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운동화를 빨았으면 오늘은 가방을 빨고 내일은 세탁소에 맡겼던 옷을 찾아오는 식으로 – 하루하루 정리와 준비들을 하는 여유로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꼭 집에만 오면 책이 잘 읽히지가 않아서 (원래 잘 안읽지만) 저녁 – 밤이되면 영화를 보기도 하는데 그것마저 내키진 않을 때는 그저 음악을 귀에 꽂고 부안 밤거리를 유유낙낙 다니기도 – 밤 10시만 돼도 잔뜩 한산해져버리는게 부안군. 제법 이것도 운치라며 – 새로 산 시와 앨범도 틀어보고 다른 잔잔한 앨범들도 틀어보고 하면서 여기저기 다녀도… 한 삼십분이 안되서 – 다 돌아버리고 만다. 새삼스럽게 놀라운 것은 어렸을 적에는 이 좁은 곳을 전혀 좁다고 느끼지 못했던 것. 지금 생각으론 – 반나절이면 부안 온동네 새로울 것이 없겠는데 그때는, 어딜 갈 때마다 부안에 이런 곳이 있었어? 하면서 새롭게도 느끼고 아직 안 가봄 미지의 공간(?)도 참 많다 – 부안은 왜 시가 안될까? 라고 혼자 생각해보기도 했던 것. 어렸을 적… 나는 호기심은 참 많았지만 모험심은 별로 없어, 할 일없이 여기저기 나다니지 않았던 탓도 있는 듯. 그래도 – 나는 내 고향이 이런 시골이라는 것이, 참 좋다. 언젠가 여기에, 모든 연줄이 없어지더라도 – 내가 그렇게 느끼지 않을 것이지 않은가. 내 고향, 여기저기 다 눈에 익은 것들이, 변화를 주목하게 되는 것들이 이렇게도 많은 걸.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했다는 사전정보만 있었을 뿐. 액션 스타일인지, 멜로 스타일인지조차 모르고 봤다. 어떤 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거머쥐는 거지? 그리고 상 좀 탔다는데 웬만큼 웰메이드는 보장되었겠지 하는 마음가짐으로 보기 시작. 초반에 이란의 개혁성향의 지도자가 나타나 영미의 유전을 국유화해버리자, 미국이 작전을 펴 개혁성향의 이란 지도자를 암살하고 엉망진창의 독재자를 세웠다는… 미국의 과오가 먼저 전면에 드러난다. 뉴스화면 같은 것을 짧게짧게 하여 차분한 나래이터로… 그리고 이란에 새로운 혁명세력이 도래하기 시작했다는 게 이 영화의 역사적 배경. 이거 미국, 자기들 흠을 먼저 내놓기 시작했는데, 전개는 어떻게 하려나? 전체 스토리 줄기는 혁명 세력에 의해 미대사관 직원들이 납치 혹은 억류되고 그것을 구출하기 위해 특수작전을 편다는 내용. 특수작전이라 하면 – 역시 총질에 헬기에 탱크에 장난이 아니겠구나 하겠지만 실화에 바탕한지라 – 그런 것은 전혀없고 특수전문요원한명이 달랑 가서 억류된 6명을 비행기태워서 데려오는 게 다이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특별한 큰 사건들 없이도, 액션없이도 그 전개가 정말…. 스릴러라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 할 정도로 숨통을 죄어오게 한다. (특히 공항에서 덜덜덜~) 그 바탕에는 배우들 담백한 연기 그리고 갈등을 꾸준히 고조시키되, 과장하지 않는 정도로 절제를 하면서 유유히 흐르게 하는 멋진 솜씨가 있었던 것. 하지만 이 영화가 스릴러로서 너무 잘 만들었다고 좋은 영화라고는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사실 이렇게 솜씨좋게 만들어버리니 더 재수없는 영화가 됐달까. 왜냐하면 – 옛날 할리우드 영화가 극명한 선악의 대립으로 해서 나쁜놈들 와다다다 쓰러지는 것을 쾌감으로 선사했더라면 요새는 그 정도까지는 별로 없는데 – 더 솜씨좋게 – 걔네들이 완전한 악 덩어리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정당하지 않은 것은 아니야~ 라고 얘기해버리니깐 그런 것 같다. 처음에 영화 스스로 미국이 잘못한 것 있다 – 라고 담담하게 얘기했지만 그 이후 전개는 그 반성과 성찰해야하는 의무를 기묘하게 비틀어 버린다. 초반 인트로 이후부터는, 철저하게 이란 혁명세력에 의해 고통받는 미국 인질들 개인에 집중하는데 이것은 마치 미국 민중이건 이란 민중이건 다들 거대권력에 의해 고통받고 있는 것은 비슷하다 라는 식으로 치환시켜버린다. 그래서 이란 혁명세력이 왜 생겨날 수밖에 없는 지를 망각하게 만든다. 그런데 영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 마무리로 갈수록 이란 혁명세력을 악의 무리들로 둔갑해버리고 미국 정부를 선의 편으로 밀어제친다. 압권은 끝부분과 엔딩크레딧까지 박수를 쳐대는 모습. 그렇게까지 나아가버리니, 결국 고통받던 미국 인질들의 구출이… 마치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그래야 한다라고 여겨지는 게 아니라 이것이 바로 미국의 승리! 미국 정의의 승리! 라고 외치게 만든다. 결국 – 초반에 담담했던 나래이터는 일부 소재에 불과했던 것. “우리가 조금 실수한 적 있긴 있었지만, 그것은 너네가 잘못한것이고 우리가 세우는 정의는 굳건해!! 우리 말 좀 들어!!! ” 라고 강변하고 만다. 그리고 이것은 실화다! 라고하는 또 하나의 탈출구. 너무 요령있어 얄밉다~ 라고 여겨질 수밖에. 사실 정치적인 요소들을 제거한 진공상태에서는 꽤 멋진 스릴러지만 나는 그럴수가 없어서… 아직도냐? 하는 한숨과 너무 얄밉다는 눈빛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아카데미 작품상까지 받았다고 하니 – 참 재수없군. 이런 반응이 나온게지.
요새는 하도 천만관객을 잘도 넘보니 그 수식어가 압도하는 힘이 줄어들긴 했어도, 어쨌든 이만하면 웬만한 사람들은 다 본 영화. 흥행 초대박이라고 할 만하다. 너나할 것 없이 다 보고 난 한참 후에야 난 이 영화를 접했다. 어디보자~~! 음… 먼저 흥행 초대박이란 선입견이 내 자세를 조금 비뚤게 만들었음을 고백한다. 그래 네가 얼마나 잘만들어졌는지 보아주마 라는 자세라 할까. 그래도 난 영화에 잘 몰입하는 타입이라 영화를 아무리 분석해보려고 노력해도 좋은 영화, 재밌는 영화를 보다보면 약 10분 정도 지나버리면 분석이고 뭐고 영화에 완전히 빨려들어가는 타입이다. 그런데 결론적으로 광해는 그렇지 않았다. 광해의 스토리는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왕과 서민 바꾸기 게임이다. 상놈이 왕이 되어서는 나름대로 궁궐에서 좌충우돌 에피소드도 만들어보고, 그러다보다가 자신이 어떤 위치에 서있는지 자각하게 되고 나름대로 백성을 위한 왕노릇도 해보고 하지만 결국 자신은 대역이었다는 한계에 부딪쳐 내려오는 일련의 이야기들. 스토리 전개와 호흡은 사실 흠잡을 데 없이 매우 깔끔하다. 기승전결,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이 너무 깔끔해서 꼭 교과서를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기도 하다. 이제는 슬슬 위기로 빠져줘야하는데, 하면 정말 당연히도 그렇게되고, 결말은 아마 이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하면 또 당연한 시점에 당연히 그렇게 된다. 그리고 소재. 전반부 주요 소재는 상놈의 왕궁놀음이다. 이는 사실 너무도 익숙한 이야기이다. 광해와 비슷한 시기에 나왔던 “나는 왕이로소이다” 에서도 거의 동일하게 화장실 소재와 식사 그리고 중전과의 동침에 관련한 소재가 나오기도 했다. 그래도 광해 쪽이 “나는 왕이로소이다” 보다 나은 것은 광해는 기본적으로 코미디 장르가 아니기에 개그 욕심을 꽤나 절제해주었고 억지로 웃기려 드는 욕심은 별로 보이지 않았던 것. 개그보다는 “백성을 위한 진심정치” 로 줄곧 나아가고자 하고 막판에는 “한중관계에서 자주외교” 와 같은 메시지를 넣으려고 시도하기도 한다. 이건 매번 한국의 사극마다 나오는 주요 메시지인데 사실 좀 식상하기도 하고 별로 공감도 안 가는게 사실. 그 당시 존속하던 신분제를 인정하지 않는 것인양 만인평등주의의 주창이나, 사대주의를 지양하고 자주적 조선이라는 깃발은 사실 현대를 살아가는 한국인들의 소망에 불과한 것 아니던가. 그런 메시지와 문제의식에 진정성이 조금이라도 담겨있었더라면 주인공이 사대부들을 향해 눈물 그렁거리면서 쩌렁쩌렁 호령하고 장황한 BGM을 까는 식으로 단말마에 해결하려 들지 않았겠지. 암튼 이야기 전개는 매우 깔끔하였고, 배우들도 주연부터 조연들까지 이미 검증된 명연기자들로 꽉꽉 채워두었고, 촬영, 미술 등에도 흠을 찾기가 어려운 매우 깔끔한 영화였지만 – 소재는 조금 식상했고 메시지는 공감할 수가 없었다. 영화를 뭉뜽그려 인상으로서 보자면 영화 자체는 큰 흠이 없지만 또한 관객으로서 나를 이끄는 매력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던 영화라고 해야할까. 마치 검증된 배우, 검증된 소재, 검증된 메시지, 검증된 개그로 채워넣은 한류 기획 수출용 영화같았다는 게 내 최종 인상.
* 여기에는 스포일러가 꽤나 많이 있습니다. 이정재의 절제된 표정. 그리고 시멘트를 입 속으로 털털 털어버리는 잔혹함, 꽤 괜찮은 출발이다 싶었습니다. 기대가 되잖아요. 저 잔혹함 속에 잘 어울릴 것 같지 않는 이정재란 인물이 어떻게 뒹구는지 그리고 어떻게 변하는지요. 무간도와 비슷하다는 이야기는 미리 들었기 때문에 이정재가 경찰 스파이겠구나 하는 것을 미리 예상했기에 더 기대를 했던 것이겠지요. 그런데 극 중반으로 치닫아 감독이 쳐놓은 모든 전제와 설정들이 공개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이정재에게 몰입이 안됩니다. 이정재는 꽤 연기를 잘해주었어요. 꽤나 멋진 배우가 되었구나 탄성을 지를 정도로요. 제가 이정재에게 몰입하지 못한 이유는 어디까지나 시나리오와 연출력 탓이겠지요. 왜냐하면 주인공으로서 이정재가 극을 끌어가질 않아요. 이것은 분량을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주인공이면 스토리 전체를 보따리로 쥐어가지곤 쭉쭉 이고 가야 재미난 것이죠. 그 스토리의 한 복판에 관객들도 앉아있는 것이구요. 그런데 이정재는 극 처음부터 경찰 스파이 노릇 하는데에 너무도 짜증을 내고 있더라구요. 최민식만 만나면 성질을 버럭버럭 내고, 그래도 결국 중도포기는 안하겠다는 것으로 결론을 낸 것 같긴 한데 조직 내에서 이정재가 달리 하는 일이란 게 별로 없어요. 조직 몰래 정보도 좀 빼내고 추격도 좀 해주고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리고 비밀정보를 전달하는 경로를 찾으려고 이리뛰고 저리뛰고 해야되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이정재는 결국 조직내에서 서열 4위 정도 위치만 유지하고 있을 뿐이에요. 그 와중에 황정민이 공항출국 할 때 정보주는 정도? 사실 그 정도 정보는 감시인력 하나만 붙여도 되는 것 아닌가요? 마피아 같은 지하조직도 아닌 기업을 경영하는 좀 공개적인 조직이던데 말이지요. 이정재는 그저 최민식이 짜 놓은 작전 아래 놓인 한 마리 말일 뿐이에요. 사실 경찰도 조폭과 마찬가지라는 주제의식과 밀접하게 놓인 거라고 우겨댄다고 해도…. 할 말은 있습니다. 그것을 포인트로 삼으려고 했더라면 – 이정재가 처음부터 그렇게 짜증을 내면 안돼죠. 처음에는 경찰 일을 좀 돕고 하는데 보람을 좀 느끼다 보니까, 어느 순간 보니. 경찰 이것들은 악랄하기 짝이 없고 오히려 조직 내가 의리가 있더라 이런 식으로 변화를 줬어야죠. 하기싫은 일 어쩔수 없이 하는 것을 시작점으로 삼는 이정재는 쟤가 경찰이 맞긴 맞나 하는 의구심을 낳을 뿐이고, 별로 하는 일이 없이 그저 사람 몇몇 만나고 관찰만 하는 사람이라서 극을 끄는 힘이라곤 없는 꼭두각시 인물이 되고 맙니다. 영화가 꽤나 포인트를 주고 싶었던 부분은 최민식과 황정민의 대조적인 모습인 것 같아요. 최민식은 정의를 위해 일한다지만 하는 짓은 번번히 못되 처먹었고, 황정민은 깡패녀석이라지만 이정재와 거의 의형제와 같은 우정을 이뤄내잖아요. 그래서 결국 그 대조점을 바탕으로 막판에 이정재의 전향(!)을 이뤄낸 것이겠지요. 그런데 그렇다고 하기에 최민식의 사악한 면모는 어느정도 납득하겠으나 아무래도 황정민과 우정 부분이 너무 약해요. 왜냐하면 이정재와 황정민이 이뤄놓은 우정의 정도를 공감할만한 재료들이 부족한 것이지요. 이정재는 내적 갈등 때문인지 황정민을 만날때도 냉정한 모습을 거의 유지하거든요. 그래서 깐죽대는 황정민 모습만 보다보니… 이게 그냥 개그드립인지, 둘이 쌓아놓은 우정 때문에 황정민이 애정놀음을 하는 것인지 알 길이 좀 묘연하더라구요. 그래서 극 초반에 둘이 만나서 차 안에서 꽤 긴 시간동안 대화 나누는 부분이 전 의아하게 느껴졌었습니다. 시덥지 않는 황정민의 캐릭터 연기가 계속되는 부분을 왜 이렇게 긴 분량으로 처리했지? 했던 것이지요. 도중에 중국집 식당에서 황정민과 조직애들의 의리 부분이 꽤 전형적으로 강조되지 않았더라면 이정재의 전향(!)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을 거에요. 이 부분을 감독도 의식한 것일까요? 영화의 막판에 둘의 전사를 흐름에 안맞게 내놓아버리는데… 손발 좀 오그라들었습니다. 최민식의 그럴듯한 작전은 알겠으나, 이정재란 인물은 내적갈등을 꽤나 보여줘야 하는 주인공이었어요. 그런데 감정의 동요란 걸 거의 보여주지 않는 짜증일관에서 전향(!) 으로 나가버리니 그 반전의 묘미 정도도 좀 적었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전향(!) 이라도 안 했으면 정말 더 짜증나는 영화가 됐을거에요. 그 외에도 영화가 부족한 부분들이 꽤 많습니다. 우선 현실 개연성을 너무 떨어트려 놨어요. 스토리 반전을 위해서 경찰 스파이를 너무 많이 배치했던 것. 그리고 최민식의 시나리오가 생각보다 너무 무책임하고 악랄한 것이지요. 꼭 그래야만 한다라는 당위에 납득이 돼야하는데 그 몇 년짜리를 해놓고선, 조폭애들을 꼭두각시로 부려서 협력하려는 정도가 되버리니 납득하기 힘들죠. 그 조직이 정말 강성조직도 아닌 것 같고 쁘락치 험하게 다루는 것 외에는 꽤 준수한 기업 같던데 말이지요. 또 느와르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 그런 것 같은데 너무 클로즈업으로 인물 얼굴만 잔뜩 잡더군요. 그래서 배우들 피부는 실컷 볼수 있긴 하나… 공간감이 너무 없어요. 공간감을 살린 것은 절에서 장례식 할 때랑 그 낚시터 뿐이더군요. 공간감이 없어버리니 현실성과 더 동떨어진 허공 위에서 일어나는 것 같은 느낌이고, 영상을 보는 재미가 없어요. 그저 표정들만 잔뜩 나오니 너무 텁텁하고 답답한 느낌이 좀 듭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간도 짝퉁필이 난다는 느낌은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우선 경찰 스파이란 설정이 같기 때문인데요. 그 외에도 이정재가 바둑선생을 만나서 가끔식 소통한다거나 착실한 아내를 둔 것 등 영화의 내용 자체이기보다는 영화의 호흡이 꽤 비슷합니다. 특히 바둑선생 장면이 갑자기 뛰쳐나올 땐, 손발이 오글아 들었어요. 무간도에서 양조위가 안마의자 있는 곳으로 찾아가는 호흡이랑 너무 비슷해서요. 암튼- 한국와서 두 번째로 본 영화 신세계는 이러했습니다.