업에 임해준 서로에게 감사하며, 좋은 작품이 나왔으면 한다고들… 그래,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선 이제, 편집을 잘 해야 하는 것.
내 욕심으로는 배우는 시나리오에 맞는 수업 외부의 학생을 썼으면 좋겠다- 고 생각했지만, 강제할 수는 없고 학생들도 그룹 안에 적절한 인원들이 있다면서 알아서 서로 주인공 역할을 추천하고, 자청하고 그랬다. 결론적으로 두 그룹 전부다 주인공급 2명에 조연급 1명 정도면 되는 간단한 시나리오라 그리 큰 문제는 없을 듯 싶었다.
스탭은 연출, 조연출, 촬영, 스크립터 그 외는 연출부로 촬영현장에서 현장통제를 하는 걸로 하자고 했다. 연출은 거의 선택의 여지없이 시나리오를 작성했던 학생이 하는 걸로 잠정 합의가 되었고, 나머지는 하고 싶은 사람을 물어 지원을 받았다.
조금 아쉬웠던 것은 카메라에 XLR 단자가 있고 사운드 붐대가 있었으며 더 좋았을 것인데… 환경 및 기자재 여건이 되지 않아서 아쉬웠다. 사운드를 XLR 단자를 통해 라인연결하고 붐대를 들지 못한 다는 것은… 곧 카메라가 인물이랑 조금 멀리서 찍으면 소리가 멀리서 나는 느낌이 나고, 가까이서 찍으면 가까이 찍는 느낌이 나버리기 때문. 더욱이 완전히 전경샷에서 대화가 이어지기라도 해버리면 사운드를 도저히 딸 수가 없으니깐 같은 장면을 다시 잘 찍어둬야만 한다. 그리고 더 욕심부리지면 슬레이트도 하나 딱 쳐 줘서, 스크립터랑 싱크를 잘 맞춰놓으면 편집할 때도 훨씬 편하고 효율적이었을텐데- 뭐 이것도 여건이 안되서 불가.
암튼 이리저리 역할분배는 다 했고, 촬영날짜를 잡아보았다. 처음에 평일 쪽으로 맞춰보고자 했지만 학생들이 평일에는 수업이 거의 full 로 있었기 때문에 도저히 맞출 수가 없었다. 결국 주말로 확정짓고, 조연출을 중심으로 해서 배우들은 어떤 의상을 입고 올 것, 누구누구는 뭐 스탠드 등을 가져오고 누구는 소품으로 쓰일 꽃 좀 사오고 등등을 협의했다. 이제까지 교실안에서 계속 감성훈련과 글쓰기만 하다가 실제 촬영할 것을 계획하려니깐 학생들이 더 신나하는 것 같긴 했다. 연기 연습까지 감행하고 말이지 ㅋ
▲ 연기연습 중
▲ 연기연습 중
거기다가 한 그룹의 연출을 맡은 애는 자신이 그렸던 스토리보드를 연결해서 그걸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왔다. 더욱이 몇몇 씬에는 이펙트음까지 삽입해서 꽤 그럴듯한 프리 프로덕션을 진행해주다니!! 이거이거, 물론 첫 촬영경험이고 그래서 그냥 배운다고만 생각하라고 어깨 좀 토닥여 주려고 했더니- 이거 꽤 그럴듯한 게 만들어 질수도 있겠어, 싶었다.
스토리보드 혹은 콘티뉴이티란 카메라를 대고 찍는 장면을 그대로 그리는 것이다. 그러니까 만화처럼 그려지게 되는 것인데, 알아보기 좋게 잘 그리면 좋으나 여건이 안되면 졸라맨 스타일로 그려놓고 대충 해설을 하면서 그리기도 한다. 그림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 되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카메라 촬영을 위한 하나의 계획이니깐 말이다. 잘 알아먹게 그리는 게 최고라는 것.
글로 된 시나리오가 이제 진짜 보여주는 형식으로 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고민의 과정도 길 수밖에 없고, 또 꽤나 시간이 가는 작업이다. 처음하는 사람에게는 정말 어려운 과정.
우선 스토리보드 혹은 콘티뉴이티의 개념을 알아야 하기에 이에 관해 예시를 들어가면서 설명을 했다. 이미 상영되었던 영화 중에 콘티뉴이티가 온전히 올라와있는 영화를 찾아야 했는데 우즈벡 인터넷 사정이 열악한지라 이도 꽤나 어려운 작업이었다.
인터넷에서 헐크의 콘티뉴이티를 찾았는데, 정작 내가 영화 헐크를 가지고 있지를 않고 어떻게든 다운받을까 했더니 용량이 너무 커서 받을수가 없고- 그래서 내가 가진 영화중에 콘티뉴이티를 찾아보았는데 찾고, 찾은게 그나마 “택시 드라이버” 하지만 콘티가 예시로 보여주기 그리 적합하지가 않았다. 너무 간략한데다가, 콘티대로 영화가 편집되어 있지 않았던 것. 겨우겨우 “쇼생크 탈출”의 콘티를 찾아내고는 – 결국 내게 없는 영화라서 다운을 받아버렸다. 다행히도 “쇼생크 탈출”은 콘티 상태도 매우 좋은데다가, 거의 콘티와 영화가 일치했다.
▲ 학생들에게 보여주었던 쇼생크탈출콘티중 일부
학생들에게 “쇼생크 탈출” 의 콘티를 먼저 보여주고 영화를 보여주니, 다들 어떤 것인지 바로 이해들을 했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협업으로 진행하느냐- 누군가 종이에 대고 그리면 그것 옆에서 이리해라 저리해라 하면서 해야하나 하려니깐 서로 보기도 어렵고, 조그만한 종이를 둘러싸고 같이 토론하기도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그렇게 하기는 어렵고 콘티를 화이트보드(칠판)에 그리고, 토의해서 컷이 정해지면 그것을 사진으로 찍기로했다. 이 후, 사진으로 찍은 것들을 모아서 순서에 맞게 배열하면 되는 것.
결론적으로 한 그룹은 매우 잘 됐고, 한 그룹은 잘 안됐다.
한 그룹은 역할분배를 골고루 해야해서 시나리오를 썼던 학생이 아닌 다른 학생에게 펜을 쥐어줘봤는데 그 학생이 그림을 그리는 감이 영 없는데다가, 시나리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도무지 그려내질 못하는 것이다. 결국 시나리오를 썼던 학생으로 선수교체를 하고 나니, 그 학생은 각 씬별로 공간에 대한 계획이 이미 머릿속에 있는지라 쓱쓱 잘 그려냈다. 잘 그려냈을 뿐 아니라, 인물의 어느 부위를 보여주느냐도 상세하게 그려냈고 그것을 가지고 어떤 각도가 더 낫다, 어떤 크기가 더 낫다 서로 토의하면서 잘 진행해냈다. 하지만 한 그룹은 잘 안된 편이었다. 시나리오가 거의 도서관이 배경이었는데, 그냥 도서관을 커다랗게 하나 그려놓고는 졸라맨 둘을 그려내놓고, 그냥 이게 다라고만 우길 뿐이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똑같은 장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모든 상황을 전개시키는 지루한 영화를 만들꺼냐고 하니 그건 아니고 인물 가까이도 가고 그럴거라 한다. 그러면 그것을 각각 다 끊어서 그려라 했더니 그것은 현장에서 그냥 알아서 하면 된다, 라고 우기는 것.
▲ 콘티를 그리고 있는 중
▲ 완성콘티 사진촬영중
결국, 이러쿵 저러쿵 하다가 6개의 슛을 가진 콘티를 완성. 첫 번째 그룹의 콘티가 거의 서른개가 넘는다는 것을 생각할 때 꽤나 실력차이가 나는 것.
나는 예상했다. 아마, 이 콘티의 차이는 결과물에도 고스란히 반영되리라 –
암튼, 크게 욕심을 부릴 여유는 없으니 다음 작업으로 역할분배와 실제 촬영계획 세우기에 들어가야 할 때였다.
시나리오 쓰기는 예상대로 학생들이 꽤나 힘들어했다. 그래서 모든 그룹이 자연스럽게 2주간에 걸쳐서 시나리오를 쓰게끔 하게 되었다. 원래 1주였는데, 많은 학생들이 쓰지 못하거나 다 쓰지 못한 미완성의 결과물을 보여주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연장되고 말았다. 시놉시스 발표했던 것을 수정해서 가져온 학생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시나리오 단계에 들어가니깐 새로운 것들을 써왔다. 그냥 막연히 줄글로 썼던 것을 영상화하려니깐 생각과 느낌이 달라졌나 보다. 써온 것들도 각양각색. 어떤 학생들은 유려한 필기체로 수기작성해주어서 정성은 알겠으나, 나는 하나도 못알아먹었던 적도 많았고, 컴퓨터로 작성해도 시나리오 작성법을 제대로 지킨 학생들은 드물었다. 묘사를 하는 것 같긴 한데- 씬넘버, 대사, 지문 구분을 확실히 해준 학생들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도 대충 시나리오 비스무레가하게는 쓰려고 노력들을 하는 것 같았다. 우리 수업이 양질의 작품을 만드는 것보다는 일련의 과정들을 쭉 따라가면서 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기 때문에 시나리오 자체의 완성도를 논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이제 써온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발표를 하고, 제일 멋진 시나리오, 이제부터 협업으로 제작할 시나리오를 하나 선정해야만 했다.
▲ 학생이 써온 시나리오
▲ 시나리오 발표를 듣는 학생들
우선 시나리오 작가들의 발표를 모두 듣고- 각 시나리오의 특징등을 나열해보았다. 총 분량 / 주제 / 필요한 배우 / 촬영장소 / 필요한 특수소품
의 카테고리로 해보았다. 이렇게 했던 이유는 실제 촬영을 해야한다는 것을 염두해 두어야 하기 때문. 어떤 시나리오는 가정집 안에서 부부간의 문제를 다룬다고 했는데 가정집을 수배하는 게 어려움이 있었고, 중년의 남녀 배우를 구하기도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또 어떤 시나리오는 고층빌딩 옥상에서 벌어지는 일을 구상했는데, 우즈벡 특성상 촬영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시나리오였다. 그런 실촬영 조건을 고려해주라고 거듭 강조를 하며 투표를 시작했다. 학생들만 투표에 참여했고, 나는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 각 그룹당 한편씩 선정하도록 했는데- 한 그룹은 시나리오 한편의 완성도가 유독 뛰어나서, 한편이 압도적인 지지로 선정됐고 또 한 그룹은 다들 비슷비슷해서 그런지 쟁쟁한 접전을 이루다가, 겨우 한편을 골라냈다.
▲ 사니리오들의 특징 요약중
▲ 투표를 통해 시나리오 선정하는 중
둘 다 사랑에 관한 이야기였고, 분량은 5분 내외 정도, 학교 내에서 일어나는 것이었다.
실촬영하기에 무리가 없는 준수한 시나리오들이었다, 휴- 다행.
그럼 이제 시나리오가 선정이 됐으니, 스토리보드 작업에 들어가야만 했다. 이 또한, 험란한 산이 되리라, 하하하-
한 10명 중 3명 정도 써왔을까. 그래도 다행인 것은 비록 써오진 못했지만 무슨 내용을 할 것인가는 머릿속에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 그럼 발표를 들어보기로 했다.
좀 기발하고 상상력이 톡톡 튀는 것을 기대했는데, 아쉽게도 그런 내용은 별로 없었다. 생각나는 데로 나열해보자면
음식을 요리하려고 준비해뒀는데 누군가 음식을 훔쳐가서 당황했다는 내용.
숙제를 해야하는데 하루종일 숙제를 언제할까 고민하다가 끝나는 내용.
누군가를 좋아하게 돼서 계속 주변을 맴돌다가 겨우 연락처를 받았다는 내용.
개를 잃어버려 현상수배를 걸었는데, 현상금이 커서 학교가 텅텅 비었다는 내용.
어느 부부가 전날 부부싸움을 했다가 아침에 화해하는 내용.
우즈벡 전통음식을 준비하고 있는데 비가 내려서 망했다는 내용.
그 중 개와 현상금에 관한 것이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들었다. 아직은 시놉시스를 선정하는 단계는 아니기 때문에 발표를 듣고 더 재밌게 하기 위해선 다른 것들이 필요하다는 식으로만 이야기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실제 제작이 가능한 내용이어야 한다는 것. 예로 학교 외의 일반 가정집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면 그 가정집을 수배할 수 있어야하고, 비가 왔다 한다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는 것. 왜냐면 우즈벡은 비가 거의 오지 않기 때문. 학생들은 대충 수긍하는 분위기.
▲ 시놉시스 발표중인 학생들
시놉시스를 보완해서 시나리오로 써오라고 했다.
그러기 위해선 시나리오를 어떻게 써야되는 질 알아야하는 법. 그래서 컷, 씬, 숏의 개념에 대해서 설명했고 시나리오 예시를 보여주었다. 가지고 있는 영어대본이 많이 없어서 이리저리 찾다 찾다… 영화 “차이나타운”의 영화파일과 대본을 찾아서 “차이나타운”의 일부 장면을 함께 보면서 씬과 컷의 개수를 갖이 맞춰보았다. 그리고 대사와 지문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대사는 일부러 표준어로 쓰려고 하지 말고 실제 구어체에 흡사하게 쓰라고 주문했다.
그리고 페이드 인/아웃, 디졸브, 줌 과 같은 것도 간략하게 알려주었다.
이번에 시놉시스를 써오지 못한 학생들이라도, 꼭꼭 시나리오는 써오라고 했다. 왜냐하면 시나리오를 써와야 그걸 가지고 토의를 하고- 투표를 해서 진짜 제작할 시나리오를 선정할 수 있기 때문. 시놉시스보다 어려운 시나리오. 학생들이 제대로 써올지, 또 한번 걱정.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10명의 학생들이 교실에 들어왔다. 우선 단편영화를 본 적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역시… 없었다. 한국도 단편영화를 본 사람들이 적은데 적절한 예술영화 상영관도 온라인 동영상 배급도 어려운 우즈벡에서 그럴 수 있을리 만무했다. 단편영화가 무엇인지를 느끼게끔 해줘야 했다.
사실 단편영화는 말 그대로 30분 이내의 짧은 영화라는 개념정의로 간단하게 끝날 수가 있지만 또 직접 만들어보려고 치면 그것 가지고는 잘 안되는 게 사실. 장편소설과 단편소설의 재미요소가 다르듯, 단편영화도 거기에 걸맞는 장르적 규범이 있다. 장편영화든 장편소설이든 기본적으로 기승전결의 골격 안에서 한 주인공의 역경(?)을 다루는 것인데, 단편영화에서는 기승전결의 골격을 다 수용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그렇다고 꼭 안된다는 것은 아니고 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따라서 기승전결을 완전하게 수용해도 되고 안해도 되고… 그래서 나는 학생들이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단편은 일반적인 기승전결 골격을 지키는 것보다는, 어떤 강한 임팩트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 정도로 그치기로 했다. 왜냐하면 제작비도 없이 제작해야하는 환경이기 때문에 스케일이 큰 것은 좀 무리가 있을 수 있어서… 그래서 그 비슷한 단편들을 찾아보았다. 대사는 없는 걸로…
김종관 감독의 “누구나 외로운 계절”, “드라이버” 독일 단편영화 “정거장에서”
이렇게 세편을 보여주었다. 각자 특징이 있는 단편영화였다. “누구나 외로운 계절”은 정말 짧은 시간에서 1씬으로 단편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드라이버”는 단편 중 스릴러의 느낌을 낼 수도 있으며, 약간의 메시지를 연구하게끔 하기 위해 “정거장에서” 같은 단편이 학생들이 만들어줬으면 하는 단편이었다. 한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캐릭터 특성 묘사가 탁월하고, 긴장감에 재미까지 있으니깐.
▲ 단편영화를 보고 그에 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거장에서” 의 반응이 제일 좋았다. 그리고 영화에 대해 간략히 이야기했다. 장편영화 “아바타”나 “타이타닉” 등을 예로 들면서 영화의 주제를 찾고,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찾고… 또 그것만으로는 안되고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어렵게 하는 고난요소들을 설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예로 호감이 있는데 겁쟁이여서 말을 못한다거나(단편 “누구나 외로운 계절”, “정거장에서”)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메시지를 전달해야는데 개발에 대한 인간욕망이 있다거나(영화 “아바타”) 등등.
부족한 현지어로 설명하느라 진땀을 뺐지만 대략 절반 정도는 이해하는 것 같다.
학생들의 호기심을 단편영화에 대한 호감으로 바꿔내고자 했는데 잘 됐으려나 모르겠다 싶다. 첫 수업을 마치고 나서 예상하는 가장 큰 난관은… 학생들이 꾸준히 나와줄것인가 하는 것. 그리고 숙제를 제대로 해가지고 올 것인가 하는 것.
바로 첫 수업 끝나고 다음 시간까지 “시놉시스”를 써오라는 숙제를 냈기 때문. 아무도 안 써오면… 그것으로 망하는 것. ㅎㅎ
“시나리오 집필, 촬영, 연기 그리고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 Adobe Premiere 사용법을 배움으로써 직접 단편영화 제작을 시작부터 끝까지 해볼 것입니다. 단편영화와 프로그램에 관한 배경지식이 없어도 되니 관심있는 사람은 이메일, 전화 혹은 컴퓨터 센터로 찾아오세요.”
▲ 우즈벡어로 만든 영화수업 모집 공고문
2월 27일-28일 동안영화수업 공고를 학교 곳곳에 붙였다. 처음 붙일 때는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여기 붙이면 안된다며 누군가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기가막힐 노릇이었다. 아주머니가 붙이면 안된다고 했던 곳은 다른 곳도 아닌 바로 컴퓨터 센터 유리벽이었다. 다른 곳은 몰라도 컴퓨터 센터 앞에는 꼭 붙여야 하는 것 아닌가. 내가 수업을 하는 공간인데! 한참 실랑이 끝에 위에서 뭐라 하는 게 있으면 내가 책임지겠다고 바득바득 우겨서 붙이기 성공. 그리고 이어서 한국어 교실이 있는 G빌딩은 각 층마다 하나씩 붙이고, 컴퓨터 학부가 있는 건물에는 1층에만 4장 정도. 그리고 도서관 앞에 한 장 붙였다. 컴퓨터 센터 말고는 별다른 제지가 없었다. 전부 다 해서 10장 정도 붙였다. 학교 주요 건물이 3개 정도밖에 안되니 웬만한 곳은 거의 다 붙인 것이었다.
▲ 컴퓨터센터 앞 부착물
▲ 건물 입구 부착물
공고문에 모집시기를 열흘정도로 넉넉하게 잡아뒀다. 학교 자체에 이런 종류의 수업이 열린 적이 별로 없기 때문에 학생들이 꽤나 생소해할 것 같아서였다. 한 3일 정도 지나다니면서 공고문을 보고 그 동안 약간의 소문이 나면 한두 그룹 정도는 개설될 수 있겠지, 싶었다.
연락을 기다렸다. 결론적으로 하루에 평균 3-4통의 전화가 와서 해당 수업에 관하여 물었으며, 모집기간 동안 약 40명의 학생들이 찾아왔다. 찾아올때마다 수업계획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고, 학생들의 공강시간을 기록하고 연락처를 적었다. 각각 개별적으로 찾아오는 학생들의 공강시간을 서로 맞추는 게 약간의 곤욕이었다. 도대체 몇 명이나 찾아올지 몰라서 그룹을 어떻게 지어야 하나, 고민이었는데… 40명이 찾아왔으니 자연스럽게 4그룹이 만들어졌다.
제일 걱정이었던 것이 수업을 잘 하냐, 못하냐에 앞서 학생들이 흥미를 갖고 모여줄까 였는데… 그것이 일단 해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